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디게이트뉴스 윤영식 기자] 40대 이상 대부분의 임상의사들은 의과대학 시절 유전체의학을 제대로 배우지 못했다. '유전학'이라 하면 완두콩을 통한 멘델의 법칙, 초파리 연구 정도밖에 배운 기억이 없다. 그리고 '유전병'이라 하면 이름도 외우기 힘든 희귀질환들이 전부였고, 학생 때 외에는 졸업 후 임상에서 만나볼 기회가 전혀 없었기에 자연스레 관심에서 멀어지게 된 것이다.
그러나 2003년 휴먼게놈프로젝트가 완성되면서 갑자기 게놈과 관련된 정보들이 쏟아지기 시작했고, 암, 당뇨, 치매 등 임상의사가 흔히 보는 주요 질환의 유전체 연구들이 소개됐다. 최근에는 정밀 의학을 이용한 진단과 치료 분야의 최신 지견들이 학회 등에서 소개되면서 더 이상 유전체 의학을 나 몰라라 할 수 없게 됐다.
그러나 여전히 기초부터 다시 시작하기에 망설여지는 임상의사를 위해 핵심적인 유전체 지식, 그중에서 변이(variant)에 대해 미니 리뷰하고자 한다.
DNA, Chromosome, Gene, Base의 개념
우선 DNA의 구성 요소인 염색체(Chromosome), 유전자(Gene), 염기(Base)에 대해 간단히 살펴보자.
DNA에는 모두 22개의 상염색체(Chromosome)와 1개의 성염색체(X,Y chromosome)가 있다. 아래 그림처럼 22권의 전집과 1권의 별책 부록을 가지고 있는 백과사전을 DNA라 할 때 한 권 한 권의 책이 '염색체(Chromosome)'에 해당한다. 각 권의 책에는 무수히 많은 페이지가 있는데, 이것을 '염색체 위치(Chromosome region)'라 부른다. 이는 유전자의 위치를 쉽게 찾기 위한 인위적인 분류에 해당한다. 각 페이지에는 여러 개의 문장이 있는데 이처럼 한 문장은 유전자(gene)에 해당한다. 유전자는 세포의 기능을 담당하는 최소의 단위, 즉 한 단백질을 전사(translation)하는 최소한의 '염기(base)' 단위를 말한다. 여기서 염기는 문장을 이루는 글자에 해당하며 A(Adenosine), G(Guanine), T(Thymine), C(Cytosine) 네 종류가 있다. 유전정보를 담고 있는 물질인 DNA가 A/T, C/G 등 4가지 염기의 다양한 조합으로 이루어져 있으므로, 이들 염기의 결합 순서를 파악하면 각 생물이 가지고 있는 고유한 염기 배열을 알 수 있다.
정리하면, 인간의 DNA에는 모두 30억 개의 글자, 즉 염기가 있으며(실제로는 부모로부터 각각 물려받아 쌍을 이루어 base pair라는 구조로 존재한다), 약 3만 개의 문장(유전자)이 23권의 책(염색체)에 담겨 있는 것이다.
변이 (Variant)란 무엇인가?
인간은 날 때부터 누구나 조금씩 다른 유전자를 타고난다. 때로는 그 변이가 너무 심해서 책 한권에 해당하는 염색체에 이상이 생겨 상염색체 이상 질환인 다운증후군(21번 염색체의 증가, Trisomy), 성염색체 이상 질환인 클라인펠터증후군(XXY 염색체) 같은 질환을 앓게 되기도 한다. 문장 전체에 문제가 생겨 암을 일으키기도 하는데, 안젤리나 졸리로 인해 잘 알려진 BRACA 유전자의 변이가 여기에 해당한다. 이런 희귀성 암은 거의 유전적인 요인에 의해 질병이 생기며 태어날 때부터 변이가 있는 경우에 70~80%까지 암이 걸리는 것이다. 다행히 이런 경우는 매우 드물다. 그 외에도 글자에 해당하는 염기의 숫자가 몇 개 정도에서 추가되거나(Insertion), 없어지거나(Deletion), 같은 글자가 반복되거나(Tandem repeat) 하는 경우도 있다.
