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디게이트뉴스 정다연 기자] 전공의 1년차 수련을 마치고 다른 수련병원에서 2년차로 수련하는 이동수련이 가능할까. 불가능한 일은 아니지만 현재로서는 제약이 있다. '수련병원 지정 및 전공의 정원책정 방침' 때문이다. 이 방침에 따르면, 상급년차 전공의들은 다니던 수련병원을 그만둔 날로부터 1년이 경과한 후에 다른 수련병원에 지원을 할 수 있다.
보건복지부는 '전공의들의 수련병원 이탈 방지를 위해 필요한 제약'이라는 대한의학회 등의 의견을 따랐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러나 전공의들은 이동수련의 제약 지침이 의도와 다르게 전공의들을 열악한 수련환경에 방치하는 악순환을 초래한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복지부의 이동수련 제약 지침 때문에 수련환경이 개선 될 수 없고 결과적으로 열악한 수련환경으로 인한 전공의 이탈 현상을 막을 수 없다고 지적했다. 이에 따라 이동수련 제약 지침을 완화해 전공의들의 열악한 처우를 개선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 됐다.
'수련병원 지정 및 전공의 정원책정 방침'은 보건복지부 산하 수련환경평가위원회가 정하는 내부 지침이다. 이 방침에 따르면, 병원이 모집하는 상급년차 전공의 지원 대상은 '사직일(해당 지원과목 최종 사직일을 기준으로 함)로부터 수련개시일까지의 기간이 1년을 경과하는 자'로 제한 된다.
수련병원(기관) 지정 및 전공의 정원책정 방침
4. 전공의 정원책정 방침
라. 레지던트 상급년차(2,3,4년차)
1) 상급년차 정원은 해당 상급년차의 레지던트 1년차 당시 책정받은 정원을 기준으로 책정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개정 2018.6.22., 2018년 제6차 수련환경평가위원회)
2) 상급년차의 모집은 해당 상급년차의 레지던트 1년차 당시 책정받은 정원 중 결원이 발생한 범위 내에서 충원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며, 충원 해당연도의 레지던트 1년차 정원이 책정되지 않은 경우에는 모집할 수 없다. (개정 2018.6.22., 2018년 제6차 수련환경평가위원회)
3) 상급년차 지원대상은 사직일(해당 지원과목 최종 사직일을 기준으로 함)로부터 수련개시일까지의 기간이 1년을 경과하는 자, 군전역(예정)자, 외국수련자, 전문의의 다른 전문과목 수련인정 기준 적용 과의 전문의 자격증 소지자 또는 취득 예정자로 한다. (개정 2017.10.27., 2017년 제7차 수련환경평가위원회)
4) 상급년차의 모집 절차
가) 수련병원(기관)장의 모집 신청은 수련 개시연도 1월 10일까지로 하되, 육성지원과목의 경우 1월 10일 또는 7월 10일까지로 한다.
나) 수련환경평가위원회는 수련병원(기관)의 상급년차 모집 신청을 받아 1월 15일(육성지원과목의 경우 1월 15일 또는 7월 15일)에 상급년차 모집에 관한 사항들을 일괄하여 공고한다.
다) 수련병원(기관)장은 상급년차 선발대상자 현황을 1월 말일(육성지원과목의 경우 1월 말일 또는 7월 말일)까지 수련환경평가위원회에 보고하여야 하고, 수련환경평가위원회는 상급년차 전공의 모집 및 정원 조정 등에 관하여 심의하며 보건복지부장관의 승인을 통하여 확정한다.
전공의들 "상급년차 전공의 수련이동 제약은 열악한 수련환경 악순환에 일조"
'수련병원 지정 및 전공의 정원책정 방침'에 따라 중도에 수련을 그만둔 전공의들은 과를 바꿔 새로 시작하거나 같은 과에서 1년차로 다시 들어가지 않는 이상 최소 1년 넘게 수련병원에 들어갈 수 없다. 전공의들이 1년에 한 번, 수련 병원 단 한 곳에만 지원이 가능하다는 사정을 감안할 때, 지원자격 제한은 전공의들이 수련병원을 옮길 수 있는 기회를 박탈하는 규정이라는 주장이다.
전공의 A씨는 "이 방침은 수련 도중 병원을 그만두고 다른 병원에서 수련을 받으려는 전공의들에게 불합리한 규정이다. 중도에 수련을 그만둔 전공의들은 최소 1년 이상의 공백기를 보낸 후에야 다른 수련병원에 지원을 할 수 있다"고 말했다.
A씨는 "전공의 모집은 1년에 한 차례뿐인데, 이 지침 때문에 수련병원을 그만둔 상급년차 전공의들은 1~2년에 달하는 시간을 낭비할 수 없다. 대개 일반의가 되거나, 그간의 수련 기간을 인정받지 못하고 1년차부터 수련을 다시 시작하기도 하고 다른 진료과로 옮겨 새로 시작한다"고 말했다.
