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입력시간 24.05.12 11:30최종 업데이트 24.05.12 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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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재 잔재' 같은 현 정부 의료개혁 추진 과정…성숙한 의사결정 단계 무시"

연세의대 심포지엄, "의대 2000명 증원, 낙수효과·인건비 절감 효과 없어…의사 전문가 목소리 들어야"

대한의사협회 의료정책연구원 안덕선 원장. 사진=연세의대 교수비대위 유튜브 갈무리

[메디게이트뉴스 조운 기자] 정부가 필수‧지역의료 살리기를 위해 추진하고 있는 의대정원 확대 정책이 독재 잔재라는 강도 높은 비판과 함께 의사 전문가를 배제한 정책 수립이 패착이라는 비판이 나왔다.

특히 의료 전문가들은 정부가 자신하는 의대정원 2000명 증원으로는 기대했던 낙수효과는커녕 의료비 절감 효과도 사실상 기대하기 힘들다며, 오히려 필수‧지역의료를 기피하는 요인 증가로 우리나라의 고질적 의료 문제는 더욱 심화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10일 연세의대 교수평의회가 연세의대 윤인배 홀에서 개최된 '2024년 의정갈등 현재와 미래'를 주제로 심포지엄에서 이 같은 지적이 제기됐다.

절차 무시한 채 의대 정원 2배 증원…"보건의료정책의 전체주의화 우려"

이날 전 세계의학교육연합회 부회장인 안덕선 대한의사협회 의료정책연구원 원장은 우리 정부의 의대 정원 2000명 증원 과정이 독재 정치와 다름없다고 비판했다.

안 원장은 "학교 이전, 소유주 변화, 급격한 교육과정 변화 등 주요 변화가 발생할 시 대학은 주요 변화에 대한 계획서를 최소 6개월 전에 한국의교육평가원에 제출해 의대평가인증을 획득해야 한다"며 "의대 정원이 기존의 2배로 늘어난 것은 주요 변화다. 그런데 정부는 이러한 절차를 모두 무시하고 의학교육점검반의 현장 방문 점검으로 이를 대체했다"고 문제를 제기했다.

그는 "정부는 필수의료 정책 패키지에 '교육 수련 혁신'을 약속하며, 의대 기초 임상 교수를 1000명 확충하겠다고 했다. 당장 올 초라도 교수 공고를 내서 교수를 뽑아야 하는데, 하루 아침에 교수 1000명을 어디서 구하고, 어떻게 배정할 것인지 모든 것이 불분명하다"고 꼬집었다.

안 원장은 1997년 12월 '의료개혁위원회' 정책보고서를 공개하며 "당시에는 정부가 의과대학이 41개로 늘어나면서 의사 수가 너무 늘어 의대 정원을 10% 축소해야 한다고 건의했다. 이렇게 근거가 있는 데도 정부가 지난 30년 동안 의사 반대로 정원을 못 늘렸다고 주장하는 것은 사실 왜곡이다. 정부가 그런 거짓말을 한다는 게 끔찍하다"고 비판했다.

안 원장은 "한 나라의 정책을 만들려면, 과학적 근거를 위한 연구가 필요하다. 연구 결과가 나오면 그 진실성과 타당성을 검증해야 하고, 과학적 근거에 입각해 정책을 수립해야 한다. 이후에는 찬성과 반대 의견을 청취하고 수정이나 대안을 제시한 후 공청회 등 의견 수렴을 해야 한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그런 성숙한 단계가 없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나라 주요 정책은 대개 해당 정권이 선거 때 공약을 내걸었거나, 정권의 위기 타개용으로 추진된다. 그리고 친정권 관변 연구자나 학자를 선정해 근거를 만든다. 반대 의견을 내는 집단은 비도덕적 집단으로 간주하고, 당‧정‧청 의결로 국민 의사를 대체한다"며 "여기에 지속적인 정권 교체와 공무원 교체로 정책은 계속해서 실패한다"고 비판했다.

안 원장은 "현 대통령은 민생을 재포장해 의료 개혁을 '역사적 사명'이라고 말하고 있다. 보건의료의 정책의 전체주의화가 이뤄지고 있다"며 "구체적 계획의 표어화로 대중을 선동하고, 대중은 의사 악마화에 참여해 스스로 도구화가 돼 활동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대표적인 우리나라의 군사 독재, 관료주의 의료정책으로 ▲요양기관 강제지정 ▲환자 거부 금지 ▲단체행동 금지와 업무개시 행정명령 ▲의료 형사 범죄화(필수의료 이탈) ▲독재적 건정심 구조(초저수가 불공정 보상) ▲불공정 공정거래법 등을 꼽으며, 해당 문제가 선결돼야 우리나라 의료를 살릴 수 있다고 강조했다.

