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입력시간 23.02.05 10:39최종 업데이트 23.02.05 22: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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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부인과 선택 1년도 안돼 후회했지만...다시 택하래도 산부인과"

[필수과 전공의 인터뷰] ④ 산모와 아기 함께 퇴원할 때 보람...무과실 분만사고 위험 및 저수가 문제 해결 필요

사진=게티이미지뱅크
메디게이트뉴스 필수과 전공의 릴레이 인터뷰
젊은 의사들의 필수과 기피 추세 속에도 남들과 다른 길을 묵묵히 걸어가는 필수과 전공의들이 있다. 그들이 일선에서 느낀 필수과의 '문제'는 무엇이고, 그럼에도 '희망'을 잃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메디게이트뉴스는 대한전공의협의회 필수중증의료전공의위원회 소속 전공의들과의 릴레이 인터뷰를 통해 그 속사정을 들어본다.
 
① 이혜주 전 서울대병원 흉부외과 전공의 “흉부외과 그리워 돌아간다”
② 익명의 소아청소년과 전공의들 “그만두고 싶다가도 아이들 모습에 잊혀져"
③ 한재민 원자력병원 외과 전공의 “외과 의사로서 자부심 갖고 일할 수 있게 해달라"

④ 익명의 지방대병원 산부인과 전공의 “다시 선택하래도 산부인과”

[메디게이트뉴스 박민식 기자] “학생 때부터 산부인과만 바라봤지만 전공의를 시작한지 몇 개월 만에 후회가 되더라. 그래도 다시 선택하라면 산부인과다.”
 
의학전문대학원 시절부터 산부인과만 생각했었다는 오승연(가명) 전공의는 과도한 업무량과 바이탈과가 주는 부담감 탓에 채 전공의 생활 1년도 되기 전에 자신의 선택을 후회했다. 어느덧 시간이 흘러 3년차가 됐지만 지금도 가끔 그런 생각이 드는 건 마찬가지다.
 
하지만 수술방이 가장 편안하다는 오 전공의는 전공을 다시 택할 기회가 온다고 해도 한치의 고민없이 산부인과를 선택할 거라고 했다. 퇴원하는 산모와 아기들을 보며 느끼는 뿌듯함은 이루 말할 수 없다며 바이탈과에 관심이있는 후배들이라면 산부인과를 권해주고 싶다고도 했다.
 
산부인과가 2023년도 전공의 모집에서 기록한 지원율은 79%. 전년 대비 10%가량 상승한 고무적인 수치지만 지속적인 출산율 감소 추세 속에 마냥 안심할 수만도 없는 상황이다. 메디게이트뉴스는 지방 소재 대학병원에서 일하고 있는 오승연 전공의와 인터뷰를 통해 산부인과 전공의의 삶과 젊은 의사가 생각하는 산부인과의 위기에 대한 생각을 들어봤다. 인터뷰는 오 전공의의 요청으로 익명으로 진행했다.
 
산부인과 선택 후회할 때도 있지만 산모들 보며 보람
 
Q. 산부인과에 지원했던 이유는 뭔가.
 
의학전문대학원 가기 전부터 산부인과를 염두에 두고 있었다. 의료 봉사에 관심이 있다. 특히 해외에 할례를 받거나 한 친구들이 있다. 그래서 산부인과 쪽으로 공부를 하면 그런 친구들을 도와줄 수 있겠다 생각해서 선택하게 됐다. 드라마 ‘산부인과’ 영향도 컸다. 드라마를 보면서 저런 의사가 되고 싶단 생각이 들더라.
 
Q. 산부인과 전공의 3년차다. 그간 산부인과 전공의로 지내보니 어땠나.
 
의전원에서 공부하는 4년 동안은 산부인과를 전공하겠단 생각이 단 한 번도 바뀐 적이 없었다. 교수님들이 다른과들도 생각해보라고 할 때도 흔들리지 않았다. 그런데 산부인과 1년차 10월쯤 ‘그때 내가 왜 산부인과를 선택했을까’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힘들었다. 일이 힘들다는 건 어느정도 각오하고 있었지만 생각 이상이었다. 인턴일 때는 간단하게 시키는 일 정도만 했다면, 전공의가 되고 주치의가 되니 전혀 달랐다.

