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입력시간 17.05.18 06:42최종 업데이트 20.06.19 21:55

제보

"이건 마치 신이 만든 것 같아!"

국내 소아용 인조혈관 공급 중단에 대해

[칼럼] 대한전공의협의회 고지원 정책이사

'Something the Lord Made' 한 장면

영화 '신이 만든 어떤 것(Something the Lord Made; 2004)' 은 1900년대 초반 미국의 존스홉킨스의대 흉부외과 의사 알프레드 블레이럭(Alfred Blalock)과 그의 연구실 책임자였던 비비안 토마스 (Vivien Thomas), 그리고 소아과 의사 헬렌 타우식 (Helen Taussig)이 팔로사징(Tetralogy of Fallot) 이라는 선천성 심장기형 환아들에 대한 혁신적인 수술 방법을 개발해내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팔로사징은 전체 선천성 심장기형 중 약 10% 를 차지하며, 심장에 네가지의 구조적 기형이 발생하여 폐동맥으로 충분한 혈류가 가지 못하고, 결과적으로 저산소혈증, 청색증이 발생하여 사망에 이르게 되는 질환이다.

영화 속에서 타우식은 폐로 혈액을 많이 보내기 위해 새로운 혈관 길을 만들어보자는 기발한 생각을 제안하였고,블레이럭과 토마스는 수많은 연구를 거친 후, 1944년 세계 최초로 팔로사징 환아에게 혈관 길을 만드는 데에 성공하였고, 영화는 심한 청색증을 보이던 아이가 새 혈관 길이 열림과 동시에 핑크빛 피부색으로 돌아오는 모습을 그려낸다.

영화 속 주인공이 "마치 신이 만든 것 같다"며 극찬했던 혈관 길은 블레이럭-타우식 션트(Blalock-Taussig shunt; BT shunt) 라고 불리우는 것이며, 현재까지도 팔로사징을 비롯한 청색증형 심기형 수술에 필수적으로 사용되는 방법이다.

초창기에는 환자의 혈관을 이식하는 방법으로 만들었지만, 최근에는 고어텍스 재질의 인조혈관이 전세계적으로 사용되고 있다.

그러나 올해 9월이 지나면 우리나라에서 이 블레이럭-타우식 션트 수술은 불가능해질 수도 있다. 국내에 소아용 인조혈관을 공급해오던 고어 앤 어소시에이츠(Gore & Associates, Inc.)가 국내 인조혈관사업 철수 계획을 발표하였기 때문이다.

지난 2016년 6월 및 12월에 보건복지부와 심평원이 수입원가 조사에 따라 고어 사의 'Vascular GORE-TEX Straight Graft' 제품의 보험상한금액을 기존 가격의 20% 이상 인하하기로 결정한 것이 핵심 원인이라는 것이 대한흉부심장혈관외과학회의 설명이다.

정부에서 정해준 치료재의 가격이 외국 판매가의 1/3~1/2 에 불과한 환경에서, 제품을 공급하는 회사는 국내 사업을 지속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연간 태어나는 약 60만~70만명의 신생아 중에서 약 4,000 여명의 신생아가 수술적 교정을 필요로 하는 선천성 심장기형이다. 이 중에서 인조혈관을 필수적으로 사용해야 하는 수술은 연간 100례 가량 시행되고 있으며, 고어 사의 계획대로 올해 9월 말 국내 인조혈관 공급이 중단될 경우, 현재 국내에 남아있는 제품의 재고 상태로는 불과 1년 밖에 버틸 수 없다고 한다. 

치료재료비에 대한 정부의 턱없이 낮은 보험가격 책정으로 인한 분쟁은 처음 있는 일이 아니다.

2011년 위암의 내시경점막하박리술(Endoscopic submucosal dissection; ESD)에 사용되는 올림푸스 사의 내시경칼 보험수가가 결정되었을 때, 이번 사태와 비슷하게 올림푸스 사는 내시경칼 공급을 중단하겠다고 통보하였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흔하게 발생하는 암에 대한 내시경적 치료가 불가능해질 것이라는 보도가 나오면서 당시 사회적으로 예상치 못한 파장이 일었고,이에 보건복지부에서는 뒤늦게 한발 물러나서 보험수가를 재조정하겠다고 나섰으며, 이에 올림푸스 사가 다시 협상에 우위를 점하며 가격 재조정 후 다행히 사태는 일단락되었다.