전공의들은 상급년차 전공의 수련이동 제약으로 인해 전공의들이 처한 열악한 수련환경이 개선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수련병원들이 수련을 중도에 포기하는 것이 전공의들에게 불리하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에 실질적인 수련 환경 개선에 힘쓰지 않는다는 것이다. 특히 전공의들은 폭력 노출, 결원 미충족으로 인한 과로 등 문제가 누적되는 상황에서 전공의 수련병원 변경(이동수련) 조건이 까다롭기 때문에 수련병원을 중도에 그만두는 전공의들이 많다는 점을 지적했다.
폭력 등 문제가 발생해 전공의의 이동수련이 필요한 경우, '수련병원 지정 및 전공의 정원책정 방침'에 따라 수련병원장이 전공의 수련병원 변경(이동수련)을 요청해야 가능하다. 하지만 이는 전공의가 문제제기를 하고 공론화 과정을 거쳐 수련환경평가위원회에서 인정을 받아야 한다.
전공의들은 병원 내 문제를 제기하는 것 자체가 어려운 구조기 때문에 사실상 전공의가 이동수련할 수 있는 방도는 꽉 막힌 셈이라고 토로했다.
A씨는 "전공의들의 수련병원 이탈 원인을 들여다보면 백이면 백 열악한 수련환경 탓이다. 곪아터진 뿌리를 도려내지 않고 이동수련만 막는다고 해결될 일이 아니다. 전공의들은 버틸만큼 버티다가 이러다 죽겠다 싶으면 결국 수련병원을 그만둔다"며 "상급년차 전공의들이 이동수련을 할 수 있도록 '1년 경과'라는 제약이 사라져야 한다. 그래야 수련병원들도 전공의들이 병원을 떠나지 않도록 수련환경을 개선할 것이다"고 주장했다.
자신을 이동수련의 제약 지침의 피해자라고 밝힌 전공의 B씨는 "나는 전공의에게만 과중되는 업무, 폭력 등 열악한 수련환경으로 인해 어쩔 수 없이 병원을 그만뒀다"며 "병원 내에서 문제를 제기한다고 해결될 일이 아니라고 체념했기 때문에 수련병원을 그만뒀다. 그런데 수련을 중도에 포기했다는 이유로 1년 동안 벌칙처럼 공백기를 가져야 한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았다"고 밝혔다.
B씨는 "지침에 따르면, 사직일로부터 1년이 경과해야 상급년차 지원 자격이 생긴다. 나의 경우, 실제로 1년 6개월 이상을 손놓고 기다려야 했다. 결국 빨리 일을 하고 싶어 다른 수련병원에서 같은 과에 1년차 전공의로 다시 일을 시작했다. 1년 이상의 경력이 있었지만 전혀 인정받지 못했다"고 호소했다.
B씨는 "사실상 전공의가 이동수련할 수 있는 방도는 꽉 막힌 셈이다. 하지만 전공의 이탈 문제는 열악한 수련환경을 개선하지 않고 무작정 전공의들의 이동수련만 막는다고 나아질 문제가 아니다"며 "보건복지부는 이동수련 제약을 완화해 전공의들의 인권을 보장하고 수련병원이 자발적으로 수련환경을 개선하도록 분위기를 조성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복지부 "수련을 중도에 포기하는 전공의들 막기 위한 지침"
보건복지부는 전공의들의 자유로운 이동수련을 제약하는 상급년차 모집대상 제한 지침에 대해 특별히 문제가 될 사안은 아니라는 입장을 보였다. 복지부는 전공의들의 수련병원 이탈로 인해 수련중도포기가 증가하면 수련환경에 부정적인 영향을 줄 것이라는 의학회 등 의료계 단체의 의견을 따른 것이라고 밝혔다.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해당 지침에서 '1년 경과' 조건을 내건 것은 전공의들의 수련중도포기율이 높아지면 전반적으로 수련 환경에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의학회나 여러 단체 의견을 반영한 것이다"고 말했다.
그는 "현재 지침에서 '사직일(해당 지원과목 최종 사직일을 기준으로 함)로부터 수련개시일까지의 기간이 1년을 경과하는 자'라는 내용은 원래 사직일로부터 '지원시점'까지 였는데 전공의들을 위해 '수련개시일'로 개정한 것이다"고 말했다.
전공의 B씨는 "수련병원 지정 및 전공의 정원책정 방침은 오로지 수련병원의 시각에서 만들어진 정책 지침이다. 복지부가 현재 의료계에 만연한 전공의 폭력, 과로사 등 문제를 해결할 의지가 있다면 현장에 있는 전공의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고 호소했다.
B씨는 "복지부는 전공의들을 수련병원에 종속시키는 수단으로 전락한 이동수련 제약을 완화해야 한다. 전공의들에게 이동수련을 할 수 있는 권리를 줘야 한다"며 "상급년차 전공의들의 이동수련 제약 지침으로는 전공의들의 이탈 현상을 막을 수 없고 수련환경 개선도 이룰 수 없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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