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희경 전 서울대 의대·병원 비대위원장(왼쪽)과 장상윤 대통령실 사회수석이 지난해 10월 열린 ‘의료개혁, 어디로 가는가‘ 토론회에서 참석해 악수하고 있다. 사진출처=노컷뉴스
[메디게이트뉴스] 4명의 서울의대 교수들이 학생들에게 돌아오라고 촉구하는 글이 많은 언론에 보도된 후 의사들의 각종 커뮤니티에서 큰 소동이 일고 있다. 이들의 주장에 극소수 의사들은 동의하는 반면, 필자를 포함한 대부분 의사들은 분노하고 있다. 의료와 관련해선 대책 없는 단편적인 환자 수난 기사들만 내던 주요 언론들이 호재를 만난 듯, 이들의 성명서에 관해 대서특필하고 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들의 주장은 이미 빈사 상태의 젊은 의사들을 한방에 나가 떨어뜨리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지금 대통령 대행이나 장, 차관 들 뿐 아니라 대학의 일부 총장, 병원장, 학장들도 학생들의 복귀를 강요하며 온갖 수단을 동원해 협박과 회유를 하고 있다. 그런데 이 성명서는 불 난 집에 기름 붓는 격으로 구태여 지금 이런 발표를 공개적으로 떠벌렸어야 했는지 매우 유감스럽다.
이 글은 학생과 전공의들에게 학교로, 병원으로 돌아오라는 단순한 호소 글이라고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학생과 전공의들이 “대안도 없이 오만한 투쟁을 하고 있다, 정의롭지 않다, 책임을 다하지 않는다, 사회 혼란을 야기하는 훼방꾼, 독점권을 잃고 도태될 것이다’’ 라는 등 비난 일색이다. 나는 이 글을 쓴 교수 자신들이야말로 오만의 극치라고 생각한다. 이런 성명서를 읽고 학생들과 전공의들이 반성하고 돌아올 것이라고 기대했다면 이 교수들의 감성지수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아니면 학생들과 젊은 의사들이 설득되리라는 기대도 없이 불쑥 국가적 대혼란의 와중에 이런 도발적인 발표를 했다면 그 저의가 과연 무엇이었는지 의심스럽다.
어쨌든 지금 이 끔찍한 의료붕괴의 당사자는 휴학생과 사직 전공의들이다. 놀라운 용기를 낸 사람도, 막대한 개인 희생을 감수하면서 고통의 시간을 보내고 있는 이들도 학생들과 사직 전공의들이다. 누가 강요해서가 아니라 자발적인 개인의 선택이었다. 물론 복귀하려는 일부 학생이나 전공의들의 명단을 공개한 것은 분명 잘못된 일이지만 이는 극단적인 소수의 행동으로 보이며 이로 인해 대부분 학생들과 전공의들의 희생과 순수한 의도를 폄훼해서는 안 될 것이다.
물론 초과 사망자 수로 대표되는 환자들의 희생에 대해 의사로써 대단히 미안한 마음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엉망인 의료제도 때문에 필수의료와 지역의료는 의대증원 발표 훨씬 이전부터 이미 빠르게 악화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에 대한 해결책이랍시고 윤석열 대통령이 마른 하늘에 날벼락 같은 '2000명 의대증원' 선언 때문에 필수의료와 지역의료가 오히려 더 빠르게 무너지고 있다. 이런 이유로 이 참에 더 나은 미래의 의료환경을 만들기 위해, 더 많은 생명을 살리고 국민을 지키기 위해 학생들과 젊은 의사들이 앞장서서 희생하고 있는 것이다.
이들이 떠난 지 1년이 훌쩍 지나가고 있는데 아무것도 달라진 것이 없다. 이들이 복귀할 동기도 명분도 없는 상황인데, 교수들이 복귀를 촉구한다면서 조롱하고 협박하며 이들의 분노에 불을 지피고 말았다.
의료붕괴가 시작된 이후 언론에 더욱 부각되고 있는 응급실 뺑뺑이와 수술 지연, 그리고 피할 수 없는 초과사망이 매일 일어나고 있다. 이런 상황은 급속히 더 나빠지고 있으나 정부나 정치권에서 어느 누구도 책임지거나 앞장서서 이를 해결하려는 사람이 없다. 아니 그런 사람이 있을 수 없는 황당한 정치 진공 상태다. 화살이 향해야 할 과녁 자체가 사라져버린 셈이다. 그 결과 비난과 원망이 애초에 이 모든 일의 원인 제공자인 윤석열 대통령을 향하는 대신 의사들을 겨냥하고 있다. 지금 이 순간에도 필수의료 현장을 지키는 의사들은 초조함에 더해 극도의 신체적, 정신적 과로까지 겹치며 견디기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다.
그런데 4명의 교수들이 학생과 젊은 의사들을 향해 '인민재판'을 연상시키는 심한 비난을 하는 일까지 벌어져서 개인적으로 참담함과 무기력함을 금치 못하고 있다.
이제 우리는 지금 대한민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의료붕괴의 모든 현상을 미시적으로 볼 것이 아니라, 좀더 거시적인 안목을 가지고 봐야 한다. 지금은 온 나라가 극심한 정치적 혼란의 구렁텅이에 빠진 '무정부 상태'라고 볼 수 있다. 윤석열 대통령 탄핵 판결 발표가 초읽기에 들어간 지금 탄핵 이슈가 국내외 모든 아젠다들을 블랙홀처럼 빨아들이고 있다. 지금 우리나라에서는 정부가 있는 것도 같고 없는 것도 같다.
