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입력시간 26.09.03 03:57최종 업데이트 26.09.03 03: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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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의료 현장 기반 공개경쟁 vs 韓, 거시적 관점 ‘강단 의학’의 정부 입맛 맞춤형

[칼럼] 안덕선 대한의사협회 의료정책연구원장·고려대 의대 명예교수


[메디게이트뉴스] 미국 보건복지부(Department of Health and Human Services) 산하의 보건자원서비스청(HRSA: Health Resources and Services Administration)은 의사, 의원, 병원, 지역 병원센터, 공공기관(Physicians, hospitals, community health centers, public health organizations) 등 다양한 의료제공자가 제안하는 새로운 의료서비스 모델과 정책 아이디어를 발굴해 타당성 검토를 포함한 ‘실증 역할’을 수행하도록 연구비를 지원한다.

미국의 NIH(National Istitute of Health)가 주로 기초·임상 연구를 지원하는 기관이라면, HRSA는 ‘의료서비스 전달체계(health service delivery system)’의 혁신을 도모하기 위해 지원하는 기관이다. 

미국은 정권이 바뀔 때마다 ‘혁신’ 혹은 다양한 ‘개혁위원회’를 구성하는 우리나라와는 다른 체제로, 정권에 크게 상관없이 실질적이고 지속적 개선을 위해 상설 형태의 항구적인 운영구조를 갖는다. HRSA의 기관 운영 목적은 의료 취약지역(underserved areas)의 접근성 향상, 인력 부족 문제, 의료서비스의 질(Quality) 개선, 의료비 절감, 새로운 서비스 모델 개발이다.

따라서 HRSA는 의료 현장에서 “이러한 방식으로 진료하면 더 효율적이고 국민 건강이 향상될 것”이라는 보다 실질적인 아이디어를 제시하는 의료기관이나 전문가를 발굴해 적극적인 지원에 나선다. 특히 참신한 아이디어를 수집하기 위해 매년 수십 개에서 수백 개의 기금지원 기회 공고(NOFO: Notice of Funding Opportunity)를 낸다. 

미국의 항구적 ‘의료 혁신’ 운영구조 현장 중심 아이디어 발굴 ‘정책화’ 지원에 역점

각 기금지원공고 사항에는 해결하려는 사회문제, 지원 가능 기관, 연구 기간, 예산, 평가 방법 등이 상세히 기술돼 있다. 예를 들면 농어촌 보건, 비대면 진료, 모자보건, 일차진료, 인력개발 등의 주제를 분야별로 각각 별도 형태의 공모가 이뤄진다.

예를 들어 의료기관이 제안하는 내용을 보면, “농촌지역 병원이 인공지능 기반 비대면 진료를 통해 응급환자의 전원을 줄일 수 있다”라는 아이디어를 내놓는다. 또 보건소는 “다학제 접근을 활용해 만성질환 관리 체계를 효율적으로 새롭게 구축하겠다”라고 제안한다. 혹은 의과대학은 ‘일차진료가 부족한 지역에 학생을 장기적으로 배치하는 새로운 교육모델’이나 새로운 맞춤형 ‘교육과정’을 제안할 수도 있다.  

기금지원 선정 절차는 정부 과제 수주를 위한 표준절차인 NOFO 공지, 기관의 제안서 접수, 전문가 평가(Peer Review), HRSA 소속 전문가 등의 세밀한 검토를 거친다. 최종 선정되면 예산 승인 후 기금지원이 이뤄진다. 이후 중간 평가와 최종 평가를 거쳐 성공한 모델은 전국으로 확산시킨다. 일반적인 학술 연구와 달리 실제 현장에서 적용 가능한 서비스 모델 인지의 여부가 평가의 관건이다.

HRSA의 기금은 엄밀히 말하면 NIH와 같은 기초 연구비와는 다른 성격의 시범사업을 위한 기금이나 제도 정착을 고유목적으로 하는 성격이 강하다. 즉, 새로운 실험적 아이디어가 실제 의료 현장에서 어떻게 작동하는가를 검증하는 것이다. 통합 돌봄인 Care Coordination Model 등이 대표적으로 잘 알려진 사례다.

HRSA가 가장 중요하게 보는 새로운 아이디어의 성공 여부는 ‘확산 가능성(Scalability)’에 있다. 예를 들어 어떤 지역병원이 당뇨병 입원율을 현격히 감소시키는 관리 모델을 개발했다면, HRSA는 보고서 작성, 성과 평가, 우수 모범 사례(Best Practice) 지정 이후 다른 주(State)에 보급과 전파를 추진한다. 

