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보험공단과 심평원이 존재 의미를 망각한 채 수사기관처럼 공무를 집행하고, 무리한 삭감과 행정처분을 남발하는 것을 반드시 막아야 한다."
191만원을 부당청구했다는 이유로 보건복지부로부터 93일 업무정지, 면허정지 행정처분과 함께 사기죄, 의료법 위반으로 형사 고소된 바 있는 개원 여의사 K원장.
결론적으로 K원장은 업무정지, 면허정지에 맞서 행정소송을 제기해 1심, 2심에서 행정처분이 부당하다는 판결을 받아냈고, 지난 달 보건복지부가 대법원 상고를 포기하면서 최종 승소했다.
또 검찰은 K원장을 조사한 결과 사기죄 및 의료법 위반 사실이 없다며 무혐의 처분했다.
K원장은 서면 인터뷰에서 "보건복지부와 건보공단, 심평원이 현지조사를 나온 게 2014년 5월이었는데 갑작스런 실사와 행정처분 통보, 피의자 신분으로 경찰서와 검찰청을 오가며 조사를 받고 진술을 하며, 재판에 출석하는 등 많은 일이 있었다"고 말했다.
K원장은 2011년 초 개원해 제모, 점 제거, 여드름 치료 등의 비급여 진료를 주로 했는데, 일부 레이저 제모 시술을 한 후 모낭염이 발생한 경우 이를 치료하고 해당 비용을 건보공단에 청구해 지급받았다.
김 원장은 비급여 진료 과정에서 이런 부작용이 발생하더라도 해당 비용을 건보공단에 청구하면 이중청구에 해당한다는 사실을 몰랐다고 한다.
김 원장은 2011년 9월 자신의 이런 행위가 부당청구라는 것을 알게 된 뒤에는 건보공단에 이중청구하지 않았지만 현지조사를 피하지는 못했다.
김 원장은 2011년 5~9월, 2014년 1~3월 등 총 8개월치 진료분에 대한 현지조사를 받았고, 보건복지부는 해당 기간 건보공단에 청구한 진료비 총액 743만원 중 191만원이 부당금액으로, 부당비율이 25%에 달한다며 업무정지, 면허정지처분을 통보했다.
김 원장은 "개원 초기 환자가 하루에 10명도 안될 정도로 적었고, 요양급여비용 총액이 미미하다보니 부당금액 비율이 지나치게 커진 것"이라며 행정소송으로 맞섰다.
김 원장은 끝까지 혼자 간다는 각오로 처음부터 변호사조차 선임하지 않고 싸워나갔다.
서울행정법원과 서울고법은 김 원장의 항변을 받아들여 보건복지부의 행정처분이 재량권을 일탈, 남용했다며 취소하라고 결론 내렸다.
재판부는 "김 원장이 개원 초기 요양급여 대상 범위를 정확하게 알지 못해 이런 행위를 했으며, 잘못을 알고 난 후에는 비위 행위를 하지 않아 사회적 비난 가능성이 높다고 보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이어 재판부는 "보건복지부가 이런 사정을 고려하지 않은 채 업무정지 기간을 건강보험법 시행령에서 정한 기준에 따라 최고 한도인 93일로 정한 것은 재량권을 일탈, 남용한 잘못이 있다고 봐야 한다"며 업무정지처분을 취소하라고 판결했다.
김 원장은 "이번 사건을 돌이켜 생각해볼 때 문제는 세가지"라고 환기시켰다.
김 원장은 우선 '부당청구'에 대한 명확한 요건을 정립해야 한다고 단언했다.
건강보험법을 보면 부당한 방법으로 보험자, 가입자 및 피부양자에게 요양급여비용을 부담하게 한 때에는 요양기관 업무정지를 할 수 있다.
김 원장은 "'부당'에는 고의뿐만 아니라 단순 착오, 과실에 기인한 것까지도 업무정지 사유에 포함시키고, 일률적으로 최고 5배의 과징금을 부과하는 것은 형법상 다른 법률에 비해 과중한 편"이라고 지적했다.
'부당한 방법'이라는 불명확한 용어에 따라 고의범법과 과실범법을 포괄한 형벌의 가벌적 구성요건을 규정하는 것은 죄형법정주의 원칙에 위배될 소지가 많다는 게 김 원장의 생각이다.
김 원장은 "정치인이나 공무원의 탈세나 수뢰행위 등 사회적 비난이 큰 불법행위에 대한 과징금도 건강보험법에 이르지는 않는다"고 꼬집었다.
이와 함께 김 원장은 건보공단과 심평원이 오류청구나 착오청구를 무조건 처분할 게 아니라 먼저 '지도'할 의무가 있다는 것을 명분화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김 원장에 따르면 건보공단은 2011년 9월 이전부터 김 원장이 진료한 환자들에게 전화를 걸어 어떤 비급여 시술을 했고, 얼마를 지불했고, 어떤 처방을 받았으며, 이런 전화를 하는 이유는 부당 청구가 의심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고 한다.
김 원장은 "만약 그것이 부당청구라는 의심 아래 이뤄진 공무였다면 착오청구나 오류 수정을 지도와 고지가 선행됐어야 하는데 이것은 명백히 함정수사와 같은 의미로 판단되며, 고의적 교사나 방조와 다름없다"고 비판했다.
특히 김 원장은 "두 기관이 본질적 의미를 망각하고, 스스로의 존재를 유지 확장하기 위해 수사기관처럼 공무를 집행하고 무리한 삭감과 행정처분을 남발하는 것을 반드시 막아야 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김 원장은 의료계가 이런 문제를 해결할 의지가 부족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김 원장은 "주변의 개원의 중에서도 비슷한 처분을 받은 분들이 꽤 계셨지만 판례를 살피다 보니 보건복지부의 행정처분에 대해 이의를 제기한 의사들이 너무 적다는 것에 놀랐다"고 했다.
김 원장은 "의사들은 건강보험법과 의료법에 대한 불만이 산더미처럼 쌓여있는데도 그렇더라"고 덧붙였다.
김 원장은 마지막으로 "소송을 해본 입장에서 한마디 드린다면 '별거 아니다. 할 만했다'"면서 "이런 판결과 유사한 선례가 쌓이다 보면 그래도 현실이 조금 나아지지 않을까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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