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급여 진료비 정보를 건보공단에 제공하도록 제도를 바꿔야 한다" "의사인력 부족 문제는 시급한 정책과제다" "요양기관 당연지정제를 계약제로 전환해야 한다"
우리나라 보건의료 전문가들이 한국의 의료정책 주요 과제로 제시한 것인데 의료계의 입장과 상당한 견해차를 보이고 있다.
보건사회연구원은 최근 발간한 보건복지포럼 12월호에 '한국 보건의료정책의 현황과 과제'를 주제로 한 전문가 좌담회 결과를 정리해 게재했다.
전문가 좌담회에는 김남순 보건사회연구원 보건의료연구실장, 김진현 서울대 간호대 교수, 이상일 울산의대 예방의학교실 교수, 정형선 연대 보건행정학과 교수 등이 참여했다.
다음은 주제별 토론 내용을 정리한 것이다.
의료 접근성 관련 정책 진단과 과제
김남순
"건강보험제도의 도입, 저수가로 인해 국민들의 의료 접근성은 굉장히 좋지만 취약 지역 의료기관 및 의사의 부재 등 공간적인 면에서 접근성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
정형선
"접근성에는 물리적인 접근성과 금전적인 접근성이 있는데, 국가 단위로 비교할 때 우리나라는 물리적 접근성은 큰 문제가 없는데 의사, 간호사 등의 의료인력이 부족한 점이 문제다. 건강보험에서 보장성 확대를 했지만 비급여가 엄청나게 늘어나면서 국민이 느끼는 부담은 경감되지 못하고 있다."
"민영보험이 잘못된 상품 개발로 불필요한 의료를 부추기고 이를 통해 건강보험에도 불필요한 지출을 초래하고, 스스로도 높은 손해율로 다시 보험료를 높여 국민의 부담을 키우고 있다."
이상일
"최근 의료법에 비급여 항목별로 비용 공개를 하도록 명시하는 방식은 큰 의미가 없다고 생각한다. 비급여는 환자가 선택하는 것처럼 되어 있지만 대부분 공급자(의사)의 권고를 환자들이 받아들이기 때문에 단위 항목별로 접근하는 것에는 한계가 있다."
"건강보험 환자들이 의료기관을 방문해 받는 진료 내역 중 비급여는 급여 내용에 추가로 들어가는 것이기 때문에 급여와 비급여 진료비를 포함한 진료비 총액을 관리해야 한다. 건강보험 대상자에게 급여와 비급여 진료비가 발생한 경우 보험자(건보공단)가 지불하지 않더라도 비급여 진료비 정보를 의사가 보험자에게 제공하도록 제도를 바꿔야 한다고 생각한다."
"또 건강보험법을 개정해 전체 진료 내용 중 급여와 비급여가 혼재되어 있으면 비급여 부분까지 진료비를 청구할 때 보험자에게 제출하도록 해 전체 비급여 진료비 규모를 파악하고 기관간 비교도 가능하도록 해야 한다."
김진현
"의사인력의 부족 문제는 시급한 정책과제다. 향후 고령화에 따른 의료 수요 증가, 공공의료기관의 진료 공백, 의료 취약지의 의사 구인난, 의사 인건비 급등, 해외 환자 증가, 비임상 의사 수요 증가, 보건의료인력의 고용 수요 확대 등 의사인력에 대한 수요는 급증하는데 비해 공급이 부족해 여러 가지 정책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
김남순
"의료인력 부족에 대해서는 시각에 따라 다른 의견이 있을 수 있다. 예를 들어 경쟁 증가를 체감하고 있는 젊은 의사들은 공급 과잉을 주장할 수 있다. 이 문제에 대해서는 다각적 관점에서 보다 면밀한 검토가 필요할 것 같다."
이상일
"공급자 반대에 부딪히면 빠른 시일 안에 이것저것 해 나가기가 어려운데, 그래서 건강보험의 요양기관 당연지정제에서 원하는 의료기관들만 요양기관으로 계약하는 계약제로 전환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지금 방식으로는 모든 공급자가 다 나서서 한꺼번에 반대하니까 새로운 제도 도입 자체에 걸림돌이 된다고 생각한다."
"지금 당연지정제는 이점이 별로 없다고 생각한다. 문제가 되는 의료기관을 배제할 필요가 있는데, 당연지정제에서는 이러한 정책 수단을 사용할 수 없다."
김진현
"나도 같은 생각이다. 요양기관 당연지정제가 건강보험제도 도입 초기에는 필수적이었지만 이제는 불량 요양기관의 안전판 역할을 하는 경우도 있어 긍정적인 효과보다는 부정적인 효과를 더 많이 가지고 있다고 본다. 계약제로 전환해 건보공단이 구매자 기능을 갖게 되면 정책 수단의 실효성이 제고될 것이다. 다른 나라의 사례를 보면 당연지정제보다 계약제가 정책 수단으로서 더 효과적인 것을 알 수 있다."
보건의료 활동 관련 정책의 진단과 향후 과제
김남순
"인구고령화로 만성질환자가 늘어나면서 효율적으로 만성질환을 관리할 필요성이 높아지고 있는데, 이를 위해서는 일차의료기관 중심의 통합진료 강화와 의료제공체계 확립이 필요하다."
정형선
"우리나라는 외래 이용 횟수가 많고 재원일수가 긴데, 이는 의원과 병원이 서로 경쟁관계에 있고, 의료전달체계가 원활히 작동하지 않는 데에도 일부 기인한다."
"하지만 전체 평균 수치로서의 외래 이용 횟수, 입원 일수보다 더 중요한 것은 개별 상황이다. 고혈압, 당뇨, 고지혈증 등 기저질환을 중심으로 한 일차의료기관의 역할을 살리는 것이 중요하며 최근 건강보험에서 시작한 만성질환관리제를 잘 다듬고 정착시킬 필요가 있다."
이상일
"일차의료 문제를 좀 더 이야기하면 일차의료의 질적 수준에 대한 국민의 신뢰가 높지 않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현재 시도하고 있는 접근법들이 적절하지 않은 것 같다. 의료계에서는 일차의료기관을 살리기 위해 수가를 올려 달라고 하는데, 이는 오히려 경제적인 인센티브가 대형 의료기관으로 작용할 것이다."
"또 하나는 의뢰-회송 시범 사업을 하면서 의뢰수가와 회송수가를 지급하고 있다. 의료기관에서 환자에게 의뢰서나 회송서를 발급하면 환자가 그대로 움직일 것이고, 그에 따라 대형 의료기관의 환자 집중 현상이 완화될 것이라는 기대를 하고 있는데, 저는 환자의 흐름이 그렇게 나타나지 않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일차의료기관에서도 양질의 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주어야 하고 양질의 서비스를 어떻게 제공할 수 있는지 고민해야 한다."
"앞으로 전체적인 공급체계를 바꾸는데 핵심 중 하나는 등록제 도입이다. 보험자와 공급자가 재정 측면에서 위험 공유를 같이 하는 방식으로 가려면 대상 인구집단이 정해져야 하는데, 등록이 전제되지 않으면 그 다음 단계로 진행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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