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른의료연구소 "해외는 고의가 아닌 의료사고, 형사 기소 안해…고의 아닌 의료사고 불기소 원칙"
사진=게티이미지뱅크
[메디게이트뉴스 조운 기자] 필수의료 분야 기피 현상의 주요 원인인 높은 사법 리스크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최근 정부가 의료사고 안전망 대책을 발표했지만 의료계는 근본적인 문제 해결과 거리가 멀고 오히려 의료진의 부담을 가중시킬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의료계는 우리나라도 해외와 마찬가지로 사회 전체가 전체가 의료 행위의 선의를 인정해야 하며, 이를 바탕으로 고의가 아닌 의료사고는 불기소를 원칙으로 하고 의료 분쟁은 건강보험 진료에 대한 국가배상책임제를 도입하는 방향으로 정책이 수정돼야 한다고 촉구했다.
5일 바른의료연구소는 의료개혁특별위원회가 발표한 의료사고 안전망 대책의 문제점을 지적하며 제언을 발표했다.
정부 '의료사고안전망' 역부족…"의료 분야 특수성 고려해 일반 업종 과실과 차별 둬야"
대한민국의 의료사고 관련 기소율과 유죄율은 외국과 비교가 어려울 정도로 높다. 대한민국의 의사 수 대비 평균 기소율은 약 0.5%로, 이는 의사 200명 중 1명이 형사 기소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형사 재판을 받은 의료인 중 약 21.7%가 유죄 판결을 받아 유죄 판결 비율도 높았다
이에 대통령직속 의료개혁특위는 지난달 20일 '제17차 의료사고안전망 전문위원회'를 개최해 의료사고 공적 배상체계 구축방안 및 의료사고 안전망 강화 종합방안 등을 공개했다.
이 안에는 의료사고 배상보험·공제체계 개선, 의료사고심의위원회 설치, 사법적 보호 체계 구축 등이 포함됐으나 의료계는 이러한 대책들이 실제 필수의료 인력의 이탈을 방지하고 의료사고에 대한 법적 부담을 완화하는 효과를 거둘 수 있을지는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연구소는 해당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먼저 의료 분야의 특수성을 고려해 일반 업종의 과실에 대한 처벌 기준과 차별을 둬야 한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인체는 정교한 기계보다 훨씬 복잡하고 예측이 불가능하다. 따라서 의료 행위의 결과가 나쁘다고 해서 이것이 무조건 의료진의 과실 때문이라고 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연구소는 "환자 상태가 악화되는 대부분의 경우는 환자의 기존 상태에 기인할 가능성이 높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 특히 고위험 환자의 경우, 모든 변수를 예측하고 완벽하게 대응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기에 의료진의 주의 의무 이행을 평가할 때는 이러한 의료 행위의 본질적인 불확실성을 고려해야 한다"고 밝혔다.
특히 의료 행위의 결과는 환자 상태, 병원 환경, 의료진의 업무 패턴 등 다양한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발생하는 것임을 이해하고 의료업에서의 과실은 다른 업종의 과실과 구별돼야 한다는 주장이다.
따라서 연구소는 "의료 행위의 특수성을 고려할 때, 의료사고에 대해서 일반적인 업무상과실치사상죄의 기준을 그대로 적용하는 것은 부적절하다. 대신 ‘의료인의 고의 또는 중대한 과실로 인해 환자에게 심각한 위해가 발생했음이 명확히 입증된 경우’에 한 형사책임을 물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옳으며, 이러한 기준이 바로 해외 선진국들이 의료사고 관련 사건을 다룰 때 적용하는 글로벌 스탠다드"라고 강조했다.
정부, 의료사고 형사처벌 면제·경감 법안…"근본 위험 제거 못 해"
그런 차원에서 정부가 제시한 의료사고 형사처벌 면제 또는 경감 법안은 의료인의 법적 위험을 근본적으로 제거하지 못한다는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다.
