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디게이트뉴스 임솔 기자] 대리수술 문제가 의료계의 첨예한 문제로 떠올랐다. 의료계는 대국민 사과와 동시에 강력한 내부 자정활동을 펼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시민·환자단체는 대리수술로 적발된 의료인을 상대로 면허취소 등 근절 대책을 마련할 것을 촉구했다. 현재 대리수술 등으로 처벌을 받은 의사는 1년 이내의 면허정지 행정처분을 받으며, 면허취소 처분을 받을 수 있도록 의료법 개정안이 추진되고 있다.
SBS '그것이 알고싶다' 프로그램은 지난 6일 의료기기업체 영업사원의 대리수술과 수술보조 참여 문제를 방송했다. 지난달 적발된 부산 영도구 소재 정형외과에서 의료기기 영업사원과 간호사·간호조무사 등에게 대리수술을 시킨 사건의 연장선이었다. 하지만 일부 몰지각한 의사들의 일탈 행위가 아닌 정형외과·성형외과 등 고가의 의료기기 사용이 많은 진료과 수술 영역에서 오랫동안 계속된 관행이라고 지적했다. 최근 국립중앙의료원 의사가 신경외과 수술에 무면허 의료기기업체 영업사원을 참여시켜 봉합 등 수술보조를 한 사실도 공익제보를 통해 밝혀졌다.
의협, 강력한 내부 자정위해 자율징계권 부여 요청
이와 관련, 대한의사협회는 8일 곧바로 사과문을 내고 “이번 사건으로 충격과 경악을 금치 못하고 있다. 국민 여러분 앞에 참담한 심정으로 고개 숙여 깊은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고 했다.
의협은 9일 대한의학회, 외과계 전문학회 및 의사회 등과 함께 대리수술을 뿌리 뽑기 위한 긴급 간담회를 열었다. 이어 10일 모든 방법을 동원해 대리수술을 근절하겠다는 내용의 공동결의문을 발표했다.
의협 등은 “무자격자의 대리수술을 묵인, 방조하거나 종용하는 회원을 더 이상 우리의 동료로 인정하지 않겠다. 중앙윤리위원회 회부를 통한 무거운 징계를 추진하고, 관련 법규 위반사실에 대해 수사의뢰와 고발 조치를 통해 법적 처벌을 추진한다”고 했다.
의협은 실질적인 징계권한을 의협에 넘겨줄 것을 정부에 촉구했다. 의협 등은 “무자격자 대리수술의 실태 파악을 위한 조사를 포함해 이번에 결의한 특단의 대책을 시행해 나간다”라며 “정부의 현재 면허관리체계의 한계를 인식해야 한다. 정부는 의료계 스스로 강도 높은 자정활동에 나설 수 있도록 의협에 강력하고 실질적인 징계 권한을 부여해 줄 것”을 주장했다.
이와 별도로 의협은 부산에서 대리수술을 시킨 정형외과 전문의를 중앙윤리위원회 징계심의에 부의하기로 했다. 의협에 따르면, 현행 의료법상 수술시 환자에게 수술에 관해 설명하고 동의를 받아야 하고(제24조의2), 무면허의료행위가 금지(제27조제1항)되고 진료기록부 등을 거짓으로 작성하지 않도록 규정(제22조제3항)하고 있다. 의협 최대집 회장은 “문제가 생긴 회원을 상대로 윤리위원회 징계를 하더라도 자격정지 1~3개월 정도에 그친다. 실효성 대책을 위해 자율징계권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시민단체, 정부에 면허취소 등 강력 처벌 요구
소비자시민모임, 한국소비자연맹, 녹색소비자연대전국협의회, 한국환자단체연합회, C&I소비자연구소 등 시민·환자단체는 10일 공동 성명을 통해 면허 취소 등의 보다 강력한 처벌을 요구했다.