글자 하나의 돌연변이(point mutation)에 의해서 유발되는 질환을 단일유전자돌연변이 질환(Single Gene Disorder)이라 부른다. 이 질한은 일반적으로 멘델의 법칙을 따르며 몇 가지 유형이 존재한다. ① 과오 돌연변이(missense mutation): DNA 염기 하나가 다른 종류의 염기로 바뀜으로써 그 위치에서 만들어질 아미노산이 다른 아미노산으로 바뀌는 돌연변이를 말한다. 예를 들면, 겸상 적혈구 빈혈증(sickle cell anemia)의 경우, 베타글로불린(betaglobulin)의 6번째 아미노산인 글루타민(Glutamine)이 발린(Valine)으로 치환된 것인데, 이 아미노산을 전사하는 유전코드가 CAG에서 CTG로 가운데 염기가 치환돼서 발생한다. ② 넌센스 돌연변이(nonsense mutation): DNA 염기 하나가 다른 종류의 염기로 바뀜으로써 그 위치에 종결 코돈이 형성되는 돌연변이다. 뒤시엔느 근이영양증이 해당하며, 이 질환은 디스트로핀(dystrophin) 유전자상의 돌연 변이로 인해 유발된다.
이상에서 말한 질환들은 모두 염색체 혹은 유전자에 돌연 변이(mutation)가 있을 때 생기는 경우이고, 이런 경우는 매우 드물기 때문에 대부분의 임상 진료 현장에서는 다룰 기회가 많지 않다.
흔한 변이 (common variant), SNP (단일염기다형성)이란?
인간의 DNA는 약 30억 개의 염기(base – A,G,C,T의 조합)로 구성돼 있는데 서로 다른 인간의 DNA는 99.7%가 동일하다. 이를 다른 말로 하면 약 0.3%, 즉 천 만개의 염기가 서로 다르게 되어 있는데 이 차이가 모든 인간의 다양한 형질(phenotype)을 결정한다. 평균 300개의 염기(base)에 하나꼴로 일어나는 염기의 변이(variant)가 그 인구 사회의 1% 이상에서 일어나는 흔한 변이를 가리켜 단일염기다형성(SNP: single nucleotide polymorphism, 이하 SNP)이라 한다.
이 흔한 변이가 사람마다 다른 특성을 나타낸다. 예를 들면, 누구는 커피를 마시면 잠을 못 자고, 누구는 술을 마시면 얼굴이 빨개지고, 누구는 태어날 때부터 쌍꺼풀이 있으며, 누구는 특정 질환이 더 잘 생기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SNP는 앞선 돌연변이같이 유전적 질환을 결정하는 게 아니라, 특정 질병을 더 잘 일으키는 소인(risk)에 해당하는 변이인 것이다. 사람의 30억 개의 게놈 지도에서 어떤 위치에 있는지를 일일이 찾아본 연구가 휴먼게놈프로젝트(Human Genome Project)였고, 이 연구에 기초해 많은 질병 연관 연구들이 시행되면서 오늘날 질병 예측의 시대가 도래하고 있다.
SNP에 대해 조금 더 알아보자. DNA에 염기의 변이가 있다고 해서 항상 단백질 합성(translation)의 차이를 가져오지는 않는다. 예를 들면, 하나의 단백질로 전사되는 3개의 염기 TCA(Serine) 중 세 번째 염기인 A가 C로 변이가 일어나도(즉, TCC) 단백질은 동일하게 세린(Serine)으로 전이되는데, 이를 잠재 돌연변이(silent mutation)라 부른다. 반면, 첫 번째 염기 T가 A로 변이가 일어나면(즉, ACA) 단백질은 트레오닌(Threonine)으로 전이가 된다. 이처럼 단백질의 형질 변화를 일으키는 단일염기다형성 돌연변이(SNP mutation)를 과오 돌연변이(missense mutation)라 부른다.
