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의료란 무엇인가…의대 설립 근거 없어도 정치권에서 발동 걸면 공무원들은 눈치 보기 급급
의대와 공공병원 설립목표·공공의 이득 개념 분명해야 지역사회에 뿌리내릴 수 있어
[칼럼] 안덕선 대한의사협회 의료정책연구소장
[메디게이트뉴스] 우리 의료계는 아직도 정치권의 멈추지 않는 표심잡기용 정략적(政略的) 신설 의대 정책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기록을 살펴보면, 1980년대 들어서면서 11개 의과대학이 생겼고 이후 1990년대에만 10개 의과 대학이 신설됐다. 이 기간 동안에만 전체 의과대학의 절반 이상이 봇물 터지듯 경쟁적으로 인가를 받았다.
이처럼 의과대학 신설이 진정한 의료와 사회적 수요에 의한 ‘정당한 설립’이라기보다는 정치인들의 표심잡기 공약으로 악용된지 오래됐기 때문이다.
지역을 불문하고 지역구 의원후보로 나서게 되면, 자신들의 선거구에 의과대학이 없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이를 이슈화하여 지역경제의 발전과 지역 보건의료 서비스의 도약을 내세우며 신설의대 유치에 그야말로 ‘가열 찬 행보’에 나서는 것을 어렵지 않게 목격해왔다.
차기 정권장악을 도모하는 현 정부 역시 부실한 의대운영으로 어렵게 문을 닫게 한 문제의 서남대학의 자리에 다시 공공의료를 위한 특별한 의과대학으로 이름을 바꾸어 설립하겠다고 관련 부처 공무원들을 채근하며 신설의대 설립에 노골적인 속내를 드러내고 있다.
의료계는 실체가 불분명한 공공의료의 발전을 위해 신설 의과대학이 필요하다는 허황된 정치적 구호에 더불어 만성적으로 의사 수가 부족하다고 주장하는 관변단체의 주장에 염증을 느끼며 불필요한 논쟁으로 낭비되는 세월을 한탄하고 있다. 이런 사회 정치적 모습은 의사들에게는 ‘헬 조선’의 단면으로 비춰지기도 한다. 우리 사회는 전문가집단의 주장 보다는 행정부를 장악한 고시출신의 관리들의 말에 더욱 더 밀착해 귀를 기울인다. 그렇다고 정부에 대한 신뢰도가 높은 것도 아니어서 매우 역설적인 현실로 받아들이게 된다.
의대 설립 근거 없어도 정치권에서 발동 걸면 부처 공무원들도 눈치 보기에 급급해
그럼에도 이런 강력한 힘을 갖고 있는 정부 부처도 ‘천적’이 존재하는데 바로 정치권이다. 정부관리가 제일 두려워하는 곳이 국회다. 막상 국회의 정치력 동력을 이용해 신설 의과대학을 밀어붙이니 공무원들도 자기 살길을 찾아 도저히 의과대학이나 부속병원이 필요하지도, 그리고 지속가능해 보이지도 않는 새로운 형태의 의과대학을 설립하는데 ‘억지힘’을 보태고 있다.
전문가 집단의 시각에는 신설의대를 설립하는 것은 분명한 국가 예산낭비로 간주되고 불필요한 지역구 표심달래기를 위한 낭비성 예산이다. 신설의대 설립으로 학생과 직원의 지역 내 소비가 잠깐 반짝일 뿐 실상 지역경제의 발전에 별 도움이 될 만한 일도 아니다. 지속적으로 국고가 소비돼야 학교 운영이 가능해 보이는 ‘돈 먹는 하마’ 정도를 기형적으로 만들어낼 공산이 매우 크다.
이런 예산이 있다면 현존하는 의과대학의 교육과 연구의 내실을 기하기 위해 투입돼야 하는 것이 우선일 것이다. 건국 이래 우리 정부는 좋은 의사양성을 위해 별도의 교육지원 예산을 단 한 번도 집행해 본 적이 없다. 기껏해야 실패한 의학전문대학원 제도의 강제적 정착을 위해 사탕발림식 교육과정개발비를 지원했던 사례가 아마도 유사 이래 처음이자 전부가 아닐까 생각된다.