민생에 꼭 필요한 일에서는 정부가 보이지 않는 반면, 이해관계가 얽힌, 현 정부가 꼭 챙기고 싶어하는 일에는 반드시 등장하고 있다. 정부가 챙겨줘야 할 사람들 또는 제거해야 할 사람들에 대한 조치는 속전속결로 집행하고 있다. 중요한 자리에 측근 인사 꽂기, 그리고 대통령에게 조금이라도 부정적이었던 공무원들 내쫓기 등 제 사람 챙기기에는 한치의 빈틈도 보이지 않는다.
의대생들과 전공의들은 2년에 걸쳐 막대한 개인 희생을 치르고 있다. 이들의 희생과 노력이 헛되이 돌아가선 안 된다. 지금 학생들은 8개 항목, 그리고 사직 전공의들은 7개 항목의 조건들이 모두 충족돼야 복귀하겠다고 주장하는데, 솔직히 이 모든 조건들을 당장 들어주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해 보인다. 깊은 논의와 합의가 필요한 사항들이 대부분이다. 일단 가장 중요한 항목인 2026학년도 의대 정원 (3058명으로의 원상 복귀가 아닌) 점진적 축소, 사법 리스크 경감 조치, 전공의 수련제도 대개편, 그리고 필수의료 살리기 아이템만 끝까지 주장하는 것이 보다 현실적이라고 생각한다.
반면 의료 붕괴에 대한 대응을 보면 완전 무정부 상태 같다. 대책 없이 마구 저질러 놓은 의료 붕괴의 해결에는 정부가 어떠한 결단도 내리지 못하면서 향후 책임도 모호한 장관들이 나서서 학생들과 젊은 의사들에게는 무조건 복귀하라고 겁박하고 있다. 결국 모든 결정은 온전히 정치적일 것이다. 조만간 대통령 탄핵 판결 발표가 있을 것이다. 결과는 아무도 모른다. 지금은 한치 앞도 알 수 없는 혼란의 극치 상황이다. 그래서 지금 어떤 정부 인사가 어떤 말을 해도 믿을 수 없다. 그러므로 우리는 조금만 더 자중하고 기다리는 것이 현명할 것이다. 조금만 더 견디면 9부 능선이 보일지도 모른다.
지금 장관이나 총리는 결국 아무 결정도 내리지 못할 것이며 또한 아무런 책임도 지지 않을 것이다. 미래는 학생과 전공의 등 젊은 의사들이 주인공이다. 기성세대 의사들과 지금의 정치인들, 장, 차관들은 지금의 전공의들이나 학생들이 의료현장에 나올 때 쯤에는 모두 사라진 후일 것이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전쟁에서의 패배 원인은 대부분 내부에 있다.의료붕괴에서도 더 이상 공개적인 내부 분쟁은 삼가는 것이 좋다. 최소한 10년 후를 바라보고 초조함을 가라앉히고 냉정하게 현실을 직시하며 입을 무겁게 해야 한다. 의료계 내부에서 젊은 의사들과 기성 의사들, 교수들 간의 불신과 상호 비방을 가장 반길 사람은 누구일까라는 생각을 해보자. 기사에 굶주린 언론들은 의사들의 내부 분란이 나오자 이를 덥석 물고 대서특필하고 있다. 이런 극 소수 의사들의 주장은 갈등 해결의 매듭을 풀기는커녕 오히려 더욱 단단하게 묶어 버리는 비가역적인 피해를 초래할 것이 우려된다.
지난 1년 이상 지속된 젊은 의사들과 학생들의 희생에도 불구하고 달라진 것은 아무것도 없고 애꿎은 환자들만 고생하며 사망했다. 정부와 대학은 학생이 등록금 미납 시 제적시키겠다고 하고 국방부 법령까지 바꾸면서 미필 사직전공의들을 현역 미선발자로 만들어서 벌 주듯이 이들의 손발을 묶어두려 하고 있다. 의대생들과 전공의들은 정부로부터 가지가지 형태의 채찍으로 두들겨 맞기만 하는 모양새다. 그래서 내가 전에 기고한 글에서 이미 여러 번 주장했으나 우리가 지금 해야할 일들을 다시 열거해 본다.
1. 어차피 한 목소리를 내기 어렵다면 잠시라도 상호 비방을 자제하며, 특히 공개 발언에는 더욱 신중을 기해야 한다.
2. 이제껏 성공한 적도 없지만 그래도 국민을 설득하려는 노력이 무엇보다 최우선으로 중요하다. 국민 설득만이 해결로 가는 단 하나의 길이다. 의사편은 아무도 없다. 정치권은 어차피 믿을 수 없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든 것이 정치적으로 결정된다. 정치권을 설득할 수 있는 방법은 오로지 국민 설득뿐이다.
3. 마지막 보루로 사법부에 호소하자. 법원에서 2000명 증원이 불법이라는 최종판결이 나오면 해결의 실마리가 풀리는 시작이 될 것이다. 이미 진행 중인 2000명 증원 무효 소송에서 승소할 수 있도록 의료계가 목소리를 모아야 한다. 그리고 의료 붕괴로 인해 학생들과 전공의들이 입은 모든 피해에 대해 정부를 상대로 모든 법적 조치를 적극 동원해야 한다.
4. 의료붕괴에 관해서 국회에서의 국정감사는 물론 나아가 특검까지 요구해야 한다.
5. 학생과 전공의들을 돕는 프로그램을 풀가동해야 한다.
6. 필수의료 패키지 등 진정한 의미의 의료개혁을 위한 로드맵을 마련해야 한다.
하루빨리 이 악몽이 끝나기를 기원하면서 그때까지 의사들, 환자들 모두 잘 버텨 주시기를 간곡히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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