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입력시간 22.08.14 08:45최종 업데이트 22.08.14 08: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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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력존엄사는 '현대판 고려장'...호스피스·완화의료부터 확충해야

12일 국회 토론회 참석 전문가들 한 목소리...조력존엄사 악용·생명경시 풍조 만연 우려

한국보건의료연구원 PACEN 허대석 사업단장.

[메디게이트뉴스 박민식 기자]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의사조력존엄사(의사조력자살) 도입에 앞서 부족한 생애 말기 돌봄 인프라부터 확충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왔다. 섣부른 의사조력존엄사 제도화는 자칫 고령 환자들의 자살을 조장하는 '현대판 고려장'이 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됐다.
 
12일 더불어민주당 신현영 의원 주최로 열린 국회 토론회 참석자들은 최근 민주당 안규백 의원이 발의한 연명의료결정법 개정안, 일명 ‘의사조력존엄사법’에 대해 시기상조라고 반대하며 이 같이 주장했다.

조력자살 찬성 80%? 이상적 임종과 현실 간 괴리 탓

이날 토론 좌장을 맡은 한국보건의료연구원 PACEN 허대석 단장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이상적 임종 환경을 사회가 구축해주지 못 하다보니 최근 설문에서 의사조력자살 찬성 비율이 80%나 나온 것으로 본다”며 “사회가 도와주지 않으니 자살할 약을 처방 받아 죽겠다는 얘기”라고 말했다.

이어 “자살을 존엄한 죽음이라고 제도화 한다면 고령의 환자의 자살을 방조하거나 조장하는 사회적 규범이 생길 것"이라며 "현대판 고려장이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허 단장은 “우리나라는 특히 노인 자살율이 매우 높다. 80대 남자 기준으로 OECD 국가의 10배 가깝다”며 “그런 분들에게 가서 '아직도 살아계시냐'는 한 마디 하면서 자살을 유도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라는 느낌이 든다”고 했다.

이러한 우려에 환자들도 동의했다. 환자단체연합회 안기종 대표는 “말기 환자들은 가족들에게 부담을 주고 싶지 않아 의사조력자살을 택할 수 있고, 환자를 간병하는 가족들도 의료비, 간병비 부담 등으로 환자에게 의사조력자살을 선택하도록 유도할 위험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대국민 설문조사 결과, 의사조력존엄사 우선 순위 아냐

발제자로 나선 한국호스피스·완회의료학회 강정훈 윤리이사(경상대병원 혈액종양내과)는 학회 차원에서 호스피스 완화의료제도에 대해 실시한 대국민 설문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말기 환자와 가족에 대한 사회적 지원 체계에 대해선 부족하다(61.1%)는 의견이 충분하다(3.8%)는 의견에 비해 압도적으로 높았다. 호스피스·완화의료 제도 자체를 모르는 비율도 60%에 달했다.
 
생명 연장만을 위한 연명의료를 받겠느냐는 질문에는 받지 않겠다는 의견이 81.7%, 말기 진단을 받는다면 호스피스·완화의료 서비스를 받겠느냔 질문엔 58.4%가 그렇다고 답했다.
 
강 이사는 설문조사 결과 중에서도 존엄한 죽음을 위한 정책 우선순위 관련 문항을 강조했다. 정부와 국회가 존엄한 죽음을 위해 가장 중점을 둬야 할 일은 무엇이냐고 묻는 질문에 대해 의사조력자살 합법화라고 답한 응답자는 13.6%에 그쳤다는 것이다.
 
대신 간병 부담 완화를 위한 지원체계 마련(28.6%)이라고 답한 비율이 가장 높었고 이어서 ▲의료비 절감 등을 포함한 경제적 지원(26.7%) ▲호스피스·완화의료 서비스의 확충 및 지원(25.4%) 순이었다.
 
의사조력자살 법제화 논의에 앞서 호스피스·완화의료 제도 확대가 이뤄져야 한다는 의견에 대해서도 찬성이 58.3%로 반대(9.6%)에 비해 크게 높았다.
 
이번 설문 결과에 대해 강 이사는 “대다수의 국민들은 국민의 존엄한 죽음을 보장하기 위해선 정부와 국회가 의사조력 자살 법제정 보다 환자 지원 체계에 중점을 둬야 한다고 보고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호스피스 인프라 부족 '심각'...입원 대기 중 사망 사례 빈번
 
한국호스피스·완화의료학회 김대균 기획이사(인천성모병원 호스피스완화의료센터장)는 호스피스 전문기관의 절대적 숫자가 매우 부족해 환자가 입원하는 것 자체가 힘들다는 점을 지적했다.
 
