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DP 대비 의료비 미국 17.2% vs 한국 7.7%…"비용 절감 가치기반 지불제 웬 말"
바른의료연구소, "복지부 심사·평가체계 개편안은 미국식 총액계약제 사전 포석" 근거 밝혀
미국과 한국, 의료비 지출 규모·수가 차이·다보험 체제 등 달라…의협에 강력 대응책 주문
바른의료연구소는 14일 다수의 근거자료를 통해 “보건복지부의 심사·평가체계 개편안은 미국식 총액계약제인 가치기반 지불제를 도입하기 위한 사전 포석”이라는 내용의 보도자료를 발표했다. 미국은 국내총생산(GDP) 대비 의료비 지출이 세계에서 최고로 높은 17.2%지만, 우리나라는 미국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7.7%에 불과하고 우리나라의 수가는 미국의 10분의 1에 불과해 비용 절감을 앞세운 지불제도 개편은 부당하다는 것이다.
보건복지부는 지난 12월 27일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건정심)에 청구명세서 기반의 건별 심사방식에서 ‘가치에 기반한 (value-based) 심사·평가체계’로 근본적으로 전환하는 방안을 주 내용으로 하는 건강보험 심사·평가체계 개편 방안을 보고했다.
바른의료연구소는 앞서 2일 보도자료에서 “정부의 심사평가체계 개편안은 현행 행위별 수가제에서 가치기반 지불제 (Value-based Purchasing, VBP), 묶음 지불제 (Bundled Payment), 에피소드 기반 지불제 (Episode-based Payment) 등의 포괄적 지불제로 전환하기 위한 진료비 지불제도 개편안”이라고 밝혔다.
연구소는 “연구보고서와 해외 자료를 보면 이번 심사·평가체계 개편안은 의료계를 옥죄는 심각한 진료비 지불제도 개편을 목표로 한다"라며 "그러나 대한의사협회는 이런 문제의 심각성을 전혀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의협 최대집 회장은 그저 문재인 케어를 필수적, 단계적으로 추진한다고 자위하고 있다. 대한민국 의사들은 정부는 물론 의협에도 기대할 수 없는 참으로 불행한 시대에 살고 있다”고 비판했다.
연구용역 보고서, 심사·평가체계 개편안이 지불제도 개편 사실 밝혀
연구소에 따르면, 보건복지부가 건정심에 보고한 건강보험 심사·평가체계 개편 방안은 심평원의 '합리적 의료비용 운영을 위한 진료비 심사체계 개선방안 연구용역' 보고서 내용을 근거로 했다. 이 보고서에는 진료비 심사체계 개선의 추진 방향의 하나로 '가치기반 의료결정의 지원과 강화'를 제시했고 첫 번째 방안이 가치기반 지불보상과 연계하는 것이다.
연구소는 “보고서에는 의료서비스의 양(volume) 중심의 ‘자원투입 보상’에서 투입 비용 대비 의료의 질(quality) 향상을 유도하는 ‘가치(value) 기반 보상’을 확대하고 있다. 전체 진료비에서 질과 가치를 반영한 보상 비중을 증가시키고 있다고 했다”고 밝혔다.
연구소는 “진료비심사체계는 지불 보상 방식의 개편방향에 맞춰 환자, 정부, 의료기관 등 모든 참여자들이 비용대비 의료의 질과 결과 향상을 고려하는 가치기반 의사 결정을 하도록 하고 있다. 이는 곧 진료비 지불제도를 가치기반 지불제로 개편하는 방향에 맞춰 진료비 심사체계를 개편해야 한다고 했다. 심사평가 체계 개편안이 곧 행위별수가제에서 가치기반 지불제로 전환하기 위한 개편안임을 확인할 수 있다”고 했다.
연구소는 “가치 기반 의료시스템으로 개혁하기 위한 틀로서 과거·현재의 투입 기반 지불 보상에서 미래에는 결과 기반 지불 보상 패러다임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했다. 이는 곧 우리나라 의료시스템을 행위별수가제에서 가치기반 지불제로 개혁해야 한다고 주장한 것"이라고 했다.
연구소는 "결과적으로 진료비 심사체계 개편은 의료시스템을 경험하는 모든 참여자들이 높은 가치의 의료 제공 또는 이용을 결정하고 선택하도록 동기를 강화시키는 가치기반 의료시스템으로의 개편을 지원하고 보완하도록 설계돼야 한다고 했다. 미국은 2003년부터 메디케어 입원환자에 대한 의료서비스의 질 향상과 비용 절감을 위해 병원에 대해 가치기반 지불제도를 도입한 사실을 밝히고 있다. 이는 결국 이번 심사·평가체계 개편안이 미국식 가치기반 지불제를 도입하기 위한 목적임을 명확히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또한 보고서에는 심사체계의 개선 추진을 위한 심사 성과지표의 하나로 '건강보험 지출 효율화'를 제시하고 있다. ‘예측진료비와 실제 총 진료비와의 격차에 따른 건강보험 재정 지출 효율화’로 심사 성과를 측정할 수 있다는 것이다.
