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입력시간 21.11.10 07:49최종 업데이트 21.11.10 2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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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격의료법 국회 상정 예정…섣부른 입법화 아닌 안전성·책임소재·환자쏠림 폐해부터 살펴라

[칼럼] 김재연 대한산부인과의사회장·전라북도의사회 부회장

사진=게티이미지뱅크 

[메디게이트뉴스] 원격진료 허용과 영리병원 추진 등 정부의 의료민영화 정책에 반대하며 2014년 3월 10일 전국의사의 총파업이 이뤄진 중요한 쟁점이다. 원격의료 이슈는 수년을 걸쳐 진행돼온 오래된 현안임에도 코로나19 이후 사회적 화두로 급부상함에 따라 다시금 재조명되고 있는 형국이다. 

2000년대 이후 원격의료는 의사단체 내부에서는 '금기어'로 유사 정책만 발표돼도 ‘강경 반대’입장을 고수했다. 2010년대 들어서 필요성을 인지한 병원계에서는 '원격의료를 선제적으로 받아들여 주도해야 한다'는 의견을 냈지만, 소수 의견으로 전체 의사들에 질타를 받기 일쑤였다. 

하지만 2020년 코로나19 사태로 인해 시대적 화두가 되면서 거스를 수 없는 조류가 됐다. 한시적 전화 상담·처방이 허용된 이후 지난해 2월 24일부터 올해 4월 30일까지 총 201만 3954건의 전화 상담·처방이 이뤄진 것으로 확인됐다.

이를 반영하듯 지난 4월 대한의사협회 대의원총회에서도 ‘원격의료 저지‘ 대의원회 수임 사안이 '원격의료에 대해 시대적 상황에 맞게 대응하도록 집행부에 위임'으로 선회했다. 오는 11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전체회의에서 강병원 의원과 최혜영 의원이 낸 원격의료 법안이 법안소위원회에 상정될지 여부를 논의한다. 

강병원·최혜영 의원, 의원급 만성질환자 한정 원격의료법 발의

이번에 발의된 원격의료 관련 법안은 총 2건으로, 더불어민주당 강병원 의원과 최혜영 의원에 의해 발의됐다. 두 법안의 공통점은 의학적 위험성이 낮다고 평가되는 만성질환자에 대해서만 의원급에 한해 원격의료를 허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강병원 의원안이 의사와 환자 간 원격의료 가운데 원격모니터링에 중점을 맞춰 합법화를 추진했다면 최혜영 의원의 안은 보다 구체적으로 원격의료 대신 비대면진료라는 개념을 도입하고 허용 범위와 대상까지 구체적으로 명시하고 있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특히 눈여겨 봐야할 것은 최혜영 의원의 안이다. 최 의원의 안은 비대면진료만 하는 의료기관을 운영할 수 없도록 해 대면진료를 보완하는 개념으로 비대면진료 원칙을 정립했다.  

또한 비대면진료 대상 환자는 ▲섬과 벽지 등에 거주하는 환자 ▲군인 등 의료기관 이용이 제한되는 환자 ▲대리수령자에 의한 처방전 수령이 가능한 환자 ▲1회 이상 대면 진료를 한 환자로 구분했다.  이 중 1회 이상 대면진료를 진행한 환자에 대해선 만성질환자와 정신질환자, 중증·희귀난치 질환 등 지속적인 관리가 필요한 자로 대상군을 구체화했다.   

최 의원의 안은 그동안 의료계가 우려했던 책임소재 부분에서 8가지 예외 조항을 포함했다.  환자가 의사의 지시를 따르지 않거나 장비의 결함이 있는 경우, 환자의 고의나 중대한 과실로 정보를 제공하지 않을 경우 등에 의료인의 책임이 면제된다. 의료인의 최선을 다했지만 불가항력적인 사고가 발생한 경우는 피해보상에 대한 비용 일부 또는 전액을 지원받을 수 있다.  지원책도 정부가 안정적이고 효과적인 원격의료를 위해 적정 처방일수 등을 정해 고시하도록 하고 원격의료에 필요한 시설이나 장비 예산을 일부 또는 전액 지원할 수 있도록 했다.  

