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디게이트뉴스 조운 기자] 국회 상임위원회를 통과한 이른바 ‘응급실 미수용 방지법’이 진료 현장의 응급의학과 의사들에게는 ‘수용할 수 없는 환자까지 무조건 받으라는 법’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중앙응급의료센터와 119구급상황실이 환자를 이송할 병원을 지정하면 최종 치료 인력이나 병상이 부족해도 환자를 거부하기 어려워지고, 사고가 발생하면 수용 곤란 사유를 입증해야 하는 부담까지 의료진이 떠안게 된다는 것이다.
응급의학과 의사들은 인력과 병상 확충 없이 환자를 응급실에 데려다 놓는 것만으로 ‘응급실 뺑뺑이’를 해결하려 한다며 강하게 반발하며, 아무런 법적 보호 없이 환자 수용을 강제할 경우 전원조정센터와 119구급상황실 근무를 거부하겠다는 집단행동 가능성까지 경고하고 나섰다.
19일 의료계에 따르면 국회 보건복지위원회는 17일 응급환자 이송·수용 체계 개편 등을 담은 응급의료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법안은 앞으로 법제사법위원회 심사와 국회 본회의 의결을 거쳐야 한다.
해당 법안은 논의 단계부터 수용 곤란 사유의 판단 기준과 응급실 진료 역량 실시간 고지, 수용 병원 지정, 의료진의 형사책임 면제 범위 등을 두고 논란을 빚었다.
의료계의 지속적인 문제 제기에도 법안이 상임위 문턱을 넘자 대한응급의학의사회는 전원조정센터와 구급상황실 근무 거부 가능성까지 꺼내 들었다.
이형민 회장은 “이번 개정안은 응급실 미수용 문제를 절대로 해결하지 못한다”며 “비전문가들의 무책임한 탁상공론식 접근이 응급의료 현장을 극심한 혼란과 좌절 속으로 밀어 넣을 것”이라고 밝혔다.
의사회는 이번 응급의료법 개정안이 현장 응급의학과 전문의들과 단 한 차례의 진정성 있는 논의도 없이 만들어졌다고 비판했다. 현장의 지속적인 반대와 경고에도 조직 논리와 직역 간 이해득실에 따라 법안이 강행됐다는 주장이다.
“수용 곤란 사유 의료진이 입증…무조건 환자 받으라는 것”
의사회가 가장 먼저 지적한 문제는 ‘수용 곤란의 정당한 사유’를 둘러싼 불명확한 기준이다.
시설·인력·장비 부족이나 최종 치료 인력의 부재 여부를 일률적인 기준으로 판단하기 어렵고, 시시각각 상황이 달라지는 응급실에서 이를 실시간으로 입증하기도 쉽지 않다는 것이다.
이 회장은 “문제가 발생했을 때 정당한 사유를 입증하지 못해 법적 처벌을 받게 된다면 현장에 무조건적인 환자 수용을 강요하는 폭력과 다름없다”고 지적했다.
응급실의 실시간 진료 역량을 고지하도록 하는 방안에도 현실성이 없다고 했다. 환자 유입과 응급수술, 병상 상황이 수시로 달라지는 응급실에서 매시간 수용 가능 여부를 확인해 보고하는 것은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는 설명이다.
특히 실제로는 환자를 받을 수 없는 상황인데도 전산상 수용 가능한 병원으로 표시되면 잘못된 정보를 토대로 환자가 이송되고, 그 결과에 대한 책임은 현장 의료진에게 돌아갈 수 있다고 우려했다.
“환자 지정한 기관 책임은 어디에”…강제 수용 시 환자 모두 위험
중앙응급의료센터와 119구급상황실이 수용 병원을 지정할 수 있도록 한 조항에는 더욱 강하게 반발했다.
최종 치료가 불가능한 병원에 환자를 강제로 배정하면 새로 이송된 환자가 적절한 치료를 받지 못할 뿐 아니라, 한정된 의료진과 병상을 나눠야 하는 기존 환자까지 위험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이 회장은 “최종 치료가 불가능한 상황에서 특정 병원에 수용을 강제하는 것은 이미 치료받고 있는 환자와 새로 이송된 환자 모두를 치명적인 위험에 빠뜨리는 행위”라며 “이송을 지시한 기관과 강제로 환자를 수용한 의료진 사이의 법적 책임부터 명확히 해야 한다”고 밝혔다.
형사책임 면제 조항에 대해서는 ‘형사책임 감면’에서 ‘형사책임을 지지 않는다’로 변경된 점은 진일보한 조치라고 평가했다. 다만 면책에서 제외되는 ‘중대한 과실’의 기준이 모호하다면 의료진의 법적 부담은 여전히 해소되지 않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권역응급의료센터의 명칭을 중증응급의료센터로 바꾸는 것만으로 진료 역량이 강화되는 것도 아니라고 비판했다. 경증부터 중증까지 모든 환자가 자유롭게 응급실로 유입되고 만성적인 병상 부족과 과밀화가 이어지는 상황에서는 중증환자를 치료할 여력을 확보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의사회는 향후 법안 조율과 시행규칙 개정, 응급의료 발전계획 수립 과정에 현장 응급의학과 전문의를 참여시킬 것을 요구했다.
그러면서 “아무런 법적 보호조치 없이 광역상황실이나 구급상황실이 응급환자 수용을 강제하려 한다면 전 회원과 함께 전원조정센터와 구급상황실 근무를 거부하는 것을 포함해 가능한 모든 조치를 강구하겠다”고 밝혔다.
이어 “응급실 미수용 문제는 법적 위험의 실질적인 감소와 과밀화 해소, 인프라 확충 등 기본적인 선결 과제를 해결하지 않고는 절대로 해결할 수 없다”며 “응급실에 환자를 데려다 놓기만 한다고 환자가 살아나는 것은 아니다. 눈앞의 수치만 개선하려는 정책을 중단하고 환자를 살리고 의료진에게 희망을 주는 입법과 정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촉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