연구소는 "감면 조치는 '죄가 있지만 처벌을 줄여준다'는 의미로, 여전히 의료진이 법적 위험을 부담해야 한다는 점에서 의료진들의 불안을 해소시키기에는 역부족"이라고 지적했다.
특히 해당 대책은 일부 법조계 및 시민단체가 다른 법률과의 형평성 문제 등을 이유로 반대하고 있는 상황이다.
연구소는 "의료행위는 본질적으로 환자의 생명을 살리기 위한 과정이며, 대한민국에서 건강보험 진료는 국가가 의료기관들에 법을 통해 강제하고 있는 일종의 공적 업무라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며 "이에 의료의 특수성도 감안야 하고, 경찰 및 소방관 등 공익을 위한 직업군에 대해 형사책임을 면제하는 사례처럼 의료 인력도 동일한 보호를 받을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또 형사법의 원칙에 따라 처벌은 고의적이거나 일반적인 의학적 기준으로 납득할 수 없는 중대한 과실이 있을 때만 이루어져야 하며, 고의성도 없고 중대하지 않은 과실까지 형사처벌의 대상으로 삼는 것은 법의 본질과 맞지 않는다.
그럼에도 환자단체 등에서는 환자의 피해 보상을 고려할 때, 의료진의 형사책임 면제는 피해자의 권리를 침해할 가능성이 있다는 주장을 하고 있다.
이에 대해 연구소는 "환자의 권리 보호는 형사처벌이 아닌 민사 배상을 통해 해결하는 것이 국제적인 추세"라며 "이에 정부가 의료사고 배상 체계를 강화하면 환자의 실질적인 피해 보상이 더욱 신속하고 원활하게 이루어질 수 있다"고 밝혔다.
일각에서 의료진에 대한 형사처벌이 면제되면, 의료 서비스의 질이 저하될 수 있다는 주장을 하는 데 대해서는 "그러나 현재 필수의료 분야에서 형사처벌의 두려움으로 인해 의료진의 이탈이 가속화되고 있으며, 이는 오히려 국민 건강을 위협하는 결과를 초래하고 있다"며 오히려 의료 질 향상에 기여할 수 있다고 전했다.
법조계, 시민단체 반대 부딪히는 '의료사고심의위원회'…공익 측면 강조해 축소 위기
정부는 (가칭)의료사고심의위원회를 신설해 의료 사고 발생 시, 법조인, 의료전문가, 시민단체 등으로 구성된 위원회가 사건을 심해 과실 여부를 판단하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정부는 의료사고심의위를 통해 의료사고 발생 시 무조건적인 형사처벌로 이어지던 구조에서 벗어나, 공정한 심의를 거쳐야만 형사 기소가 가능하도록 조정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
연구소에 따르면 이러한 의료사고심의위 구성은 영국과 독일 등 해외 선진국에서는 찾아볼 수 있는데, 이들 나라는 의료사고가 발생해도 즉각적인 형사처벌로 이어지지 않고, 독립적인 감정기관을 통해 판단한 후 민사적으로 해결하는 사례가 많다.
문제는 일부 시민단체와 환자단체에서는 의료사고심의위가 의료진을 보호하는 방향으로만 작동해 의료진에게 지나친 면죄부를 주고 환자 권리가 침해될 수 있다고 우려하며 강력하게 반대하고 있다는 점이다.
