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디게이트뉴스 정다연 기자] 질병관리본부가 의견 조회 중인 'HIV 감염인 의료차별 예방 가이드라인(안)'이 의료 현실을 외면하고 있고 오히려 환자들의 차별을 심화시킬 우려가 있다는 목소리가 나왔다.
대한병원의사협의회는 5일 질병관리본부가 의견 조회하고 있는 'HIV 감염인 의료차별 예방 가이드라인(안)'을 즉각 폐기하고 현실성 있는 대안을 마련하라고 촉구하는 성명서를 발표했다.
질병관리본부는 최근 HIV 감염인 및 AIDS 환자에 대한 편견과 선입견으로 감염인에 대한 의료 차별 사례가 빈번하다는 지적에 따라 'HIV 감염인 의료차별 예방 가이드라인'을 만들어 오는 6일까지 의견 조회를 진행하고 있다.
병의협은 "HIV 감염인 뿐 아니라 모든 환자가 자신의 질병에 대한 오해와 그릇된 편견으로 부당한 차별을 받는 일이 없어야 하는 것은 당연한 상식이다"며 "하지만 'HIV 감염인 의료차별 예방 가이드라인(안)'을 검토한 결과, 가이드라인에는 실현 가능성에 대한 고찰도 없고 가이드라인 제정이 오히려 HIV 감염인들의 의료 차별을 더 심화시킬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병의협은 "HIV 감염인의 문제는 단순히 인권의 시각으로만 접근해서는 안되며 질병 자체의 특수성과 사회 전반의 인식까지 고려돼야 한다"며 "질본은 이러한 점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가이드라인을 만들었다"고 지적했다.
이에 따라 병의협은 가이드라인의 문제점 세 가지를 짚고 방향을 제시했다.
병의협은 HIV 감염인에 대한 문진 과정에서 의사표현 금지 등 과도한 차별 금지가 오히려 진단에 어려움을 준다고 지적하며 감염인의 건강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우려했다.
병의협은 "질본의 가이드라인에 따르면 '의료서비스 제공자는 HIV 감염인 및 의심 환자와 대면하는 모든 상황에서 혐오나 경멸 등을 뜻하는 언어적*비언어적 의사표현을 하지 않아야 한다'고 적시하고 있다"며 "모든 진료에서 문진은 가장 기본적이고 필수적인 과정이다. HIV 감염인 진료에서 감염 경로를 파악하기 위한 구체적인 질의와 사실 확인은 반드시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병의협은 "하지만 가이드라인을 통해서 문진 과정에서 언급될 수 있는 동성애와 같은 표현들에 대해서도 차별이라고 주장한다면 이는 의료의 특수성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무지함을 드러내는 것일 뿐"이라고 말했다.
병의협은 "의사는 환자의 개인 정보를 유출하면 처벌을 받기 때문에 진료 목적 외에는 절대 환자의 개인 정보를 유출하지 않는다"며 "그런데 HIV 감염자에 대해서 문진이나 진찰의 과정에서 나올 수 있는 이야기를 의료 차별로 본다면 오히려 진단에 어려움을 준다. 결국 환자가 제대로 치료 받을 수 있는 기회를 박탈 당하는 결과를 낳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또 병의협은 HIV 감염인에 대한 식별은 환자뿐만 아니라 환자를 돌보는 의료 종사자들의 안전을 위해서도 반드시 필요하다고 밝혔다.
병의협은 "우리나라는 다른 나라들에 비해서 다인실의 빈도가 높아 환자간 감염 전파의 위험이 높은 편이다"며 "이러한 필수적인 노력 중에 한 가지가 감염병 환자들에 대한 식별이다. 이는 당연히 다른 환자나 일반인들은 모르는 의료기관 종사자들끼리만 알 수 있는 표식으로 하고 있다"고 말했다.