기본적으로 내가 환자를 보고, 오더를 내야하는 위치에 가게 되니 부담감이 훨씬 크게 느껴지더라. 아마 산부인과가 아니더라도 주치의를 하는 모든 전공의들이 그런 기분을 느껴봤을 것이다.
 
Q. 전공의 생활하시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은 뭔가.

조기 진통으로 한 달 이상 장기 입원했던 산모가 있었다. 당시에 그 산모가 내가 친절하게 잘 대해줬다고 글을 올려서 '친절 직원상'을 받았던 적이 있다. 전혀 예상하지 못하고 있었는데 상을 받으러 병원에서 연락이 왔을 때 보람을 느꼈다. 반대로 불만 제기가 많았던 사람들도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간다. 그럴 때는 힘들기도 했다.
 
인력 부족은 항상 느껴…저수가∙의료사고 부담 탓 지원 기피

Q. 소아과의 경우, 환아의 보호자가 의사에게 폭언이나 폭행을 하는 경우가 있어 힘들다고 한다. 산부인과는 어떤가.
 
산부인과는 요즘 난임을 겪는 이들이 늘면서 임신을 힘들게 한 산모들이 많아진 게 어느정도 영향이 있는 것 같다. 그렇게 힘들게 아이를 갖게 된 산모들의 경우는 산모보다도 오히려 보호자들이 더 심하게 항의하는 경우가 많다. 최근에도 수 차례 유산을 했다가 겨우 임신에 성공한 중년의 산모가 질 출혈로 병원에 왔다. 그런 절박 유산의 경우 특별히 해주는 게 없고, 당시 산모의 출혈량도 많지 않아서 절대 안정을 취하라고 안내를 드렸다. 그런데 보호자가 집에서 피가 많이 났었는데 조금이라도 입원을 시켜주면 안 되냐며 항의하더라. 그 외에도 진료를 빨리 좀 해달라라고 하는 경우는 비일비재하다.

Q. 산부인과의 경우 이번 전공의 모집에서 지원율이 상승하긴 했지만 여전히 미달인 상태다. 현장에서 느끼는 인력 부족 문제는 어떤가.

인력은 언제나 부족하다고 느끼고 있다. 우리 병원의 경우 아예 TO를 다른 병원에 주고 파견을 받는 방식으로 인력을 운영하고 있다보니 힘든 게 사실이다. 최근엔 4년차가 전문의 시험 준비로 빠지면서 병원에 산부인과 전공의가 채 5명도 안 되는 상황이다. 그러다보니 당직도 한 달에 10번가량 서고 있다.

Q. 대학병원 인력 부족 문제도 있지만, 로컬에서 분만의료기관들이 지속적으로 감소하고 있는 것도 큰 문제다.
 
일단 출산율 감소의 영향이 없을 수가 없다. 그리고 요즘에는 산모들이 일반 분만병원보다는 대학병원에서 낳는 게 더 안전하다는 인식이 깔려있는 것 같다. 그래서 진료가 좀 늦어지더라도 개원가보단 대학병원으로 쏠리는 추세인다. 실제 우리 병원의 경우도 외래가 많이 밀려있다. 산모가 임신이 확인되자마자 우리 병원을 예약하더라도 20주쯤은 지나야 진료를 받을 수 있다. 이런 경향들이 있다보니 개원가의 분만의료기관들은 줄어들 수밖에 없어 보인다.
 
Q. 젊은 의사들이 산부인과를 기피하는 이유는 뭐라고 생각하나.

업무가 힘든 것도 있지만 수가의 영향도 있다. 가령 제왕절개만 해도 수가가 다른 일반 수술에 비해서 낮게 책정이 돼 있다. 그런 부분이 젊은 의사들이 지원하는 데 걸림돌이 되고 있다고 본다.

