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의과학대학원 설립해 의사과학자 184명 양성…성공 바탕으로 과기의전원 설립 추진 의지
[메디게이트뉴스 서민지 기자] 정부가 바이오·디지털헬스 글로벌 중심국가로의 도약을 위해 의사과학자 육성사업을 국정과제로 추진하고 있으며, 과학적 소양을 바탕으로 임상의 과제를 해결하는 의사과학자가 의료계와 바이오산업의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
KAIST(카이스트)는 글로벌 바이오헬스사업을 선두할 MD-데이터 공학자, AI 전문가 등 의사공학자 양성을 위해 추진해온 의과학대학원의 운영 내역을 보고하고, 이와 함께 바이오의료 분야에 특화된 과학자·공학자 양성을 위해 '과학기술의학전문대학원'을 설립할 계획이라고 12일 밝혔다.
KAIST 의과학대학원에 따르면 정부 인가 후 2년간의 준비 과정을 거쳐 과기의전원 설립이 가능하며, 올해말 확정이 되면 오는 2025년 신입생 모집을 거쳐 2026년부터 개교가 이뤄질 것으로 전망했다. 규모는 50명 정원이지만, 단계적으로 확장할 예정이다. 과기의전원이 설립되더라도 기존 의과학대학원 규모는 변동이 없을 것이라고 부연했다.
앞서 지난 2004년 KAIST는 의과학대학원을 설립해 의사들이 첨단과학 연구역량을 습득할 수 있는 혁신적인 교육환경을 마련하고 현재까지 184명의 의사과학자를 양성, 산·학·연·병 생태계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었다.
국내 이공계대학 최초로 의사를 대상으로 선도 연구자 양성을 위한 의사과학자 양성과정(박사학위)을 시행해 지난 30여년 간 우리나라 의사과학자 양성의 절반 이상을 담당했다.
KAIST 의과학대학원에서는 의학, 생명과학, 자연과학, 공학 등 다양한 학문적 배경을 지닌 28명의 교수진이 연간 총액 330억 원이 넘는 규모의 다학제 융합연구와 교육을 수행하고 있다. 이 같은 연구 환경은 우수한 실적으로 이어져 연간 100편 이상의 SCI급 논문이 의과학대학원에서 발표되고 있다.
발표 논문의 FWCI(논문영향력지수)의 평균도 3.59에 달한다. 세계 상위 20개 대학의 FWCI 평균값은 2.06이다.
KAIST 측은 "의과학대학원의 연구가 질적으로 높은 수준을 유지하는 데는 연구풍토로 자리잡은 '문제해결형' 접근법이 큰 역할을 했다"면서 "이는 해결할 과제와 목표를 명확하게 정의하고 현재 보유한 자원을 고려해 해결 전략을 수립하는 공학적 방법론"이라고 밝혔다.
대표적인 사례가 코로나19 팬데믹 기간 중 의과학대학원 신의철 교수가 수행한 연구다. 신 교수 연구팀은 코로나19 대응 방안을 모색하는 과정에서 바이러스에 대한 인체 면역반응의 특성을 규명해 코로나19 환자의 치료 전략을 마련하는 데 기여했다.
KAIST 측은 "공학적인 방법론 덕분에 의과학대학원은 임상 현장에서 해답을 찾기 어려운 문제를 해결하는 데 탁월한 역량을 보인다. 김진국 교수는 데이터 과학을 기반으로 진단 프로세스를 설계해 유전체 분석으로 희귀질환을 조기에 찾고 환자맞춤형 치료제를 개발하는 방법을 제시했다. 김 교수의 성과는 난치병 치료에 중대한 돌파구도 마련했다"고 설명했다.
의과학대학원 박종은 교수 연구팀은 인공지능을 활용한 빅데이터 분석을 바탕으로 신개념 암 치료에 활용할 수 있는 ‘스마트 면역세포’를 개발하는 데 성공했다. 박 교수 연구팀의 출발점 역시 데이터과학과 인공지능으로, 연구팀은 KAIST 내 협력 연구를 통해 수백만 개의 세포에 대한 유전자 발현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하고 종양세포와 정상세포 간 유전자 발현 양상 차이를 찾아내는 딥러닝 알고리즘을 개발했다.
의과학대학원의 질병문제 해결에 집중한 혁신적인 연구는 의과학대학원 교수와 졸업생의 딥테크 기반의 바이오 벤처 창업으로 이어지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로 의과학대학원 주영석 교수와 이정석 교수는 지놈인사이트를 공동으로 창업했다. 지놈인사이트는 세계 최초로 전장유전체분석(WGS·Whole Genome Sequencing) 기반 암 정밀진단 플랫폼을 만들고, 샌디에이고로 본사를 이전하여 적극적인 해외 진출에 나서고 있다. 최근 WGS 기반 암 정밀진단 서비스 ‘캔서비전(CancerVision)’을 미국에서 출시했다.
이외에도 김필한 교수(아이빔테크놀로지(주), CEO), 이정호 교수(소바젠(주), CTO) 등 약 10명의 교원이 6개 기업을 창업했으며, 의과학대학원을 졸업한 의사과학자들도 인공지능을 기반으로 한 의약개발 솔루션 기업 온코크로스 등 창업이 이어지고 있다.
