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입력시간 24.12.28 18:24최종 업데이트 24.12.28 1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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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난만 할 뿐, 진정으로 의료를 걱정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의사와 아픈 사람만 빼고

[칼럼] 박인숙 울산의대 명예교수·전 국회의원

사진=게티이미지뱅크 

[메디게이트뉴스] 대통령 발 친위 쿠테타로 시작한 내란 때문에 나라 전체가 깊은 수렁에 빠져 있는 와중에 진정으로 의료붕괴를 걱정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지금 안타까워하며 발을 동동 구르며 큰 피해를 입고 있는 사람들은 심각한 질환을 가진 환자들과 가족들이고, 진심으로 이 상황을 걱정하는 사람은 의사들 뿐이다. 그런데 이를 해결할 힘과 도구를 가진 정치인들과 관료들, 여야 국회의원들은 온통 본인의 안위만 걱정하고 있고 의료붕괴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지조차도 의심스럽다.
 
탄핵된 대통령의 권한대행으로 본인도 역시 탄핵된 국무총리, 그리고 장·차관들 중 아무도 대국민 사과를 하지 않고 있으며 책임지고 사퇴한 사람도 없다. 심지어 이들은 이런 무정부 상태를 최대한 오래 끌면서 나라가 망하건 말건 자신들의 정치생명을 하루라도 더 연장하는 것이 지상 최대의 목표인 것처럼 행동하고 있다. 국민은 하루하루 피를 말리는 고통속에 살고 있는데, 여야 정치권의 이런 행태는 많은 국민들께 극도의 불안과 분노를 일으키고 있다. 
 
여당 의원들은 내란을 부정하며 윤석열 ‘대통령’ 옹호와 탄핵 반대를 당론으로 정함으로써 국힘당은 스스로 좀비 정당임을 자임하고 있다. 이들은 탄핵시계를 멈추고 국정공백, 무정부 상태를 가능한 오래 끌어 자신들의 정치생명을 연장시키는 데 사활을 걸고 있다. 반면에 야당 의원들은 나라를 걱정하는 척 하지만 내심 자신들에게 저절로 굴러들어온 초현실적인 호재에 환호하며 매일 새로운 폭로로 언론을 도배하고 있다.
 
의대 증원을 원상으로 되돌릴 주체가 없는 지금의 상황이 길어지면서, 게다가 비상계엄 포고문에 등장한 ‘전공의 처단’이라는 단어 때문에 학생들과 전공의들의 복귀 가능성이 더욱 낮아지고 있다. 이 와중에 입시 시계는 정확하게 돌아가면서 이제 두달이면 4500여명이 의대입학통지서를 받게 될 것이고 의료계가 줄기차게 주장해온 2025학년도 의대입학 전면중단은 불가능해지고 있다.

이제라도 교육부장관과 복지부장관이 함께 결단을 내려 의대학장과 대학총장들에게 자율적으로 정원을 줄일 수 있는 재량권을 준다면 2025학년도 신입생 수를 단 얼마라도 줄일 수 있다. 그러나 이들이 이런 결정을 내릴 가능성은 제로에 가깝다. 2026학년도에도 2000명을 증원하자는 주장을 굽히지 않고 있는 이들 장관들이 사실 2025학년도 의대정원을 줄일 수 있는 권한을 아직은 어느 정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총리 뿐 아니라 장·차관 본인들도 윤정부의 부역자로써 내란 방조, 내란 협조 혐의로 수사 대상이 될 가능성이 큰 데다 원래도 그런 강단 있는 결정을 내릴 인물도 아니었기 때문에 이들에게 그런 기대를 할 수 없다.

이들은 애초부터 대통령의 잘못된 명령을 비뚤어진 사명감을 가지고 한 치의 오차 없이 수행해 왔다. 심지어 국민과 의사들로부터 온갖 비난은 물론 오물 바가지도 자진해서 뒤집어쓰면서 괴변과 거짓말을 일삼던 대통령의 충실한 부역자이자 호위무사였기 때문이다. 그들이 왜 이런 행태를 보였는지 무슨 보상을 바랐는지는 알 수 없으나, 대통령 탄핵이 헌법재판소에서 인용되지 않을 것을 기대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하는 강한 의심이 든다.
 
개별 대학총장들과 학장들의 결단을 촉구할 수도 있으나 이것도 전혀 기대할 수 없다. 기적적으로 의대 학장과 총장이 각종 비난과 소송의 위험을 무릅쓰고 그들의 재량권을 발휘해 2025학년도 정시 입학생을 줄임으로써 교육시켜야 할 1학년 학생을 단 몇 명이라고 줄이려는 노력을 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볼 수 있으나 그럴 가능성도 없다. 지난해 말 정부가 각 의대에 원하는 증원 숫자를 적어내라고 했을 때 터무니 없이 많은 숫자를 적어냈던 탐욕스런 총장들이 이제 와서 스스로 증원 숫자를 줄일 리 없다. 본인들의 욕심 뿐 아니라 국립대 총장들은 교육부의 눈치를 볼 것이고 사립대 총장들은 교육부와 대학 재단의 눈치를 볼 것이기 때문이다.
 
