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입력시간 20.12.18 06:16최종 업데이트 20.12.18 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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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COVID'의 장기간 사고뭉치(long-haulers) 상태를 어떻게 깨우나?

[칼럼] 배진건 이노큐어 테라퓨틱스 수석부사장/사내이사·우정바이오 신약클러스터 기술평가단장

사진: 게티이미지뱅크

[메디게이트뉴스 배진건 칼럼니스트] '깨어남(Awakening)'을 아십니까? 100년전 전 세계를 휩쓴 '스페인독감' 후유증으로 '기면성뇌염(嗜眠性腦炎, encephalitis lethargica, EL)'에 걸려 1920년대부터 수십 년간 얼어붙어 시체나 다름없는 상태로 살아온 사람들이 폭발적으로 깨어나고 눈부시게 되살아난 변화를 기록한 책의 제목이다. 올리버 색스(Oliver Sacks) 박사는 1960년 중반 뉴욕의 요양시설인 마운트카멜병원에서 제1차 세계대전 직후 EL이 유행한 이래 40년 넘게 꼼짝없이 그 병에 갇혀 있던 환자를 처음으로 만났다. 수면병(睡眠病)으로도 불리는 EL은 뇌수에 염증이 생겨 일어나는 신경계 질환이다. 색스 박사는 EL 환자들에게 '잠을 깨우는' 놀라운 신약 엘도파(L-DOPA)를 투약하기 시작한다. 엘도파를 처방받은 환자들의 첫 반응은 행복이었고, 눈부신 '깨어남'의 축제였다.

그러나 '기적의 신약' 엘도파의 효과는 계속되지 않았고 특정한 부작용을 일으켰다. 즉 돌발적이고 예측 불가능한 반응의 변이, 엘도파에 대한 극도로 민감한 반응, 그리고 투약 용량과 그 효과를 정확하게 맞추기 불가능하다는 사실에 직면했다. 올리버 색스는 의사이자 목격자로서 환자 한 명 한 명이 보였던 치료적 반응과 증상의 변화의 흥미로운 이야기들을 쉽고 재미있게 그리고 감동적으로 기술해 '깨어남'이란 제목의 책을 1973년 출간했다. 

이 환자들의 EL은 어디서 기인한 것일까? 제1차 세계대전 무렵 유럽과 미국에서 유행했지만 1930년부터는 보고되지 않고 있는 뇌염 후 후유증으로 생기는 파킨슨병을 앓는 사람들을 가끔 볼 수 있었다. 원인은 스페인독감이라 불렸던 고(高)병원성인 H5N1형 인플루엔자 바이러스다. 역사가 미래를 암시한다. 런던의 임페리얼 칼리지 신경정신약리학과 데이비드 뉴트 교수는 1957년 영국에서 인플루엔자 팬데믹 이후 1970~1980년대 심각한 우울증을 앓았던 환자들을 치료한 경험을 말했다. "그들의 우울증은 매우 뿌리 깊었습니다. 마치 감정적인 회로가 모두 꺼져있는 것 같았어요." 올리버 색스의 '깨어남'에 기술한 환자들과 매우 유사하다. 뉴트 박사는 같은 일이 더 큰 규모로 다시 일어날 수 있다고 경고했다. 그의 경고가 코로나19로 현실이 됐다.

'Could COVID delirium bring on dementia?'라는 제목의 News Feature가 12월 3일자 '네이처'에 실렸다. 이 흥미로운 분석 기사를 이해하려면 일반인이 잘 모르는 섬망(譫妄, delirium)이라는 질환을 먼저 알아야 한다. 섬망은 의식과 지남력(날짜, 장소, 사람에 대한 정확한 인식)의 기복을 주된 특징으로 하는 질환이다. 섬망은 갑자기 혼란스러운 느낌을 받으며 떨림을 느끼거나, 주변 상황에 대한 관심이 급격하게 떨어지는 것과 같은 증상을 의미한다. 주의력 저하, 언어력 저하 등 인지 기능 전반의 장애와 정신병적 장애가 나타난다고 한다. 섬망은 혼돈(confusion)과 비슷하지만, 과다행동(안절부절못함, 잠을 안 잠, 소리 지름, 주사기를 빼냄)과 생생한 환각, 초조함, 떨림 등이 자주 나타난다. 특히 중환자실에서 섬망 발생의 중요한 요인은 친숙한 존재와의 격리, 부동상태(immobilization)및 억제, 치료를 위한 기계화된 환경에 노출, 검사들로 인한 수면 박탈, 밤과 낮의 구별이 되지 않는 등의 환경적인 발생 요인이다. 의사나 과학자들은 섬망이 어떻게 일어나는지 메커니즘에 대해 전혀 모르지만 70%의 섬망은 치료될 수 있다고 한다.