연구소는 "실제진료비는 평가연도의 진료비 통계지표상의 건강보험 요양급여비용 총액으로 한다. 예측진료비는 진료비 통계지표 상의 적용인구수, 적용인구 1인당 요양 일수, 요양일당 요양급여비용에 과거 최근 3년 평균 증가율을 각각 적용한 후 해당 요소들의 곱으로 산출한다"고 했다.
연구소는 “'건강보험 지출 효율화'는 심사 성과지표의 하나로 제시됐다. 하지만 연간 진료비 총액을 사전에 예측하고 실제 총 진료비를 예측 진료비 이하로 지출되도록 하는 노력과 경험이 쌓이면 어느 순간 총액계약제로 전환될 수 있는 중요한 단초”라고 지적했다.
심사·평가체계 개편안, 미국의 지불제도 개혁안 그대로 수용
이번 심사·평가체계 개편안에는 가치기반 지불제 외에도 에피소드 기반 지불제, 묶음 지불제 등이 주요하게 언급돼있다. 궁극적으로 인구기반 지불제로 나아가야 한다는 내용도 포함돼 있다. 연구소가 외국 자료들을 검토한 결과, 미국에서 지불제도 개혁의 일환으로 행위별수가제를 대체하기 위해 고려되는 다양한 대체지불 모델(Alternative Payment Model, APM)이라는 사실을 확인했다.
연구소는 “미국은 국내총생산(GDP) 대비 의료비 지출이 18%에 육박하면서도 접근성, 효율성, 공정성, 질 등의 건강지표와 결과가 뒤떨어지고 있다는 인식에 따라 2016년부터 가치기반 지불제를 도입하려 노력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연구소에 따르면, Health Care Payment Learning & Action Network(의료지불 학습 및 행동 네트워크, HCP-LAN)란 단체는 제공된 서비스의 양이 아니라 서비스의 가치를 보상하는 정도에 따라 지불제도를 4개의 카테고리로 분류하고, 매년 '대체지불 모델의 틀(ALTERNATIVE PAYMENT MODEL (APM) FRAMEWORK)' 자료를 업데이트 하고 있다.
카테고리 1에는 행위별수가제와 질과 연관되지 않은 포괄수가제가 포함된다. 카테고리 2로 분류된 지불 모델들은 전통적인 행위별수가제를 이용하나, 인프라 투자, 질 정보 보고, 비용 및 질 지표 수행 성과 등에 따라 지불이 보정된다. 카테고리 3에서 일부 지불제는 인구집단의 일부 또는 진료 에피소드의 관리와 연결돼 있다. 여전히 제공된 서비스에 따라 지불이 이뤄지나, 절감액의 공유나 상방 및 하방 위험을 공유하기도 한다. 상방위험이란 예측 진료비보다 적게 진료비를 지출했을 때 절감액의 일부를 의료공급자에게 지급하는 것이다. 하방위험은 실제 진료비를 더 많이 지출했을 때 의료공급자에게 손실액의 일부를 부담하도록 하는 위험공유를 의미한다.
인구기반 지불제도인 카테고리 4에서는 제공된 서비스에 따라 지불이 촉발되지 않으므로 지불은 양(volume)과 무관하며, 임상의와 병원들은 1년 이상의 장기간 동안 보험가입자의 진료에 책임을 진 대가로 고정된 금액을 지불 받는다.
연구소는 “가치기반 지불제는 카테고리 2-4에 해당하는 경우로 간주되고 있다. 이 틀에 근거해서 카테고리 1에서 4로 진행함에 따라 질과 총 진료비에 대한 의료공급자의 책임이 증가하고, 개별 의료서비스에서 인구집단의 건강관리로 초점이 이동한다. 결국 미국은 카테고리 1에서 카테고리 4 방향으로 지불제도를 개편하려는 것”이라고 했다.
연구소는 “복지부는 이번 심사·평가체계 개편안을 통해 미국에서 시행 중인 지불제도 개혁안을 최선으로 여기고 아무런 비판 없이 그대로 도입하려 한 것임을 알 수 있다”라고 지적했다.
연구소는 “보고에 대한 지불(Pay for Reporting) 체계 도입을 검토하고 있고(카테고리 2B), 묶음 지불제, 에피소드 기반 지불제, 그리고 일부 의료관리학자들이 도입하려는 미국의 ACO(책임진료기구) 역시 절감액 공유(shared savings)나 위험공유(shared risk)의 요소만 추가하면 언제든지 카테고리 3에 포함될 수 있다”라고 설명했다. 또한 “당뇨병과 같은 만성질환에 에피소드에 기반한 인구집단 지불을 하고, 한 환자 당 월별 또는 연간 일정 금액을 지불한다면 이는 카테고리 4에 해당한다”고 덧붙였다.