이들 단체는 “의료기기업체 영업사원 대리수술 또는 수술보조가 이루어지고 있다는 의혹이 제기된 해당 의료기관과 의료인들은 방송 이후 CCTV 삭제 등 증거 인멸을 하고 있다는 제보가 계속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시민·환자단체는 “해당 의사들에 대해 무기징역형 또는 2년 이상의 징역형으로 형사처벌이 가능하다. 하지만 중범죄로 인식하지 않는 검찰의 안일한 대응과 법원의 솜방망이 처벌로 대부분 벌금형이 선고된다”고 지적했다.
시민·환자단체는 “이 때 행정처분도 의료법 제66조제1항제5호(자격정지)에 의해 1년의 범위에서 의사면허 자격이 정지될 뿐이다. 해당 의사는 의료기관을 폐업하고 면허자격 정지기간이 지난 후에는 다른 곳에서 개원하거나 다른 의료기관에 취업해 버젓이 의료행위를 계속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어 “의사 명단도 공개되지 않아 지역사회 환자들은 해당 의사가 의료기기업체 영업사원에게 대리수술과 수술보조를 시킨 사실조차 모르고 수술을 받고 있다”고 했다.
시민·환자단체는 “경찰청은 신속히 전담반을 구성해야 한다. 대리수술이나 수술보조에 참여한 의료인들과 영업사원들의 자수와 공익제보를 유도하는 조치를 발표해야 한다"고 했따. 그러면서 "보건복지부는 신속히 실태조사를 실시해야 한다"라며 "의협은 수술실 내 CCTV 설치를 통해 수술실 안전과 인권을 지키기 위한 사회적 논의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할 것"을 주문했다.
대리수술 면허정지에 그쳐, 면허취소 가능한 의료법 개정 추진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김상희 의원(더불어민주당)은 올해 4월 의사의 면허취소와 자격정지 처분의 대상을 확대하는 의료법 일부개정법률안을 대표 발의했다. 개정안은 대리수술이나 진료 중 성범죄, 무허가 주사제 사용 등의 행위를 한 경우 의사 면허를 취소하기로 했다.
현행 의료법에 따르면 의료인의 품위를 심하게 손상시키는 행위를 하거나, 각종 의료 위반행위를 했을 때 의사의 자격정지 사유가 된다. 품위 손상 행위는 학문적으로 인정되지 않거나 비도덕적인 진료행위를 하거나 거짓 또는 과대 광고행위 등을 했을 때로 보고 있다. 해당 범위는 의료법 시행령으로 규정하고 있다.
김상희 의원은 "현행 규정에 따르면 의료인이 대리수술, 진료 중 성범죄, 무허가 주사제의 사용 등의 행위를 한 경우에는 의료법 시행령에 따라 1년 이내의 자격정지 사유만 되고 있다"면서 "의료행위에 관한 업무상 과실로 형의 선고를 받아도 의사 자격정지나 면허를 취소할 수 있는 사유로 규정하고 있지 않고 있다. 제재를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김 의원은 "대리수술, 성범죄, 무허가 주사제 사용 등의 사유로 적발되면 의사의 면허를 취소할 수 있도록 의료법에 명시해야 한다. 의료행위와 관련된 업무상과실로 형의 선고를 받으면 의사면허취소 또는 자격정지 처분의 대상으로 설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한 김 의원은 10일 열린 보건복지부 국정감사에서 "최근 부산 영도구 정형외과에서 의료기기 영업사원의 대리수술로 환자가 뇌사 상태에 빠졌는데 의사에게 조치한 결과를 보니 자격정지 3개월에 그쳤다. 처벌이 약하다보니 CCTV 설치와 더불어 대리수술 등 특정범죄 의료인에게 면허 취소를 영구히 할 수 있는 방안을 고려해야 한다"고 했다.
한편, 복지부 박능후 장관은 "국민 정서에 적절한 처벌이 가능하려면 의료법을 개정해야 한다. 일부에서 의료법 개정이 추진되고 있다고 알고 있다"라며 "신기술, 기기에 대해 기존 의료인이 훈련받을 수 있는 제도 마련을 고려하고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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