안 원장은 "현 정부는 국민만 바라보고, 국민의 의사에 따라 현 정책을 추진한다고 한다. 그러면서 왜 국가가 하는 일을 방해하느냐며 의사들을 탄압한다. 이러다가 대통령실이 '짐이 곧 국가다'라고 말할지도 모르겠다"며 "법학자 출신인 대통령이 다수의 이익을 위해 소수의 기본권을 제한할 수 있다는 발언까지 하는 것을 보면 독재의 잔재가 너무 많이 남아있다는 생각이 든다"고 우려했다.
 
연세의대 예방의학과 장성인 교수. 사진=연세의대 교수비대위 유튜브 갈무리

"의사 수 늘려도, 부정 요인 커 낙수효과 없다…인건비 원가도 줄지 않아"

연세의대 예방의학과 장성인 교수는 정부가 의대 정원 증원을 통해 필수‧지역의료 의사 부족을 해결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데 대해 반박했다.

장 교수는 "정부는 의사가 증가하면 공급 절대량이 증가하고, 시장경쟁 원리가 적용돼 기피과와 지역으로 인력이 공급되는 낙수효과를 주장하고 있다. 재정적 측면에서도 현재 의사 인건비가 높은데, 의사 수 증가로 인건비가 줄어들 것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의사 증가가 정말 정부가 예상한 시나리오대로 흘러갈 것인가는 의문이다"라고 지적했다. 

장 교수는 "의사들이 진로를 선택할 때면 장단점을 비교하게 된다. 현재도 수도권이냐 지방이냐, 바이탈이냐 미용이냐, 개원의냐 교수냐, 일반의냐 전문의냐 등을 결정할 때 경제적 보상을 포함해 근로 강도, 대우, 거주 환경, 사회적 인식과 명예, 자아실현과 전문성 존중, 법적 보호와 스트레스 등을 따진다"고 밝혔다.

그는 "그렇게 의사들은 장단점을 따져 개인에게 더 높은 가치가 있는 직장을 결정한다. 부정적 요인이 커지면 아무 소용이 없다"며 "이번 정부의 2000명 의대 정원 증원 정책을 추진하는 과정을 겪으며 의사들이 필수과, 지역의료에서 근무하고 싶게 할 긍정 요인은 줄어들고 부정적 요인의 크기만 더 커졌다"고 지적했다.

또 정부가 의사 수가 증가하면 의사 한 명당 인건비가 줄어 수술비 등 의료비가 절감할 것이라고 주장하는데 대해서도 "전혀 그렇지 않다"고 꼬집었다.

그는 "의사 수가 늘어나 인건비가 줄어들면, 의사의 업무량도 감소하기 때문에 실제로는 수술에 대한 인건비 원가가 줄어들지 않는다. 의사 한 명당 일에 대한 효율성만 줄어들 것"이라고 설명했다.

장 교수는 정부가 의대 정원 정책을 이대로 진행할 경우, 의사들이 각자 유리한 선택을 하게 돼 기피과 문제는 더욱 심각해질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가장 먼저 위기가 닥칠 곳은 병원이다. 현재 전문의로 운영되고 있는 상급종합병원들은 기존의 전문의 중심 병원인 전문병원, 종합병원과 경쟁하게 돼 2차급 병원들이 먼저 망하게 된다"며 "정부는 2000명 증원의 추진력을 의료 정상화 정책인 사법 리스크를 국가가 가져가는 필수의료 국가책임제나 건강보험 개혁부터 준비에 힘을 쏟아야 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나아가 장 교수는 이번 정책의 패착으로 보건의료 현장 현실을 모르는 전문가의 목소리에 지나치게 귀 기울였기 때문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경제학자들의 이야기를 참고할 수는 있겠지만, 맹목적으로 받아들이지는 말았어야 한다"며 "앞으로 정부는 사회적 부채를 먼저 청산하는 작업을 통해 신뢰를 쌓고 실질적인 의료 개혁을 준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조운 기자 (wjo@medigate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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