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입력시간 23.08.14 08:02최종 업데이트 23.08.14 0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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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과 의사들이 6년 전 이야기하던 사법입원제, 이제라도 전문가 의견을 경청하라

[칼럼] 조성윤 미래의료포럼 발기인·뉴고려병원 진료부장

사진=게티이미지뱅크 

[메디게이트뉴스] '언덕 위의 하얀 집'. 그런 용어가 있었다. 요즘 아이들은 그게 무슨 말인지 모를 수도 있겠다. 여러가지 이유로 정신병원은 언덕 위에 지어진 하얀 건물인 경우가 많았다. 그런 병원에는 주로 정신분열증(이후에 조현병이라는 용어로 바뀜)을 비롯한 정신병증(psychosis) 환자가 장기 입원하는 경우가 많았다. 내 주위에는 그런 환자들이 별로 보이지 않았는데 언덕 위의 하얀 집은 꽤 많이 보였던 것 같다.​

예전에는 신경과와 정신과가 신경정신과로 합쳐져 있다가 1982년 신경과와 분리되면서 우리나라에 정신과가 탄생했다. 이런 식으로 보자면 신경외과, 정형외과, 성형외과 등등은 처음에 모두 외과였다. 그러다가 여러 부정적인 이미지를 탈피하려는 노력으로 정신과는 2011년에 정신건강의학과로 이름이 바뀌었다.​

여러 논란이 있을 수 있겠지만 의사가 아닌 분들에게 쉽게 설명하기 위해 정신질환(mental disorder)을 크게 두 가지로 분류해 볼수도 있겠다.  신경증(neurosis)과 정신증(psychosis). 이렇게만 이야기하면 무식한 의사라고 욕먹을 수도 있겠지만 일단 이렇게 분류해보겠다.

특이하게도 일본에서는 정신과 이외에 심료내과(心療内科)라는 것이 있는데. 심료내과에서는 심료는 마음이라는 뜻이다. 심료내과(마음내과)에서는 신경증 및 경한 우울장애 등을 진료하고, 정신과에는 정신증을 주로 진료한다고 한다. 가벼운 신경증 환자들이 정신과 환자를 바라보는 불편한 시선을 피할 수 있도록 배려한 제도인 듯하나 학문적으로 보았을 때는 정신과학(psychiatry)에 모두 포함되어 있는 신경증과 정신증을 두 전문과목으로 분리해놨으니 아이러니하다.​

신경증은 영어로 뉴로시스(neurosis), 독일어로 노이로제(neurose)이다. 그 노이로제 맞다. 내적인 심리적 갈등이 있거나 외부에서 오는 스트레스를 다루는 과정에서 무리가 생겨 심리적 긴장이나 증상이 일어나는  질병이다. 불안이나 불면, 두통, 심인성 위장 장애 등의 증상이 나타난다. 이런 만성적인 고통을 수반하지만 망상이 있는 것은 아니다. 

정신증은 영어로 사이코시스(psychosis). 기질적 또는 감정적 기원을 가진 주요한 정신장애로 인격의 붕괴, 현실과의 접촉 상실, 망상, 환각 등의 증상이 나타난다. 병적으로 잘못된 판단이나 확신이 생기는 망상, 헛 것이 보이거나 들리는 환각 등이 신경증과는 확연히 구분되는 증상이다.

정신증 중에 가장 많은 질병이 조현병(정신불열증, schizophrenia)이다. 조현병은 조기에 치료를 잘 받은 일부 환자들은 일상생활을 지속할 수 있지만 상당수는 입원을 요하는 중증으로 진행하는 경우가 많다. 망상, 환각을 동반하는 경우가 많아 자해나 타해의 우려가 있는 환자도 분명이 있다. 조현병의 유병율은 약 1%다. 인구 100명당 1명이 조현병이라는 뜻이다. 사실 1%의 유병율은 상당히 높은 것이다. 예전에는 이들 중 상당 수가 언덕 위의 하얀 집에 입원해 있거나 집에서 지내며 바깥 활동을 하는 경우가 적어서 조현병 환자를 직접 만나는 경우가 적었을 것이다.

