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입력시간 24.12.28 14:17최종 업데이트 24.12.28 1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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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세대를 위한 전공의 수련환경

[칼럼] 강희경 의협회장 후보, 전 서울의대·서울대병원 교수비상대책위원장

사진=게티이미지뱅크

[메디게이트뉴스] 2024년 의료내란은 우리 의료에서 그간 ‘전공의’가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해 왔는지를 여실히 느끼게 해주었다. 대학병원은 인건비가 최저시급에도 미치지 못하는 전공의로 의사 인력의 30-40%를 충당함으로써 원가에 미달하는 의료수가로 인한 손실을 막아왔다. 그 덕에 환자들은 저렴한 의료비로 진료를 받을 수 있었으며 건강보험은 아직 고갈되지 않고 유지돼왔다.

어떤 이는 우리나라의 의료체계를 2024년 2월 이전으로 돌려놓으라고 하지만 과연 그것이 바람직할까? 그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누군가 이야기했듯 그간의 전공의의 노동은 현대사회의 관점에서 ‘착취’에 해당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전공의들의 근무 시간 자체는 줄어들었지만 수련환경은 과거에 비해 매우 열악하다. 

심지어 학생 때에도 아기를 받고(물론 전공의가 한 스텝 한 스텝 지시했다) 전문의 자격시험을 볼 무렵에는 해당 과의 지식과 술기에 대부분 익숙할 정도로 수련이 가능했다. 하지만 과거와는 달리, 지금 전공의들의 수련은 환자, 교수, 법으로부터 외면당한다. 환자들은 교수만 찾고, 교수들은 임상과 연구의 부담에 짓눌려 많은 경우 교육을 소홀히 하며, 주 80시간(최대 88시간)의 기계적인 적용은 때로 술기를 익힐 시간과 기회를 빼앗아간다.

당직이 아니더라도 내 환자가 나빠지면 곁을 지키는 것이 당연하던 교수-고년차 전공의-저년차 전공의의 팀에서 함께 하면서 고되지만 탄탄한 백업과 보살핌을 받으며 선배들을 보고 배워 익히는 것이 당연하던 시절은 지나가 버렸다. 전공의 업무의 상당부분은 ‘의사가 모든 것을 책임져야 하므로’ 의사가 하고 있지만 실은 누가 해도 무방한, 또는 시스템으로 충분히 해결할 수 있는 ‘잡일’이다. 

전공의 특별법으로 줄어든 근무 시간인 주 80시간도 주 60시간 근무하는 경우보다 3배 이상의 의료 과오를 유발한다고 한다. 우리나라의 법정 노동시간은 주당 40시간 이하가 아니던가? 전공의 특별법은 이 당연한 우리나라의 법정 노동시간을 전공의들에게 적용하는 것을 가로막는 악법은 아닌가. 하긴 전문의나 교수들에게도 주당 40시간은 언감생심이니 이를 어찌 풀어나가야 할지 막막하다.

왜 이렇게 됐을까? 의료 수가는 터무니 없이 낮고, 모든 책임은 의사 면허를 가진 자가 짊어져야 하는 것이 문제의 출발점이다. 이런 체계가 지속 가능할까? 혹자는 '장난해? 그럴 리가 있나. 어떻게 인간이 주 100시간을 일해? 그래도 얻는 게 있으니 하는 거 아니겠어?'라며 어처구니없어 한다. 또 의사들은 그런 반응에 기가 찬다.

서로를 돌아보지 못하고 여기까지 달려왔다. 하지만 이제 잠시 멈춘 김에 실상을 파악했으니 앞으로는 제대로 된 수련, 제대로 된 노동환경을 위해 우리 모두 함께 지혜를 모아야 한다. 

먼저 비용이 들지 않는 것부터 생각해보자. 12월 24일 국회 토론회에서 서울대병원 중환자의학과 하은진 교수가 지적했듯, 명의에게 진료받고 싶으면 명의를 길러내 달라고 요구하자. 전공의를 수련할 정도로 실력을 갖춘 병의원에서 진료를 받고자 하는 환자들은 우선 수련의 대상이 되는 데에 동의해달라고 요구하자.

그것이 싫은 환자들은 수련병원이 아닌, 전공의를 길러내지 않는 전문병원에서 진료받으면 된다(전문병원이 실력을 갖추지 않았다는 이야기는 절대 아니다). 비용이 들지 않는 일이지만(동의서 한 장 더 받는 것도 물론 자원이 소요되는 일이기는 하나) 아마도 가장 저항이 거센 부분이 아닐까 한다. 그러나 의료가 지속 가능하려면 반드시 필요한 일이다. 지금과 같이 교수만 찾는 의료환경에서 미래 세대의 전문의는 물론 명의는 길러질 수 없다. 

