[메디게이트뉴스 박도영 기자] 유전자 데이터에 대한 개인 주권이 강조되면서, 블록체인 기술을 이용해 소비자 개인이 직접 데이터 접근권을 관리하고 이에 대해 보상을 받는 새로운 생태계가 만들어지고 있다.
대표적인 곳으로 미국 스타트업인 네뷸라 지노믹스(Nebula Genomics)와 루나 DNA(Luna DNA)를 꼽을 수 있다. 이들은 유전자 정보 사용에 대한 보상으로 각각 네뷸라 토큰(Nebula tokens)과 유한회사의 주식 배당금을 지급하는 사업모델을 발표해 화제를 모았다.
이들 기업은 왜 이러한 비즈니스를 준비하게 됐고, 어떻게 보상방법을 마련하게 됐을까.
미국에서 오랫동안 관련 비즈니스를 해온 이원다이애그노믹스(EDGC) 공동대표 이민섭 박사는 네뷸라의 무료 DTC 서비스 출시 발표가 완전히 새로운 개념은 아니라고 했다. 이 박사는 본지와의 인터뷰를 통해 이러한 개념이 등장하게 된 배경과 미국을 중심으로 한 유전자 검사 산업의 트렌드를 소개했다.
유전자 데이터 주권 찾아주기, 새로운 산업이자 하나의 문화
유전자 정보 공유시장 개념은 미국 하버드대학교의 개인 게놈프로젝트(Personal Genome Project, PGP)로 거슬러 올라간다. PGP는 개인 유전체 및 정밀의료 연구를 가능하게 하기위해, 지원자 10만 명의 완전한 유전체와 의료기록을 분석하고 공개하는 것을 목표로 시작된 장기간 대규모 코호트 연구다. 2005년 미국에서 처음 시작됐고 이후 캐나다(2012), 영국(2013), 오스트리아(2014), 한국(2015), 중국(2017) 등으로 확대됐다.
이 박사는 "처음 시작될 당시만 하더라도 조건없이 공개하고 그 데이터에 대해 여러 사람이 공유하는 개념의 서비스였다"면서 "이후 유전자 데이터에 대한 주권 문제가 중요한 이슈 가운데 하나로 떠오르면서 네뷸라와 같은 회사들이 등장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23앤드미(23andMe)와 같은 유전자 정보 분석 기업들이 개인 소비자 유전체 시장에서 모은 데이터를 이용해 GSK 등 글로벌 제약회사들과 계약을 체결하고 다양하게 사업을 하고 있다"며 "분명 99달러의 저렴한 가격으로 유전자 검사를 받긴 했지만, 어느순간 누군가가 내 유전자 데이터로 돈을 벌기 시작하면서 우려가 생겼다"고 말했다.
그러나 블록체인 기술로 모든 거래를 투명하게 관리할 수 있게 되면서 유전체 데이터도 소유권을 가진 사람들이 직접 관리하고, 나아가 여기서 발생할 수 있는 수익에 대해 정당하게 보상을 제공하는 데까지 이르렀다.
이 박사는 "유전자 검사에 있어서 가장 큰 화두로 떠오르는 것이 유전자 데이터에 대한 개인 보안 문제, 소위 말하는 투명성이다"면서 "개인들이 자신이 데이터를 컨트롤할 수 있게되면서 이러한 것들이 새로운 산업이자 하나의 문화가 되고 있다. 네뷸라와 루나의 원리는 간단하다. 개인 유전자 주권을 소비자에게 찾아주자는 것이다"고 말했다.
유전자 정보 서비스 기업들, ICO 없이 보상할 수 있는 방법 골몰
그렇다면 개인에게 어떻게 보상을 줄 수 있을까.
이 박사는 "누군가가 나의 유전자 정보를 바탕으로 영리를 취한다면 이를 나와 공유하거나 내가 컨트롤할 수 있어야 하지만 이는 금융적으로 쉽지 않다"면서 "기술적 문제를 떠나 어느 국가던지 개인의 조직이나 장기 등 인체유래물로부터 직접적인 금전 혜택을 얻는 것은 불법이다. 데이터를 판다해도 DNA가 인체유래물에 포함이 되기때문에 이는 장기나 조직에 대한 매매행위와 마찬가지다"고 했다.
네뷸라와 루나같은 회사들에서도 보상방법에 대해 많은 고민을 했다. 이 박사는 "이것을 가장 쉽게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 비트코인과 같은 가상화폐 제도로, 이런 회사들이 처음 시작할 때 암호화폐공개(ICO)를 통해 사람들에게 혜택을 주겠다고 했던 것이다"고 배경을 밝혔다.
