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입력시간 24.07.10 13:14최종 업데이트 24.07.10 1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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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물관에 들어간 코끼리' 된 정부…의료 농단이 갈수록 가관이다

[칼럼] 김재연 대한산부인과의사회장 전라북도의사회 부회장

사진=게티이미지뱅크

[메디게이트뉴스] 정부가 9월 하반기 전공의 모집을 정상화하기 위해 갖은 수를 쓰고 있다. 일각에서는 9월 하반기 전공의 모집이 진행되면 오히려 필수·지역의료 붕괴가 가속화할 것이라고 하는데, 이제는 붕괴할 거리조차 없다는 느낌이다. 이미 필수의료를 지원할 후배들이 사라진지 오래되면서 모든 것이 희망고문처럼 느껴진다. 

정부는 모든 전공의에 대해 행정처분을 철회한다고 밝혔지만 8일 집계된 211개 수련병원에 출근한 전공의는 1095명으로 전체 전공의의 8%로 요지부동이다. 

전공의들은 정부의 행정처분 철회 카드에 관심조차 없다. 그런데도 아직도 정부는 현장을 제대로 모르고 박물관에 들어간 코끼리처럼 움직일때마다 기존의 의료 환경을 파괴하고 있다. 

2025학년도 의대증원 원점 재검토와 책임자 처벌 없이는 의료 재앙의 시계를 멈출 수 없다. 현재 우리나라 의료는 한발, 한발 천천히 그러나 분명하게 낭떠러지로 가고 있다. 

지방 전공의의 수도권 쏠림으로 지방에는 전공의가 더 없어지는 빈익빈 부익부가 발생한다고 한다. 하지만 현재 복귀한 전공의 대부분이 인기과 전공의들이고 필수의료 복귀 전공의는 거의 없다. 따라서 9월 하반기 전공의 모집도 인기과 모집정원은 제한적일 수밖에 없고, 상급연차가 복귀하지 않는 빅5병원의 필수의료과에 지방 전공의가 지원할 리 없다.

혹시라도 지방 전공의가 빅5병원에 지원해 합격한다 해도 이미 배신으로 낙인찍힌 복귀한 전공의 선배연차와 사직 후 돌아온 전공의들이 공존하는 것이 가능할지도 의문이다. 

정부는 사직 후 오는 9월 하반기 모집에 지원하는 전공의에 대해 '수련 도중 사직하면 일 년 내 동일 연차·전공으로 복귀할 수 없다'는 지침을 완화하는 특례를 적용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사직 후 9월에 복귀하지 않는 전공의는 1년간 동일 과목·동일 연차에 응시할 수 없는 기존 지침을 그대로 적용하겠다고 한다. 

이 또한 전공의에 대한 악마화를 위한 꼼수로 정부가 나름 열심히 만든 보복성 정책일 따름이다. 

특히 사직 후 오는 9월 하반기 모집에 지원하는 전공의는 단지 1년 차에 응시하려는 것이다. 상급연차 전공의가 복귀하지 않을 경우 혼자 근무 할것이 뻔한데 누가 응시할 것인지도 궁금하다. 

전공의는 의대 정원의 원점 재논의가 없다면 복귀는 어렵다고 한다. 정부의 행정처분 철회로 일부 돌아가려는 전공의들이 나올 수 있겠지만 다수는 움직이지 않을 것이다. 

정부가 수련병원에 사직서 수리 시점에 관한 사항을 일임하겠다고 하면서 수련병원들이 전공의 사직 시점을 2월 29일로 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복지부는 수련병원협의회의 결정은 병원과 전공의 간 사적 합의에 반영될 뿐 학사 일정이나 모집 일정, 각종 명령 등 공법상 영향을 미칠 수 없다고 했다.
   
수련병원이 2월 29일 자로 전공의들의 사직서를 수리하는 건 병원과 전공의 사이에 퇴직금이나 4대 보험료 정산 등에 적용되는 것이지, 전공의 모집 일정 등에는 영향을 끼칠 수 없다는 정부의 태도는 자중지란으로 보여진다. 

