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디게이트뉴스] 최근 의료 개혁의 하나로 의사에 대한 형사처벌 완화 문제가 논의되고 있다. 교통사고 처리와 같이 특례법 적용이 주요 골자인데, 마치 의사에게 특권을 부여하는 법으로 환자단체나 시민단체가 강력한 반대 의사를 표명하고 있다. 여기에 덧붙여 우리나라 의사에게 가해지는 형사처벌은 실제로 심하지 않다는 주장도 한다.
의사를 중심으로 별도의 판례 통계자료가 없는 우리나라 실정에서 형사처벌의 출발점은 경찰의 ‘검거’ 행위와 표현으로 시작된다. 경찰청의 조사에 의하면, 현재 우리나라 의사에 대한 검거 실적(?)은 연간 약 700건을 웃돈다. 검거 이후 모든 사건을 정밀하고 세부적으로 추적하는 것은 쉽지 않다. 아마도 법원의 모든 판례가 전산화돼 검색이 가능한 시점이나 보다 구체적인 현황이 파악될 것으로 보인다.
단순히 경찰의 검거 사례를 바탕으로 추정된 보고서가 영, 미의 형사 건수에 비하여 너무 높게 비교되는 것도 사실이다. 국제적으로도 의사에 대한 과실치사상 판결에 대한 수집된 자료를 매우 제한적이다. 영국과 독일에서는 연간 0~2명 정도가 처벌받는 사례가 확인되고 있으나, 의료를 형사법의 처벌 대상이 아닌 불법 행위법으로 다루는 영, 미에서 형사법에 의한 구체적인 자료는 오히려 찾아보기 쉽지 않다.
우리나라 의사 업무상 과실치사상 처벌 건수 영국 독일의 30배 이상
그럼에도 최근 우리나라의 유수 일간지에서 지난 5년간 과실치사상에 대한 형사처벌을 1심 판결문을 중심으로 분석하고 추적해 그 내용을 발표했다. 5년간 총 130건에서 28.4%인 37건은 무죄판결을 받았다. 나머지는 45건 벌금형, 40건 금고형, 3건 징역형, 3건 징역형 및 벌금형, 1건 선고유예, 1건 공소 기각의 판결이 내려졌다. 그중에서 금고 이상의 형은 46건 중 37건이 집행유예 처분이다.
사망 사건의 경우 사건 발생부터 1심까지 소요 기간은 평균 42개월이 걸렸다고 한다. 5년간 130건 중 선고유예와 공소 기각을 제외하면 총 91건이 유죄인데 연간 약 18건 이상이 과실치사상 처벌을 받은 것이다. 연간 과실치사상으로 처벌받는 의사가 영국이나 독일의 0~2명에 비하면 우리나라는 이에 비약 약 20배 정도 높은 형사처벌이 내려지는 것이다.
의사의 형사 처벌에 대한 불만이 많은 프랑스에서는 지난 2018년부터 약 25간의 의사 형사처벌 건에 대한 분석 결과를 논문으로 발표한 바 있다. 543명 의사 피고 중, 268명이 유죄판결(39.2%)을 받았다. 무죄율이 우리나라보다 훨씬 높다. 유죄 중 과실치사상은 약 48%였고 나머지는 문서위조, 강간, 폭력, 비밀누설, 부당이익 추구 등 일반 형사법의 저촉을 받는 형사적 범죄였다.
프랑스는 형사 처벌의 평균 소요 기간이 2878일로 약 7년 10개월 18일이 소요됐다고 한다. 조사대상 기간 중 전체 47.6%에서 배상을 위해 별도의 민사재판도 병행됐다고 한다. 268건의 유죄를 25년간으로 나누어 보면 연평균 10~13명 정도의 의사가 형사처벌을 받는데 그중 절반 이하가 과실치사상이다.
이것을 다시 해석해 보면 연간 5~6명이 과실치사상으로 형사처벌을 받은 것이다. 처벌 건수가 0~2명인 영국과 독일의 사례에 비하면 높다고 할 수 있으나 우리나라 의사가 ‘연간 18명 정도’가 과실 치사로 처벌받는 것에 비하면 프랑스는 우리나라의 3분의 1 미만에 불과하다. 다시 전체 의사 수를 적용하여 비교하면, 최소 우리나라 의사는 프랑스 보다 ‘6배 이상’ 많은 형사처벌을 받는다. 물론 영국 독일의 사례와 비교하면 무려 ‘30배 이상’으로 추산할 수 있다.
