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입력시간 23.11.03 12:00최종 업데이트 23.11.03 15: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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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자 본인 부담금 7만4800원

진료비+검사료+초음파료+약제비+간호사 3명, 의사 1명 인건비+전원 알아보는데 들어간 30분의 시간, 고작 비용은?

[칼럼] 여한솔 속초의료원 응급의학과장

사진=게티이미지뱅크 

[메디게이트뉴스] 시장에서 파는 물건이 싸고 좋으면 그 물건을 구매한 소비자는 '와 진짜 싸고 좋은 물건을 샀다'며 좋아합니다. 의료현장에서도 환자에게 양질의 진료가 행해지고 그에 대한 진료비가 싸면 쌀수록 환자, 보호자에게 좋은 것은 당연합니다. 세상의 이치 중 '싸고 좋은 건 국밥밖에 없다.'라고 생각하는 저이지만, 오늘은 싸고 질 좋은 대한민국 의료에 대해 몇 자 적어보려 합니다.

한달여 전 환자입니다. 고혈압약을 먹고 있는 45세 여성, 20분 전 갑자기 식은 땀을 흘리며 숨 쉬는 게 불편하며 가슴이 불편하다며 내원했습니다. 빠르게 가슴 엑스레이와 심전도를 찍어보니 첫 심전도는 ST분절이 누가 봐도 의미 있게 상승한 STEMI(심근경색)을 의심할 수준은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환자가 호소하는 증상이 아무래도 심상치가 않아 초음파 기계를 가져와 심장에 갖다 대어 보았습니다.

정식 심장초음파는 아니기에 빠르게 대동맥궁의 flap 유무(대동맥박리 질환 감별), RV, LV wall motion (심근경색을 의심하는 심장근육의 움직임의 변화) , Cardiac thrombus, D shape(폐색전증을 의심할 만한 색전 덩어리) 등을 훑었습니다.

다른 곳은 문제가 없으나 LV apex severe hypokinesia(심근경색을 의심하는 심장근육의 움직임) 가 관찰됩니다. 심근경색을 강하게 의심하는 소견입니다. 심근경색에 초기 응급처치에 필요한 약물들 NTG, 아스피린(aspirin), clopidogrel, 몰핀(morphine), 헤파린(Heparin)을 투여한 뒤 10분도 지나지 않아 심전도 리듬이 전형적인 좌심실 심근경색을 나타냅니다. 갑작스런 심정지를 대비해 소생실로 환자를 옮긴 뒤 필요시 전기충격을 주기 위해 패치를 붙였습니다.

보호자에게 "심근경색이다. 환자 갑자기 돌아가실 수 있는 가장 무서운 질환 중 하나이다. 상급병원 전원 가셔서 관상동맥 뚫는 시술이 필요하다, 잘 안 뚫리면 수술할 수도 있다"를 설명한 뒤 강원도 내에서 PCI(관상동맥중재술) 가능한 병원을 유선상으로 알아보았습니다. 연락한 모든 병원이 PCI 불가 혹은 중환자실 부재로 수용이 불가했습니다. 할 수 없이 119 중앙조정센터에 연락하였고 수배된 병원으로 환자가 이송됐습니다.

보호자들은 연신 고맙다고 하면서 병원을 떠나갔습니다. 예전부터 궁금했던 '심근경색 환자'가 응급실에서 PCI 전 처치까지 얼마나 비용이 발생하는지 궁금해서 환자 및 보호자에게 동의를 구하고 흔쾌히 승낙해 해당 환자의 진료비 세부 명세서를 추가로 받았습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겠습니다.

본인부담금 7만4800원, 공단부담금 28만5600원 총 36만4000원이 청구됐습니다. 진료비+검사료+초음파료+약제비+간호사 3명, 의사 1명 인건비 +전원 알아보는데 들어간 30여 분의 시간의 개념까지 모두 포함한 금액입니다.


즉 환자는 7만5000원을 내고 200원을 거스름돈으로 받는 동안 죽을 수 있는 질환에 대한 초응급 처치 비용이 부담된 것입니다. 병원은 공단부담금까지 합쳐 36만원의 수익을 받은 것이죠. 혹시나 1종 급여로 환자인지 봤는데, 일반건강보험 환자입니다.