정권마다 제각각 색깔 달라도 표심 앞에서는 의대설립 ‘좋은 먹잇감’
우리나라의 경우 안타깝게도 국가의 귀중한 인적 인프라로 작용하는 좋은 의사양성을 위해 정부가 앞장서서 우선적으로 배려해야 할 국고 지원 정책이 정권 연장과 정치권력을 유지하기 위한 선심성 내지 낭비성 예산으로 전용되는 악순환이 고리를 끊지 못하고 있는 듯하다.
독재, 보수, 진보, 민주 모두 표방하는 외형은 다르지만 ‘정권’이라는 식욕 앞에서는 모두가 같은 행동을 보여주는데 이것은 이념의 문제가 아니다. 정부의 보건의료 인력에 대한 과학적이고 선도적이고 미래지향적인 정책을 분명히 제안할 수 있고 없고의 심각한 역량의 문제로 정부역량의 후진성과 선진성의 차이로 보인다.
군의관 양성을 위한 의과대학이 별도로 존재하는 나라가 많다. 이 경우 목적은 분명하다. 그러나 개념도 분명치 않은 공공의료라는 단어를 만들어 내며 이를 위한 의과대학을 설립하겠다는 의지는 고맙게도 다시 한 번 공공의료가 무엇인가를 생각하게 만드는 불필요한 철학적 사고를 하게 만들었다. 의과대학이나 부속병원 혹은 의료기관의 소유주가 공공인가 아닌가에 따른 분류가 고작인데 이것을 공공의료라고 부르기에는 모순투성이다.
그렇다면 민간 사립병원이 운영하는 의료는 과연 무엇이라고 불러야 할까? 우리나라는 사립 의과대학이 전체 의과대학의 4분의 3 정도를 차지하는 세계적으로 매우 드문 민간의료가 주도하는 나라이다. 공공병원이나 민간병원 구분하지 않고 실제 의료 활동의 영역은 매우 유사하다. 보건소에서 일반 외래환자를 보는 우리나라에서 선뜻 공공의료라고 정의하기는 매우 어렵다. 일부 의료 소외지역이나 격, 오지 의료제공을 공공의료라고 정의하기에도 석연치 않다.
그럼에도 실상 공공병원과 민간사립병원에 대한 구분이 분명한 나라들도 있다. 영국의 영향을 받은 태국이나 말레이시아는 신장이식까지 나라에서 제공하는 공공병원이 있고, 태국 국민의 80%는 공공의료에 의존한다. 환자부담은 거의 없다. 태국은 미화 1달러 이내가 목표이고, 말레이시아는 우리 돈으로 2만원 미만이라고 한다.
그러나 태국의 부유층 20%는 태국이 자랑하는 53개의 고급 의료관광병원을 찾는다. 공공병원은 40인용 병실도 있고 병상 가동률이 100%가 넘는 곳도 있다. 병실이 모자라 복도까지 병상을 설치하고 입원환자를 돌보기 때문이다.
태국 말레이시아 등 공공과 민간 영역 명확히 구분 환자 부담 차별화
이런 불편함에도 모든 것이 무상이어서 부유층이 민간사립 고급병원을 찾는다하여 문제 삼거나 시기하지 않는다. 왕실부터 보란 듯 고급 민간병원을 찾는다. 그럼에도 전공의 교육과 같은 공적 사업은 공공병원으로 한정한다. 민간병원은 전공의 교육을 허락하지 않는다. 이런 나라에서 공공과 민간의 구별은 좀 더 명확하여 보인다.
얼마 전 의료정책연구소가 주관한 월례세미나에서 한국계 교포인 예방의학교수가 미국의 지역사회의료를 소개할 기회가 있었다. 세계 유일의 자본주의 국가가 보여주는 지역사회를 위한 공공의료는 무엇인지를 조망해보는 자리였다.