연구비 규모는 소규모 시범사업의 경우 수십만 달러에서, 지역 네트워크 사업의 경우 수백만 달러, 그리고 다년간 진행되는 프로젝트는 수백만~수천만 달러까지 지원하는데 보통 3~5년 형태의 지원이 많다. 이러한 방식은 의료 현장의 창의성과 정책 혁신을 결합하는 대표적인 현장 주도형(Provider-driven), 경쟁형 혁신 지원모델이다. 미국의 공공 의료보험인 CMS(Centers for Medicare and Medicaid Services)도 자체 혁신 기구인 ‘Center for Medicare and Medicaid Innovation(CMMI)’을 운영하고 있다. HRSA는 주로 의료취약계층과 의료인력이 중심인데 반해, CMMI는 의료비 지불제도(payment reform)와 가치 기반 의료(value-based care)에 중점을 둔다.  

美, 의료 현장 기반 공개경쟁 vs 韓, 거시적 관점 ‘강단 의학’의 정부 입맛 맞춤형  

미국 의료 혁신의 가장 큰 특징은 정부가 의료서비스의 세부 방식을 직접 설계하기보다는 현장의 의료제공자가 혁신적인 아이디어를 제안하고 정부가 경쟁을 유도해 지원한다는 점이다. 정부는 문제와 정책 목표를 제시하고, 대학을 비롯한 의료기관과 의료인, 지역의 보건 조직은 구체적인 해결 방안을 제안하며, HRSA는 동료평가(peer review)를 거쳐 우수한 제안을 엄선해 연구비를 투입한다. 결과적으로 검증된 성공 모델은 다른 지역으로 확산해 국가 정책으로 채택되기도 한다. 

우리나라도 ‘의료서비스 전달’과 관련된 과제들이 정부가 사전에 지정한 주제에 대한 공모 형태를 취한다. 주제 선정은 자유 공모가 아닌 이미 결정된 상태로 정부나 정권 친화적인 예방의학이나 의료 관리 전공자에게 집중적으로 배분되는 듯한 느낌이다.

우리나라 고유의 의료 현장을 경험하고, 이를 통해 장점과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출발하는 아이디어가 아닌 주로 외국의 다른 의료체계에서 혁신적 제도를 우리나라에 급속히 적용하려는 작업이다. 예방의학이나 의료 관리 분야는 주로 의료 보장성, 형평성, 비용 절감, 질 관리, 자원 배분, 전달체계 등에 대해 보다 거시적이고 사회적인 학술적 관심과 전문성이 있다.

그러나 이들이 이해하는 의료는 현장경험이 아닌 ‘강단 의학자’로 묘사하는 것이 더 적절해 보인다. 임상경험 없이 의료 현장에 대한 진정한 이해는 쉽지 않다. 반면 임상의들은 환자와 의사 관계, 치료와 환자 안전, 적정 보상과 경영, 합병증, 진료의 시급성, 배상 등 의사와 환자 간의 질병 치료 관련 개인적 관계에 관심이 집중돼 의료체계의 재정과 구조에 대한 거시적 시각이 부족할 수 있다.

의사나 환자 중심의 개인 위주의 사고 보다는 집단이나 사회적 시각에 집중하는 집단이 사회적 주목을 더 받을 공산이 매우 크다. 정부가 지향하는 거시적 목표에 부합하는 미시적 구체화 방안의 제시에서 본다면 우리나라 고유의 임상 현장의 반영은 쉽게 배제되거나 해결하기 어려운 ‘난제의 소용돌이’에 빠질 수 있어 보인다.   

우리나라는 정권마다 의료 개혁을 위해 이미 익숙한 기존의 ‘개혁 종합세트’를 반복적으로 제시하고, 정부가 직접 관리하고 스스로 공론화하려는 패널을 구성한다. 정권마다 같은 실수를 반복하고 있다. 결국 보건의료 거버넌스의 세부 사항을 뒷받침할 만한 상설적 하부구조가 없어서 진화적이고 지속적인 개선은 매우 힘들다.

규제와 통제, 명령을 앞세운 정부, 정권의 강력하고 거대(Macro)한 보건의료 분야의 거버넌스에 반해 상대적으로 취약한 미세(Micro) 거버넌스의 역설로 인해 실제 정책의 수행단위에서 혁신적(?)이고 획기적인 변화는 실제 의료 현장과 특히 고질적인 의료제도가 품고 있는 현실과는 큰 괴리가 생기고 있다. 


※칼럼은 칼럼니스트의 개인적인 의견이며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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