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입력시간 20.07.09 05:41최종 업데이트 20.07.09 05: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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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전성·유효성·비용효과성 어느 것도 검증 안된 첩약 급여화"

의협·병협·의학회에 약사회까지 한목소리…“첩약만 의약품과 다른 기준 적용은 위법”


[메디게이트뉴스 하경대 기자] 첩약 급여화 시범사업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쏟아졌다.
 
한방 첩약이 근거중심 임상약리학 관점에서 안전성과 유효성 심사가 이뤄지지 않았다는 것이 가장 큰 비판의 요지다. 또한 첩약에만 의약품과 다른 기준으로 급여화가 이뤄지는 것 자체도 법률 위반이라는 게 다수 의료 전문가들의 주장이다.
 
대한의사협회와 대한병원협회, 대한의학회, 대한약사회 등 범의약계 단체는 8일 오후 2시 '한방 첩약 급여화 관련 범의약계 긴급 정책간담회'를 개최하고 문제점을 점검했다.
 
과학적 안전성·유효성 입증 안돼 국민건강 악영향
 
이날 간담회에서 가장 큰 비판의 골자는 첩약에 대한 과학적 안전성과 유효성이 입증되지 않은 상태에서 급여가 이뤄진다는 점이었다.
 
특히 과학적으로 한의서 제법과 표준 탕제로 조제된 탕약 사이에 분명한 차이가 있다는 것이 증명된 상황에서 급여화가 추진되면 국민건강에 오히려 악영향이 있을 수 있다는 우려가 줄을 이었다.
 
서울대병원 이형기 임상약리학과 교수는 "한약은 금수저다. 오랜 기간 써 왔다는 이유로 안전성과 유효성 심사 대상에서 면제되고 있다"며 "그러나 한약 사용과 연관된 대부분의 문제는 규제기관의 느슨하고 비과학적인 제도 탓"이라고 지적했다.
 
이형기 교수에 따르면 동의보감 탕액서례(약 달이는 법)는 물량을 짐작해 넣고 약한 불에 일정한 양이 되게 달여야 한다고 기술하고 있다. 즉, 애초부터 제품의 품질과 규격 확립이 불가능하다.
 
이 교수는 "첩약은 원료의약품인 한약재를 임의 조제한 복합제다. 품질과 규격 성립이 가능하지 않고 표준화도 안된 상태"라며 "유효성과 안전성 입증 자체가 원천적으로 불가한 첩약이 급여화되면 한의학은 영원히 초과학의 영역에 고착될 것"이라고 말했다.
 

경제성 평가도 부재…“건보 재정 불건정성 증가할 것”
 
첩약 급여화에 대한 경제성 평가가 부재한 부분도 큰 문제로 거론됐다.
 
대한예방한의학회지에 실린 '한의 외래에서 첩약을 포함한 비급여 조제 한약 이용결정요인 분석' 연구에 따르면 조제 한약 이용 확률이 높은 환자들은 가구 소득 5분위 이상의 고소득층으로 건강기능식품 구매가 용이한 집단으로 나타났다.
 
즉 첩약 급여화 추진에 따른 경제성 평가가 이뤄지지 않아 첩약 급여화가 굳이 필요하지 않은 사람들에게 혜택이 돌아갈 여지가 많다는 것이다.
 
이형기 교수는 "첩약 급여화가 되면 첩약 의존도와 사용량이 증가하는데 굳이 필요하지 않은 사람들에게 혜택이 돌아갈 수 있다"며 "이는 건보 재정 불건정성 증가로 이어지고 안전성과 유효성이 입증되지 않은 의료행태를 조장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첩약 급여화는 의사가 의약품 원료를 사서 마구 섞고 중탕해 용액으로 만든 뒤 환자에게 처방해도 급여를 한다는 것과 같다"고 덧붙였다.
 
“첩약만 의약품과 다른 기준 적용, 위법하다”
 
의학과 한의학에 다른 안전성과 유효성 기준을 적용하는 것이 법률상 위배된다는 주장도 나왔다.
 
의료법에 따르면 의사와 한의사를 포함한 의료인들이 공통적으로 적용받아야 할 원리를 설명하고 있다.
 
예를들어 의료법 제22조는 의료인들이 모두 진료기록부를 기록하도록 하고 있고 제53조는 신의료기술의 평가가 모두 필요하다고 규정하고 있다.
 
대한의학회 박형욱 법제이사(단국의대 인문사회의학교실)는 "법률상 의사와 한의사는 공통적으로 같은 의료법을 적용받아야 한다"며 "그런데 의학과 한의학의 약에 있어 요구되는 안전성과 유효성이라는 기준이 다르다면 위법하다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안전성과 유효성 이외에도 첩약에 대한 의학적 타당성, 치료효과성, 비용효과성, 사회적 편익 등이 제대로 고려되지 않았다는 지적도 제기됐다.
 
국민건강보험 요양급여 기준에 관한 규칙 제1조의 2에 따르면 요양급여대상 여부를 결정할 때 이같은 내용이 포함돼야 하지만 이번 첩약 급여화 과정에선 다른 기준과 방법론이 사용됐다는 지론이다.
 
박 법제이사는 "박능후 복지부 장관은 지난해 국감에서 첩약 급여화에 대해 안전성과 유효성, 경제성을 확보한 뒤 실시한다고 발언했다"며 "그러나 첩약은 개별 약제단계, 처방단계, 조제단계, 투약 후 단계제도에 있어 의약품과 동일한 기준이 적용되지 않고 있다. 의학적 관점에서 완전히 방치된 상태"라고 말했다.
 
실제로 첩약과 제조의약품의 단계별 안전성과 유효성 평가체계를 살펴보면 첩약은 처방단계에서 의약품안전사용서비스(DUR)과 무작위 대조군 임상시험 연구, 근거기반 관리가 이뤄지고 있지 않다.
 
또한 조제단계에서도 조제가이드라인과 처방정보표기, 부작용보고체계도 도입의 필요성이 있으나 아직 이뤄지고 있지 않다.
 
박 법제이사는 "라식수술 등 안전하고 유효한 수많은 의료행위도 비용효과성 기준에 따라 비급여가 유지되고 있다"며 "안전성이 없고 비용효과성 기준에서도 근거가 없이 첩약이 급여화되는 것은 매우 자의적인 행정"이라고 비판했다.
 
이어 그는 "한의학과 의학에 공통적인 과학적 원칙을 일관되게 적용해야 한다. 이는 의료일원화의 선결조건"이라며 "굳이 첩약 급여화를 진행하고 싶다면 그 선결 조건으로 건정심 이전에 일관된 평가 위원회를 구성하고 객관적인 평가를 진행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날 간담회에 참석한 의협 최대집 회장은 "첩약 급여화는 포퓰리즘 정책이다. 반드시 건정심 본회의에서 부결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병협 정영호 회장도 "병협을 포함한 의약계는 한방의 과학화와 의한교육통합 논의없이 이뤄진 첩약급여화 시범사업에 심각한 의문을 갖고 있다"며 "충분한 검증 절차를 거쳐 급여적용 여부를 다시 신중하게 결정해야 한다"고 전했다.
 
 

하경대 기자 (kdha@medigate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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