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입력시간 21.01.08 13:08최종 업데이트 21.01.08 1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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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의료기관 병상 40% 줄이고 공간 늘리라니…이러다 병원들 폐업하면 정신질환자들 누가 책임지나

[만화로 보는 의료제도 칼럼] 배재호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겸 만화가

 
#134화. 3월부터 정신의료기관 시설 기준 강화 '폭탄' 

2020년 연말 코로나19를 막기 위해 정신없던 정신의료기관들에 폭탄 같은 소식이 떨어졌다.

지난 3월 대남병원을 시작으로 여러 정신의료기관에서 집단 감염이 발생하자, 보건복지부가 이를 구실 삼아 정신의료기관들의 시설 기준 강화안을 아무 상의 없이 갑자기 내놓은 것이다. 

환자가 입원하고 치료하는 모든 것에는 비용이 발생한다. 공간을 빌리는 것도 간병을 하는 것도 약을 먹는 것도 밥을 먹는 것도 모두 돈이 든다. 공짜로 제공되는 건 아무것도 없다.

그동안 우리나라 정부와 정치권은 정신질환자들의 치료에 잔인하다싶을 정도로 야박한 예산을 세워왔다. 모텔 숙박비가 5만원이 훌쩍 넘어가는 시대에 정신 질환자들의 평균 일일 치료비는 4만6000원이었다. 이 비용에는 환자들의 숙식과 약값, 치료값이 모두 포함된 비용이다. 이것은 정부가 강제한 것이기 때문에 정신의료기관을 계획하는 사람들은 이에 최대한 맞춰 시설을 설계할 수밖에 없었다. 다른 의료기관에 비해 상대적으로 정신의료기관의 밀집도가 높고 처우가 부실한 대부분의 원인이 이 때문이라고 자신 있게 단언할 수 있다.

그런데 정부가 이 모든 원인은 그대로 둔 채, 시설만을 개선하라고 개정법을 발의했다. 환자 1인당 공간을 넓히고 세면대 등의 시설을 추가하고 병상 간격을 띄우라고 한다. 그것도 3월부터 당장. 

이런 청천 벽력같은 소식에 모든 정신의료기관들이 '패닉'에 빠졌다. 단순 계산으로만 해도 지금 운영하는 병상의 40% 이상이 사라질 위기에 처했다. 그런데 문제는 단순히 40%의 병상만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 여러 문제들이 연쇄적으로 발생할 것이다.

첫째, 지금의 수가 하에 병원 병상의 40%가 사라지면 의료기관의 운영 자체가 불가능해진다. 병원을 운영할 때는 수가를 기준으로 병상 수를 곱해 운영 가능 여부를 결정한다. 그런데 지출은 거의 그대로인 상태에서 수입이 줄면 적자 운영이 불가피해진다. 확장할 공간적 여유가 없는 상당한 정신의료기관들이 폐업에 이를 것이 분명하다. 연쇄 폐업으로 인해 단순 계산 40%가 아닌 훨씬 큰 규모의 병상 축소가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

둘째, 폐업을 간신히 막더라도 단순히 병상 기준을 맞추기 위해 환자들에게 그동안 제공됐던 재활 치료 공간, 집단치료 공간, 휴식 공간들이 모두 병상으로 바뀐다. 오히려 환자들의 여유 공간을 뺏는 역효과가 난다. 

셋째, 병상이 줄어드는 과정에서 선별적으로 퇴원할 환자들을 선택할 수밖에 없고 많은 환자들이 사회로 쏟아지게 될 것이다. 갑자기 나오게 될 이들을 도와주고 보호할 사회적 인프라 구축은 요원한 상태다. 이로 인해 어떤 일들이 생기게 될지 굳이 말할 필요가 있을까.

개인적으로 정신질환자들의 치료 인프라 개선에 절대적으로 찬성한다. 하지만 모든건 공짜가 아니며, 개선에는 시간과 적응의 과정이 필요하다. 현장과 협의 없이 무작정 가하는 큰 충격은 반드시 큰 부작용을 수반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 부작용을 감당하는 건 이를 계획한 사람들이 아닌 정신질환자들과 보호자들, 그리고 국민들이다. 걱정스러운 2021년이 시작됐다.

메디게이트뉴스 (news@medigate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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