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입력시간 22.03.08 10:48최종 업데이트 22.03.08 1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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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도 안 마셨는데 음주단속에 걸리다니…범인은 바로 장내미생물

[칼럼] 김용성 원광의대 소화기질환연구소 교수·것앤푸드헬스케어 CMO

[메디게이트뉴스] 강원경찰청은 지난해 11월 3일부터 올해 2월 28일까지 연말연시 음주운전 집중단속을 벌였는데 단속 건수가 13.6% 증가했다고 한다. 코로나로 사회적 거리두기가 강화되던 시기에 음주운전이 더 늘어났다는 것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 지 모르겠다.  참고로 면허취소는 혈중 알코올농도 0.08% 이상이고 면허정지는 0.03∼0.08%이다. 

사실 한국은 음주운전에 대해 비교적 관대한 편인데, 미국에선 음주운전을 하다가 인사 사고를 내면 그야말로 패가망신일 정도로 처벌이 강하다. 그런데 이렇게 엄격한 나라에서 술도 마시지 않았는데 음주단속에 걸려 병원에 입원까지 했다면 얼마나 황당할까? 소설 같지만 실제 이런 일이 발생할 수 있다. 

지난 2019년에 보고된 노스캐롤라이나에 거주하는 46세 남성의 특이한 증례를 한번 살펴보자.

그는 2011년 엄지손가락 손상으로 항생제를 3주간 복용한 이후 의식변화, 멍해짐, 우울감이 식후에 종종 발생하는 것을 경험했다. 결국 2014년 정신과 치료까지 받았고 안정제와 항우울제 처방으로 약간 호전됐지만, 그 해 음주운전으로 적발돼 강제 입원됐다. 그는 술을 절대로 마시지 않았다고 부인했지만 혈중 알코올 농도는 높게 측정됐다. 그러나 이후 음주측정기로 자가 검사를 해봤을 때 술을 마시지 않은 상태에서도 간헐적으로 알코올이 검출되는 것이 확인됐다. 

증상이 지속되던 중 2015년 대변 배양검사에서 술 발효 효모균인 사카로미케스 케레비시아이(Saccharomyces cerevisiae)가 검출됐고 탄수화물 식사를 했을 때 혈중 알코올 농도가 올라가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는 이 증상의 치료를 위해 미국 전역의 여러 의사들을 찾아다녔으나 증상 호전이 없었고, 급기야 2017년 2월 술에 취한 상태(?)로 넘어져 두개골 내 출혈이 발생하는 바람에 다시 입원했다. 입원 도중 측정한 혈중 알코올 농도는 0.05~0.4 g/1dL 범위에서 변동이 됐는데, 이 정도면 면허정지 수준을 훨씬 넘는 수치다. 

환자는 뉴욕까지 가서 위와 대장내시경을 받고 위장관 분비물 검사에서 곰팡이균 칸디다 알비칸스(Candida albicans)와 칸디다 파라프실로시스(Candida parapsilosis)가 발견됐다. 
 
그림 = 자동 양조 증후군의 발생 기전. Dinis-Oliveira. J Clin Med 2021년

술도 마시지 않았는데 음주운전에 걸리고 만취 상태로 넘어져 뇌출혈까지 발생한 믿기 어려운 이 환자를 술에 취하게 한 범인은 누구인가? 바로 대변 검사에서 검출된 사카로미세스 세레비시아(Saccharomyces cerevisiae), 칸디다 알비칸스(Candida albicans), 칸디다파라프실로시스(Candida parapsilosis)가 위장관 내에서 발효과정을 통해 알코올을 생산한 것이 원인이었다. 위장관으로 들어온 포도당을 장내미생물이 2개의 에탄올(알코올)로 변환시키고 이 알코올이 신체로 흡수돼 증상이 나타나는 질환을 Auto-brewery Syndrome, 즉 자동 양조 증후군이라고 한다. 

이 질환은 Drunkenness Diseases, Endogenous Ethanol Fermentation, Gut fermentation syndrome 등 다양한 이름으로 불리기도 하는데, 알코올 생성은 주로 위장관에서 이뤄지지만 구강 내 칸디다균도 일으킬 수 있다. 이 질환은 1948년 5세 아프리카 어린이에서 처음 보고됐고 1972년 일본에서 12명의 환자가 보고되면서 세계적으로 알려지기 시작했다. 1974년 탄수화물을 섭취한 후 급성 알코올 중독이 발생했던 일본 환자에서는 원인균으로 칸디다 알비칸스(Candida albicans)과 칸디다 크루세이(Candida krusei)가 검출됐다. 최근 40년간 서양에서도 드물게 유사 증례가 보고됐는데, 곰팡이 균이 대부분이지만 폐렴막대균(Klebsiella pneumoniae) 같은 세균이 원인으로 나타난 경우도 있었다. 