김 이사는 “서울 지역은 입원을 위해 3~4주, 인천과 경기는 1~3주 가량 대기가 필요하다. 기다릴 만한 시간이 없는 환자들인데 병실이 없어 대기해야 하는 것”이라며 “결국 대기하다 사망하는 경우들도 많다”고 말했다.
 
이어 “정부는 입원형 호스피스 인프라가 아니라 가정 돌봄 인프라 부족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다보니 당장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 하고 있다”며 “인구 950만여명의 서울에 입원 가능한 호스피스 전문기관은 15개 기관에 260병상 뿐인 게 합리적이냐”고 지적했다.
 
가뜩이나 부족한 호스피스 전문기관은 코로나 팬데믹에을 겪으며 더욱 쪼그라들었다.
 
김 이사는 “2020년 초부터 코로나 유행으로 공공의료기관으로 기능이 전환되면서 올해 1월의 경우 7개 기관, 105개 병상만 운영됐으며 그 중 간병 서비스를 제공하는 기관은 3개 기관 50병상에 불과하다”고 꼬집었다.
 

국민 기대에 맞는 완화의료 인프라 갖춰야...대상질환 확대도 필요
 
대한종양내과학회 이경은 윤리위원장(이대목동병원 혈액종양내과) 역시 완화의료를 확대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마련해야 한다는 데 동의했다. 현재는 인프라 부족으로 사람들이 기대하는 수준의 호스피스·완화의료가 제공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집에서 임종하는 것이 이상적일 수는 있으나 현실적으로는 실현되기 쉽지 않다고도 했다. 환자의 의료적인 니즈를 집에서 해결하기가 쉽지 않은 것을 비롯해 여러 난점이 있기 때문이다.
 
김 위원장은 “병원같은 집은 현실적으로 정말 어렵다. 그래서 집 같은 병원이 필요하고 그게 호스피스 인프라로 해결이 돼야 한다고 본다”며 “문제는 호스피스도 인프라가 부족해 대기가 길다는 점”이라고 했다.
 
이어 “결국 요양병원을 추천하게 되는데 거기서는 사람들이 생각하는 호스피스·완화의료를 제공하기 어렵다”며 “일반 돌봄과 호스피스 돌봄의 차이점은 인력 구성과 시설에 있는데, 호스피스 전문기관이 아닌 일반 요양병원에서는 그걸 감당할 수 없다”고 했다.
 
호스피스완화의료 대상 질환을 확대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왔다. 대한의사협회 김이연 홍보이사는 “세계 보건기구에선 호스피스완화의료 대상 질환에 제한을 두지 않고 모든 말기환자로 돼있으나, 우리나라는 실질적으로 몇 개의 일부 질환에 국한해 현장에서 적용되고 있다”며 “그렇기 때문에 현재까지도 호스피스완화의료가 사회적으로 암환자에 국한된 인식을 주고 있고 실질적으로도 대다수 입원환자가 암환자”라고 했다.
 
이어 “조력존엄사 허용을 위한 법개정 보다는 호스피스완화의료 대상 질환의 확대를 비롯해 환자들의 삶의 질 개선과 우울증 등 정신의학적, 심리사회적 지원을 위한 관련 제도를 마련하는 게 더욱 필요한 상황”이라고 했다.
 
복지부, 현행 호스피스 서비스 한계 인정...이용율 낮고 지역별 제공 편차도

보건복지부는 현행 호스피스 서비스에 일부 한계가 있다는 사실을 인정했다. 호스피스 서비스가 입원형에 치중됐고, 지역별 제공 및 이용의 편차도 발생했다는 것이다.
 
복지부 질병정책과 한상균 과장은 “입원형 호스피스 기관의 확충과 병상 수 증설, 호스피스 유형의 확대에도 불구하고 호스피스 이용율은 23%대에 정체돼 있다”며 “지역 및 기관별 호스피스 이용율 및 입원대기시간의 편차도 발생하고 있다”고 했다.
 
이어 “호스피스 전문기관의 필수의료인력 규정과 말기 환자가 사용하는 고가의약품에 대한 별도수가 산정 제도도 개선의 여지가 있는 게 사실”이라고 덧붙였다.
 
한 과장은 “정부는 호스피스 이용율을 30%대로 증가시키는 목표와 동시에 입원형에 치중돼 있는 서비스 유형을 가정형, 자문형, 요양병원형, 소아청소년형 등으로 다양화하기 위해 시범사업 수행과 본사업 전환을 추진하고 있다”고 했다.
 
이어 “호스피스연명의료를 포괄하고 지역사회 돌봄 등 유관분야를 포함해 여러 분야가 협력하는 생애말기 돌봄 전략을 수립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박민식 기자 (mspark@medigate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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