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입력시간 23.04.12 07:09최종 업데이트 23.04.12 0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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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상 생활 어려운 CRPS 환자…통증 '객관화' 어렵다는 이유로 시스템서 '소외'

정형외과적 기준으로만 진단해 전체 환자 32.8%만 장애 인정…통증학회 "통증환자 위한 '장애평가' 필요"

4월 11일 열린 '환자 중심 CRPS 정책 개발과 시행을 위한 정책토론회'

[메디게이트뉴스 조운 기자] 눈으로 보이지 않는 극심한 통증으로 고통받고 있는 복합부위통증증후군(CRPS) 환자들이 2021년 4월부터 장애로 인정받고 있음에도 적절한 장애 판정 기준과 가이드라인 부재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대한통증학회는 통증의학과를 중심으로 한 CRPS 전문의료진이 정부의 질환 관련 정책 과정에 참여해 CRPS 환자들이 합리적 장애 판정을 비롯해 실질적 정책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통증점수 높아도 정형외과적 진단 없으면 장애 인정 못 받아…장애인정비율 32.8% 불과
 

11일 국회의원회관 제9간담회의실에서 열린 ‘환자 중심 CRPS 정책 개발과 시행을 위한 정책토론회’에서 한국CPRS환우회와 대한통증학회가 현 정부의 CRPS 정책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한국CRPS환우회 이용우 회장은 “CRPS는 특정 부위에 발생하며 아주 미세한 자극에도 해당 부위가 극심한 통증을 느끼게 되는 희귀 난치질환이다. 옷깃만 스쳐도 칼에 베이거나 불에 타는 듯한 고통이 느껴지며 CRPS 환자가 느끼는 고통은 인간이 느끼는 고통의 최고단계에 해당한다고 한다”고 설명했다. 

이 회장은 “극심한 고통 때문에 환자들은 경제적, 사회적 활동에 어려움을 겪으며 또한 우울증을 비롯한 정신적 심리적 문제를 함께 겪어 CRPS 환자 절반 이상이 극단적 선택을 생각하거나 시행에 옮긴 적이 있다는 조사 결과도 있다”고 말했다.

다행히 2021년 4월부터 CRPS가 장애 요인으로 공식적으로 인정됨에 따라 CRPS 환자가 제도적으로 장애로 판정되고 있지만, 기존 장애 분류 체계의 ‘지체장애’에 CRPS가 포함되면서 환자들이 적절하게 보장받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대한통증학회 최종범 심사이사(아주대병원 마취통증의학과)는 “CRPS 장애 등급이 질환의 중등도에 따르지 않고 정형외과적인 등급에 따라 부여하고 있기 때문에 통증이 극심한 환자도 근력약화, 관절구축 등 정형외과적 진단이 없으면 장애 진단을 못 받고 있다”고 전했다.

실제로 현 장애진단 기준에서는 통증 점수가 10점 만점의 10점인 환자라도 관절구축이나 마비가 없으면 장애로 인정받지 못하고, 통증 점수가 10점 만점의 3~4점이라도 관절구축, 마비가 있으면 장애로 인정받고 있다. 이러한 현실로 인해 CRPS 환자의 장애인 인정비율은 32.8%로 낮게 나타났다.

이용우 회장도 “가장 큰 문제는 눈에 보이는 증상이 있어야만 장애로 인정된다는 점이다. CRPS 진단 후 2년 이상 지속적으로 치료를 받고 있어도 골스캔 검사 및 단순 방사선 검사, CT 검사 등 결과 근 위축, 관절구축이 뚜렷한 경우 혹은 팔 또는 다리 전체에 마비가 있는 경우에만 장애로 인정된다”고 설명했다.

이 회장은 “근 위축 등 가동성 감소는 CRPS로 인한 필연적 증상이 아니며 환자 상당수는 통증 자체만을 갖고 있다”며 “CRPS의 경우 객관화, 시각화할 수 있는 기준이 매우 제한적이어서 향후 상당수 환자들이 통증에도 불구하고 장애 인정 대상에서 원천 배제될 우려가 있다”고 비판했다.

CRPS, 경증질환 분류로 상급종병 치료에서 배제…약물‧신경‧재활치료도 제한적

CRPS 환자들은 어렵사리 장애 진단을 받은 후에도 2년마다 재판정을 받아야 하며, 진단 후 2년 이상의 진료기록을 요구받고 있었다.

환우회는 다른 상병의 경우 통상 6개월 내지 1년의 진료기록만 제출하고 있는 것과 비교해 과도하다는 지적이다.

이용우 회장은 “CRPS에 대해 재판정 빈도에 있어 1회 재평가 후 재진단하지 않는 통상적 기준을 적용했으면 한다. 진단 후 2년 이상의 진료기록의 요구는 미국에서 규정한 1년 이상의 기준에 준해 1년으로 수정되길 바란다”고 제안했다.

