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디게이트뉴스 임솔 기자] 제40대 대한의사협회장 최대집 당선인은 8일 결의문을 통해 “이대목동병원 신생아 사망사건에서 의료진을 희생양으로 삼아 사법 처리해선 안 된다. 정부는 실질적인 문제점을 조사하고 대한민국 중환자 의료체계의 구조적인 문제점을 근본부터 개혁하라”고 했다.
최 당선인은 이날 오후 4시 30분~5시30분 서울 광화문 동화면세점 앞에서 열린 이대목동병원 의료진 구속 사태 관련 의료계 대표자 규탄 집회에서 의료계 대표자들과 함께 이같이 말했다. 이날 집회는 비가 오는 가운데 열렸으며 최 당선인 인수위원회, 전국시도의사회장단, 대한전공의협의회, 대한소아청소년과의사회 등이 참석했다.
최 당선인은 “대한민국 13만 의사들은 억울하게 구속된 이대목동병원 의료진과 함께 무너진 이 땅의 의료를 바로 세우기 위해 끝까지 함께 싸워나가겠다”라며 정부에 5가지 요구사항을 제시했다. 5가지는 ▲대한민국 중환자 의료체계 근본 개혁 ▲의료사고특례법 제정 ▲복잡한 심사기준 개혁 ▲의사들 근로기준법 적용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의 의료행위 수가 반영 등이다.
최당선인은 “정부와 관계당국은 이번 이대목동병원 신생아 중환자실 사망사건에 대해서 의료계 전문가들이 참여하는 특별조사위원회를 구성하라”라며 “의료진의 희생양으로 삼는 사법처리가 목적이 아닌, 실질적인 문제점들을 조사한 후 의사들의 의견을 반영해 대한민국 중환자 의료체계의 구조적인 문제점들을 근본부터 개혁하라”고 촉구했다.
최 당선인은 “의료인이 범법자가 될 수 있다는 두려움 없이 환자진료에 최선을 다할 수 있도록 의료사고특례법을 제정하라”라며 “의료행위에 대한 건강보험심사평가원과 건강보험공단의 폐쇄적이고 복잡한 심사기준을 전면적으로 개혁하고 공개하라”고 했다.
최 당선인은 “중환자실 등 열악한 의료환경에서 근무하는 의사들이 최선의 진료를 할 수 있도록 근로기준법을 전면 적용하라”라며 “의료진들이 환자들에게 적정 진료가 아닌 최선의 진료를 할 수 있도록 OECD평균의 의료행위 수가를 책정하라”고 했다.
최 당선인은 “정부는 의료계의 경고를 엄중하게 받아들여 이번 사건에서 몇몇 희생양에게만 책임을 지우고 정작 근본 원인은 전혀 해결하지 못하는 우(憂)를 범하지 말아야 한다”라며 “이제라도 의료계와 함께 머리를 맞대고, 다시는 이러한 불행한 일들이 일어나지 않도록 중환자 의료체계의 기본부터 다시 세우는 논의를 해야 한다”고 밝혔다.
앞서 지난 4일 서울남부지방법원 영장전담재판부는 이대목동병원 신생아중환자실 의료진 3명(조모 교수와 박모 교수, 수간호사 1명)에게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최 당선인은 “의료사고로 인해 의료진 3명을 구속시키는 것은 선례가 없는 매우 이례적인 결정”이라며 “앞으로 대한민국 의료서비스의 행태를 송두리째 바꿀 수 있는 매우 위험하고 악의적인 사례가 될 것”으로 우려했다.
이후 시도의사회, 대한의학회, 각과의사회, 전국의과대학교수협의회 등에서 사법부의 잘못된 판단에 항의하는 반대성명서를 발표했다. 수많은 의사들은 ‘대한민국 의료는 죽었다.’‘대한민국 중환자실은 죽었다’는 등의 자조적인 애도를 표하며 사법부의 악의적 결정에 대한 항의를 이어가고 있다.
