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입력시간 23.10.16 09:48최종 업데이트 23.10.16 09: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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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대정원 확대의 관점포인트: 의대정원만 늘리면 필수의료∙지역의료 문제가 해결되나

[칼럼] 송우철 전 대한의사협회 총무이사

사진=게티이미지뱅크 

[메디게이트뉴스] 지난 14일, 언론은 일제히 이번 주 의대정원 확대 방안을 대통령이 직접 발표할 것이라면서 확대 폭은 1000명 이상이 될 수 있다고 보도했다.

정부의 공식 발표가 아닌 가운데 나온 언론의 이런 보도는 의료계 반발을 예상해 정부가 김빼기 용으로 정보를 흘렸을 가능성이 커 보인다. 한편으로는 의료계의 반응을 떠보고, 다른 한편으로는 미리 마음의 준비를 하라는 것일 것이다. 이 보도가 사실일 경우 정부의 의대 정원 확대의 관점 포인트를 짚어 보자.

1. 의대정원 확대 vs 의대 신설

의대정원 1000명 증원은 현 의대 정원 (3058명)의 32% 이상을 한꺼번에 늘리겠다는 것과 같다. 2020년 복지부는 연간 400명 의대 정원 확대안을 발표하면서 지방 국립대 등 상대적으로 학생이 적은 의대의 정원을 우선 늘리고 이와 별개로 공공의대 설립을 계획했다.

의대 정원 확대는 2025년부터 시작될 것으로 보이는데, 만일 신설 의대를 설립 하려면 해당 대학의 기초의학 교수, 임상 교수 및 수련 병원을 동시에 준비해야 하므로 일정이 촉박해 신설의대 설립은 사실상 쉽지 않다.

물론 카이스트(KAIST)처럼 이미 수년 전부터 의학전문대학원(의전원) 설립을 추진해왔던 곳은 얘기가 다르다. 카이스트는 이미 ‘의과학대학원’이라는 이름의 의전원을 설립해 2025년 신입생 선발을 목표로 준비해왔기에 정부는 여기에 정원을 배당할 가능성이 크다.

그 외에도 이번 기회에 의대를 만들겠다는 대학들이 의대 설립을 서두르면 의대가 더 늘어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고, 복지부도 염원해 온 공공의대 설립을 현실화할 수 있다. 그러나 어느 쪽이든 ‘지역의사제’라는 정부 기조로 볼 때 신설의대가 서울이나 수도권에 설립될 가능성은 크지 않으며 지방대 중심으로 의대가 신설될 가능성이 크다. 이 경우 서남대의 전철을 밟을 가능성이 적지 않다.

왜냐하면 의대는 대학 시설이나 기초의학 교수에 못지 않게 수련 병원이 중요한데, 대학부속병원에 가늠되는 병원을 가지고 신설 의대를 만들 수 있는 대학은 거의 없다. 기존 대학병원도 수도권에 환자를 빼앗기는 마당에 기존 지방 병원이 의대부속병원이 된다 한들 수도권 대학병원과의 경쟁에서 이길 가능성은 없기 때문에 지방 의대 대학병원으로 편입되는 것에 큰 메리트가 있는 것도 아니다.

게다가 수도권의 대학병원 분원 설립 러시로 신설의대 졸업생은 수도권으로 몰리게 될 것이다. 결국 지역 의사제는 유명무실화되고, 지방대 병원 전공의 모집은 더 어려워질 수 있다. 따라서, 신설 의대 증설보다는 기존 의대에 정원을 늘리는 방안이 우선될 것이다.

2. 의대정원은 왜 늘리나?

정부가 주장하는 의대정원 확대의 필요성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대비 적은 의사 수, 필수의료 공백 해소, 의과학자 양성 등이다. 하지만 솔직히 이런 주장은 의대 정원 확대의 슬로건일 뿐, 실상 정원 확대를 간절히 바라는 쪽은 정부나 시민단체가 아니라 병원이라는 점을 염두에 둬야 한다.

당장 수도권에 늘어날 대학병원 병상수가 6000병상 이상인데, 이 병원들이 개원할 경우 임상 교수가 될 전문의는 물론 인턴, 레지던트들이 절대적으로 부족해진다. 물론 지방 병원들도 의사 구인난과 늘어나는 의사 급여에 시달리고 있어 의대 정원 확대, 정확하게는 의사 수 증원을 간절히 바라고 있다. 그러나 당장 발등에 불이 떨어진 건 분원을 내는 대학병원들이라고 할 수 있다. 결국 2025년부터 의대 정원이 늘게 되면, 이들이 면허를 취득하는 2030년 초반부터 어느 대학을 졸업했는지 무관하게 대부분 수도권에 신설되는 병원을 메우게 될 것이다.

따라서 현재 의대정원 확대는 당장 늘어나는 수도권 대학병원 분원에 노동력을 제공할 전공의 수급 대책에 불과할 뿐이다. 결국 일회용으로 쓸 전공의가 필요해 내놓은 대책일 뿐 이들이 전문의를 취득한 후에 생길 일은 관심이 없어 보인다.

3. 늘어나는 의료비

우리나라는 급속한 고령화와 비약적인 저출산으로 의료비는 증가하는 가운데, 보험료를 낼 근로자는 계속 감소한다. 즉, 미래 세대는 폭증하는 국민연금과 건보료에 허덕이며 이들이 낸 연금이나 보험료는 노인을 위해 사용된다.

고령화로 의료 수요가 증가할 때 의료 공급이 제한되면 의료비 증가 속도는 완만해지지만, 의사 인력이 30% 이상 늘어면 수요와 공급이 톱니바퀴처럼 돌아가며 의료비 증가 속도를 끝없이 올리게 된다.

