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대병원·지역의료원 전공의 공동수련, 당직 의사 파견 아닌 지역전문가 양성 큰 틀이 필요하다
[칼럼] 안덕선 전 의협 의료정책연구소장 세계의학교육연합회(WFME) 부회장
[메디게이트뉴스] 정부는 국립대병원 소속 전공의(인턴 및 참여 과목 레지던트 1년차)가 지역거점공공병원에서 1~2개월의 공동수련 시범사업을 2023년도 상반기부터 시행한다고 발표했다. 시범사업은 국립대병원 5개와 지역거점공공병원 7개가 대상으로 국립대학은 진안, 속초, 영월, 삼척, 청주, 이천, 인천의 지역거점공공병원과 특화된 교육내용을 개발하고, 공공임상교수가 공동수련 전공의 교육·평가·면담 등 교육과정 운영을 전담해 수련의 질을 관리하를 담당하는 수련체계를 골자로 하고 있다.
정부는 필수 의료를 위한 지역전문가 의사 양성을 위해 전공의가 다양한 필수·지역의료 현장을 두루 경험할 수 있도록 한다고 밝혔다. 국립대병원은 수련 현장 확장과 수련의 질 향상을 도모하는 한편 지역거점공공병원은 젊은 의사를 확보해 지역사회 의사 인력 양성의 좋은 사례가 될 것이라는 성과를 예측하기 힘든 주장도 했다.
정부가 전공의를 위해 국립대병원과 지역거점공공병원을 연결해 수련의 지평을 넓혀준다는 고마운 정책인데도 수련의 지평을 넓혀주는 것이 필수의료 대책과 지역에 근무할 젊은 의사를 확보한다는 주장은 선뜻 수긍하기 힘들어 보인다. 더구나 대상 전공의가 의사 초년병인 인턴과 최저년차 전공의인 1년차 전공의로 근무 기간도 1~2개월로 지역전문가가 되기에는 짧아 보인다.
지역전문가 양성이 교육목표라면 총 3~4년 간의 수련 기간 중 최소 3~6개월의 교육과정이 통상적인 전공의 수련 교육의 형태다. 전공과에 따라 아동병원, 암병원, 재활병원, 원호병원, 중중외상센터 등 순환근무가 다양하게 필요한 과목도 있고 전공의에게 3차와 2차 병원의 조화로은 순환근무 경험도 매우 중요한 과목들도 있다. 지역전문가 양성을 염두에 뒀다면 저년차 전공의가 아닌 고년차 전공의에게 충분한 기간 경험을 제공하는 것이 지역거점공공병원 수련 목표에 오히려 부합해 보인다.
공동수련 시범사업, 공공임상교수 제도 당직 근무 경감을 위한 포장?
공동수련 시범사업을 저년차 전공의로 지정한 것은 공공임상교수 제도 존속을 위한 배려가 아닌가 추측된다. 예상외로 낮은 충원율의 공공임상교수가 감당해야 할 과도한 당직 근무를 경감시킬 방안이 공동수련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느낌이다. 이미 다수의 부속병원을 보유한 민간 사립 병원은 전공의 수련을 위해 의료원 산하 병원 간 순환근무가 정착된 대학들도 있다.
공동수련이라는 용어는 아마도 2차 병원 파견 지원 근무가 더 정확한 표현으로 보인다. 2차 병원인 지역거점공공 병원에서 저년차 전공의 수련의 장점은 대학병원 보다 실제적인 임상경험을 더 할 수도 있고 3차 병원보다 높은 수준의 책임이 부여되는 위치에서 근무할 개연성도 높다.
그러나 수련의 성과(Outcome)는 병원의 환자분포와 임상교육 환경, 그리고 임상교육에 대한 기관역량이 관권이다. 공동수련이 성공하려면 지역거점공공병원도 수련병원으로 대학병원과 유사한 교육구조를 갖추는 것이 우선이다. 상대적으로 소수의 공공임상교수에 의한 교육의 한계도 분명히 있다. 1~2개월의 짧은 기간 소속된 기관에서 지역전문가로 달성할 수 있는 교육적 성과가 무엇인지도 아직 불분명해 보인다.
