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협, 협상 권한 갖는 의협에 주기적인 견제…의협의 전공의 설득, 올특위 전공의 참여 관건
[메디게이트뉴스 하경대 기자] 의정갈등이 넉 달째로 접어든 가운데, 이번 사태 해결의 열쇠는 전공의들이 쥐고 있다.
대한전공의협의회 박단 비상대책위원장은 최근 정부가 전공의 복귀를 종용해도 '단일대오'를 강조하는가 하면, 잇따라 전공의 요구안보다 후퇴안을 주장한 대한의사협회를 저격해왔다. 특히 이번 주가 의료대란 사태의 새로운 변곡점이 될 가능성이 점쳐지면서 전공의 민심에 더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25일 국회와 의료계 등에 따르면 이번 주는 장기화되고 있는 의정갈등 상황의 분기점으로 관심을 받고 있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는 오는 26일 '의료계 비상상황 진상규명 청문회'를 개최한다. 27일엔 연세의대 세브란스병원집단 휴진도 예정돼 있다.
청문회와 집단 휴진 이슈는 모두 정부 측에 악재로 작용할 여지가 많다. 야당 의원들에 의해 2000명 증원의 과학적 근거, 의사결정 과정의 공정성 등 문제와 더불어 의정갈등 장기화 책임론이 불거질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이때 정부는 더 이상 지금처럼 의료계와 '강대강' 대치만 유지하기 어렵다. 의협과 함께 대형병원 의대교수들도 집단 휴진 동참을 논의하면서 연일 정부를 강하게 압박하고 있다.
의협 협상 권한 너무 커지면 ‘원치 않는 협상’ 재발 위험
특히 정부와 의료계 내부 관계자들 이야기를 종합하면 이번 사태 핵심 인물로 전공의들을 아우러는 박단 위원장이 꼽힌다. 박 위원장은 평소 별다른 입장표명 없이 침묵으로 일관하다 중요한 순간마다 개인 페이스북을 통해 자신과 전공의들의 입장을 전해왔다. 박 위원장은 이 과정에서 의료계 내부 분열 논란을 감수하면서까지 전공의들이 의협과 각을 세우고 있다.
사실 의료계 내부에선 아직도 이 같은 전공의들의 소위 '내부 총질'을 달갑지 않게 보는 시선도 존재한다. 그러나 최근엔 전공의와 의대생을 포함한 의료계 대표자들 사이에서도 전공의들의 행보를 두고 ‘최고는 아니지만 적절한 차선이었다’는 평가도 있다.
한 전공의 관계자는 "의협 산하단체인 대한전공의협의회가 의협 회장에게 주어진 협상 권한을 공식적으로 견제할 수 있는 카드가 많지 않다"고 말했다.
의대정원 증원 사태와 문제해결 과정을 보면 특이한 부분이 있다. 2020년 의대증원 당시와 올해 모두 의대생과 전공의가 주도적으로 문제제기에 앞장서지만 정작 정부와의 협상은 의료계 법정단체인 의협이 나서는 구조를 갖고 있는 것이다.
이 같은 구조적 한계로 인해앞선 2020년 전공의들이 원하지 않는 요구조건임에도 당시 의협 최대집 회장은 정부와 졸속으로 합의해 내부적으로 큰 지탄을 받았다. 올해 전공의들 역시 집단행동에 나설 때‘원치 않는 합의’를 경계해야 하는 1순위 상황으로 고려했다는 후문도 있다.
다른 전공의 관계자는 “결국 전공의들은 정부의 의대증원과 필수의료 정책패키지를 막아내는 것이 가장 중요한 목표다. 이와 동시에 전공의들이 원하는 협상 결과를 얻기 위해선 의협의 협상 권한이 너무 커지는 것을 견제해야 하는 웃지 못할 상황이 연출되고 있다”고 말했다.
