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디게이트뉴스 조운 기자] 우리나라 출산율이 매년 감소하면서 산부인과 의사의 위기감이 커지고 있다. 앞으로 50년 뒤에는 현재 인구의 25%가 감소할 것이라는 통계까지 나온 가운데, 산부인과 의사들은 정부 저출산 대책의 방향부터 잘못 설정됐다고 지적하고 있다.
정부는 그간 저출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대통령 직속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를 구성해 15년간 약 380조원의 예산을 지출했고, 보건복지부 안에도 출산정책과를 만들어 각종 정책을 내놨다. 하지만 사상 최저의 출산율의 통계가 보여주듯 개선의 기미는 보이지 않고 있다.
국내 저출산 문제는 백방이 무효하다는 이야기마저 나오고 있는 상황에서 산부인과 의사들은 ‘임신’과 ‘출산’을 분리해 엇박자를 내는 현 정부의 저출산 대책을 개선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저출산 대책에도…분만병원 5년간 14.7% 감소, 2021년 산부인과 전공의 확보율 87.4%
15일 의료계에 따르면 최근 통계청이 2021년 장래인구추계를 반영한 세계와 한국의 인구 현황 및 전망을 발표했다. 해당 보고서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2021년 합계출산율이 0.81명을 기록하면서 2022년 인구 5200만명에서 2070년 3800만명으로 감소한다.
출산율 감소에 따라 2022~2070년 기간 중 한국의 유소년인구 구성비는 4.0%p 감소하고, 생산연령인구도 24.9%p 감소한다. 반대로 고령인구 구성비는 28.9%p 증가한다. 즉 2070년 65세 이상 노인 비율은 46.6%로 치솟으며, 50년 뒤에는 한국인의 절반이 노인인구가 된다.
저출산 문제는 이미 오래전부터 우리나라의 고질적 문제였다. 정부도 2005년 대통령 직속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를 출범하고, 2006년부터 2020년까지 15년간 저출산 대책에 380조원을 투입했지만, 국내 출산율은 해마다 감소하는 추세다.
산부인과 의사들은 저출산에 따른 환자 감소를 피부로 느끼고 있다. 이에 의료기관은 분만을 포기하고 있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신현영 의원이 건강보험심사평가원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2016년부터 2020년까지 5년간 분만 의료기관의 수는 14.7% 감소했다.
출산율이 감소하면서 산부인과는 사실상 ‘전망이 어두운’ 전공으로 낙인찍혔고, 전공의들의 산부인과 지원도 감소해 일명 ‘기피과’가 됐다. 신현영 의원이 보건복지부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2020년 산부인과 전공의 확보율은 88.7%였고, 2021년도 87.4%로 줄었다.
산부인과 의사들은 출산율이 감소해서 분만병원과 전공의 지원율이 감소한다고 볼 수도 있지만, 이러한 출산 인프라 붕괴는 반대로 부부의 출산 기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따라서 정부의 저출산 대책이 제대로 이뤄졌다면 오히려 분만 인프라가 더욱 탄탄하게 갖춰졌어야 한다며, 분만 인프라 붕괴가 저출산 대책 실패의 반증이라고 비판하고 있다.
정부, 난임부부에 초점…안전한 임신‧출산 인프라 구축 및 경제적 부담 덜 대책은 미흡
의료계는 우리나라 저출산 대책이 효과를 내지 못한 이유가 ‘임신’과 ‘출산’을 별개로 바라보고, 사실상 당장 결과를 낼 수 있는 ‘임신율 증가’에만 정책적 초점을 맞췄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실제로 우리 정부는 지난 수년간 난임 부부를 위한 난임 수술비 지원 등 난인 부부의 임신 성공을 위한 지원 대책에 예산을 쏟아부었다. 난임 부부들은 임신을 원하고 있어 일단 의료비 지원 등을 통해 임신이 되면 실제 출산으로 이어진다. 따라서 정부 입장에서는 난임 시술 지원책이 ‘출산율 증가’라는 눈에 보이는 효과를 낼 수 있어 선호하게 되는 것이 저출산 대책이다.
국립중앙의료원 최안나 산부인과 교수(중앙난임‧우울증상담센터장)는 “난임이 늘어나는 이유는 결혼과 출산 연령이 늦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여성의 나이 35세 이상부터는 신체 노화 등으로 임신 확률이 감소하고, 임신이 되더라도 유산이 되거나 고위험군이 될 확률이 높다”며 “난임부부를 위한 지원 대책도 물론 굉장히 중요하다. 하지만 가임력이 좋은 35세 이전 성인이 난임이 되기 전 임신을 하고 출산을 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기 위한 정책이 더 중요하다”고 말했다.