2017년 5월 정신보건법이 개정됐다. 이 때부터 정신과 환자라 하더라도 자해와 타해의 우려가 있는 경우에만 강제치료 요건이 된다고 규정해 망상과 환청이 있고 이상한 행동을 해도 본인은 병이 없다고 생각해 치료를 거부하면 치료를 시작할 방법이 없다. 강제입원의 대상이 될만한 급성기 조현병, 조울병 환자들의 경우 거의 대부분이 스스로로 병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Insight, 즉 병식(病識)이란  현재 자신이 병에 걸려 있다는 자각(自覺)을 뜻한다. Insight는 치료의 기본이다. 환자 자신이 병을 이해하거나 내가 환자라는 생각이 없으면 의사도 보호자도 억지로 치료받게 하는 것이 힘들다. 심지어는 진단을 받기위해 병원에 데려오는 것조차 불가능하다. 경찰이나 구급대도 당장 자해나 타해의 우려가 높은 긴급한 상황이 아니면 개입할 수 없다. 그게 고혈압이나 당뇨라면 본인의 수명이 단축되는 문제로 그치지만, 정신증(pshchosis)의 경우에는 타해의 우려도 있다.

의사들은 이런 내용을 잘 이해하고 있었기에 2017년 당시 여러 경로를 통해 우려를 표명하며 대안 마련을 요구했었다. 그러나 그런 의사들의 외침은 아무 효과가 없었고 그 법은 그대로 시행됐다. 그 당시에는 환자의 인권이 중요시돼 내린 결정이라고 생각한다. 아마도 우리가 알지 못하는 사이에 언덕 위의 하얀집에서 환자의 인권을 제대로 지켜주지 못했을 것이라는 합리적 의심이 든다. 심지어는 제도를 악용해 정신과적 문제가 없는 사람을 가족과 의사가 정신병 환자로 만들어 강제입원시켰다는 소문도 들린다.

2017년 의사들의 주장이 사회적으로 정치적으로 받아들여지지 않았던 것은 의사들의 잘못도 크다고 생각한다. 강제입원이 가능하던 시절에 법이 개입하지 않더라도 병원 내에서 인권이 잘 지켜졌다면 의사들이 주장이 그렇게까지 공허하지는 않았을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insight가 없는 환자가 정신과 의사에게 진단받을 기회를 뺏아버리는 것이 과연 환자의 인권을 존중하는 것인가?  서현역 사건을 비롯해서 최근에 여러 사건들에서 범인이 정신증(psychosis)을 가지고 있고 제대로 치료받지 못했다고 전해진다. 제 때에 치료를 받았으면 환자에 머물렀을 사람이 범인이 된 것이다. 물론 정신병 병력 만으로 모든 것을 설명할 수는 없지만 진술과정에서 망상을 이야기하는 것을 보면 분명히 범죄와 연관성이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환자 본인이 거부하더라도 보호자와 의사가 판단해서 강제로 치료받게 했다면, 망상에 의해 그런 범죄가 일어나지는 않았을지도 모른다. 

다행스럽게도 소잃고 외양간 고치려는 움직임은 있는 것 같다. 법무부가 중증 정신질환자의 입원 여부를 법원이 결정하게 하는 '사법입원제' 도입 추진을 검토하기로 했다고 한다. 6년 전에 이야기하던 내용이었는데 이제라도 검토한다니 그나마 다행이다. 사법입원제를 도입하면 또 환자 인권에 대한 문제가 거론될 것이다. 이번에는 제발 그런 중증정신질환자를 직접 치료하는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의 의견을 경청해 주었으면 좋겠다.

요즘 '알빠노'라는 말이 유행한다. '내 알바냐?'라고 해서 알바노, 알빠노가 됐다 한다. 의사들도 여러 사회 문제에 대해 의학적인 의견이 필요할 때 언제부턴가 알빠노란다. 이 문제를 좋은 방향으로 안내할 중요한 의견을 알고 있지만 의사 이외에 환자, 정치인, 행정가, 언론 등을 설득하는 과정에서 전문가의 의견이 무시당하는 일을 수없이 겪으면서 알빠노로 돌아선 것 같다. 그러나 의사인 나 자신이나 나의 가족도 환자가 될 수 있고 범죄의 피해자가 될 수 있기에 나는 알빠노 대신 이런 글을 써 본다. 그러나 계속 무시당하면 나도 알빠노할지 모르겠다.


※칼럼은 칼럼니스트의 개인적인 의견이며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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