연구소는 "이러한 반대 의견들 이외에도 심의위원회가 정부 산하 기관으로 운영될 경우, 독립성과 정치적 중립성, 공정성 등이 담보되기 어려울 수 있다는 문제가 있다. 이에 심의위원회의 구성에 있어 의료계와 법조계 전문가들의 균형 있는 참여가 보장돼야 하고, 위원회 심의 과정의 투명성을 높여야 한다. 그리고 환자 권익 보호의 측면에서는 충분히 고려될 수 있는 구조가 마련돼야 할 것으로 생각된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문제는 정부가 다양한 반대 의견들을 수용해 심의위의 기능을 대폭 축소시키고, 단순히 수사기관에 참고자료를 제공하는 정도의 역할만 하게 한다면, 심의위는 실효성 없는 불필요한 기구로 전락할 수 있다"며 "공익적 측면을 강조한다는 명분을 내세워 심의위원회 결정에 시민단체 및 환자단체 의견을 과도하게 반영하면, 심의위가 의료진들을 법적으로 더욱 옥죄는 수단으로 전락할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연구소는 "이렇게 되면 의료진의 소송 부담은 오히려 늘어나고, 오히려 소송 과정만 지연시킬 가능성이 높다. 이러한 측면들을 고려했을 때, 의료진을 법적으로 보호할 장치가 부족한 상황에서 심의위가 제 역할을 할 수 있을지는 여전히 의문이다"라고 전했다.
의료사고 배상보험·공제체계 강화…필수의료 의료진 보험료 부담 크고 형사소송 불리한 증거 작용 가능
정부는 의료사고에 대한 대책으로 의료사고 배상보험 및 공제체계를 강화하겠다고도 밝혔으나 의료계는 이러한 방안이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다고 지적하고 있다.
그 이유는 의료사고 배상보험 및 공제체계가 의료사고 문제의 핵심적인 원인을 해결하지 못하며, 오히려 의료진에게 추가적인 부담을 가중시킬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연구소는 "의료사고 배상보험의 기본 개념은 의료기관과 의료진이 보험료를 납부하고, 사고 발생 시 배상금을 지급받는 구조를 만드는 것이다. 그러나 필수의료 분야 의료진은 사고 위험이 높아 보험료 부담이 매우 크다는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예를 들어, 산부인과나 외과의 배상보험료는 연간 수백만 원에서 천만 원을 초과하는 경우도 있다. 이에 배상보험 가입이 더 필요한 의료사고 위험이 높은 과목일수록 보험료가 과중해지고, 특히 중소 병·의원 및 개원의들은 큰 부담을 느낄 수밖에 없어 가입율이 오히려 낮아지는 문제가 발생한다.
연구소는 또 "의료사고 배상보험은 민사적 배상을 중심으로 설계돼 있으며, 의료진의 형사책임을 면제하거나 경감하는 역할을 하지 못하는 문제도 있다. 현재 의료진이 의료사고 발생 시 가장 우려하는 부분은 형사처벌 및 기소 위험이다. 그러나 배상보험은 환자 보상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을 뿐, 의료진 보호 기능이 없다"고 우려했다.
실제로 지난해 정부가 필수의료정책패키지를 발표할 때, 배상보험 및 공제체계에 형사적 책임 면제나 감경을 연계하는 계획이 포함 있었으나, 이는 강한 반발에 부딪혀 없던 일이 되기도 했다.
연구소는 그 외에도 보험사의 배상 승인 과정이 까다롭고 오랜 시간이 걸리는 문제가 있으며, 일부 보험사들은 의료진에게 과실을 인정하도록 강요하는 방식으로 배상을 진행하는 경우도 있어 향후 형사소송에서 불리한 증거로 작용하는 문제도 발생하고 있다고 우려했다.
또 의료사고 배상보험이 강화될 경우, 의료진이 부담해야 할 보험료가 증가하면서 결국 의료 서비스 비용 상승으로 이어질 가능성도 있다는 것으로 나타났다.
해외는 고의 아니면 의료사고 형사 기소 안해…"건강보험 진료는 국가배상책임제 도입해야"
이에 연구소는 의료진의 사법 리스크를 낮추어 몰락의 길을 걷고 있는 대한민국 의료를 살리기 위해서는 지금까지 생각해왔던 의료에 대한 생각의 틀을 완전히 바꾼 상태에서 대책이 마련돼야 한다는 주장이다.