정부가 전공의 사직 여부를 다음 주까지 결정하지 않으면 앞으로 전공의 배치 정원을 줄이는 등의 불이익을 주겠다고 사실상 압박하고 있다. 또 하반기 수련을 위해 미복귀 전공의의 일괄 사직 처리를 병원에 주문하고 있다. 

이에 주요 수련병원장들이 오는 15일까지 근무를 시작하지 않는 전공의들을 자동 사직 처리하는 방침을 정했다고 한다. 스승들이 제자의 꼬리를 잘라 자신들이라도 살겠다고 보여질 뿐이다. 

대한수련병원협의회는 또 사직한 전공의가 9월부터 다른 병원에서 수련을 받을 경우 '같은 권역, 같은 전공일 때만 가능하게 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정부 방침대로 어느 병원이든 옮길 수 있게 하면 전공의들이 서울 소재 5대 대형병원으로 몰리며 지방 의료공백이 더 악화할 것이란 취지에서다. 

대한의학회도 이날 "(정부 방침대로라면) 지방 전공의 또는 비인기과 전공의가 서울의 대형병원이나 인기과로 이동 지원하는 일들이 생길 수 있어 지방 필수의료의 파탄은 오히려 가속화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일부 병원장들이 어떻게든 사직 전공의들에게 불이익을 주려는 형태에 동조하고 사직 전공의들의 수도권 병원은 물론 타 전문과 지원까지 금지해 개인의 기본권을 심각하게 침해하는 사항을 제안했다는데 아연실색하지 않을 수 없다. 이건 헌법소원으로 진행된다면 위헌 판정을 받을 소지가 매우 크다. 

대한수련병원협의회와 같은 논리라면 지방의대 교수들도 지방 필수의료의 파탄을 막기 위해 서울의 대형병원이나 상급종합병원으로 이동을 금지해야 하는데 동의할지 의문이다. 

정부는 의대 증원과 함께 오는 2027년까지 국립대병원 교수 1000명을 충원하겠다고 했다. 그러면서 교수를 채용할 때 '개원의' 경력도 대학병원 근무 경력과 동일하게 인정하는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교수 임용기준을 바꿔 의대교수 1000명을 뽑는다 하고 연구나 교육실적 없이 평생 임상진료만 했어도 이를 100% 연구실적으로 인정해준다고하고 개원의는 교수가 될 수 있는 반면, 의원의 봉직의는 안된다고 한다. 

이에 전국 34개 의대 비대위 대표 교수들은 어제(9일) 공동 성명을 내고 "정부의 입법 예고안은 의대를 졸업한 개원의를 당장 의대 교수로 뽑을 수 있게 하겠다는 발상"이라며 강력히 규탄했다. 

여기에 더해 교육부는 의대 학사 탄력운영 가이드라인의 주요 내용을 통해 의대생들의 유급을 막기 위해 의대 교육과정 및 평가 운영을 학기 단위가 아닌 학년 단위로 전환하도록 했다. 2024학년도 1학기 학생 성적 처리를 마감하지 않고 학생들이 학교로 복귀한 이후에도 그간의 학습 결손을 보충할 수 있도록 학년 말까지 기간을 확보하기 위한다는 것이다.

교육부는 수업 평가가 제대로 이뤄지지 못한 교과목에 대해서는 미완의 학점인 I(incomplete) 학점을 부여하는 조치 등을 통해 학생들이 일정 기간 내에 학습 결손을 보충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고 했다. 하지만 의대생들은 여전히 돌아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학생을 제대로 평가하지 않고 일단 유급도 없이 올려보내겠다는 태도로 제대로 된 의사를 양성할지도 의문이다. 

의료 농단이 갈수록 가관이다. 정부의 어떤 대처에도 의대생들과 전공의들은 꿈쩍도 하지 않고 있다. 올해는 이미 틀렸고 내년에도 이 사태가 해결되지 않을까 심히 우려스럽다. 증원된 의대 신입생들 또한 현재 휴학생들과 맞물려 의대 교육과정 자체가 중단될텐데, 대체 의대정원 증원이 무슨 소용인가.


※칼럼은 칼럼니스트의 개인적인 의견이며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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