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입력시간 23.08.17 16:15최종 업데이트 23.08.17 1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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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급실서 대동맥박리 오진한 전공의에 '징역형' 선고…"응급의료에 대한 사망선언"

응급의학의사회 "응급실은 불확실성 존재하는 곳, 응급의학과 의사 응급실 이탈 심화될 것"

사진=게티이미지뱅크

[메디게이트뉴스 조운 기자] 서울 모 대학병원 응급의학과 의사가 전공의 시절 대동맥박리로 응급실을 찾은 환자를 경증의 급성위염으로 오진했다는 이유로 1심에 이어 2심에서도 징역형 집행유예 선고를 받았다.

재판부는 해당 A 응급의학과 의사가 환자 B씨를 중증응급질환으로 의심해 추가 진단을 했더라면, B씨가 적절한 수술 등의 치료를 받아 현재와 같은 뇌병변장애에 따른 사지마비에 이르지 않았을 것이라며 업무상 과실치상 유죄라고 판단했다.

응급의학과 의사들은 해당 형사판결에 안타까움을 넘어 분노와 좌절을 느낀다며, 응급실에서 완전무결한 최종진단을 하지 못했다고 처벌을 받아야 한다면 응급의학과 의사 모두 잠재적 범죄자가 될 것이라며 응급환자진료에 대한 개인 형사책임 감면과 국가 책임보험 도입을 촉구했다.

60대 흉통 환자, 심전도 등 이상 소견 없었지만, 대동맥박리로 사지마비…진단 못한 '전공의' 탓

17일 의료계와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고등법원 제9형사부가 업무상과실치상과 의료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A씨에게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사건은 2014년 9월 11일 새벽 12시 55분, 60대 환자 B씨가 안면부 감각 이상과 식은땀, 흉부 통증을 호소하며 응급실로 내원하며 시작됐다. 

응급의학과 전공의였던 A씨는 새벽 응급실에서 흉부통증을 호소하는 B씨에게 심전도와 심근효소 검사 등을 실시했으나 별다른 이상 소견을 확인하지 못했고 B씨를 경증인 ‘급성위염’으로 진단했다.

새벽 3시 30분경 B씨의 딸은 검사 1시간여 뒤에도 B씨가 등부위 방사통 등 새로운 증상을 호소하고 흉부 통증이 심해졌다면서, 심장내과 의사 진료를 요청했으나 A씨는 이를 거절하고 진통제를 투여하는 데 그쳤다.

A씨는 같은 날 5시 29분 진통제 투여 후 B씨의 증상이 완화된 것을 확인하고 퇴원 조치를 했다.

하지만 B씨는 퇴원한 후 오전 10시경 의식을 잃고 쓰러져 다시 병원에 실려 갔고, 여기서 대동맥박리가 진행돼 양측성 다발성 뇌경색 진단을 받았다. 이후 B씨는 사지가 마비되는 뇌병변장애를 입었다.

A씨는 2021년 11월 1심에서 업무상과실치상 죄로 징역 6월에 집행유예를 선고받은데 이어, 항소심인 2심에서도 이것이 유지됐다.

2심 재판부는 A씨가 응급의학과 의사로서 피해자에게 발생한 흉통의 원인을 정확하게 진단하기 위해 흉부 CT검사 등 추가적인 진단검사를 실시하지 않은 업무상 주의의무 위반으로 B씨의 대동맥박리를 진단하지 못해 적절한 치료를 받을 기회를 상실하게 한 것이 B씨의 악결과에 직접적 영향을 미쳤다고 판단했다.

특히 재판부는 피해자의 증상호소와 등쪽의 방소통 등 통증 자체가 이미 대동맥박리를 의심할 수 있는 정황이 있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B씨는 60대로 뇌동맥박리 호발연령이고, 고혈압과 뇌경색 과거력 등 주요 위험인자를 가지고 있었다. 또 응급실에 내원했을 당시 B씨가 밝힌 가슴통증과 오심, 식은땀은 심근경색을 의심할 만한 증상이라는 점이다. 

재판부는 "검사에 이상이 없다면 급성 흉통을 일으킬 수 있는 대동맥박리, 기흉, 식도파열, 장천공 등에 대한 가능성을 생각했어야 한다"며 "고혈압과 심비대 증상에는 흉부 CT검사 등의 추가적인 진단검사를 할 필요가 있음에도 이를 시행하지 않아 B씨의 대동맥박리 조기 진단의 기회를 상실하게 했다"고 꼬집었다.

특히 상행대동맥(A형)박리는 40%의 환자들이 사망하는 질환으로, 초기 치사율이 1시간에 1~2% 증가해 초기 수술이 예후를 결정한다.

또 대동맥박리 수술을 담당한 의사는 수술 전에 심한 저혈압(쇼크)과 심장마비가 저산소성 뇌손상의 주요 원인이라고 지적했으며, 처음 병원에서 수술을 진행했더라면 이후 의식저하 저혈압, 심장마비가 일어나지 않았을 가능성이 높다고 밝히기도 했다.

또 A형 대동맥박리증의 응급수술에 따른 뇌손상 가능성이 12~15%인 것을 고려하면 현재 피해자의 저산소성 뇌손상은 발생하지 않았을 가능성이 높다고도 지적했다.

완전무결한 최종진단 못했다고 처벌…응급실 수용거부금지, 응급의학 전문의 이탈 늘어날 것

해당 소식에 대한응급의학의사회는 해당 판결이 응급의료에 대한 사망선언이라며 곧바로 성명서를 발표하고 유감과 분노를 표출했다.

의사회는 "의사의 과실이 인정되려면 결과발생을 예견할 수 있고 회피할 수 있었는데 이를 예견 또는 회피하지 못한 점이 인정돼야 한다. 하지만 응급실은 본질적으로 예측할 수 없는 환자들이 다양한 이유로 방문하는 곳이며 당연히 향후 경과에 대한 불확실성이 존재하는 곳이다"라고 설명했다.

의사회는 "응급진단과 최종진단은 다를 수도 있는 것으로 응급실에서 완전무결한 최종진단을 하지 못했다고 처벌을 받아야 한다면 응급의학과 자체가 존재의 의미가 없으며 우리 2500명 응급의학 전문의들과 460명의 전공의들은 모두가 범죄자일 수 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이형민 회장은 "대구시 17세 환자의 응급실 뺑뺑이 사건으로 최초 진료 병원인 대구 파티마병원 전공의가 경찰 조사를 받는 사건이 발생했다. 해당 사건 이후 응급실 뺑뺑이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응급실에 무조건적인 응급환자수용을 강제하려 하고 있다. 환자에게 발생한 악결과의 책임을 응급의학과 의사에게 모두 떠넘기는 이러한 판결 하에서 응급의학과 의사들은 더 이상 응급환자를 제대로 진료할 수 없다"며 "향후 응급의학 전문의의 응급의료현장 이탈은 더욱 늘어날 것이며 전공의 지원율 하락으로 향후 정상적인 응급의료체계 운영 또한 불가능해질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에 의사회는 책임지지도 않을 무조건적인 응급환자수용 강제 법안을 즉각 철회하고, 응급환자진료에 대한 개인의 형사책임 감면과 국가 책임보험을 도입하라고 촉구했다.

특히 이 회장은 "응급의학의사회는 사안의 심각성을 깊이 인식하고 현재 진행되고 있는 응급의료전달체계 논의, 응급실 수용거부금지 논의에서 법적 책임에 대한 문제해결 없이는 더 이상의 논의가 의미 없다고 판단해 논의체 위원직을 사퇴하겠다"고 선언했다.

조운 기자 (wjo@medigate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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