게다가 우리나라 건보제도는 의료 수요를 통제할 수 있는 이렇다할 기전이 없다. 의료비를 국가 세금을 충당하는 영국식 NHS(국가보건서비스)를 채택한 국가는 의료비 즉, 세금 절감을 위해 주치의 제도를 두고 주치의가 의료 소비를 통제하는 게이트키퍼(gatekeeper) 역할을 한다.

반면, 우리나라가 수요를 통제하는 건 청구 심사와 삭감 뿐이다. 소비자를 통제하는 게 아니라 공급자 목을 졸라 의료비를 통제하는 건데, 이 같은 방식의 통제로는 건보 재정을 줄일 수 없다는 사실은 이미 정부도, 보험자도 다 아는 사실이다. 따라서 비약적으로 늘어나는 의료 수요에 의사 공급을 늘이겠다는 건 결국 불에 기름을 붓는 꼴이 되고, 이 경우 현재의 건보 체제로는 건보 지속 가능성을 담보할 수 없다. 

우리나라 건보제도의 기초 원리는 저부담, 저보장, 저수가다. 이런 상황에서 건보 재정을 줄이고 건보를 지속하려면 부담을 늘리고(즉, 보험료를 더 늘리고), 급여 항목을 줄이고(보장성 약화), 수가를 더 깍는 방법(저수가 강화) 밖에 없다.

보장성 강화는 정치인들의 선심과 시민단체 등 의료소비자들의 요구에 따라 보장성을 더 늘리면 늘렸지 줄일 수 없게 됐다. 그런데도 의료비 폭증으로 보험료율이 이미 소득의 8%를 넘어설 수 밖에 없어 건보재정을 지탱할 수 있는 나머지는 오로지 저수가 대책 뿐이다.

최근 이슈가 되는 현상들 즉, 필수의료 붕괴, 소아과 오픈 런, 응급환자 수용 거부 등은 1인당 국민소득 1000달러 시대에 만들어진 보험 제도 즉, 저수가 원칙 때문이다. 한쪽으론 의사 공급을 늘려 의료비 상승을 부추기면서 다른 쪽으로 아무리 마른 수건 짜듯 공급자를 쥐어짠들 건보는 붕괴될 수밖에 없으며, 그 시기는 멀지 않았다.

4. 의대 정원 vs 의사 수 정원

물론 해마다 의대 정원을 1000명씩 늘린다고 임상 의사도 해마다 1000명씩 늘어나지는 않을 것이다. 정부가 원하는 의과학자나 역학조사관 등 관에서 일하는 의사도 늘어날 것이고, 의사 공급이 늘어 경쟁력이 없다고 생각하고 일찌감치 의사면허만 취득한 채 다른 진로를 선택하는 경우도 생길 것이다. 지금보다 훨씬 더 많은 의사들이 미용 성형 등 비보험 분야로 빠지거나, 국내 의료 환경이 나빠지면 더 나은 여건을 가진 외국으로 나갈 인원도 적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 해도 이는 늘어나는 1000명의 10~20% 에 불과하다. 즉, 해마다 800명 이상의 의사가 순증하게 된다. 

물론 의대 정원이 늘어나도 의사 수를 조절할 수 있는 방법은 있다. 첫째는 졸업을 안 시키는 것이고 둘째는 의사 면허 시험을 대폭 강화해 합격율을 70~80%로 낮추는 것이다. 만일 면허시험 커트 라인을 응시자의 70~80%로 제한하면, 한 해 의사 배출 수는 2800명~3200명 선에 그쳐 현재와 유사한 수준이 된다. 의대 정원을 늘리는 건 정부의 권한이지만 의대 졸업 정원 수와 의사 면허 자격자를 조절하는 건 의료계의 통제로 가능한 것이다. 물론 이는 의사 공급량을 통제해야 한다는 필요성과 당위성이 의사협회, 의대, 의대교수들 사이에 합의돼야 가능하다,. 

5. 묻고 싶다.

의대 정원 확대로 필수의료가 강화될 것으로 믿는가? 지역간 의사 수 불균형과 특수 분야의 의사 수 부족 문제가 해결될까? 이 질문에 ‘그렇다’고 답한다면, 그 답에 책임질 수 있나?

우리는 이미 지난 수십년 동안 의료계와 정부, 의료계와 시민단체의 의견이 충돌할 때 결국 의료계의 주장이 맞았다는 것을 수차례 경험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국 틀린 답에 책임지는 당국자나 단체는 본 적이 없다.

지금 의사 정원 확대를 반대하는 기성 의사들은 의대 정원 확대로 손해볼 게 없다. 무엇을 손해볼까봐 반대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의사들이 의대 정원 확대를 반대하는 건 이런 방법으로는 앞서 언급한 문제들이 해결될 수 없기 때문이며, 실제 해결 방안을 뒷전에 둔 채 엉뚱한 방법을 들고 나오기 때문이다. 이런 무대책의 방법으로 문제를 해결할 시기는 자꾸 늦어지고 결국 의료 시스템은 더 망가지고 의료비는 폭증하며 그 결과 국민의 건강을 더 악화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확대된 정원으로 배출된 의사들이 전문의를 따고 나오는 훗날 정부의 방법이 틀렸고 의사들의 주장이 맞았다고 한들, 오늘 이 대책을 만든 자들은 이미 자리를 떠났을 것이다. 그들에게 책임을 물을 기회는 없어질 것이다. 그게 아쉽다.

메디게이트뉴스 (news@medigate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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