문제는 한국과 마찬가지로 미국도 ICO를 거의 불법으로 막고 있는 상태가 된 것이다. ICO가 안되니 회사들은 다시 고민에 빠졌다. ICO 없이 사람들에게 혜택을 줄 수 있는 방법 가운데 하나로 찾은 것이 루나의 유한책임회사(LLC) 모델이다. 유한책임회사는 주주들이 채권자에 대해 자신이 출자한 지분만큼만 책임을 지는 회사를 의미한다.
루나의 모델은 유한책임회사를 설립한 뒤, 회사의 지분을 나눠주고, 그 지분에 대한 배당을 보상으로 제공하는 것이다. 루나의 주식은 현금으로 구매할 수 없고, 유전형, 표현형, 의료, 건강 및 관련 데이터와 같은 '회원 정보'와 교환 가능하다. 이를 위해 루나는 25개 유형의 유전체 및 의료 데이터에 대한 '공정시장가치(fair market value)' 추정액을 산출해냈다.
이 박사는 "루나는 이 결론을 얻기 위해 미국에서 최고의 로펌과 함께 반년이상 조사를 했다"며 "결국은 유전자 데이터를 가진 사람들에게 보상을 지분이라는 개념으로 제공하기로 했다. 일반 회사의 지분은 무한책임과 같은 경우에도 혜택을 볼 수 있지만 문제가 생기면 같이 책임을 질 수 있기 때문에 유한책임회사를 설립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반면 네뷸라는 ICO가 막히자 보상으로 네뷸라 토큰을 제시했다.
이 박사는 "네뷸라 토큰이 어떻게 가치를 가질 수 있게 될지에 대해서는 사람들이 많이 의아해하고 있다"면서 "지금 단계에서 네뷸라가 할 수 있는 것은 결국 3가지다. 유전체 분석을 하는데 개인들이 돈을 내고 할 수도 있고, 무료로 할 수도 있고, 한 단계 나아가 유전체 분석 행위로부터 보상을 받아 수익을 만들수도 있는 것이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이제 유전체 데이터가 100달러에 분석되는지 1000달러에 분석되는지는 아무런 의미가 없는 시대가 됐다. 가격은 사업모델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면서 "중요한 점은 무료로 검사를 받을 수 있다는 것이 아니라 데이터로 인한 수익구조까지 생각하는 시대가 됐다는 것이다"고 강조했다.
또한 "네뷸라는 일단 개인 정보를 결합해 무료로 검사를 해주겠다는 단계까지 온 것이고, 루나는 무료를 넘어 직접적인 보상을 지분에 따른 배상으로 주겠다는 단계까지 왔다. 이제 유전자 검사는 더이상 무료로 하는 것이 아니라 검사를 받음으로써 돈을 버는 시대가 됐다"고 덧붙였다.
EDGC는 마이지놈박스를 통해 마이지놈코인 서비스 론칭을 준비하고 있다.
이 박사는 "새로운 코인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기존의 비트코인을 이용해 새로운 장부를 만드는 형태가 될 것이다. 단순한 복사코인은 가치가 없다. 현재 개인의 유전자 데이터를 코인에게 부여함으로써 가치를 새롭게 만드는 작업을 하고있다"고 소개했다.
이어 그는 "이미 마이지놈박스라는 유전자를 기반으로 한 생태계가 만들어져있고, 그 안에 파트너사들이 있다. 단순하게 설명하면 지놈코인을 가진 사람들이 유전자 검사를 받고 그 생태계 안에서 맞춤형 화장품이나 건강식품을 사는 것 등을 할 수 있는 것이다"면서 "루나나 네뷸라는 플랫폼을 만들었지만 아직 이를 활용할 수 있는 DNA 앱 생태계를 만들지 못했다. 맞춤 유전자 분석뿐 아니라 그 안에서 하나의 가치를 갖는 생태계를 갖춘 곳은 현재 마이지놈박스가 유일하다. 때문에 사업을 론칭했을 때 파급효과는 훨씬 더 클 것이라 생각된다"고 밝혔다. [관련기사=구글을 긴장시킨 토종 바이오기업]
이 박사는 "우리가 앞서나가는 편이고, 이런 비즈니스를 검토하고 있는 후발주자들의 가장 큰 고민은 유전자 데이터를 생성하는 것부터 유전자 데이터를 확보할 수 있는 고객 확보다"며 "네뷸라는 유전자 분석을 하는 베리타스(Veritas Genetics)와, 마이지놈박스는 EDGC와 함께 하고 있어 데이터분석부터 고객확보까지 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매년 10배씩 성장하는 美시장…"미국이 10년전 겪었던 문제 그대로 따라갈 필요없다"
마이지놈박스는 현재 국내에서는 서비스되지 않고 있다. 국내에서는 규제에 막혀 할 수 있는 사업이 제한적이기 때문이다. 반면 미국에서는 유전자 검사가 보편화되고 그 수요도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이 박사는 "미국에서는 유전자 검사를 받지 않으면 왕따를 당하는 시대가 됐다. 파티와 같은 소셜 모임에서 일상적으로 유전자 검사에 대한 이야기를 나눌 정도다"면서 "지난해 추수감사절부터 연말까지 진행된 유전자 검사 수가 지난 몇 십년동안 해왔던 컨슈머 유전자 검사 수를 앞질렀다"고 현지 분위기를 전했다.