실제로 2021년 모(母)의 평균 출산연령은 33.4세로 전년 대비 0.3세 올랐고, 부(父)의 평균 출산연령도 35.9세로 0.1세 증가했다. 이러한 산모의 출산 연령 증가는 조기 양막 파수, 출산 후 출혈, 자궁경관무력증 등 임신 합병증 증가로 이어진다. 우리나라도 고위험 임산부가 증가하고 있지만 산부인과 전문의 및 분만 병원은 부족해 모성사망이 증가하고 있다.
최 교수는 “정부는 가임력이 좋은 시기인 20대에서 30대 초반 나이에 임신을 꺼리는 이유를 찾아 해결해야 한다. 이들은 임신과 출산으로 발생하는 경제적 부담과 스트레스로 인해 임신과 출산을 뒤로 미루거나 포기하고 있다”며 “가임력이 좋은 나이대에서 임신을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시도할 수 있는 사회 분위기와 제반 환경이 마련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최 교수는 “아쉽게도 우리나라는 40조 원에 달하는 저출산 예산에서 난임 부부를 위한 지원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다. 임신을 원하는 사람을 위한 지원도 중요하지만, 난임이 되기 전 임신하고 싶게 만드는 환경을 만드는 것도 중요하다고 본다”며 “안전한 분만 인프라를 구축하고 임신 및 출산 과정에서 우울증 및 스트레스를 해소하기 위한 지원책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복지부 내 임신‧출산 정책 부서 분절…통합 거버넌스 구축해 통합적 대책 마련
우리나라 저출산 대책이 출산 및 출산 이후에 대한 지원에 소홀했던 이유는 임신 출산 정책을 마련하는 부서가 분절돼 엇박자를 내고 있기 때문이었다.
대한산부인과의사회 김재연 회장은 “안전한 임신과 출산을 위해서는 임산부에게는 충분한 분만의료 접근성을 보장해야 하고 이를 위해서는 경제적 부담 완화, 거주지 인근의 분만병원 유지, 응급 산모 연계 체계 구축 등이 필수”라며 “임산부에게 경제적 부담을 완화하기 위해서는 건강보험공단 본인부담금 경감 및 국가 예산이 합리적으로 진행돼야 하지만 분만 의료비용과 고위험 임신부 치료 비용은 여전히 높다”고 지적했다.
김 회장은 “경제적 여유가 없는 젊은 임신부들에게는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보험급여과와 출산정책과의 밀접한 협력이 필요하지만 관련 부서가 다르다”고 말했다.
현재 복지부 출산정책과는 복지부 1차관이 담당하는 인구정책실, 인구아동정책관 관할 하에 있으나, 보험급여과는 복지부 2차관이 담당하는 건강보험정책국에서 수행하고 있다.
김 회장은 “분만 인프라를 구축해 거주지 인근의 분만병원이 운영되기 위해서는 분만 시설 및 장비뿐 아니라 분만 담당 의료인, 응급 산모 이송 연계 시스템이 필요하지만 각기 다른 부서에서 정책을 운영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대한산부인과학회 박중신 이사장(서울대병원)은 “저출산으로 병원 분만 건수는 당연히 줄어들 수밖에 없다. 그렇다 보니 병원들은 해가 갈수록 수지타산이 맞지 않아 분만을 포기하게 된다. 언제 어떻게 발생할지 모르는 분만 환자를 위해 분만병원은 365일 24시간 운영돼야 한다. 하지만 산부인과 수가는 분만 시설 유지비와 인건비 등을 고려하고 있지 않다”고 말했다.
정부는 분만 취약지 지원사업을 실시하고 있지만 전국에 산부인과가 없는 지역이 20곳에 이르고, 산부인과가 있어도 분만실이 없는 지역도 43곳이나 된다.
박중신 이사장은 “경제 논리로만 따지면 병원들은 분만을 접어야 한다. 하지만 분만은 저출산 현상에도 불구하고 필수, 공공의료이기 때문에 정부가 책임지고 분만을 유지할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며 “정부는 출산 장려를 위해서라도 분만 수가 현실화 및 분만 산부인과 의료기관에 대한 시설‧장비비, 운영비, 인건비 지원 등에 재원을 투입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산부인과 전문가들은 궁극적으로 출산 인프라 구축이 국가 대책으로 반영되려면 체계적이고 통합적 임신 및 출산 정책을 수립할 ‘임신 출산 정책 통합 거버넌스’를 구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재연 회장은 “통합 거버넌스는 복지부 보건의료정책실 내 공공의료정책관의 응급의료과처럼 독립적인 과를 운영함으로써 가능하다. 임신 및 출산 정책에 관여하는 부서를 통합해 포괄적인 정책을 수립하고 신속한 집행이 가능하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중신 이사장도 "응급의료는 '응급의료에 관한 법률'로 법적 근거도 있고 재원도 마련돼 있다. 산부인과 분만도 장기적인 관점에서 국가가 책임지고 지원할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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