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디게이트뉴스] 존경과 신뢰는 사라지고, 불신과 불안이 가득한 사회다. 의료 현장에서의 문제도 여기서 비롯된다. 환자들이 의사를 믿지 못하고, 의사들도 국민과 국가로부터 상처 받았다. 불가항력적 의료사고에도 형사 처벌하는 번위기가 가중되며, 필수의료 분야는 잠재적 범죄자의 위험까지 감수해야만 하는 아슬아슬한 줄타기 영역이 됐다.
존경이 사라진 의료현장에서 사명과 보람으로 자리를 지키던 필수의료진들은 ‘돈’과 ‘위험부담’을 놓고 고민에 빠진다. 가장 시급한 문제는 이것이다. 소위 ‘현타’와 상대적 박탈감에 빠진 다수의 필수의료진들이 현장을 떠나고 있다.
'사람을 갈아 넣어 유지되던’ 대한민국 의료체계에서 필수의료 현장을 지키던 전문 인력의 누수로 인한 파급력과 붕괴 속도는 실로 어마어마하다.
필수의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의대증원을 선택한다면, 정부가 기대하는 ‘낙수 효과’가 작동한다고 해도 의료 현장에 적용되는 시점은 10년 뒤다. 하지만 의대 증원 발표가 젊은 의사 사회에 몰고 올 또 다른 불안은 훨씬 더 심각한 ‘누수 효과’를 야기할 것이다.
당장의 필수과 기피 현상을 악화시키고 이미 현장에서 고군분투 중인 필수 전문 인력들의 사기를 떨어뜨리며 필수 전문인력 이탈 속도를 증가시킬 것이다. 결국 필수의료 현장의 붕괴를 가속화할 수밖에 없다.
의대 정원을 아무리 늘려봐야 젊은 의사들이 필수의료 분야를 빠져나가면 아무짝에 쓸모가 없다. 자유민주주의 국가 대한민국에서 진로선택의 자유를 침해하고 강제화하는 것도 불가능하다. 필수적인 분야로 수혈되지 않는 의사 수 증가는 오히려 의료비 증가를 야기하며 사회의 부담을 가중시킬 뿐이다. 출산율 0.78의 저출산, 생산인구 감소에 따른 저성장, 초고령사회에 진입한 늙어가는 대한민국에서 건강보험 재정 적자는 이미 예견된 일이다.
우리는 아직 수도꼭지를 잠그지 않았다.
필수의료 분야 의사 인력 수급 어려움을 단순히 수급 불균형 문제만으로 바라봐선 안 된다. 의사 인력 문제는 사람 중심 관점을 가져야 해결할 수 있다. 필수의료 분야에 종사하는 의료인에게 지금처럼 무작정 헌신과 소명을 강요하고 기대하는 것은 환자에게도 국민에게도 안전하지 않다.
젊은 의사들이 필수의료를 기피하고 미용성형 분야로 가려는 본질을 파악해야 해결 가능한 문제다. 갈수록 위험부담은 커지는데 자부심조차 느낄 수 없는 필수의료 현장보다는 차라리 금전적 보상이 큰 미용성형 분야를 선택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저출산, 고령화 시대를 맞은 대한민국에 진짜 필요한 의사를 늘리는 방향은 숫자에만 매몰된 쉬운 방법으로는 절대 불가능하다. 무엇보다 현재 떠나고 있는 전문 인력들을 어떻게 지킬지 먼저 고민해야 한다. 현장 의료인의 처우 개선이 가장 시급한 문제 1번이다.
젊은 의사들을 ‘숫자’가 아닌 ‘사람’으로 여길 때만이 대한민국 의사 인력문제를 해결할 실마리가 보일 것이다. 무너지기 직전의 댐을 그대로 둔 채, ‘누수’를 고려하지 않은 ‘낙수’를 기대하며, 비싼 물을 쏟아붓는 무서운 일이 부디 벌어지지 않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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