병의협은 "병원에서 일하는 모든 의료 종사자들은 직업 특성상 환자의 체액, 혈액 등 다양한 감염원에 노출될 수 밖에 없는 환경에서 근무하고 있다. 그 중 흔한 사고가 바로 주사침 자상이다"며 "주사침 자상의 경우 환자가 가지고 있는 감염병의 종류에 따라서 대처방법이 다르기 때문에 의료기관들은 현재 B형 간염, C형 간염, 매독, HIV 등 주사침 자상으로 감염을 일으킬 수 있는 질병을 가진 환자들을 구분하여 의료진들만이 알 수 있는 약속된 식별을 하도록 하고 있다"고 밝혔다.
병의협은 "따라서 이번 가이드라인에서 차별이라고 예시한 '처방전이나 챠트 등 의료기기에 감염 여부를 표시'하는 행위는 감염 사고를 예방하기 위한 필수적인 행위인 것이지 환자를 차별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고 지적했다.
병의협은 "이런 현실을 모르고 그릇된 편견에 사로잡혀 감염병 전파를 막고 의료진을 보호하기 위한 최소한의 조치조차 차별이라고 규정하는 질본은 반성해야 한다"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병의협은 의료 제공자에 대한 처벌 강화로는 의료기관 인프라 구축 미비 등으로 인한 환자 전원 등 문제가 있으므로 의료차별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고 가이드라인의 한계를 지적했다.
병의협은 "가이드라인은 의료차별이 발생할 경우에 의료법과 응급의료에 관한 법률에 따라 징역 또는 벌금에 처할 수 있다고 하는데, 이는 가이드라인을 강제로 지키게 하기 위해서 의료기관과 의료 제공자를 겁박하는 것이나 다름 없다"고 말했다.
병의협은 "종합병원 이상의 의료기관들은 HIV 감염자를 포함한 감염병 환자들에 대한 관리 시스템이나 시설이 갖추어져 있으나 중소병원이나 의원급에는 이러한 인프라가 구축되어 있지 않다"며 "결국 중소병원과 의원급 의료기관 들은 HIV 감염자 등의 감염병 환자들을 어쩔 수 없이 전원 해야 한다"고 말했다.
병의협은 "일률적으로 모든 의료기관들이 가이드라인을 따르게 하고 만약 이를 따르지 않을 경우 처벌하게 되면 중소병원과 의원급 의료기관들은 HIV 감염자가 방문하지 않기를 더욱 바랄 것이다"며 "이는 또 다른 방식으로의 차별로 이어질 공산이 크다"고 말했다.
병의협은 정부가 전문 의료진과 시설을 마련해 HIV 감염의 예방과 감염자의 관리 및 치료를 철저히 책임져야 한다고 제시했다.
병의협은 "HIV 감염인에 대한 차별에서 의료차별을 부각시키는 것은 HIV 감염인의 처우 개선과 관리 등에서 정부가 책임을 지지 않겠다는 뜻으로 비추어질 수 있다"며 "HIV 감염자에 대한 의료 서비스 제공이나 관리에는 전문적인 지식의 의료진이 필요하고, 이들을 위한 시설이 갖추어 진 곳에서 행해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병의협은 "전문 의료진의 구축과 시설의 구비를 정부가 해서 HIV 감염인들에게 제공해야 HIV 전파를 막고, 진정으로 HIV 감염인에 대한 의료차별이 사라질 수 있다"고 말했다.
병의협은 "HIV 감염인들의 인권을 신장시키고 진정으로 차별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질병에 대한 편견을 바로잡는 대국민 캠페인과 교육을 적극적으로 해야 한다"며 "인권에 대한 근시안적인 접근과 의료 현실에 대한 무지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HIV 감염인 의료차별 예방 가이드라인 (안)'은 현실성 없고 현실에 적용 되면 역효과가 발생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병의협은 "질병관리본부가 현재 의견 조회 중인 'HIV 감염인 의료차별 가이드라인 (안)'의 즉각적인 폐기를 요구한다"며 "HIV 감염인에 대한 국가 주도의 의료서비스 제공 계획을 수립하고, 진정한 인권 신장과 차별 금지를 위한 현실성 있는 대안을 마련할 것을 촉구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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