한편, 카테고리 2A에는 케어 코디네이터 간호사 인력의 배치 또는 전자의무기록 업그레이드 등을 보상하기 위한 지불이 포함된다. 연구소는 "이런 유형의 행위별수가제 또는 1인당 월별(per-member-per-month, PMPM) 지불제는 지불제도 개혁을 향한 중요한 단계로 여겨지고 있다. 이런 이유로 보건복지부가 만성질환관리 시범사업에 케어 코디네이터 제도를 유지하려 한 것으로 보인다"고 해석했다.
미국식 지불제도 개혁안, 의료비 지출·수가 등에서 한국과 맞지 않아
연구소는 미국식 지불제도 개혁안은 미국의 의료비 지출 규모와 의료 수가의 측면에서 한국 현실에 맞지 않다고 강조했다.
미국이 행위별수가제를 대체지불제로 개혁하려는 근본적인 이유는 GDP 대비 의료비 지출이 세계에서 최고로 높은 17.2%지만 우리나라는 미국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7.7%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연구소는 “미국식 지불제도를 도입하려면 최소한 의료수가가 미국 수준이 돼야 한다. 그런데 한국 의료수가는 미국의 10분의 1에 불과하다. 이렇게 싼 의료수가인 상황에서 의료비용은 최소한으로 하면서도 의료의 질과 치료결과가 높은 가치기반 지불제도는 애당초 불가능하다”고 밝혔다.
연구소는 “가치기반 지불제 시행은 필연적으로 비용과 질, 치료결과 등에 대한 정보를 보고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미국의 경우 정보보고에 막대한 금액을 지불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 일차의료기관에서 수많은 정보를 보고하는 데는 막대한 행정적, 시간적 부담이 따를 수 밖에 없다”고 했다.
연구소는 지불제도 개혁의 효과가 입증되지 않은 문제도 지적했다. 연구소는 "지불제도 개혁을 위해서는 지불제도 개혁 자체가 더 나은 효과를 나타낸다는 증거를 필요로 한다. 그러나 지금까지 미국에서 시행된 대체지불제의 효과가 확실히 입증됐다는 근거가 매우 빈약하다”고 비판했다.
연구소는 또한 “미국식 지불제도 개혁안이 실행되기 위해서는 바로 다보험 경쟁체제가 필수적이다. 의료기관간 통합이나 합병도 가능하게 해야 한다. 그러나 한국은 단일 공보험 기관만 있다”고 했다.
미국의 지불제도 개혁안을 보면, 의료기관끼리 통합하거나 합병해 거대 의료공급조직을 새로이 만들기도 하고, 민간 보험회사가 여러 지역의료기관을 인수해 ACO를 구성하기도 한다. 보험가입자들이 납부한 보험료의 전부 또는 일부를 의료공급자에게 지불하는 제도를 통해 민간 보험회사 간 경쟁을 부추긴다. 많은 보험가입자를 모집하기 위해 보험료를 할인해 주기도 하고, 우수한 의료공급조직을 모집하기 위해 가입자가 납부한 보험료 중 상당 부분을 의료공급자에게 지불하려 한다.
총액계약제와 인구기반 지불제로 가기 위한 의도
연구소는 "결과적으로 이번 심사·평가체계 개편안의 최종 종착역 역시 총액계약제와 총액계약제의 또 다른 이름인 인구기반 지불제도"라고 강조했다.
미국의 지불제도 개혁안은 카테고리 4를 최종 목적지로 하고 있다. 인구기반 지불제도인 카테고리 4의 B와 C 유형의 보기(example)에는 총액계약제가 명시돼 있다. ACO 등을 통한 보험료의 전부 또는 일부 퍼센트를 지불하는 인구기반 지불제도 역시 카테고리 4에 포함된다.
연구소는 "미국과 한국의 의료환경은 다르다. 무엇보다 가치기반 지불제도에 근거한 미국식 지불제도 개혁안이 미국 내에서도 그 효과를 확실하게 입증했다는 증거도 미흡하다"라고 했다.
연구소는 “만약 미국식 대체지불 제도를 대거 도입한 심사·평가체계 개편안이 실행된다면 힘겹게 유지돼온 대한민국 의료는 파국에 마침표를 찍을 것으로 본다. 한국의료의 파국은 국민건강에 심각한 위해를 끼칠 수 있다. 이 때문에 외국 의료제도 도입에 신중해야 한다”고 했다.
연구소는 “복지부나 소위 의료관리 전문가라는 사람들은 국내 현실은 별로 고려하지 않고 있다. 외국, 특히 의료비 지출이 세계 최고 수준인 미국의 의료제도를 무작정 도입하려 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연구소는 문재인 케어 자체가 가치기반 의료와 상충된다는 지적도 했다. 연구소는 “이번 개편안은 바로 문재인 케어 시행으로 인한 의료비 지출 급증을 대비하기 위한 것이다”라며 “가치기반 지불과 상당한 거리가 있는 문재인 케어의 심각한 부작용을 무마하기 위해 미국식 가치기반 지불제를 도입한다는 것은 아이러니”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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