이 박사는 "미국도 이렇게 되기 시작한지 불과 2~3년밖에 되지 않았다"며 미국에서의 폭발적인 성장 배경 중 하나로 일반 소비자들의 인식을 꼽았다.
미국은 다민족 국가로 조상에 대한 관심이 컸다. 여기에 기폭제가 된 것이 배우 안젤리나 졸리의 스토리다. 졸리가 2013년 유전자 검사를 받고 유방절제술을 한 스토리를 뉴욕타임스에 기고한 뒤로, 유전자 검사를 통해 이런 것도 할 수 있다는 일반인 인식이 높아졌다는 것이다. 이어 2014년 일루미나가 유전자 검사 1000달러 시대를 열었고, 2015년 버락 오바마(Barack Obama) 전 미국 대통령이 정밀의료 프로젝트를 발표했다.
이 박사는 "정밀의료 프로젝트 발표 전까지 미국은 한국 못지 않게 소비자직접의뢰(DTC) 유전자 검사에 대한 규제가 심했고, 2013년까지는 불과 조상찾기 외 DTC 검사는 아예 할 수 없었다. 하지만 정밀의료 프로젝트를 하면서 새로운 전기를 맞았고, 2016년 이후 지금까지 매년 거의 10배씩 자라는 시장이 됐다"며 한국에서도 일반인 인식이 매우 중요하게 작용할 것으로 내다봤다.
그는 "한국 규제에 대해 아쉬운 점은 미국이 약 10~15년 전에 겪었던 어려움을 이제야 겪기 시작한다는 것이다. 미국은 제일 먼거 그 고통을 겪었기 때문에 해결하는데 시간이 걸리더라도 글로벌 리더로 나갈 수 있었다"면서 "반면 한국은 지금 빨리 해결하지 못하면 낙오될 수 있다. 글로벌 경쟁 시대에 뒤지지 않으려면 그 과오를 똑같이 따라할 필요는 없다. 규제는 한번은 겪고 넘어야 할 문제이고, 어떻게 빨리 해결하느냐는 결국 일반인들의 인식에 달려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 박사는 "오바마 전 대통령이 정밀의료 프로젝트를 발표하면서 가장 먼저 내세운 것이 유전체 데이터가 개인정보라는 것이다. 이는 다시 맨 처음 이야기한 주권보호 주제로 이어진다. 유전체 데이터가 나의 개인정보라는 세상의 흐름과 대세는 막을 수 없다"고 강조했다.
이어 그는 "규제가 있고 제약이 있지만 이 모든 것은 시간상 우리가 조금 앞서갈 수 있느냐 후발주자로 따라갈 수 있을 것이냐의 문제다"며 "4차산업혁명 시대에 한발 앞서나갈 수 있으면 그 분야의 리더가 돼 국가의 핵심산업이 될 수 있는 것이고, 뒤따라 간다면 영원한 후발주자밖에 될 수 없는 현실인 것 같다"고 아쉬움을 토로했다.
마지막으로 "한국은 이런 유전체 기반 산업을 글로벌한 경쟁력을 갖기에는 우수한 위치에 있는 나라 가운데 하나이고, 아시아에서는 가장 좋은 조건을 갖고 잇는 나라다"며 "지금은 이런 이점을 잘 활용해 한국이 특히 유전체 데이터를 기반으로 한 차세대 헬스케어 시장에 선도적인 역할을 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하는 발판을 만드는데 중요한 시기라고 본다"고 덧붙였다.
댓글보기(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