전공의들 의협 상호 견제 관계 유지, 의정협상 주도
전공의들 입장에선 의협에 전적으로 공조하며 힘을 실어줄 경우 정부와의 정면 대치 상황에선 더 큰 압박을 통해 빠른 결과물을 얻어낼 수 있다. 그러나 동시에 의협의 협상 권한이 너무 커져 2020년의 원치 않는 협상 사태가 재발할 수 있다는 위험부담도 공존한다.
전공의 관계자는 "지금처럼 의협과 상호 견제 관계를 유지하면 대정부 투쟁 과정에서 의협의 입김엔 힘이 덜 실릴 수 있지만 전공의들 입장에선 의정 협상을 효율적으로 견제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의료계 관계자는 "아무래도 실제 협상에 임하는 과정에서 의협 집행부와 의대교수들은 전공의 7대 요구안과 정부 요구안 사이에서 현실적인 방향으로 움직일 가능성이 존재한다"며 "박단 위원장의 최근 행보는 협상 과정에서 생기는 여러 내부적 변수들을 견제하기 위한 것"이라고 밝혔다.
다른 의료계 관계자는 "의대생 유급은 의학교육 마비로, 전공의 미복귀는 수련병원 붕괴로 이어진다. 이 때문에 모든 협상의 결과는 전공의와 의대생의 복귀를 전제로 한다"며 "전공의들에겐 정부를 움직일 수 있는 힘이 있지만 협상 권한이 부족하다. 이런 이유로 장기적으로 봤을 때 일부 내부 총질이라는 위험부담을 감내하더라도 의협을 견제하는 방향으로 가는 것이 젊은의사들이 얻고자 하는 결과를 얻기 위해선 적절한 선택지"라고 설명했다.
의협, 전공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려 올특위 참여 설득
의협도 전공의들 끌어안기에 주력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박단 위원장과 SNS 등으로 설전을 벌인 임현택 회장은 최근 출범한 '올바른 의료를 위한 특별위원회(올특위)'에서 빠지고 전공의 대표 1인과 전공의 위원 3인 등 가장 많은 몫을 전공의들에게 배분했다.
현재 의협 중심의 논의 구조에서 전공의와 의대교수 중심으로 무게 중심이 옮겨가면서 의사결정 구조가 대폭 개선됐다는 평가도 나온다. 특히 당장 올특위에 전공의와 의대생들이 참여하지 않는다고 해도 이들 몫의 자리를 남겨둠으로써 이후 필요에 따라 전공의들이 내부 의사결정을 견제할 수 있는 구조가 만들어질 수 있다.
최근 임진수 기획이사, 이동형·정근영 자문위원 등 사직 전공의들도 속속 의협 집행부에 합류하고 있다. 이를 두고 의협 관계자는 "전공의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겠다는 취지"라고 설명했다.
더욱이 22일 올특위 첫 회의에선 '2025학년도 정원 재논의가 포함돼야 의정협의를 시작할 수 있다'는 강경한 메시지가 나왔다.
이는 의협과 일대일 대화협의체를 우선 만들고 협의체를 통해 의대증원 재논의 등을 논의해볼 수 있다는 입장에 비해 전공의들의 강경한 입장을 반영한 것으로 풀이된다.
의협 관계자는 "(의대증원 재논의라는) 요구 중에서도 '2025학년도' 포함 여부가 굉장히 중요하다. 2025학년도를 빼고 얘기한다는 것은 예를 들어 의대생 입장에서 만약 자신들이 유급을 당했는데 내년 정원이 그대로라면 1학년이 7000명이 넘게 된다. 끔찍한 상황이 연출되는 것"이라며 "당연히 이 부분을 포기할 수 없다"고 말했다.
올특위 관계자는 "2025년 의대증원 재논의가 전제돼야 대화할 수 있다는 입장 발표는 전공의와 의대생에게 전하는 의미도 있다. 의협과 의대교수들이 젊은의사들을 들러리 세우고 어물쩍 협상해서 넘어가버릴 수 있다는 의혹을 없애버린 것"이라며 "정부가 이를 수용하지 않을 경우 의료계는 대정부 압박 수단을 점차 높여갈 수 밖에 없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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