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약CEO 대담회서 FDA 대비 부족한 규제과학 시스템 지적·인력난 호소·신약개발 의지 꺾는 약가제도 개선 촉구
[메디게이트뉴스 서민지 기자] 국내 바이오헬스산업 혁신과 발전을 위해 민·관할 것 없이 천문학적인 R&D 투자를 이어가지만, 아직까지 블록버스터급 신약도 나오지 못했고 글로벌 시장 점유율은 1%대에 그치고 있다.
가장 큰 원인으로는 담당부처에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국내 허가심사 등 의약품 규제과학 시스템이 부실하고 예측가능성이 떨어지며 담당 인력의 수와 전문성이 부족한 데 기인한다는 것이다.
가톨릭대 오일환 교수를 비롯 셀트리온·SK바이오사이언스·동아에스티·한미약품·휴온스글로벌 대표는 지난 13일 한국제약바이오협회가 개최한 바이오헬스 산업 육성 신년 대담회에서 이 같은 문제를 지적하면서 규제과학 인력 인프라 개선과 프레임 전환을 촉구했다.
발제를 맡은 오일환 교수(식품의약품안전처 중앙약사심의위원회 위원장)는 현재 R&D 투자가 대폭 증가하고 기술도 발전하고 있으나 국내 제약바이오산업의 경쟁력은 하락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오 교수는 "미래를 위한 투자로서 국내 바이오산업의 R&D 투자는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으며, 올해 예산은 29조8000억원으로 전년대비 8.8% 증가했다. GDP 대비 R&D 투자는 세계 2위, 정부 투자는 세계 1위"라며 "그러나 바이오산업의 국가경쟁력은 하락하고 국산신약도 22년간 34개에 그친다. 이마저도 연매출 100억원 이상은 5개에 불과하고 7개는 사라졌다"고 밝혔다.
글로벌 바이오의약품 시장 점유율 역시 미국은 40.5%, 유럽 13.2%, 중국 11.8%지만, 우리나라는 1.3%에 그치고 있다고 부연했다.
이 같은 원인으로 부처별로 분산된 R&D 투자와 바이오 핵심 인프라 부족, 선진국에 비해 현격히 부족한 규제과학 인력과 시스템, 바이오·의학 분야의 인력난 등을 지목했다.
오 교수는 "다른 국가와 달리 한국은 과기부, 산자부, 복지부, 식약처 등이 참여하는 범부처사업이 많지만, 문제는 각 연구사업들이 연계성을 가지지 못해 투자효율이 저조하다는 점이다. 연구개발 지원이 분절되다보니 기초연구 이후 후속과제 지원 비율은 10.7%에 불과하다"면서 "핵심 인프라 제조, 생산, 시험시설과 소부장이 부족해 임상시험 준비와 시스템 가동에만 수년이 걸리게 된다"고 말했다.
또한 "1년간 중앙약심을 진행하면서 규제과학 인력과 인프라가 매우 부족하다는 점을 실감했다. 실제 의료제품의 허가심사인력을 비교하면, 미국 FDA는 8051명, 유럽 EMA는 4000명, 캐나다 HC는 1160명, 일본 후생성은 566명인 반면 한국 식약처는 228명에 그쳤다"면서 "의약품 개발과정의 데스밸리(죽음의 계곡)를 효율적으로 극복하려면 기획단계부터 함께 달리고 지원하는 전주기적 맞춤형 규제 서비스 시스템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FDA는 품목허가를 신청한 후가 아니라, 수요가 있는 것들을 선제적으로 준비하고 평가해 제품 개발 완료시점이 되면 바로 심사·승인이 가능한 시스템이다. 개발 과정에서 과학적·규제적 자문을 지원하고 투입 인력도 많아 심사 소요기간도 매우 짧다. 실제 킴리아는 이 같은 규제과학 지원체계를 토대로 상용화까지 통상 기간의 절반인 4.5년이 걸리는 데 그쳤다.
오 교수는 "의약품이 자동차면 규제과학은 도로다. 규제과학이 제대로돼야 국가 바이오산업 경쟁력도 강화될 수 있다"면서 "식약처가 제약사와 한 팀을 이뤄 맞춤형 규제를 추진하는 시스템을 가동하고 신기술을 적극적으로 대응할 수 있도록 식약처 인력을 확대하고 역량과 전문성도 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SK바이오사이언스 안재용 사장은 "코로나19 백신의 3가지 프로젝트를 추진하면서 전주기 컨트롤타워의 필요성을 실감했다. 식약처 전문인력을 확충해 신약개발 전주기 과정에서 일관되게 팔로업하는 것이 필요하며, 선제적인 가이드라인을 제시해야 한다"면서 "식약처가 이번 코로나19 백신·치료제 개발 신속화를 위해 TF를 구성, 해당 기업들에게 맞춤형 사전 컨설팅과 신속심사를 제공했고, 이를 통해 코로나19 프로젝트들이 성공적으로 가고 있다. 이를 모든 신약개발에 적용할 수 있도록 시스템화해야 한다"고 밝혔다.
안 사장은 "이를 추진하려면 절대적인 인력부족 문제부터 해소해야 하며, 빠르게 발전하는 기술을 공부하고 역량도 강화해야 한다. 이와 함께 국내 기업들이 효율적인 해외 진출을 도모할 수 있도록 글로벌 파트너십을 구축하는 것도 필요하다"고 부연했다.