최근 'American College of Chest Physicians'에서 발표된 데이터에 의하면 코로나19로 중환자실 ICU에서 치료받은 ~2000명의 환자 중에서 55%가 섬망을 경험했다. 이 숫자는 전향적 연구 결과들을 바탕으로 '2015 meta-analysis'에 보고된 31%보다 높다. 또한 지난 데이터를 보면 섬망을 한번이라도 경험한 환자들이 나중에 치매와 같은 뇌질환으로 진전되는 경우가 매우 높았다. 역으로 뇌질환을 가진 환자들이 섬망을 경험하기도 한다. 가족이나 친구가 환자의 병상에서 같이 있으면서 심신을 도우면 섬망 이전보다 안정적인 삶을 맞이하게 된다. 섬망에 영향을 끼치는 환경적 요인을 조절하는 것이 중요하지만 코로나19 병실에서는 가족의 도움을 줄 수도 없는 것이 안타까운 현실이다.

코로나19는 어떤 이들에겐 가볍게 스쳐 지나가는 질병이지만, 또 다른 이들은 피로감, 통증, 호흡 곤란 등을 오랜 기간 겪는다. 코로나19 팬데믹 발생 초기 대응의 초점은 감염된 바이러스의 숫자를 낮춰 인명을 구하는 데 있었다. 그러나 팬데믹이 장기화되면서 감염 이후 장기적 증상을 겪는 이들에 대한 인식이 높아졌다. '롱 코비드(Long COVID)'라 불리는 이 같은 상태는 지속적인 사고뭉치(long-haulers)가 돼 감염 경험자들의 삶의 질을 크게 떨어뜨린다. 잠깐의 산책만으로도 완전히 지친다는 이야기들이 흔하다.

만성피로증후군(Chronic Fatigue Syndrome, CSF)처럼 지속적인 심각한 불쾌감은 코로나19 장기적 영향 중 가장 이해되지 않는 후유증으로 손꼽히고 있다. 페이스북에는 자신을 'long-haulers'라 말하는 그룹이 수천 명이 있다. 이들은 침대에서 일어나거나 몇 시간 이상 일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호소하고 있다. 이태리 로마의 한 병원에서 퇴원한 코로나19 환자 143명을 대상으로 한 연구에 따르면 증상이 시작된 후 평균 2개월 동안 53%가 피로감을 호소했다. 또 이들 중 43%가 숨가쁨을 경험했다고 밝혔다. 중국의 환자를 대상으로 한 연구에 따르면 추적 대상 환자의 25%가 3개월 뒤에도 폐 기능이 제 기능을 발휘하지 못했고 16%가 여전히 피로하다고 밝혔다. 이런 수수께끼 같은 CFS는 근육통성뇌척수염(myalgic encephalomyelitis)으로도 불린다.

"코로나19에서 완치됐다"는 것이 가능할까? 코로나19의 감염과 증식은 호흡기 상피세포 내에서 발생하므로 바이러스 수가 PCR 검사에서 두 번 영속 음성이 나와도 표현을 잘 못 쓰지만 완치는 아니다. 바이러스의 숫자가 음성이라는 것은 비인두에서 면봉으로 채취한 샘플이 검색창 이하로 떨어졌다는 것뿐이다. 다른 기관이나 세포내에서 적은 양의 바이러스가 존재할 수가 있다. 이를 뒷받침하는 증거는 코로나 사망자의 부검을 하면 폐뿐만 아니라 다른 장기에도 바이러스가 퍼져 있는 것을 육안으로도 관찰할 수 있는 것이다.