형사처벌 일상인 법체계 존속하는 한 ‘의료 사막화’ 가속화할 듯
의료를 대상으로 하는 형사사건의 무죄 판결률이 일반 형사 범죄보다 높다며 아직도 의사에 대한 형사 범죄가 낮다고 주장하는 변호사도 있다. 형사처벌이나 무리한 배상 판결이 필수 의료를 붕괴시키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일부 법조인은 실제 형사처벌 건수는 매우 드물다며 과도한 형사처벌에 의한 ‘사법 의료’는 실체가 없다는 주장도 한다. 다른 형사 범죄와 달리 무죄율이 높은 것을 달리 해석하면 애초에 형사 처벌 대상이 되지 않는 것을 무리하게 형사 고소를 남발한다는 주장도 역으로 성립한다고 볼 수 있다.
영국의 사례에서 보면 의료에 대한 고발은 형사법이 아닌 ‘불법 행위법(Torts law)’을 적용한다. 형사법을 적용하는 경우는 매우 드물고 제한적이다. 영국에서 대부분 의료소송은 소송 전 합의나 중재를 거치고, 약 1% 정도 민사소송으로 이어진다. 이런 경우에 NHS의 승소율이 매우 높다고 한다. 영국은 의료배상 시스템으로 'NHS Resolution'을 통해 연간 4.5조 원 규모의 비용을 집행한다고 하니 소송 자체가 적을 수밖에 없다.
우리나라 의사에게 마치 정부의 ‘엄청난 배려’로 특례법의 이름을 빌린 법이 의사에게 주어지는 특권의 부여인지, 아니면 부당한 사법 문화와 법조 관행에 의한 억울한 문제인지는 의료적 형사 범죄화의 국제 비교를 해보면 답은 명확하다. 환자단체가 진정 환자를 위한다면 과연 주장하는 대로 단순 과실도 반드시 형사처벌을 해야 하는 것인지 의문이다. 이런 주장의 여파와 부작용이 결국 우리나라에서 형사소송의 대상이 될 여지가 높아 보이는 어렵고 힘든 과를 기피하게 만든다.
결국 필수 의료 분야를 사막화하고, 이를 전공하는 의사들을 고갈시켜 결과적으로 환자에게 악영향이 돌아오는 악순환이 반복된다. 이런 절체절명의 상황에서 환자단체나 시민단체는 무엇이 환자를 위한 길이고, 대한민국의 의료시스템에 어떠한 도움이 되는지 냉정하고 현명하게 잘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우리나라의 높은 의료적 형사 처벌 사례는 의료분쟁의 배상제도가 아직 발달하지 못한 것도 하나의 주요 원인으로 꼽을 수 있다. 프랑스의 경우 과거에는 형사처벌의 빈도가 더 높았으나 무과실 배상을 공적기금에서 처리하면서부터 형사처벌 빈도수가 감소했다는 주장도 제기된 바 있다. 프랑스의 무과실 국가배상은 사회적 연대를 기본 철학으로 해 예방접종 부작용, 병원 내 감염, 불가항력적 상황과 프랑스에서 최근 문제 됐던 특정 약품에 의한 대규모 심각한 부작용도 모두 국가에서 배상을 맡아 처리함으로써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우리나라에서 의사에게 의료를 대상으로 적용한 형사법 남용에 대한 문제는 과도한 형사처벌의 문화가 만들어내는 의료에 대한 과실치사상 행위로 보인다. 의료계의 자조적인 은어인 ‘저수가주의’가 동반하는 심평 의료, 정부 관료가 주도하는 관치 의료, 그리고 사법제도가 이끌어가는 사법 의료의 혼합체인 ‘삼합 의료’가 우리나라 필수 의료를 붕괴시키는 악성 요인임은 단순 은어의 의미를 크게 벗어나고 있다.
· Maxime Faisant 외 4인 공동저술
Twenty-five years of French jurisprudence in criminal medical liability
Medicine, Science and the Law 2018, Vol. 58(1) 39–46
댓글보기(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