다음에 갖춰야 할 것은 철저한 교육 체계다. 전공의들의 시간은 잡일에 낭비돼선 안 된다. 물론 우리가 아무리 바빠도 양치하고 밥은 먹듯 기본적인 서류작업에 익숙해지기는 해야하겠으나, 법정 노동시간 내에 수련을 완수하려면 그들의 시간을 온전히 수련에만 쏟아부어도 모자란다. 그렇다면 수련시간을 노동시간과 분리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의문도 들 수밖에 없다.

더구나 올해 ‘의료개혁 특위’에서 논의됐듯 전공의의 수련비용을 국가가 부담한다면 더욱 그러할 것이다. 전공의 수련은 사회적 비용이 투입되는 일이므로 이에 대해서는 다방면으로 숙고하고 사회적 합의를 먼저 얻어내야 한다. 그러나 의업에서의 수련은 환자를 직접 진료하면서 이뤄지므로 수련과 노동을 무 자르듯이 분리하기는 어렵다.

확실한 것은 숙달된 전문의가 혼자 해내는 술기에 비해 교육을 하면서 하는 경우에는 시간과 자원이 더 많이 소요된다. 교수 입장에서는 이에 대한 기회비용이 보장되지 않는 상황에서 제대로 된 교육을 하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교수가 교육을 병행하는 경우, 예를 들어 환자 세 명을 진료할 수 있는 시간에 한 명 밖에 진료할 수 없다면 이때 두 명의 진료로부터 얻어질 수익은 교육을 위한 기회비용으로 산정돼야 한다. 그래서 기회비용을 걱정할 필요가 없는 여건에서 가르치고 배워야 할 것을 충분히 배울 수 있는 체계를 우리는 갖춰야 한다. 여기서 드는 의문인 '비용은 어디서 나오나'에 대한 고민은 정부의 몫이다.  

과거와는 달리 전공의 인력을 노동력이 아닌 미래세대 의료인력으로 바라볼 때, 그들이 절감해 준 비용이 아닌 그들을 수련하는 데 소요되는 비용을 고려할 때, 우리가 먼저 결정해야 할 것은 미래에 필요한 전문의 숫자다. 노동력의 수요에 따른 각 병원의 TO 확보 대신, 미래의 필요 전문의 수를 바탕으로 한 각 과의 전공의 TO를 먼저 결정한 후 수련역량을 갖춘 병원에, 해당 지역의 필요를 바탕으로 TO를 배정할 수 있다.

수련역량은 수련을 완료한 전공의들이 갖춘 역량과 교수자에 대한 피수련자의 의견을 바탕으로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또 한가지 필요한 것은 수련의들을 법적인 위험으로부터 보호하는 것이다. 오더에 서명한 의사가 전공의일 경우 그 오더, 그 환자의 진료와 관련된 민형사 소송의 책임은 교수자의 감독 하에 환자 진료를 하는 전공의가 아니라 환자의 지정의에게 있다. 

한편, 지금처럼 기본적인 진료만으로도 부담이 과해 내년에도 내가 이 자리에 있을 수 있을까 고민하는 교수의 수가 점점 늘어만 가는 현 상황에서 과연 이러한 고민이 가당키나 한가 하는 생각이 앞선다. 교수 본인의 민형사 부담만으로도 버겁다. 불공정한 의료수가의 문제가 해결되고 의료과실의 여부를 의료전문가, 의사가 아닌 판사가 판단하는 어불성설의 상황을 먼저 해결해야 하지만, 그것이 언제 가능할지 앞날은 불투명하기만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일 세상이 망한다고 해도 사과나무는 심어야 하지 않겠는가.

세상이 망하지 않을 수도 있으니까. 우리 함께 망하지 않도록 애쓸 것이니까. 우리가 다함께 힘을 모아 제대로 된 진료를 할 수 있는 수가체계, 소신껏 진료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나갈 것이니까. 어려움 속에서도 해야 할 것들을 하나씩 차분히 해 나가는 우리들이 되기를 바란다. 

다함께, 새롭게, 힘차게! 경청하고 책임지는 의협회장후보 기호2번 강희경과 함께 의협, 새출발!에 동참하여 주시기를 청한다.


※칼럼은 칼럼니스트의 개인적인 의견이며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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