그리고 그로부터 6년 후 우리는 또 다시 선천성 심기형으로 고통받는 어린이들과 그 보호자들에게, 6년 전과 똑 같은 일이 일어나고 있으니, 수술을 받기 위해서는 재료가 확보될 때까지 기다릴 수 밖에 없다는 설명을 해야만 한다.

민간 의료에 사용되는 치료 재료의 가격마저 국가가 일방적으로 정하는 우리나라의 의료 현실 속에서, 가격 책정에 불만이 있는 기업들은 앞으로도 독점적인 지위를 악용하여 환자의 생명을 담보로 국내 시장 철수라는 강경책으로 대응하게 될 것이며, 따라서 제2의 ESD 사태, 제 2의 소아 인조혈관 사태는 계속해서 반복적으로 발생할 것이다.

또한 유사 사례가 발생할 때마다 그 피해는 고스란히 환자들의 몫이 될 뿐이다. 소아 인조혈관 사태에 대해 학회 측에서 공식적으로 문제 제기를 한지 약 2주 이상 경과한 지금까지도, 보건복지부 측에서는 아직 뚜렷한 대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으며, 해당 업체들이 적극적으로 협상에 임하지 않고 있다는 비판을 하며 책임을 전가하고 있다.

반면 업체 측에서는 수요가 적어 소량 생산, 소량 공급을 하며, 응급 상황에서 급하게 납품해야 하는 일도 종종 생기는 인조 혈관 재료의 특성 상 제품의 원활한 공급을 위해서는 원가 이상의 부대 비용이 소요되는데 이에 대한 이해가 전혀 없는 복지부의 보험가 책정을 납득할 수가 없다는 입장이다.

한정된 의료 보험 재원을 분배해야 하는 정부의 입장, 그리고 자본주의 시장에서 이윤을 추구해야 하는 사기업의 입장 모두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의료보험제도란 국민의 건강을 지키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며, 특히 환자의 생명이 걸려 있는 필수의료가 경제적인 이유로 인해 지장을 받지 않도록 보호하는 것이 정부가 이 상황에서 해야 하는 가장 중요한 역할이 아닐까?

금번 소아 인조혈관과 같은 재료처럼상대적으로 이윤을 많이 남기기 어렵고 부대비용은 많이 소요되는 다품종 소량 생산 제품의 보험가 책정에 대해서는 다량 판매되는 재료나 의약품과는 다른, 보다 유연성 있게 접근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동시에 향후 유사 사례의 재발을 방지 하기 위해 국민의 건강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항목에 대해서는 국가 차원에서 업체들로 하여금 자의로 시장 철수를 하지 못하도록 하는 등의 규제를 도입하는 것도 고려해볼 수 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사기업의 이윤 추구를 비난할 근거는 부족하지만, 의료 재료를 생산하는 기업이라면, 당사의 사업 결정이 환자들에게 미칠 영향도 함께 고려하는 등 윤리적인 의사 결정을 할 필요가 있다.

블레이럭-타우식 션트를 처음 개발한 이들은 신소재의 발전에 힘입어 자신들의 션트가 상품화된 인공합성물로 대치되리라고는 상상도 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보다 더 믿기 어려운 일은 기업의 수익만능주의와 국가 관리형 의료제도 사이의 마찰로 인해 어린이들이 자신들이 개발한 수술법의 혜택을 받지 못하게 되는 나라가 있다는 사실일 것이다.

이번 사태가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국민의 건강은 의료기관과 의료진뿐만 아니라 이를 둘러싼 정부의 정책과 사기업의 경영방침에 의해서도 크게 영향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블레이럭, 토마스, 그리고 타우식이 역사적인 발명을 할 수 있 었던 것은 그들이 오로지 환아들의 생명을 위해 혼신의 노력을 다했기 때문이다.

'의료'라는 행위를 둘러싸고 있는 직군 인료인, 보건복지부 및 건강심사평가원, 그리고 의료기/의료재료 제조 및 공급업체에는 경제적인 논리, 수익성, 시장논리를 벗어나서 사람의 생명을 최우선 가치로 고려하는 문화가 자리를 잡아야 할 것이다.

#인조혈관 # 보건복지부 # 메디게이트뉴스

메디게이트뉴스 (news@medigatenews.com)
댓글보기(0)

전체 뉴스 순위

칼럼/MG툰

English News

전체보기

유튜브

전체보기

사람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