시범사업 참여 지역거점공공병원이 위치한 도시들은 강릉에서 50~60km 떨어진 삼척, 속초와 원주에서 비슷한 거리인 영월, 전주에서 30km의 진안과 수도권인 인천과 이천, 그리고 큰 도시인 청주다. 참여 지역거점공공병원 부근에 이미 민간 병의원이 포진하고 있고 빠르면 환자는 서울까지 1~3시간 내 도착이 가능한 곳이다. 우리나라와 같이 의료전달 체계가 잘 발달이 되지 않고 신속 의료가 특징인 자유 경쟁체제 의료는 다양한 중소병원 모두 당직 의사를 보유해야 하고 단점이 있다.
지역공공병원은 거점병원으로 더욱 강화된 정규 근무시간 외 응급 의료와 공중보건에 대한 책임이 있는 의료기관임에도 충분한 수의 의사도 확보가 어렵고 당직근무에 대한 만성적인 문제가 존재할 것으로 보인다.
당직제도 문제, 해결이 어려운 중요 과제
당직제도에 관한 개선은 우리나라 의료가 해결해야 할 미충족 의료의 중요한 과제의 하나다. 주중 정규 근무시간 의료가 우수한 만큼 일과시간 외의 의료도 수준을 상승시켜야 하는데 복지부, 의료계 모두가 머리를 맞대어 풀어야 할 어려운 숙제로 보인다.
시범사업 당사자인 대한전공의협의회는 정부의 공공수련제도에 대한 입장문에서 지역거점공공병원에 충분한 전문의가 확보되지 않아 이로 인한 부실한 수련과 국립대학병원 파견 전공의가 수련의 질 향상이 목표가 아닌 지방의료원 당직을 위한 저임금 인력지원책이 될 것이라는 우려와 경계의 목소리를 냈다. 이와 함께 공동수련에서 전공의 주 52시간 근무 및 24시간 연속근무 제한 시범사업의 동시 시행을 요구했다. 복지부가 추진하는 2023년 하반기 시범사업 착수에 대한 수련계약 위반사항에 대한 법적 대응도 예고했다.
대전협의 반응을 보면 복지부의 시범사업 추진에 대한 사전공지 미비와 조급함을 지적하고 있다. 공동수련을 위한 전문의 충원이 우선이고 보다 근본적인 전공의 수련교육체계의 변화도 요구하고 있다.
공동수련이 지역전문가 양성이 교육목표의 하나라면 우선 의학회 등 이해당사 전문가 집단을 통해 우리나라 모든 전공의 교육목표의 하나가 돼야 한다. 그리고 지역전문가에 필요한 역량을 도출한 후 교육과 평가에 대한 공동 개발과 합의가 이뤄져야 한다. 지역전문가가 전공의가 갖추어야 할 필수 역량이라면 국립, 사립의 구분이 없이 전공의 모두에게 반드시 제공돼야 하고 전문의 제도에 반영돼야 하는 것이 원칙이다.
지역단위 통합 전공의 교육을 제공하는 영국
복지부의 국립대와 공공지역거점병원 위주의 공동수련 시범사업은 우리나라 전공의교육에서 전국을 대상으로 지역단위 개념에 의한 국립과 사립을 통합한 교육 거버넌스를 고려해 볼 시점임을 알리고 있다. 예를 들어 강원도의 경우 춘천, 강릉, 원주를 중심으로 대학병원과 2차 병원이 연계된 교육수련 단위를 상정해 볼 수도 있다.