만약입니다. 아주 만약에 제가 이 질환을 놓쳤고 환자가 응급실에서 퇴원해 갑자기 심정지인 채로 다시 응급실을 찾아왔고 보호자를 통해 소송이 걸렸다면 저는 얼마를 부담할 각오를 져야 할까요. 한 10억은 내야 하지 않을까요?

인과관계가 명확하지 않은 페라미플루 맞고 환자가 떨어져 하반신 마비됐다고 5억 7000만 원을 '공단'도 아닌 '개인 의사'에게 배상하라고 하는 나라인데. 요즘 시대 사법부의 판결문을 따져보면 '살인' 혐의로 감방까지 갈 것 같은데...

늦게 다시 수능준비를 해서 300일간 고시원에 틀어박혀 18시간씩 타이머로 공부했던 그때는 아무것도 아닌것 같습니다. 대학 다니던 시절 물론 놀기도 많이 놀았습니다. 하지만 의과대학을 6년간 다니며 수백 번의 시험을 치며 그보다 몇 곱절은 더할 날들을 밤새가며 공부하며 축적했던 지식, 남의 항문에서 굳은 똥을 파내는 것을 시작으로 대학병원에서 5년간 지옥 같은 트레이닝을 날마다 백여 명씩 환자를 보면서 배운 지식의 대가, 이 모든 것을 축적해 한 명의 심근경색 환자를 가이드라인대로 처치하고 이송하기까지의 대가가 7만4800원이라니. 아니 74만원도 아니고 7만4000원이라니.

'싼 의료'라는 것은 어느 정도 예상은 했지만, A4에 적혀있는 실제 환자의 진료비 내역을 보니 기가 찼습니다. 세부 내용 중 단일 초음파표적 검사로 공단 보험료 포함 1만8000원이라는 것에 씁쓸한 미소를 지울 수 없었습니다. 물론 PCI가 행해진 병원에서는 당연히 더 큰 비용을 내겠지요. 최종적인 치료가 행해진 것은 아니니 7만4800원이 이 환자를 완치시킨 금액은 아니겠지만, 그래도 가슴 한쪽이 답답한 건 지울 수 없었습니다.

명세서를 받아 들고 한동안 생각에 잠겼습니다. 제 인생에는 하등 도움 되지 않는 쓸데없는 잡념이었습니다.

'미국이라면 어땠을까? 아니 미국은 우리나라보다 더 잘사니까, 우리나라보다 못사는 나라들에선 얼마나 나올까? 이것보다 적게 나오는 나라가 있을까? 전 세계의 사람들은 우리나라 의료를 보고 어떤 생각을 할까. 이곳이 천국일까?'

'이제껏 응급실을 찾아오는 수많은 진상은 응급실에서 진료 보는 우리를 어떻게 생각할까? 시골 오마카세도 한 끼에 10만원은 족히 넘어가는데…. 아니 어제 와이프와 먹은 카페에서 브런치가 3만원인데 내가 본 초음파 검사비가 4000원이라니, 아니 돼지국밥이 8000원이잖아. 내가 본 초음파는 돼지국밥만도 못하나.'

쏟아지는 기사를 보는데 '의사들이 타 직역보다 돈을 많이 벌어. 타 직역의 몇 배' 

환자는 무슨 죄인가 싶지만, 병원 내에 있는 파쇄기에 진료비 명세서를 넣으면서 우리나라 의료도 같이 파쇄돼 버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이제 우리나라에서 싸고 좋은 의료는 끝이 난 것 같습니다. 그랬더니 싸고 좋은 의료를 더 지속해 보려고 의사를 더 만들어 보자고 합니다. 글쎄요. 의사를 더 만들어서 싸고 좋은 진료가 가능할까요?

쥐약이 진짜 쥐약인지 꼭 본인 목구멍으로 들이켜 봐야 알까 싶은 나라입니다.

또 되뇝니다.

"역시 우리나라는 훌륭한 나라야! 오늘 점심은 초음파 검사만도 못한 돼지국밥이야!"

요새 유행한다죠.

I am 매우 슬퍼.


※칼럼은 칼럼니스트의 개인적인 의견이며 메디게이트뉴스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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