우선 미국의 의료는 모두가 잘 인지하고 있듯이 세계 최고 수준의 의료비 지출을 하는 나라임에도 불구하고 보건의료에 대한 평가는 낮은 나라로 빈부의 격차만큼이나 의료혜택에 대한 양극화도 매우 심각하다. 지역별 편차도 매우 심해서 부자들이 많이 몰려 있는 매사추세츠는 빈곤층이 상대적으로 많은 텍사스 지역과 흔히 의료격차의 사례를 제시하는 좋은 비교 대상이다.
미국의 일부 속칭 ‘변두리주민(marginal people)’은 주로 저소득층의 다양한 소수그룹으로 의료보험도 없고 매우 복합적인 사회 구조와 그리고 건강상의 문제를 갖고 있다. 이들은 지역에 의한 의료취약지역 개념과 인구학적 개념에 의한 의료취약 계층으로 분류하고, 현재 미국에는 4213개의 취약지와 410개의 취약계층 그리고 의료인 부족 지역이 무려 6359개로 집계되고 있다.
혼란을 막기 위해 주로 취약지역과 취약계층을 혼합하여 사용하고 있다고 한다. 이들 취약대상은 대체로 가난하고 공공주택에 의존하며 주로 환자들이고 장애가 있거나 임신한 여성들이다. 일부는 정신장애와 무주택자, 이주노동자, 저소득층의 노인, 저임금 근로자, 변경거주자 등이다.
美, 취약집단 지원 ‘지역사회 건강제도 모델’ 도입 오늘날 통합 돌봄과 같은 맥락
미국은 1960년대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위와 비슷한 사회적 환경에 있던 취약집단을 위해 도입한 지역사회의료를 본받아 이른바 ‘지역사회 건강제도 모델(community health system model)’을 도입했는데, 오늘날 회자되는 ‘통합 돌봄’과도 맥을 같이하고 있다. 즉, 사회복지와 의료서비스를 통합하여 이음새 없는 돌봄의 연계를 시도한 것이다. 이것이 제대로 실현되기 위해서는 돌봄의 조정과 재정확보 그리고 정보화를 구축하고 대상 계층에 밀착하여 통합 돌봄을 실질적으로 구현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취약집단을 위한 구체적 직무는 자신의 건강관리를 비롯해 가내폭력, 아동학대, 가족지원, 영어장벽, 청소년문제, 노화, 약물중독, 재활, 고용, 차별, 회상, 위해환경, 주거문제, 가난, 영양실조, 임종과 완화 돌봄, 안전, 위생 이민, 장애, 교통, 재정, 교육 등의 모든 포괄적인 문제의 원만한 해결이다. 이 같은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이런 문제에 협동해 함께 대처할 적절한 동료나 기구가 필요하다.
미국 정부는 2000년대 100개의 지역사회에 대해 취약집단에 대한 ‘통합 돌봄’을 재조직하고 지역사회 병원의 주도로 환자에게 능동적으로 접근하여 환자 교육과 의료의 성과를 올리도록 지역사회기금(grant)을 수여했다. 초기에 주로 사회복지와 의료 그리고 정보화를 포함하는 돌봄 조정(coordination) 중심의 활동이었고, 이 과정에서 의사나 의료기관 중에서 ‘출중한 선두주자’를 양성해 내는 의미 있는 결과를 얻었다.
현재 미국에는 1만1000개의 지역사회에 1,400여개의 지역보건센터(community health center)가 존재한다. 연방정부의 법적 의무에 의해 지역보건센터는 취약집단(지역과 계층), 이주자, 무주택자, 학교, 공공주택과 2,700만 명의 저소득층에 대한 지원을 하도록 하고 있다.
취약집단의 소득, 보험가입 여부, 주거와 관계없이 사회복지, 번역, 교통에 대한 지원을 하도록 법정 의무가 부과돼 있으며, 지역보건센터의 지배구조에서 환자가 51%의 지분을 갖도록 명시하고 있다. 실적 또한 매년 투명하게 공개하도록 규정돼 있다. 이런 정부의 지역사회기금(grant)을 받은 지역사회보건센터는 지난 2010년에 1124개소에서 현재 1373개로 증가하고 있는 추세이고, 이는 전체 환자의 40%에 달하고 있다.
