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입력시간 23.12.31 00:52최종 업데이트 24.01.30 1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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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료 의사들(Fellow doctors)과 함께 위기를 이겨내는 2024년을 기원하며

[칼럼] 임현택 미래를생각하는의사들의모임(미생모) 대표·대한소아청소년과의사회장

사진=챗GPT가 그려준 한국 의사들이 한마음 한뜻으로 위기를 헤쳐나가며 활짝 웃는 장면

[메디게이트뉴스] 2023년은 대한민국 의사들에게 치욕과 수난의 한 해였다. 오랫동안 반대하고 저지해 온 거의 모든 것들이 현실이 됐다.

파업투쟁을 불사하며 막아낸 비대면의료의 빗장이 허무하게 풀렸다. 의료행위와 무관한 집행유예만으로도 의사면허를 잃게 됐다. 세계 최저수준의 낮은 의료수가와 심평의학 속에서 유일하게 숨쉴 틈인 비급여는 정부의 통제와 실손보험사의 감시 아래 놓였다. 한의사가 현대의료기기를 사용해도 된다는 판결이 이어졌다.  

2024년이 다가오지만 위기는 현재진행형이다. 국회는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로 불발된 간호법을 재발의했다. 소아청소년과 '오픈런', 응급실 '뺑뺑이'가 사회 문제로 부각되자 정부가 엉뚱하게 들고 나온 '의대정원 확대'는 요식행위와 같은 대한의사협회와의 협상을 거쳐 일방적인 발표만을 앞두고 있다. 그런 와중에도 하루가 멀다하고 의사를 범죄자처럼 형사처벌하고 불가항력적 악결과에 대해 수억원을 배상하라는 판결은 쏟아진다.

의사들이 힘들어진 데는 여러 원인이 있겠지만 의협의 무기력증이 가장 뼈아프다. 코로나19 위기에 맞선 회원들의 희생과 헌신을 의협의 위상과 대정부 협상력 제고로 연결시키지 못했다. 그 결과 2020년 투쟁의 성과인 9.4 의정합의를 국회와 정부가 공공연하게 위반하는 데도 제대로 된 반발을 한 번도 해보지 못했다. 의료계가 정당한 목소리를 내도 주목 받기는커녕 집단 이기주의의 프레임에 갇혀 허우적거릴 뿐이었다.

새해에는 전문가로서의 의사의 위상 강화, 나아가 의사들의 대표 단체인 의협의 위상 제고가 이뤄져야 한다. 보건의료와 관련된 사안에 대해 그 어느 단체나 기구보다도 가장 신속하면서도 정확하고 신뢰할 수 있는 의견을 국민에게 제시할 수 있는 의협, 의료와 관련한 각종 현안에 대해 과학적 근거와 예측을 제시할 수 있는 의협, 국민과 언론이 주목하는 의협으로 거듭나야 한다. 국민과 소통할 수 있고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는 훌륭한 재능을 가진 회원들을 찾아내고 키워내 의협의 정책과 의견이 자연스럽게 전달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이러한 토대 위에 가장 시급하게 해결해야 하는 현안은 의료행위에 대한 과도한 처벌과 배상에 대한 사회적 담론을 불러일으켜야 한다.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판례들이 이어지는 것도 문제지만, 그것을 모아서 분석하고 문제를 제기하는 의료계 차원의 공식적인 움직임이 없다는 것은 훨씬 더 심각한 문제다. 국내외의 법조전문가와 의료전문가들을 모아 여러 사례를 분석하고 문제를 꾸준하게 제기하여 새로운 흐름을 만들어 내는 동시에 현장에서 오늘도 '러시안 룰렛'의 방아쇠를 당기고 있는 회원들이 바로 적용할 수 있는 실질적인 보호책(가이드라인)을 제시해야 한다. 

다가오는 국회의원 총선거에서 의료계의 이러한 고충을 십분 이해하고 있는 후보가 당선될 수 있도록 의료계 차원에서 모든 수단을 동원해 지원사격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 결정적일 때 등을 돌리고 귀를 닫는 '무늬만 의사'인 국회의원이 아니라 의사이든 아니든, 어려울 때 소신을 발휘해 의료계를 위한 한 마디를 국회에서 해줄 수 있는 그런 후보들을 발굴해 지역의사회, 각 전문과 의사회 및 학회 차원에서 총력 지원해야 한다.

무엇보다 새해에는 의료계 내부에서 어렵고 힘든 주위의 동료 회원을 돌아보고 도움을 주며 함께 정을 나누는 한해가 되길 바란다. 고소득자라는 세간의 인식과 달리 해가 갈수록 경제적 어려움을 호소하는 의사가 늘어나고 있다. 각종 분쟁과 소송으로 몸살을 앓는 회원도 계속 늘어나고 있다. 

'건강보험 당연지정제'라는 당사자가 동의한 적도 없는 일방적인 불공정 계약 속에 의사를 던져 놓고 평소에는 온갖 규제와 감시를 남발하면서도 정작 사고가 생기거나 경제적 어려움을 겪게 되면 고스란히 개인의 무능력과 책임으로 몰아가는 불합리한 세상에 맞서는 방법은 동료의사(Fellow doctors)로서의 자각과 연대 뿐이다. 사회계약에 근거한 정당한 권리와 대우, 최소한의 생계와 법적 안전의 확보를 위해 먼저 의료계 내부적으로 어려움에 빠진 동료들을 적극적으로 돕는 분위기가 확산하길 바란다.

무거운 이야기로 시작할 수밖에 없는 새해가 안타깝지만 당장 의업을 그만두거나 곧 은퇴할 상황이 아니라면 선택의 여지는 없다. 다가오는 파도는 거세고 의사들이 살아 남기 위해서는 변하고 뭉쳐야 한다. 혼자가 아닌 동료 의사들과 함께 이겨내는 새해를 희망해 본다.


※칼럼은 칼럼니스트의 개인적인 의견이며 메디게이트뉴스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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