통증학회는 장애 진단뿐 아니라 의료기관 중증도 분류에서도 경증질환으로 분류돼 상급종합병원 치료에서 배제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최종범 이사는 “정부는 환자전달체계를 구축하기 위해 상급종합병원은 중증도가 높은 환자만 치료하도록 하고 있고, 1~2차 의료기관에서는 중증도가 낮은 환자만을 진료하도록 유도하는 등급 체계를 마련해 운영하고 있다. A등급에는 암과 심혈관질환, 뇌혈관질환 등이 포함되며 A등급 질환만이 상급종합병원에서 치료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최 이사는 “문제는 CRPS 타입 2는 B등급으로 분류돼 1, 2차 진료기관으로 유도되고 있고, CRPS 타입 1은 C등급으로 분류돼 1차 진료기관으로 전원되고 있어 상급종합병원에서 치료받기 어렵다는 점이다”라고 설명했다.

그 외에도 현재 CRPS에 시행되고 있는 치료법인 마약성 진통제, 향정신성 약물 등 약물치료, 신경치료, 재활치료의 제한 문제도 제기됐다.

최 이사는 “약물치료도 제한받고 있고 신경치료의 경우에는 건강보험 상 3개월에 15회로 횟수가 제한돼 충분한 치료가 불가능한 상황이다. 신경차단술에 대한 보장성 강화, 기능적인 회복을 위한 도수 치료 등 재활치료는 건강보험에서 거의 인정을 못 받고 있다”며 개선을 촉구했다.

환자 중심 CRPS 진단 및 치료 가이드라인 구축 필요…통증에 대한 사회적 이해 넓혀야

이러한 어려움 속에 환우회는 CRPS 환자를 ‘심하지 않은 장애’로만 인정하고 있는 현실을 개선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용우 회장은 “법원은 수 차례 CRPS의 심각성과 고도의 장애인정 필요성을 인정한 바 있다. 공식적인 CRPS 진단 및 치료 기아드라인 구축을 통해 점진적이고 합리적으로 장애 인정기준이 확대되길 희망한다”고 강조했다.

이 회장은 “CRPS는 진단을 위한 객관적, 가시적 지표가 거의 없고 해당 질병을 잘 이해하는 의료인의 수도 절대적으로 적다. 원칙에 근거한 적정치료 정착을 위해 국내 의료진과 전문가가 개발한 치료 가이드라인이 필요하다. 이는 보건복지부 요구사항이기도 하다”며 “치료가이드라인의 개발과 공인 및 정착은 CRPS 환자 가운데 장애 인정이 반드시 필요한 대상자를 합리적으로 선별하기 위한 기반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대한통증학회 이평복 회장도 “하루 속히 관련 연구용역을 통해 현실에 맞는 장애 가이드라인이 만들어지길 희망하며, CRPS 환자가 보다 합리적으로 장애 평가를 받을 수 있도록 많은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다. 통증의학과를 중심으로 하는 CRPS 전문의료진을 비롯한 전문가들이 장애 인정을 비롯한 정부의 질환 관련 정책 과정에 참여해 그 결과로 CRPS 환자들이 사회의 일원으로 살아감에 있어 겪고 있는 어려움을 덜길 기대한다”고 요청했다.

그 대안으로 학회는 미국의사협회의 장애평가기준인 AMA 6판을 소개하며 이를 활용한 한국 버전을 개발해 도입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나아가 학회는 ‘통증’ 질환으로 정상 생활을 영위하지 못하는 환자들이 많은 만큼 적절한 사회‧의료 시스템 안에서 통증 환자를 보호할 수 있는 의학적, 사회적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최종범 이사는 “눈에 보이지 않지만 정신장애도 장애로 인정하고 있다. 눈에 보이지 않는 통증에 대한 지표를 재구성해보자는 뜻이다. 현재의 CRPS 장애평가 기준인 관절가동범위감소와 근력약화는 CRPS의 매우 일부 증상에 불과하다”며 “CRPS 장애정도심사 기준 및 검사법을 재논의 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신진우 기획이사(서울아산병원)는 ”CRPS 환자들은 겉으로 보기에는 장애를 확인하기 어렵다. 눈에 보이지 않는 통증을 장애로 인정한다는 것이 일반인 입장에서는 이해하기 어려운 것도 사실이다. 통증은 장애가 아니라는 사회적 이해 차이를 해결하는 것도 중요한 문제다“라고 지적했다.

이 같은 주장에도 복지부는 통증 자체를 장애로 인정하기 어려운 현실을 설명했다. 

보건복지부 장애인정책국 최경일 과장은 “통증 자체를 장애로 인정하기 어려운 게 가장 큰 문제다. 그 가장 큰 이유는 통증을 객관화할 수 있는 도구가 없기 때문이다. 통증을 객관화할 수 있게 된다면 CRPS 장애 인정에 대해서도 다른 시각을 가질 수 있겠지만 아직은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라고 말했다.

다만 “장애 진단 후 재판정 2년 기간을 연장하는 부분은 고려할 수 있을 것 같다. 장애 재판정 시 최근 2년 이상의 진료기록을 요구하고 있는데 완화 혹은 개선을 검토해 볼 수 있을 것 같다”고 언급했다.

최 과장은 “통증 자체를 장애로 인정할 수 있도록 전향적 검토가 돼야 하는데 그게 쉽지 않다”먀 관련해서 학회와 연구도 하고 노력을 지속해 가도록 하겠다“고 약속했다.

조운 기자 (wjo@medigate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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