자동 양조 증후군의 증상은 경련, 말이 느려지는 것, 낙상, 시야 흐림, 현기증, 졸음, 기억 상실, 혼미, 피로와 같은 급성 알코올 중독, 즉 만취한 사람이 보이는 행동이다. 멀쩡하게 일하던 동료가 갑자기 혀가 꼬이면서 횡설수설하고 비틀거린다고 상상해보면 황당할 수밖에 없다. 또 우울, 기이한 행동 및 정신적 혼란 상태가 동반되기도 하는데 이런 경우 정신질환으로 오인받을 수도 있다. 당연하게도 술 마시고 흔히 경험하는 오심, 구토 설사 복부 불편감 등의 소화기 증상이 동반될 수 있다. 

이 질환은 여러가지 의미를 지니고 있다. 

우선 장내미생물이 대사물질을 통해 뇌기능에 영향을 주는 장내미생물-장-뇌 축의 극단적인 예라고 할 수 있다. 장내미생물이 단쇄지방산이나 신경전달물질을 생성해 인체의 여러 생리적 기능에 영향을 준다는 것이 잘 알려져 있는데, 아예 술을 만들어냄으로써 숙주인 인간의 뇌를 취하게 만들어 급성 변화를 일으키는 것이다. 

두 번째로는 만취증상을 일으킬 정도는 아니지만 소량의 에탄올이 지속적으로 만들어지면 알코올과 연관된 간질환을 일으킬 수 있다는 점이다. 음주를 하지 않는 사람에서 지방간염이 발견되는 경우 비알코올성 지방간질환이라고 부르지만, 실제로는 장내미생물이 만들어낸 알코올 때문일 수도 있다. 지난 2019년 연구에 따르면 중국인 비알코올성 지방간질환 환자의 대변에는 알코올을 생산하는 폐렴막대균(Klebsiella pneumoniae)이 많이 존재하고 있었다. 이 환자들의 대변을 쥐에게 이식하고 포도당을 섭취하게 하면 혈중 알코올 농도가 높아지는 것이 확인돼 장내미생물이 생산한 알코올 때문에 지방간질환이 발생할 수 있음이 증명됐다.

마지막으로 이 질환이 의학적인 측면 외에 대중의 관심을 받게 된 것은 음주운전으로 적발됐을 때 술을 마시지 않아도 취한 상태가 될 수 있다는 법적 다툼의 여지를 제공했기 때문이다. 미국에서는 실제 이 질환을 근거로 음주운전으로 적발된 경우 무죄판결을 받은 경우가 있었다.

그렇다면 이 46세 남성은 어떻게 됐을까? 이 환자는 2015년 효모균이 검출된 후 탄수화물 배제 식이와 함께 항진균제 플루코나졸(fluconazole)과 니스타틴(nystatin)을 교대로 투여했지만 간헐적으로 재발했다. 2017년 두 번째로 칸디다균이 검출된 후 다른 항진균제인 이트라코나졸(itraconazole) 투여와 탄수화물 배제식을 유지하면서 증상이 완전히 호전됐다. 

그러나 그는 치료 도중 피자와 탄산음료를 마시면 심하게 재발했고, 2018년 새로운 항진균제 미카푼긴(micafungin)을 투여하고 나서 비로소 완전히 호전돼 위장관 분비물 검사에서도 칸디다균이 발견되지 않았다. 또 탄수화물 복용 후 음주 측정기나 혈중 알코올 검사에서 더 이상 알코올이 검출되지 않아 2019년 다시 서서히 탄수화물 식이를 시작했고 이후 무증상으로 지내고 있다. 

장내미생물은 인간의 행동에 얼마나 영향을 줄 지 알 수가 없다. 술을 마시지 않아도 술에 취할 수 있다니, 어쩌면 술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는 환영받을 기능일 수도 있겠다. 

확실한 것은 알코올은 장내 미생물 총을 변화시켜 장내미생물 불균형(Dysbiosis)를 유발할 뿐만 아니라 장점막 투과도를 증가시켜 독소가 체내로 침투하는 것을 촉진함으로써 지방간질환을 일으키는 데 기여한다는 점이다.

그러나 실망하기는 이르다. 우리나라만큼 술을 많이 마시는 영국의 연구자들이 3개의 독립적 인구집단 샘플에서 레드 와인을 마시면 장내미생물총의 α-다양성이 증가된다는 것을 보고해 놨으니 말이다.


※칼럼은 칼럼니스트의 개인적인 의견이며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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