연구소는 "고의에 의하지 않은 의료 행위로 발생한 의료 과오는 형사처벌 하지 않도록 하고, 건강보험 진료 과정에서 발생한 의료분쟁에 대한 배상 책임은 국가가 지도록 해야 한다. 그리고 건강보험 진료 이외의 경우에 발생한 의료분쟁의 민사적 책임에 대해서는 개별적 또는 의사회 차원의 배상보험 및 공제체계를 통해 배상하도록 지원하는 방향이 합당하다"고 밝혔다.
실제로 미국은 의료진이 고의적이거나 극단적으로 부주의하지 않은 이상 의료사고에 대해 형사적으로 기소하지 않는다. 2022년 기준, 미국에서 의료과실로 기소된 사례는 연간 20건 미만이며, 이 중 유죄 판결을 받은 사례는 5% 이하였다.
유럽도 비슷하다. 영국은 'NHS Resolution'라고 불리는 환자안전기구를 통해 의료사고 피해자를 신속히 보상하면서도 의료진이 형사적으로 처벌받지 않도록 보호하는 체계를 운영하고 있고, 독일은 의료 사고 시 의료 과오 조정위원회를 통해 분쟁을 해결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이에 2020년 기준, 독일의 의료사고 관련 형사 기소율은 0.2% 수준이며, 유죄 판결 비율은 2% 미만이었다.
이에 연구소는 고의에 의하지 않은 의료 과오로 인한 사고를 처벌하지 않기 위해서는 의료 행위 중 발생한 과실치사상죄에 대한 특례를 규정하고, 고의성이 없고 합리적인 표준 진료를 따랐을 경우에는 의료 과오로 인한 형사 책임을 묻지 않는 법적 면책 조항을 추가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또 검찰의 의료 관련 사건 기소 기준을 강화해 중대한 과실 또는 고의적 행위가 아닌 경우 불기소를 원칙으로 해야 하고, 독립성과 공정성이 담보된 의료사고 심의위를 설치해 검찰 기소 전 의료사고의 법적 책임 여부를 독립적으로 심사하도록 조정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연구소는 또 "대한민국에서는 요양기관 당연지정제를 통해 모든 의료기관이 건강보험 진료를 의무적으로 수행하도록 강제하고 있다. 이는 민간 의료기관이라 하더라도 법적으로 공적 기능을 수행하는 역할을 부여받고 있다는 의미"라며 "공무원이 공적 업무를 수행하다가 발생한 사고에 대해서는 국가가 배상 책임을 지는 것처럼, 정부가 법적으로 강제한 건강보험 진료 과정에서 발생한 의료사고에 대해서도 국가가 배상책임을 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현재 대한민국의 의료수가 자체가 원가에도 못 미치는 매우 낮은 수준으로 설계 있어, 의료진과 의료기관이 실제 부담해야 하는 배상 비용을 수가에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다.
연구소는 "건강보험 진료 과정에서 발생한 의료 사고에 대한 국가배상책임제가 도입되면 의료진이 필수의료 분야로 복귀할 동기부여가 가능해지며, 의료 시스템 전반의 안정화를 기대할 수 있다. 환자 입장에서도 의료사고 발생 시 정부가 책임을 지고 신속한 배상을 진행하는 것이 유리하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건강보험법을 개정해 건강보험 진료 과정에서의 의료사고는 공적 배상 체계로 해결하도록 명문화하고, 의료분쟁조정법 개정 및 의료사고보상법 제정 등을 통해 의료분쟁 조정 및 배상 기준을 명확히 하기 위한 법적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고 밝혔다.
여기에 국가 또는 건강보험공단이 건강보험 진료에서 발생한 의료사고 배상을 직접 처리하는 보상 기금을 설치하고 운영하고 건강보험 진료가 아닌 의료 행위로 인한 의료사고 발생에 대비해 의료기관들이 의료배상보험에 더 많이 가입하도록 정부는 의료기관들에 추가적인 지원도 고려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연구소는 "결국 사법 리스크를 낮추고 필수의료를 포함한 대한민국 전체 의료를 정상화시키기 위해서는 글로벌 스탠다드를 따르는 사법, 행정, 입법 시스템의 변화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댓글보기(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