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입력시간 24.06.21 07:57최종 업데이트 24.06.21 07: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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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페란 판결'로 본 의료과실 형사처벌화 경향…법조계도 "형사사건 책임 너무 쉽게 인정"

대법원 "단순 개연성 근거로 업무상과실 인정해선 안돼"…해외는 의료위축 우려로 형사 처벌 자제

사진=게티이미지뱅크

[메디게이트뉴스 조운 기자] 의대 정원 증원으로 잠시 관심에서 멀어졌던 우리나라의 의료과실 형사처벌화 경향이 파킨슨병 환자에게 맥페란을 처방했다가 유죄 판결을 받은 의사 사건으로 다시 도마 위에 오르고 있다.

법조계에서도 형사사건은 엄격한 증거에 따라 합리적 의심의 여지가 없을 정도로 인과관계를 가려야 한다는 점을 지적하며 해당 판결에 우려를 표하는 가운데 고의성이 없는 의료과실에도 불구하고 의사들을 형사 처벌하는 국내 경향에 대한 비판이 커지고 있다.

대법원 "형사사건, 엄격한 증거에 따라 합리적 의심의 여지가 없을 정도로 증명돼야"

21일 의료계에 따르면 최근 창원지법이 80대 파킨슨병 환자에게 '맥페란' 주사액을 처방한 60대 의사에게 업무상과실치사상 혐의로 금고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이라는 유죄 판결을 내렸다.

의료계는 해당 사건이 알려진 뒤 '맥페란'이라는 주사제가 위장관 운동 조절, 소화불량, 구토 등의 소화기증상 개선제로 매우 흔히 사용되는 약물임을 지적하며, 모든 약에는 작용과 부작용이 있음을 고려하지 않은 법원의 판결에 분노했다.

파키슨병을 주로 다루는 대한파킨슨병및이상운동질환학회는 직접 성명서를 통해 유감을 표했고, 대한의사협회 임현택 회장은 물론 소아응급실 의사 출신인 개혁신당 이주영 의원까지 나서 해당 판결을 비판하고 나서는 등 약물 부작용을 의사의 과실로 인정해 형사 처벌하는 재판부의 판단에 대한 의료계 내 반발이 거세지고 있다.

일각에서는 이전 판례에 비추어도 해당 사건 판결이 다소 과도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2015년 대법원은 민사판결에서 책임을 인정한 의료과실에 대해 업무상과실치사 혐의의 형사판결에서는 무죄를 선고한 바 있다. 

당시 대법원은 "형사재판에서 공소가 제기된 범죄사실에 대한 증명책임은 검사에게 있고, 법관으로 하여금 합리적인 의심을 할 여지가 없을 정도로 공소사실이 진실한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게 하는 증명력을 가진 엄격한 증거가 없다면 설령 피고인에게 유죄의 의심이 있다고 하더라도 피고인의 이익으로 판단할 수밖에 없다"고 판시했다.

이러한 대법원 판결 경향은 현재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2023년 대법원은 모 업무상과실치상 판결에서 "업무상과실로 인해 환자에게 상해‧사망 등 결과가 발생한 점에 대해 엄격한 증거에 따라 합리적 의심의 여지가 없을 정도로 증명이 이뤄져야 한다"며 "의료행위로 인해 환자에게 상해‧사망 등 결과가 발생했다는 사정만으로 의사의 업무상과실을 추정하거나 단순한 가능성‧개연성 등 막연한 사정을 근거로 함부로 이를 인정할 수는 없다"고 밝혔다.

지난해 대한의료법학회에 게재된 '의료과오 사건에서 인과관계증명에 관한 최신 대법원 판결'(대법원 문현호 재판연구관(부장판사)) 논문에 따르면 "형사재판에서는 실체적 진실발견과 엄격한 죄형법정주의를 바탕으로 '의심스러울 때 피고인의 이익'으로 라는 원칙에 따라 '합리적인 의심이 없을 정도'의 인과관계와 주의의무 위반에 대한 증명을 요한다"고 밝혔다.

법무법인 세승 현두륜 대표변호사는 이번 사건에 대해 "형사사건은 엄격한 증명에 의해 검사가 인과관계를 입증하는 것이 원칙"이라며 "그러한 점에서 해당 사건에서 맥페란과 환자의 파킨슨병 악화라는 인과관계가 합리적 의심을 할 여지가 없을 정도로 증명됐는 지 의문이다"라고 밝혔다.

현 변호사는 "최근들어 우리나라가 의료과오 형사사건에 대해 너무 쉽게 그 인과관계를 인정하는 경향이 있는 것은 사실"이라며 "이처럼 형사사건이 엄격하게 다뤄져야 함에도 재판부가 의료진의 과실을 쉽게 인정해버리는 판결이 자주 선고되면 의사들은 반발할 수밖에 없고, 결국은 의사들의 방어진료를 키우게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의료과오 형사처벌화 경향 갈수록 심화…법조계도 "의료분야 기피 원인, 소신진료 악영향"

익히 알려진 것처럼 우리나라의 의료과오 형사처벌화 경향은 더욱 심화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우리나라의 업무상과실치사상죄 건수는 연평균 750건 이상으로 매일 2명이 기소되고 있다. 최근 입법조사처가 발표한 바에 따르면 2020년 기준으로 입건된 의사 수는 868명으로 6년 전 677명에 비해 약 28.2%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일본은 의료과실이 경중을 불문하고 모두 형사처벌의 대상이 된다면 의료의 위축과 붕괴를 가져올 수 있다는 우려에 따라 사실상 ‘의료중과실’의 경우에만 형사책임을 추궁하고 있다.

이에 따라 일본은 1997년~2019년 동안 의료과실 관련 형사소송은 연평균 11.5건 제기됐으며, 2011년~2015년 기간의 기소율은 6.5% 수준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영국의 의료과실 건수는 1년에 1만 5000건에 달하지만 업무상 과실치사상죄로 형사 기소해 판결을 받은 사례는 2013~2018년 7건(유죄 4건, 무죄 3건)으로 연평균 약 1.3건 정도였다.

영국은 일벌백계 차원에서 업무상 과실치사상죄로 기소하고 형사 처벌하는 한국과 달리 '정직한 실수'와 '살인'을 명백히 구분해야 한다는 인식이 널리 퍼져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같은 국내 의료과실 형사처벌 경향은 우리나라 의사들이 필수의료 영역을 기피하게 하는 주요 원인으로 꼽히고 있다. 

이대목동병원 신생아 집단 사망 사건으로 업무상과실치사죄로 기소된 의료진은 최종 무죄를 선고받았지만 전공의들의 소아청소년과 지원을 기피하게 만들었고, 불가항력적 분만사고에 제기되는 거액 민사소송과 실형 선고는 의사들을 진료 현장으로부터 등지게 만들고 있다.

대법원 문현호 연구관은 "위험성이 수반되는 의료행위의 특성상 인과관계가 명확하지 않음에도 법원이 형사책임을 쉽게 인정하면 그 분야 의료인의 주의를 강화시키는 것보다 해당 의료분야 기피를 야기하는 결과를 초래하기 쉽다"고 지적했다. 

문 연구관은 "의사들로서는 의학지식의 한계, 제도적 한계 등으로 아무리 주의를 기울여도 확률상 나쁜 결과를 모두 피하기 어렵다는 점을 알고 있다. 따라서 해당 분야에서 최선의 주의를 기울여 근무하는 것보다 다른 과를 선택할 동기가 생길 수밖에 없다"고 봤다.

조운 기자 (wjo@medigate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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