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의료 파업의 주된 원인이 의대 정원 증원 반대였을 정도로 의료계의 반대가 거세지만, 국회와 정부는 여전히 의대 신설 주장의 끈을 놓지 않고 있다. 21대 국회 들어서 여야가 발의한 의대 신설 법안은 8건에 달하며, 새 정부 들어서도 의대 신설이 주요 국정과제로 채택될 가능성이 커졌다. 의료계는 의대 신설에 대해 막대한 예산 낭비는 물론 필수의료 기피 현상을 해결할 수 없다고 지적한다. 메디게이트뉴스는 의료계 주요 오피니언리더들과 함께 반복되는 의대 신설 주장의 폐해와 부작용을 낱낱이 파헤쳐본다.
[메디게이트뉴스] 낙수효과(trickle down effect)는 사회경제면의 뉴스에서 자주 인용되는 표현이지만, 실은 공식적인 경제학 이론이 아니다. ‘물을 넘쳐 흐를 정도로 부으면 바닥까지 적실 것이다’라는 뜻이나 이는 1904년 사회학자 게오르그짐멜(Georg Simmel)이 패션계의 유행 현상을 설명하기 위한 가설로 제안한 게 그 시초였다.
부유층의 지위를 나타내는 패션을 하위집단이 모방하는 모습에 대한 이 가설은 이후 미국의 제41대 대통령 조지 부시가 1992년까지 경제정책으로 채택하면서 잠시 부상하게 된다. 대기업과 부유층의 투자 증대를 통해 양적 증가를 이루면 이것이 물이 흐르듯 소기업과 소비자에게 혜택으로 돌아갈 것이라고 기대했지만, 결과적으로 그 파급효과가 미미해 차기 정권 출범과 함께 폐기되고 만다.
위중한 보건의료 핵심현안에 대한 낙천적이고 순진한 기대
우리사회의 의대 신설 주장과 관련된 반복적이고 소모적인 논의는 경영학적 근거가 빈약한 낙수효과 수준에 머물러있다. 의료 현장에서 ‘필수인력, 공공성의 영역이 취약하니 인적 공급을 늘리면 자연히 그 결핍이 해소될 것’이라는 이상적이라기보다 낙천적이기만 한 기대에는 과정의 논리가 애초 부재하며 부작용의 미래 예측이 없다.
다만 ‘OECD가 발표하길 의사 수가 부족하다, 간호협회가 주장하길 의사 수가 부족하다, 지자체가 보고하길 우리 지역에만 의대가 없다’라는 것이 그 양성 비용과 기간에 있어 가장 높은 수준을 보이는 의사 인력을 늘리자는 주장의 고착된 이유로 작용하고 있다.
한국의 의료진들은 기술적 실력에 있어 G7 중에서도 최상위에 해당하는 유수의 수준이나, 이를 다루는 한국 사회의 정책적 의사결정의 역량은 한참 뒤떨어져 있음을 국민들은 지속적으로 체감하고 있다. 사회경제적 파급효과에 눈감은 채 지역구 챙기기나 정당의 정치적 이득에 의해 결정되기에는 우리의 의료환경이 국민건강에 너무도 직접적이며 필수의료의 위기는 치명적이다.
건강 보험 수가의 원가보전율(62%, 연세대 보건정책 및 관리연구소, 2018)이나 뇌질환의 수술 수가 격차(뇌동맥류 경부 클립핑 1개소 일본 1140만원, 한국 242만원, 2022)와 같은 현장의 팩트를 제시해도 ‘의사들의 밥그릇 싸움과 돈 밝히기’의 클리셰로 감정적인 여론을 유도해 국가보건의료 경영의 파국을 유발하는 측이 과연 국민의 건강과 생명을 책임질 것인지 깊은 우려를 하지 않을 수 없다.
현장의 수요와 문제해결이 가능한 고도화된 입안 필요
따라서 한국의 보건의료 환경에 있어 미래의 패러다임은 순진한 낙수효과를 기대하는 무조건적인 양적 증가, 성급한 산업화가 돼서는 안 된다. 첨단화된 의료기술과 의료진의 수준을 반영한 고도화된 예측과 대안 제시가 모든 보건의료정책의 기본이 돼야 한다. 기존의 의료 자원과 인프라를 최대한 활용하여 효율성을 제고하는 창의적인 입안이 우선적으로 시도돼야 한다.
보건의료는 이미 현장의 실질적인 수요(needs)와 문제해결(problem solving)이 그 질을 결정하는 단계에 와 있다. 인기영합이나 서비스 복지의 근시안적 정서적 착안으로는 급속도로 노화하고 있는 초고령 사회의 국민을 보호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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