동아에스티 엄대식 회장도 "비임상 혹은 그 이전 단계부터 개발 타당성을 검토해야 하는데, 기존 사례가 없는 혁신신약(First in class)은 개발 계획과 방향을 세우는 것부터 어려움이 많다"면서 "관련 법령과 가이드라인을 선제적으로 제안하는 컨트롤타워가 있다면 신약개발 성공가능성을 높일 수 있다"고 말했다.
또한 "최근 업계 R&D 수준이 높아지고 그 양도 많아졌다. 식약처가 TF 구성, 전문심사관 채용 등으로 대응역량을 강화하고는 있으나, 아직까지 부족한 상황"이라며 "게다가 전문심사관을 계약직으로 채용해 심사연속성 측면도 우려되며 지방청의 경우 사무관, 연구관이 없는 곳도 있다. 업체 입장에서는 경력이 적은 심사관이나 주무관에 의존해야 한다"면서, 정규직 공무원과 사무관, 연구관 등의 TO 확충 등 전면적인 재검토를 촉구했다.
휴온스글로벌 윤성태 부회장은 "식약처 인력 부족으로 자료 검토 기간이 지연되고 보완 요청 등도 늦어지면서 심사와 상용화 역시 지연되는 문제가 발생한다. 식약처 인력을 보강해 품목허가기간을 대폭 단축시켜야 한다"고 했다.
한미약품 권세창 사장은 "임상시험계획(IND)을 승인하기 전 식약처는 모든 서류를 검토하고 통과해야만 임상에 돌입할 수 있으나, FDA는 홀딩이슈와 논홀딩이슈를 나눠 논홀딩이슈만 보완하면 일단 임상을 진행하게 해줘 기간을 대폭 단축시켜준다"면서 "또한 기업들에게 있어서 예측 가능성이 매우 중요한데, FDA는 비용은 많이 들지만 외부자문위원 옵션 시스템이 있어 지속적으로 임상을 보완해 성공가능성을 높일 수 있다"고 규제과학 시스템 개선 필요성을 제안했다.
식약처도 이 같은 인력 문제에 크게 공감했다. 강석연 의약품안전국장은 "제약바이오기업들은 세계로 나가고 있는데 식약처는 그간 눈앞의 일을 해결하는 데만 급급했다. 헬스케어산업 전환기를 맞아 식약처도 미래를 내다보고 규제의 틀을 개발, 준비해야 한다"면서 "이를 위해서는 양적인 보강과 함께 역량도 향상시키고, 관련 예산을 확보해 글로벌로 나가는 규제기관이 되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밝혔다.
김강립 식약처장도 "코로나19를 겪으면서 규제당국이 바뀌면 어떤 효과가 나오는지 확인했다. 미래를 다른 각도로 보는 도약의 기회였다"면서 "규제장벽 함께 넘을 수 있는 기관, 기업과 함께 가는 서비스 기관으로 거듭나겠다. 규제를 완화한다는 뜻이 아니라 국제 수준의 안전·효과성 검증을 하되 적극적으로 소통·지원을 하겠다는 의미다. 이를 위해 인적자원 확충과 직원역량 개발을 추진하겠다"고 강조했다.
신약개발 동기부여는 '약가'…임상3상 직접 지원 불가→펀드 조성 추진
한편 한국에서도 블록버스터 신약이 나올 수 있도록 임상3상시험에 대한 지원과 함께 신약개발 동기부여를 위한 약가제도 개편이 필요하다는 주장도 나왔다.
동아에스티 엄대식 회장은 "현재 과민성방광치료제 임상3상에 들어갔는데, 각 단계에 들어설 때마다 개발비용 회수 가능성여부로 인해 중단과 지속에 대해 고민했다. 국산신약 약가가 너무 낮다보니 중간에 포기하는 사례도 많은 실정"이라며 "혁신신약, 글로벌 블록버스터 신약이 나오려면 신약개발에 나설 동기부여가 필요하며, 이를 위해서는 개발비를 회수할 수 있는 약가구조부터 마련해야 한다. 보험재정 건전성 등 쉽지 않은 부분이 있으나 보건의료산업 발전 측면에서 동기부여를 확대하는 방안을 적극적으로 고민하고 시행해야 한다"고 말했다.
셀트리온 강신재 사장은 "바이오텍들이 많은 기술을 가지고 있지만, 임상3상까지 가기에는 경제적 여건이 부족하다. 특히 개발비 회수를 위해서는 내수에 그치지 않고 세계시장 진출을 위한 글로벌 임상이 필요하다"면서 "정부가 이에 대한 경제적인 지원을 해야 한다"고 했다. 한미약품 권세창 사장도 "신약개발에서 가장 많은 비용 드는게 3상임상시험인데, 임상연구비 지원은 2상까지만 이뤄진다. 3상도 지원이 된다면 라이선스아웃 없이 직접 국내사들이 글로벌 시장에 도전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이에 대해 보건복지부 이형훈 보건산업정책국장은 "대부분 제약바이오기업들이 재정적인 이유로 3상을 포기하고 글로벌 기술수출을 추진하고 있다. 임상3상 지원 필요성을 인정하지만, 통상 이슈로 인해 3상에 대한 직접적인 지원을 할 수 없다"면서 "다만 펀드를 조성해 위험을 공유하는 방식으로 지원하겠다"고 했다.
이 국장은 "제약협회도 5조원대의 메가펀드 조성'을 대선공약으로 제안했는데, 복지부도 그 필요성에 대해 공감하고 올해 500억원대의 글로벌 백신 펀드를 추진하고 있다"면서 "지금은 미약하지만 추후 공공기관, 제약사 등과의 협의를 통해 바이오펀드를 조성하고, 신약개발로 이어질 수 있도록 돕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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