전공의 중에서도 남성 전공의 부족 문제가 특히 심각하다. 산부인과는 환자들이 여성 의사를 찾는 비율이 높을 수 밖에 없다보니, 자연스레 남성 의사의 전공의 지원율이 많이 떨어지는 것 같다. 개인적으로도 남성 산부인과 전공의는 거의 본 적이 없다. 환자들이 응급 상황이 생겼거나 아니면 조금 위험한 상황이 됐을 때 전공의들이 보호받지 못한다는 것도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본다.

무과실 분만사고 국가책임법 통과∙수가 정상화 필요…“바이탈 관심있다면 산부인과 추천”
 
Q. 산부인과 전공의 지원율을 끌어올리기 위해선 어떤 대책이 필요할까.  

현재 국회에 불가항력 의료사고에 대해 피해자 보상 재원을 국가가 전액 부담하는 내용의 법안이 발의돼 있는 걸로 안다. 해당 법안이 통과돼 의료사고에 대해 의료진을 보호해주는 법적 장치가 조속히 마련될 필요가 있다. 또, 앞서 말한 것 처럼 수가 정상화가 필요하고, 먼 얘기일 수 있지만 결국 출산율 감소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안도 고민이 필요하다.

Q. 필수과 위기와 관련해 정부가 의대 정원 증원을 해결책 중 하나로 내놨다. 도움이 될 것이라고 보나.

지금도 의사수는 그리 부족하지 않은데, 필수과 지원율이 떨어지고 있는 상황이라서 과연 정원을 늘렸을 때 필수과의 지원율이 올라갈 것인지에 대해선 의문이다. 설령 정원을 늘리더라도 젊은 의사들이 필수과 지원을 유인할 수 있는 대책이 필요하다.
 
Q. 인터뷰 서두에서 1년차 때 산부인과를 선택한 걸 후회한 적이 있다고 했다. 지금은 어떤가.

지금도 ‘그 때 왜 산부인과를 택했을까. 바이탈과에 왜 왔을까’라는 생각이 들 때가 가끔 있다. 연차가 찰수록 수술도 들어가고 할 수 있는 게 많아지면서 환자를 대하는 데 자신감도 붙을 수 있지만 거기에 비례해서 ‘더 어렵다. 더 힘들다’라고 느끼는 지점들도 많아진다. 저연차 때랑은 다른 어려움이다.

그래도 다시 선택하더라면 산부인과를 또 선택할 것이다. 일단 산모를 보는 것도 좋고 비수술과 수술과 중에선 수술과가 나한테 맞다고 생각한다. 수술방에 들어오면 손을 떨거나 긴장을 많이 하는 친구들이 있는데, 나는 오히려 병동보다 수술방에 있을 때 더 편안함을 느낀다. 통상 수술과에서 여의사들을 잘 선호하지 않는 편인데, 그러다보니 나를 포함해서 여의사들 중 수술을 원하는 사람들은 산부인과를 많이 택하는 게 아닐까 싶다.

앞서 말했듯이 의료봉사를 할 때 산부인과 의사로서 도움을 줄 수 있는 부분들이 더 많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결혼을 하고 자녀들이 알아서 생활을 할 수 있을 때가 되면 꼭 의료봉사를 가고 싶다.
 
Q. 후배들에게 산부인과를 추천해줄 수 있나.
 
추천해줄 수 있다. 어느 과를 가나 힘든 건 마찬가진데 수술을 하고 싶고 바이탈을 하고 싶은 후배들이라면 산부인과를 권하고 싶다. 일단 산부인과는 다른 바이탈과에 비해서는 다이나믹한 재미가 있다. 환자가 젊다보니 상태가 급격하게 좋아지는 경우도 있고, 무엇보다 산모를 퇴원 시킬 때 뿌듯함이 크다. 다른 과처럼 환자 혼자 퇴원하는게 아니라 산모들이 아기를 안고 퇴원을 하기 때문에 감사 인사를 정말 많이 받는다. 그런 점에서 보람을 더 많이 느낄 수 있는 과다.

박민식 기자 (mspark@medigate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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