국회에서 민주당 주도로 의대정원 관련 법안이 발의됐다지만 이 법안이 설사 통과된다고 해도 2025학년도 입학절차는 그대로 진행될 것이다. 2026학년도 부터라도 정원을 줄일 수 있을지 지금으로써 확실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지금도 그렇지만 이제껏 우리나라에서 보건의료정책은 보수건, 진보건 모든 정권에서 국정운영 아젠다의 우선 순위에서 항상 뒤로 밀렸다. 그러나 큰 선거 때마다 등장하는 대표적인 포퓰리즘 공약이 바로 의료서비스와 의대 신설이었다. 특히 대선에서 쉽게 표를 얻는 수단으로 의료서비스가 등장하며 온갖 설익은 공약들이 전문가들과의 논의나 점검 없이 졸속으로 마구 뿌려지곤 했다. 그 결과 의료시스템 자체가 심히 왜곡됐고 근본적인 의료개혁은 항상 뒷전으로 밀리며 지금의 매우 비정상적인 의료시스템과 필수의료 붕괴, 지역의료 붕괴가 초래된 것이다.
 
실제로 보건의료기본법이 2010년에 제정됐는데 보건복지부는 이 법을 단 한번도 지키지 않았다. 의료인력 장기 수급계획이 이제껏 발표된 적이 없었고 인력문제가 불거질 때마다 보건복지부는 땜빵식으로 대처하곤 했다.
 
이와 같이 이미 우리의 의료시스템에 수많은 고질적인 난제들이 쌓여있는 상태에서 윤석열 ‘대통령’이 어느 날 갑자기 '2000명 의대정원 증원'이라는 ‘화약고에 불을 부친 것 같은 미친 정책”을 발표하면서 학생 휴학, 전공의 사직, 교수 사직, 그리고 이미 진행 중이던 필수의료 붕괴와 지역의료 붕괴에 가속도가 붙기 시작한 것이다.
 
12.3 비상계엄 선포, 국회의 계엄해제 결의와 그 후 대통령 탄핵안의 국회통과를 거치고 이제 헌법재판소 판결만 남은 상황에서 국민 모두가 이 내란이 조속히 해결돼 대한민국이 정상궤도로 복구되기를 진심으로 열망하고 있다. 그런데 탄핵된 총리권한 대행을 위시한 여야 정치인들 거의 모두가 국가적 재난상황 해결은 외면한 채 각자의 생존을 위한 복잡한 계산방식을 냈고, 이것들이 서로 얽히면서 국정이 완전 멈춰서면서 나라가 더 깊은 수렁에 빠지고 있다. 이러한 절망적인 상황에서 국민은 지쳐가고 있고 대한민국이 빠르게 망하고 있고 국제사회로부터도 패싱당하고 있다.
 
이런 국정공백 상태에서 환자들은 죽어가고 있고 가족들은 걱정으로 골병이 들고 있는데, 의료붕괴를 진심으로 걱정하는 정치인도 없는 상황에서 의대정원 정상화를 위해 의사들이 선택할 수 있는 수단은 딱히 없다. 내년 3월 1일이 되면 교육현장, 특히 입학 정원이 몇 배나 늘어난 비수도권 의대에서 벌어질 끔찍하면서도 한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난장판이 훤히 눈에 보인다. 이를 알면서도 속수무책으로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는 것에 대해 나 뿐만 아니라 의사들 모두 심한 무력함을 느낀다.
 
이제 마지막 제안을 하면서 차기 대한의사협회장이 최우선 과제로 이를 실천해주기를 바란다. 의료농단을 일으키고 거기 부역한 정치인, 교수, 대학총장 등 관련자들  모두를 대상으로, 모든 사안에 대해 민사, 형사 고발, 나아가 헌법소원까지 낼 것을 제안한다. 현재 진행 중이고 이미 고발된 건들도 있지만, 보다 주도 면밀하게 지난 1년간 벌어진 의료 농단 사건에서 불법, 편법, 배임, 직무유기 부분들을 꼼꼼히 살펴보고 조금이라도 책임이 있는 사람들에 대해 끝까지 법적 책임을 묻자는 것이다.

비록 이런 대응이 당장 문제 해결에는 도움이 되지 못하더라도 의학교육의 흑역사를 명명백백히 기록으로 남겨야 한다. 그래야 재발을 방지하고  후유증을 최소화하며 후향적으로라도 이 난리의 원흉들을 응징, ‘처단’함으로써 막중한 피해를 입은 학생, 전공의들, 의사들에게 다소나마 위안이 되도록 하기 위함이다.

나아가 민형사 고발과 함께 후에 정상적인 정부가 들어섰을 때에 대비해 의료계의 여러 난제들에 대한 해답을 지금 마련해두는 것도 필요하다. 이 역시 의협의 새 집행부가 해야할 일이다. 
 

※칼럼은 칼럼니스트의 개인적인 의견이며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메디게이트뉴스 (news@medigate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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