코로나19 중증을 앓았던 환자 가운데 일부는 섬망과 같은 합병증을 경험하고 혼란과 기억 상실을 포함한 인지장애가 급성 증상이 사라진 뒤에도 얼마 동안 지속한다는 보고들이 속속 나오고 있다. 바이러스가 뇌를 감염시킬 수 있기 때문인지 아니면 이런 증상은 염증에 따른 이차적인 결과인지 여전히 분명하지 않다. 하지만 현재 전 세계적으로 300편 이상의 연구가 '코로나19 환자들에게서 신경학적 이상 증세가 나타났다'고 보고하고 있다. 이에 따르면 증상은 두통, 후각 상실, 감각 이상 같은 가벼운 증상은 물론 실어증, 뇌졸중, 발작과 같은 심각한 형태로도 나타난다. 바이러스가 두뇌의 도파민 뉴런과 중추신경계에 영구적이고 심대한 손상을 입혔다. 어떻게? 아마도 바이러스가 BBB를 넘어 뇌에 침투해 이런 결과를 만들어낸 것이다.

물론 코로나19로 인해 신경학적 이상이 나타나는 것은 폐 질환보다 흔치 않다. 폐에 이상이 있는 환자들은 인공호흡기를 착용할 수 있다. 신장에 이상이 생기면 투석기로 치료를 받을 수 있다. 인공호흡기와 투석기 때문에 운이 좋게 폐와 신장의 회복도 가능하지만 현재 인류에게 두뇌를 위한 인공호흡기나 투석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많은 연구자들은 (폐 기능 이상으로 인한) 두뇌 산소 결핍이나 인체의 염증 반응의 산물(유명한 '사이토킨 폭풍')의 간접적인 결과로 신경학적 이상이 나타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지금 우리는 코로나19 유무 증상만 먼저 관찰하기에 롱 코비드의 원인은 여전히 의문으로 남아 있다. 코로나19를 앓고 중환자실에서 퇴원한 사람들은 신경학적 손상 여부에 대해 장기간 체계적으로 관찰을 받아야 한다. 두뇌의 신경전달물질 양의 변화 등 신경학적 이상에 주목하지 않는 것이 우려된다.

또한 코로나19는 반대로 면역체계 일부를 과도하게 활성화하고 몸 전체에 해를 끼치는 사례도 보고되고 있다. 코로나19 사태 초기 미국과 유럽에서 일부 어린이들 사이에서 이른바 '어린이 괴질'로 불리는 다기관염증증후군(multisystem inflammatory syndrome in children, MIS-C)이 나타났다. 이 면역 과잉 반응은 코로나19를 앓고 있는 성인 중증 환자(MIS-A)에게서 도 나타나고 있다. 예일대학교(Yale University)의 아키코 이와사키(Akiko Iwasaki) 교수는 코로나19 완치 후 제거되지 않고 남아 숨어있는 'reservoir virus'가 자가항체(autoantibody)를 유도한다는 다소 혁신적인 가설을 주창한다. 어떤 자가항원(autoantigens)이 자가항체를 유도하는가?

어떤 T세포가 자가 반응(autoreactive T cells)하는가? 이런 면역체계에 대한 질문 외에도 코로나19는 남자와 여자를 왜, 어떻게 구별하는가? 실제로 남자 중증 환자가 여자보다 많고 사망률이 높다. 반대로 왜 여자에서 long-haulers가 더 많은가? 코로나19를 경험한 사람들이 정상적인 삶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하려면 이런 여러 신경 장애와 면역체계에 대한 질문에 답하기 위해 더 추적해 연구해야 할 것이다.

"나는 인간이 어떤 부분을 상실하거나 손상당한 상태에서 그것을 이겨내고 새롭게 적응해가는 과정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다." -올리버 색스-


※칼럼은 칼럼니스트의 개인적인 의견이며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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