원격의료 논의 이끌어가야 한다는 의협의 인식

대한의사협회는 원격의료로 인한 의료인의 책임 부분과 면책 사유를 담보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점이 가이드라인에 구체적으로 담기 위한 원격의료 대응 테스크포스(TF)를 구성했다. 이를 토대로 구체적인 범위와 면책 사유를 담은 선제적 가이드라인을 논의하고 있다. 

의협은 지난 7월 산하단체에 발송한 공문을 통해 “원격의료 도입 근거 마련의 수단으로 악용될 수 있는 의원급 의료기관에 대한 화상진료장비 지원 사업 중단을 정부에 요구했다”며 회원들도 지원사업 수주업체인 민간업체를 통해 제공되는 무상 모니터를 받지 말고 이미 지원 받은 장비는 반납하라고 했다. 

당시  의협 이정근 상근부회장은 의료전문지 인터뷰에서 “원격의료에 대해 의료계가 논의를 이끌어야 한다는 기조는 갖고 있다”며 “하지만 원격의료를 본격적으로 도입할 만큼 준비도 돼 있지 않은 상황이다. 관련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서울시의사회 박명하 회장도 인터뷰에서 “원격의료는 당연히 의료계가 주도해야 한다는 입장으로, 얼마 전 일부 상임이사들도 관련 연구회 구성을 제안했고 긍정적으로 생각한다”며 “원격진료연구회에서 준비되면 하반기에는 많은 회원들과 원격진료 문제에 대해 토론하는 자리를 만들려고 한다”고 전했다. 

의협 의료정책연구소가 처음 개최한 워크숍 주제도 ‘포스트 코로나 의료혁신과 제도 개선’이었다. 우봉식 의료정책연구소장은 “디지털은 피할 수 없고 변수도 아닌 상수가 됐다. 의료계에 쓰나미처럼 몰려올 디지털 혁신을 어떻게 맞아야 하는지 고민해야 한다”며 “지난 4월 열린 의협 정기대의원총회에서도 원격의료에 대해 시대가 변한 만큼 무조건적인 반대보다는 상황에 맞게 대처하도록 집행부에 위임하는 등 의료계 내에서도 인식이 바뀌어 가고 있다”고 말했다.

의사들 원격의료 반대 77.1%, 섣부른 입법화 강력 대응해야

최근 의사 6342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의료정책연구소 연구보고서에 따르면 77.1%가 전화 상담·처방 제도에 부정적이라고 응답했다. 의사들은 원격진료의 문제점으로 의학적·기술적 안정성이 미흡한 점, 해킹과 같은 보안 문제, 대면 진료와 동등한 효과를 담보할 수 있는지에 대한 임상적 유효성이 아직은 증명되지 않았다는 점 등을 꼽고 있다. 

우리나라는 진료 대기 없이 당일 전문의 대면 진료를 언제든지 받을 수 있는 세계에서 의료 접근성이 가장 좋은 나라다. 코로나19 이후 상급종합병원 쏠림 현상이 더욱 심화돼 상급종합병원 진료비 증가율이 사상 최대치를 기록한 가운데 지역 중소병원이 줄도산하고, 동네 의원 환자는 급감한 것으로 나타났다. 만일 원격의료가 자칫 수도권 대형병원 중심으로 흐르게 될 경우 의료전달 체계를 크게 왜곡해 지역의료가 붕괴되고, 고령시대를 맞은 지역에서 노인 환자의 입원 대란을 초래하는 등 심각한 의료체계 위기를 맞게 될 수 있다.

원격의료법이 초기에 의원급에 한정하더라도 결국 병원급으로 허용될 것이고, 성급하고 무리한 추진은 위험하다고 본다.  

또한 이런 상황에서 의협의 선제적 가이드라인 마련도 문제다. 원격의료의 폐해를 논의하고 법안에 대해 대응을 해야 할 때이지, 가이드라인을 먼저 제시하는 것은 의협이 나서서 원격의료를 찬성하는 듯한 인상을 준다. 일단 원격의료법에 대한 강제적이고 섣부른 추진을 반대하고 의료계 내에서 한시적 전화상담·처방 이후 필요한 부분에 대해 충분한 의견수렴부터 해야 한다.  


※칼럼은 칼럼니스트의 개인적인 의견이며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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