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디게이트뉴스 권미란 기자] "폭행당한 의료인의 보호 의무를 소홀히 한 경찰들을 강력히 문책·징계해야 한다. 의료기관 내 폭력사건 재발을 방지하기 위해 강력한 대책방안도 마련하라"
대한병원의사협의회는 4일 전북 익산병원에서 환자로부터 의료인이 폭행당한 사건에 대해 성명을 발표하고 이같이 촉구했다.
병의협은 "지난 1일 오후 10시경 전북 익산의 한 응급실에서 당직 근무 중이던 의사가 술에 취한 환자에게 폭행을 당해 중상을 입은 사건이 발생했다"며 "피해자인 당직 의사는 안면부 골절과 뇌진탕이 생기고, 의식을 잃을 만큼 폭행을 당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현장에 출동한 경찰들은 가해자를 제압하지 않았다"며 "경찰 출동 이후에도 가해자가 의사를 향해 살해 협박까지 하는 상황도 제지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병의협은 "심지어 피해자인 의사가 가해자에 대한 엄중한 처벌을 요구했음에도 경찰은 담당 형사가 없다는 말도 안 되는 이유로 고소장 접수를 거부했다"며 "다음날 가해자를 풀어주기까지 해 의료계의 공분을 샀다"고 했다.
병의협에 따르면 이후 이 사건 관련 동영상이 공개되자 너무나 충격적인 폭행 장면에 의사를 포함한 모든 의료계 종사자들은 분노했고 파장은 일파만파 커져가고 있는 상황이다.
병의협은 "그동안 응급실에서 의료진들이 환자나 보호자들에게 폭행을 당하는 사건은 비일비재하게 일어났다"며 "경찰과 정부 당국의 미온적인 대처로 의료기관 내 폭력 사건은 전혀 줄어들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이어 "이를 방지하기 위해 진료실 폭행 가해자에 대한 가중처벌법도 마련됐지만 실효성은 없었다"며 "의료기관 내 폭력 사건이 줄어들지 않는 원인은 여러 가지가 있으나 특히 많이 거론되는 원인은 이번 사건에서도 드러났듯이 경찰의 안일한 대응이다"라고 꼬집었다.
병의협은 "대부분의 의료기관 내 폭력 사건에서 경찰들이 가해자를 제압하지 않아 추가 폭행이 일어나는 경우도 많았다"며 "의료진들의 가해자에 대한 엄중 처벌 요구는 철저히 무시당해 가해자는 솜방망이 처벌만을 받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고 했다.
병의협은 "의료기관, 특히 응급실은 한정된 의료진이 많은 수의 응급환자를 진료해야 하는 공간이다"라며 "의료진들이 폭행을 당하면 의료진의 안전도 문제가 되지만 진료를 받아야 하는 다른 환자들이 제때 진료를 받지 못하게 돼 위험에 빠지는 상황이 발생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의료기관에서 일어나는 폭력 사건은 다른 환자들의 2차 피해를 막기 위해서라도 단순 폭력 사건보다 더 적극적이고 신속한 대처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병의협은 "가해자가 당장 생명이 위험한 경우가 아니라면 당연히 빠르게 제압해 해당 의료기관으로부터 격리해야 한다"며 "추가적인 치료가 필요하다면 타 의료기관에서 치료를 받게 한 뒤 엄중 처벌하는 방식을 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경찰 내부적으로도 이러한 매뉴얼이 제대로 갖추어져 있지 않고, 제압은 커녕 오히려 가해자에게 휘둘리기만 하는 경우가 허다하다"며 "오히려 피해자인 의료진에게 문제가 있다는 식의 대응을 보이기도 해 의료진들이 폭력사건 발생 시 경찰을 신뢰하지 못하는 경향도 생기고 있다"고 했다.
병의협에 따르면 의료계의 폭력 사건 발생시 대응 매뉴얼에는 관할 경찰서로 연락하지 말고, 반드시 112로 전화하라는 내용이 포함돼 있다. 그동안 경찰이 의료진들에게 얼마나 신뢰를 잃었는지를 단적으로 알 수 있는 부분이라는 것이다.
병의협은 "이제라도 폭력 사건을 방지하고, 2차 피해를 줄이기 위해서는 안일한 대응을 한 관련 경찰에 대한 강력한 징계가 이루어져야 한다"며 "경찰과 의료계가 공동으로 의료기관 내 폭력 사건에 대한 대응팀을 만들어 구체적인 대응 매뉴얼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한 "현재 실효성 없는 가중처벌법을 유지하기 보다는 의료진 보호에 대한 구체적인 내용이 포함된 법률개정이 필요하다"며 "폭력 가해자에 대한 건강보험 가입자 권한 박탈, 의료진에 위협이나 폭력을 행사하는 환자에 대한 진료 거부권 인정, 가해자의 해당 의료기관 접근 금지 등의 내용을 포함해야 한다"고 했다.
병의협은 "폭력에 무방비로 노출되고 국가로부터 제대로 된 보호도 받지 못한다면 보건의료 종사자들은 더 이상 대한민국에서 일을 할 수 없다"며 "환자와 의료진들이 안전하게 보호받을 수 있는 방안이 마련되지 못하면 대한민국 의료는 붕괴될 것이다"라고 경고했다.
병의협은 지난 2015년 동두천에서 발생한 응급실 폭력 사건에 대해 검찰이 약식기소 벌금 300만원이라는 솜방망이 처벌을 내린 사건을 예시로 들었다. 당시 병원에서는 안전을 보장 받지 못하는 상황에서는 응급실을 유지할 수 없다고 판단해 응급실 폐쇄를 결정했다. 동두천에 유일하게 운영되던 응급실이 사라지고 나서야 동두천시장까지 나서 재발 방지를 위한 대책을 약속했다. 재발 방지대책이 제대로 이행되지 않을 경우 병원 측은 다시 응급실을 폐쇄할 것이라는 점을 분명히 하고 응급실 업무를 재개했다.
병의협은 "2015년 동두천에서 일어난 일이 대한민국 전체의 일이 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는 경찰과 정부의 적극적인 대처가 반드시 필요하다"며 "의료기관 내 의사와 의료진에 대한 폭력 사건을 방지하기 위한 근본적인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특히 "폭력 사건 피해자에 대한 보호 의무를 소홀히 하고, 가해자 처벌에도 비협조적인 반응을 보였던 해당 경찰들을 강력히 문책·징계하라"며 "해당 경찰들은 피해자와 국민들 앞에 공개적으로 사죄하라"고 요구했다.
병의협은 "경찰은 의료계와 협력해 의료기관 내 폭력 사건 대응 TF를 구성해 의료기관의 의료진과 환자들이 경찰에 보호 받을 수 있는 환경을 구축해야 한다"며 "정부와 국회는 환자와 의료진이 폭력으로부터 안전하게 보호 받을 수 있는 구체적인 내용이 포함된 법률개정안을 마련하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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