미국의 1373개의 지역사회보건센터를 위해 연방정부는 약 46억 달러의 기금(grant)을 지급했고, 여기에 추가로 지역사회보건센터의 일차 진료와 예방활동의 규모 확장과 질 개선을 위해 1억3200만 달러(capital development fund)를 별도로 지급했다. 이런 사실을 종합하면, ‘일개(?)’ 지역보건의료센터를 위한 정부지원은 평균 340만 달러에 이르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과감한 정부 지원으로 미국 지역사회보건센터 중심 공공의료 목표치 상향 초과 달성
지역사회보건센터가 보여주는 미국의 공공의료의 성과는 소득에 의한 의료혜택의 격차를 줄였으며 지역사회보건센터의 질적 평가는 미국 정부의 목표기준을 훨씬 초과하는 성과를 보였다. 지역사회보건센터는 다른 의료기관에 비하여 약 25% 정도의 비용절감을 기록했다. 이와 같은 근거에 힘입어 연방정부는 오바마 정부에서 지역사회보건센터에 대한 지원을 강화하여 연방예산에서 기본으로 지급하는 16억 달러 이외 별도로 약 40억 달러를 지역사회보건센터 기금으로 지급하고 있다.
미국에서 공공병원(public hospital)은 정부소유가 대부분이고 무보험자, 저소득층, 메디케이드(Medicaid) 환자에 대한 외래, 입원 그리고 세부 전문 진료까지 담당하고 있다. 민간병원에 비하여 민간보험 가입환자의 수가 적다. 공공병원은 지역사회의 사회복지제공 기관과도 잘 연계돼 있고, 경영상 비용절감의 개연성이 매우 높다. 그러나 정부소유의 공공병원은 향후 줄어들 전망이다.
미국의 공공병원은 비영리로 세금면제에 대한 조건으로 지역사회의 건강요구에 부응해야 하며 뿐만 아니라 지역사회 이득(benefit)을 위해 여러 가지 민생 현안에 대한 해결책을 지역사회에 제공해야 한다. 주거문제, 지역경제, 지역사회행사, 환경개선, 지역주민의 훈련, 지역사회 건강증진을 위한 연합체 형성 그리고 직업훈련 등이 공공병원들이 세제혜택을 받기 위해 함께 짊어져야 되는 현안들이다.
세금면제에 대한 보답은 병원 지출의 11%를 지역사회의 혜택(benefit)에 사용한다. 미국의 공공병원은 반드시 지역사회 건강요구(health needs)를 우선으로 하는 계획을 작성해야 하고, 요구에 의한 사업 우선순위를 결정해야 하며 이런 결과를 반드시 지역사회에 공지하게 되어 있다. 이 뿐만이 아니라 해당 병원이 건강요구에 대한 요구를 충족할 수 없는 사안이 있을 경우에는 반드시 적절하게 소명해야 한다. 그리고 지역사회를 위한 활동에 대한 세금보고서를 의무적으로 제출하도록 규정한다.
미국에서 지역보건센터를 주도하는 공공병원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헌신적인 의사의 활동이 필수적이고 뜻을 같이하는 다 직종으로 구성된 팀과 이를 지원하는 기관 그리고 외적인 가용자원이 있어야 한다는 경험을 얻었다. 지역보건센터로 지정된 병원에 근무한다고 의사의 급여가 낮은 것은 전혀 아니라고 한다. 즉 의사급여는 민간병원이나 공공병원이나 차이가 없다고 한다.
한 개의 의과대학을 세워 배출된 의사에 의한 취약지나 공공기관 근무를 공공의료라고 생각하는 정치가나 공무원에게 미국의 공공병원이 주도하는 지역보건센터의 사례는 공공의료가 무엇인지를 일깨워 줄 것으로 보이며, 이는 특수한 한 개의 표심용 의과대학 신설로는 해결되는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명확히 보여주고 있다.
공공의료가 성공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우선 의료제공 기관의 사회적 형평성을 위한 명확한 종지(宗旨, mission)와 설립목표 그리고 공공의 이득에 대한 의무를 명확히 해야 하고 지역사회를 잘 이해하는 좋은 의사와 의료진 그리고 의료의 정보화가 필요하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가장 중요한 것은 지역사회의 혜택을 위한 분명한 예산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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