SNP는 위의 경우처럼 mRNA에 의해 전사(transcription)되는 엑손(exon)에 위치하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의 경우 인트론(intron)에 존재하며 이 경우에도 전사 과정의 스플라이싱(splicing, 이어맞추기)에 영향을 주기에 의미를 둘 수 있다. 최근에는 전사 인자(transcription factor)가 부착돼 유전자(gene)의 발현에 영향을 주는 프로모터(promoter) 부분의 SNP에 대해서도 활발한 연구가 이뤄지고 있다.
인간에게는 약 3만 개의 유전자(gene)가 있다. 한 개의 유전자(gene)는 평균 1만(10K) 개의 염기(base)로 구성되고, 이 중 300분의 1에 해당하는 평균 300여 개의 SNP가 존재한다. 대부분 인트론(intron)에 위치하는 이 SNP는 임상적인 의미보다는 생물학적 다양성을 나타낸다. 그러나 이 중에서 수 개에서 수십 개의 SNP는 인간의 형질, 특히 건강에 유의한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이 SNP를 발견해내는 것이 유전체의학의 핵심이다.
너와 내가 다른 유전적 소인을 말하는 Genotype이란?
DNA는 두 쌍의 나선형 구조로 되어 있다. 즉, 한 가닥은 아버지로부터 한 가닥은 어머니로부터 동일한 염색체를 물려받는데 이를 '상동 염색체(allele)'라 한다. 특정 부분에 단일염기다형성 돌연변이(SNP mutation)가 있을 때 한쪽만 변이가 있을 수도 있고 양쪽 모두 변이가 있을 수도 있다. 양쪽 모두 정상(dominant 혹은 major allele)일 때 동종접합 야생형(homozygous wild type)이라 하며, 한쪽에만 변이가 있는 경우를 이형접합 돌연변이형(heterozygous mutant type), 양쪽 모두 변이가 있는 경우를 동종접합 돌연변이형(homozygous mutant type)이라 한다.
이러한 세 가지의 유전적 차이를 갖는 그룹을 '유전자형(genotype)'이라 한다. 예를 들면, A에서 G로의 변이가 있는 SNP의 유전자형(genotype)은 AA, AG, GG 세 그룹으로 나눌 수 있다. 대립유전자형빈도(MAF: minor allele frequency)가 적은 경우는 AG+GG를 묶어서 한 그룹으로 나누기도 하는데, 이 경우를 G 캐리어(G carrier)라 부른다. 이렇게 세 그룹 혹은 두 그룹의 유전자형(genotype)과 질병, 즉 표현형(phenotype)의 연관성을 보는 연구가 '연관성 연구(association study)'다.
후천적으로 암을 일으키는 체세포 돌연변이 (somatic cell mutation)
앞서 설명한 돌연변이는 태어날 때부터 부모로부터 유전적 소인을 물려 받은 돌연변이다. 이를 '생식세포 돌연변이(germline cell mutation)'라 한다. 이에 비해 체세포 돌연변이(somatic cell mutation)는 배아(embryo)가 분화되는 과정 혹은 분화된 이후에 원래 부모의 생식세포에는 없던 돌연변이가 무작위적으로 분화된 체세포에 발생한 경우, 그리고 후대의 자손에는 전달되지 않는 돌연변이를 말한다.
대부분의 암은 이러한 체세포돌연변이 중 세포의 이상증식이나 세포사멸기전의 손상 등 우리 몸이 제어할 수 없는 돌연변이에 의해서 발생한다. 대표적인 체세포 돌연변이로 BRAF 돌연변이나 K-RAS 돌연변이에 의해 대장암이, EGFR 돌연변이에 의해 폐암이 발생하는 것을 예로 들 수 있다.
이번 편을 통해 다양한 변이에 대해 이해했다면, 다음 편에서는 선천적 혹은 후천적으로 유전자의 변이가 어떻게 질병을 일으켜 진단과 예측에 도움을 주는지에 대해 알아볼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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