영국은 의사 양성을 위해 NHS(국가보건서비스)가 출연한 기구인 MEE(Medical Education England)를 통해 공적 재원으로 전공의 교육을 지원하고 있다. 영국(U.K.) 전체를 England, Scotland, Northern Ireland, Wales 4개의 왕국으로 구분하고 그중 가장 큰 England(英蘭)는 다시 4개의 지역교육훈련위원회(LETBs: Local Education Training Boards)로 나눠진다. 과거 지역단위의 전공의교육(Deanery) 제도가 진화해 현재는 헬스에듀케이션팀(Health Education Team)으로 대체됐다.
잉글랜드(England)의 지역교육훈련위원회(LETBs)는 각각 3개의 HET로 나눠진 북부(North)와 중동부(Midlands and East), 그리고 5개의 HET로 나눠진 남부(South)와 단일 HET인 런던(London)으로 구성돼 있다. 우리나라와 인구나 영토 등 비슷한 규모의 잉글랜드는 전공의 교육을 위해 12개의 지역단위 HET를 갖고 있고, 의과대학과 각종 교육 병원 등이 한 지역단위 HET에 통합해 전공의 교육을 제공한다.
당직 의사 파견제도 아닌 성숙한 전공의 수련과 연결돼야
복지부가 제시한 공동수련 시범사업은 국립대학과 공공지역거점병원을 연계한 것은 교육의 거버넌스를 공공 기관만으로 연결하려는 시도다. 전공의 수련의 질적 향상을 위해서는 더 큰 단위의 지역 개념이 필요해 보이고 향후 의료전달체계 수립에도 유리해 보인다. 수도권 인구가 전체인구의 절반을 차지하는 우리나라의 특성에 지역단위 개념과 함께 자원이 풍부한 수도권 의과대학과 연계방안도 필요할 수 있다. 우리나라에 40개 의과대학이 있으니 실현 가능성이 있다.
정부는 공동수련 시범사업에서 참여 전문과목당 교육과정 개발비 1500만원, 운영비 2000만원을 지원할 계획도 밝혔다. 복지부가 모처럼 전공의 교육을 위해 예산을 사용한다는 것은 반가운 일이나, 평소 의료의 공공성 강화를 강조하며 의사양성교육의 공공성은 외면하는 것과는 매우 다른 모습이다. 아마도 공공임상교수제도의 실패가 줄 영향을 고려한 듯하다. 지역전문가양성을 위한 교육예산이라면 모든 전공의가 갖춰야 할 세부 목표로 설정하는 공론화 작업과 이에 따른 교육과정 개발, 평가 그리고 성과측정 등 정교하고 잘 계획된 수련제도를 만들어야 한다.
수련 교육의 전문성과 적절한 절차가 생략된 채 일부 국립대학과 공공지역거점 병원에 예산지원을 하는 것도 정책적 보완이 필요하다. 보편적이고 일반적인 국가 차원의 전공의교육에 대한 예산지원이 우선이다. 공동수련의 교육과정개발과 교육자 훈련도 아직 되지 않은 상태에서 몇 달 남지 않은 하반기부터 시범사업을 당장 시작하겠다는 것은 뛰면서 생각한다는 한국인 특유의 정서도 잘 보여준다. 시범사업 시행이 급하게 추진되는 인상을 부인할 수 없다.
필수의료의 몰락이 현재 우리나라 의료의 큰 화두이고 필수의료의 정의도 분분하다. 필수의료와 지방의료원 살리기 운동의 하나로 보이는 공동수련시범사업이 당직 의사 파견제도가 아닌 잘 기획된 성숙한 전공의 수련으로 구현되려면 보다 전문성을 바탕으로 면밀한 계획과 절차적 정당성을 전제로 한다. 실제로 공동수련의 최대 이해당사자인 전공의와 정책 제안 초기부터 논의가 필요했던 사안으로 보이는데, 수련계약 위반으로 법적 대응을 하겠다는 똑똑해진 대전협을 보면 아마도 이해당사자와의 민주적 논의는 생략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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