최 당선인은 “의사들은 열악한 의료환경에서도 국민의 건강과 생명을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의사들의 숭고한 노력을 한 순간에 범법자로 치부해 버린 것에 대한 분노와 자괴감을 표현하고 있다”고 말했다.
최 당선인은 “신생아 중환자실은 24시간 긴장과 위험이 존재한다. 말 그대로 생과 사를 넘나드는 의료현장이라는 전쟁터의 최일선”이라며 “이곳에 근무하는 의료진들은 사명감과 희생정신이 그 누구보다 높은 사람들이 지원해 근무를 하게 된다”고 했다. 이어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의 의료수가는 중환자실을 운영하면 할수록 병원이 적자를 보게 되는 구조”라며 “병원의 입장에서는 충분한 인력과 장비를 투자하기가 쉽지 않다”고 지적했다.
최 당선인은 “정부는 이 불행한 사건이 결국 부족한 인력과 감염관리 시스템에 대한 부족한 투자가 빚어낸 구조적인 문제라는 것을 분명히 알아야 한다”고 했다.
최 당선인은 “경찰은 여론을 의식해 업무상 과실치사에 대한 범죄구성 요건을 지나치게 자의적으로 넓게 해석해 적용했다. 중환자실 관리 감독 책임에 대한 범위도 경찰 자의적으로 해석했다”고 지적했다.
최 당선인은 “수사자료 임의제출만으로도 충분히 수사에 필요한 증거를 확보할 수 있음에도 절차를 위반하며 중환자실을 압수수색했다”라며 “장기간의 수사로 이미 필요한 증거는 모두 확보해 피의자들이 증거를 인멸하거나 도주할 우려가 전혀 없음에도 마녀사냥식 구속영장 신청을 강행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법원은 증거인멸과 도주의 가능성이 높고, 범죄의 심각성이 현저할 경우에만 발부되는 구속영장을 원칙을 무시한 채 여론에 떠밀려 발부했다”라며 “대한민국의 의료진들이 앞으로 의료행위를 함에 있어 최선의 치료를 하지 못하고 소극적인 방어진료만을 할 수밖에 없게 만들었다. 결국 그 피해가 환자들에게 고스란히 돌아가도록 하는 치명적인 실수를 저지르고 말았다”고 했다.
한편, 서울지방경찰청 광역수사대는 6일 이대목동병원 신생아 중환자실 실장이자 주치의인 조모 교수와 전임 실장 박모 교수, 수간호사 A씨 등 3명을 업무상 과실치사 혐의 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10일 구속 송치한다고 밝혔다. 경찰은 이들과 함께 신생아 중환자실에서 근무한 심모 교수와 전공의 강모씨, 간호사 B씨·C씨 등 4명에게도 같은 혐의를 적용, 불구속 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한다.
이대목동병원 신생아 중환자실 지난해 12월 16일 오후 9시 32분부터 오후 10시 53분 사이에 신생아 4명이 잇따라 숨졌다. 경찰은 의료진 7명에 대해 감염·위생 관리 지침을 어겨 이 사건을 일으킨 혐의를 적용했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의 부검과 질병관리본부 역학조사 등을 근거로 숨진 신생아들 사인이 시트로박터 프룬디균 감염에 의한 패혈증이라고 결론 내렸다.
경찰과 보건당국은 신생아들이 사망 전날 맞은 지질영양제 ‘스모프리피드’가 균에 감염됐다고 했다. 균 감염은 간호사들이 주사제를 준비하던 과정에서 발생했다고 밝혔다. 경찰 수사 결과 간호사들이 '주사제 1병을 환아 1명에게만 맞혀야 한다'는 감염 예방 지침 '1인 1병 원칙'을 어긴 것이 크다고 판단했다. 이 지침만 지켰더라도 신생아가 4명이나 한꺼번에 숨지는 일은 없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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