또한 연구 성과를 기반으로 의과학대학원의 고규영 교수(특훈교수)는 2023년 대한민국 최고 과학기술인상을 수상했고, 신의철 교수와 함께 기초과학연구원(IBS) 연구단장으로 활동중이다. 의과학대학원 교수 세 명이 한국연구재단의 개인기초 리더과제에 선정됐으며, 네 명이 서경배과학재단의 신진연구자 지원 프로그램에 선정됐다. 졸업생들은 지난 수년간 분쉬의학상과 아산의학상의 젊은의학자부문, 연강학술상등 젊은과학자에게 수여하는 상의 다수를 수상했다.
의과학대학원은 KAIST가 보유한 탄탄한 글로벌 네트워크를 바탕으로 국제적인 교류에도 본격적으로 나섰다. 지난 4월에는 미국 보스턴에서 세계적인 연구중심 병원인 하버드의대 매사추세츠 종합병원(MGH) 및 바이오테크놀로지 기업 모더나(Moderna)와 MOU를 체결했다. 이를 바탕으로 향후 보스턴에 소재한 바이오의료 분야 기관들과 의과학자 양성을 위한 공동연구, 인적교류 등 국제 협력을 이어나갈 계획이다.
KAIST 의과학대학원이 적지 않은 성과를 낳았지만 여전히 우리나라의 의사과학자는 부족한 실정이다. 현재 우리나라의 의사과학자는 전체 의사의 1% 미만으로 미국 등 선진국과 비교하면 턱없이 적다.
최근 25년간 노벨 생리의학상 수상자의 37%, 글로벌 상위 10개 제약회사 대표 과학책임자의 70%가 의사과학자다. 코로나를 겪으며 한국에서도 임상 현장과 최신 연구를 연결하는 가교 역할을 하는 의사과학자 양성이 더욱 절실해졌다.
임상을 위한 기초 이론을 연구하는 의사과학자를 넘어, 진단이나 치료의 효율적인 프로세스와 방법론을 개발하는 의사공학자의 역할에 대한 인식이 커지고 있지만 의사공학자의 양성은 거의 전무하다. 바이오헬스 산업생태계를 구축하려면 두 부류의 인재가 모두 필요하다.
KAIST 측은 "AI와 빅데이터를 이용한 연구와 진단 및 치료제 개발이 일반화될 것을 고려할 때 의학에 대한 공학적인 접근이 가능한 의사공학자의 양성을 더욱 시급하다"면서 "디지털 의료라는 현재의 바이오의료 패러다임 전환을 이끄는 주축은 다름아닌 애플, 구글, IBM 아마존, NVIDIA와 같은 이른바 ‘빅테크’다. 우리나라에서는 과학과 공학을 기반으로 바이오의료의 문제를 해결하려는 의사과학자와 의사공학자가 부족해서 세계적인 흐름을 따라잡기 쉽지 않다"고 했다.
이어 KAIST는 "메디컬 산업의 대전환에 대비하고자 새로운 도전을 준비하고 있다. 그간 축적해 온 의사과학자 양성 시스템과 노하우를 기반으로 ‘과학기술의학전문대학원(과기의전원)’의 설립을 추진하고 있다"면서 "과기의전원은 의학교육 단계부터 과학 및 공학적 소양을 갖춘 의사공학자를 양성하고 이후 박사과정을 통해 MD-데이터공학자·AI전문가·전자공학자·신약개발자 등으로 양성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고 밝혔다.
과기의전원 신설은 현재의 의과학대학원만으로 미래의 바이오의료 환경에 완벽하게 대응하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의과학대학원은 기존의 의과대학을 졸업한 의사를 대상으로 운영되는 프로그램으로 생명과학분야의 연구에는 탁월한 성과를 냈지만, 공학분야에서는 아직 성과가 미약하다.
이는 의과학대학원 연구자의 학술적 배경이 의학이다 보니 지금처럼 전공자도 따라잡기 벅찰 만큼 빠르게 발전하는 공학적 자원을 자유자재로 활용하기는 어렵고, 최신 기술적 성과를 신속하게 의료 분야에 접목하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과기의전원은 과학과 공학을 기반으로 의학적 소양을 갖춘 인재를 양성하는 데 목표를 둔다. 이에 따라 의학교육단계부터 시작하는 MD-PhD 융합 과정을 운영할 예정이다.
KAIST는 "급변하는 기술과 산업 트렌드를 바이오의료와 실시간으로 조화시키는 특화된 인재를 양성해 바이오의료의 최신 연구 성과가 산업계에 조기에 안착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라며 "무엇보다 학부 때부터 공학 기반 의료라는 특화된 교육을 실시한다면, 과학·공학박사와 임상의 훈련 과정을 모두 거쳐야 했던 기존의 의사과학자 양성과정에 비해 훨씬 신속하게 바이오의료 산업에 필요한 전문가를 공급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편 우수한 과학기술 인재에게는 '공학과 의학의 융합'이라는 새로운 진로를 제시, 의료 분야를 지망하는 우수한 인재들이 자신의 관심사를 좇아 연구자의 길을 선택하는 데 기여할 것으로 기대했다.
KAIST는 "기존의 의학이나 공학과 전혀 다른 융합교육을 받은 혁신 인재들이 바이오헬스 산업의 주역으로 성장한다면 우리나라도 연간 2조달러가 넘는 글로벌 바이오 헬스산업 시장의 퍼스트무버(First-mover)에 당당히 이름을 올릴 수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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