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조용히 묻힌 사건이 있다. 한 제약사가 같은 제품을 이름만 바꿔 재출시하면서 보험약가를 79% 인상했던 사건이다.
이른 바 보령제약 '아스트릭스' 논란.
보령제약이 혈전예방약 '보령아스트릭스캡슐'을 생산 중단한 후 제품 이름(보령 바이오아스트릭스캡슐)과 허가자만 자회사인 보령바이오파마로 바꾼 후 이전보다 높은 보험약가를 받아 출시하자, 대한의원협회가 "제약사의 약가 높이기 꼼수"라고 문제 제기한 사건이다.
이 일은 마치 사안의 본질이 공급중단 보고의무 위반 여부에 있었다는 듯이, 보령제약이 보고 의무를 위반하지 않았다는 식약처의 설명으로 조용히 마무리 됐다.
정말 문제는 식약처 허가 및 공급보고 의무같은 것에 있던 것일까? 공급보고 의무만 잘 지키면 제2, 제3의 아스트릭스 사건은 더 이상 안 일어날까?
기자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이 사안의 근본적인 문제는 허술한 약가제도에 있다.
보령제약이 사실상 같은 제품의 이름만 바꿔 약가를 높인 것은 철저한 합법이기에 가능했다.
현행 약가제도는, 이미 보험목록에 등재돼 있는 A라는 제품과 같은 성분‧함량의 제제를 등재할 때, 회사만 다르면 동일 성분 제품들 중 '최고약가'를 적용한다.
같은 제품이라도 계열사, 협력사 등을 통한 재등재로 얼마든지 높은 약값을 받을 수 있도록 제도가 허용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많은 제약사들이 이 제도를 활용해 사실상 같은 제품을 계열사로 이름만 바꿔 3~4개씩 출시한다.
반면, 한 번 등재된 의약품은 (같은 회사 이름으로는) 약가를 높일 방법이 '조정신청'밖에 없어, '아스트릭스'처럼 오래된 제품은 원가 인상률 등을 고려할 때 약가에 불만족스러울 수밖에 없다.
제도를 활용한 약가인상과 다품목 출시가 제약사만의 잘못일까? 기업은 궁극적으로 이윤을 추구한다. '합법적 탈세'의 방법이 있다면, 기자라도 그 방법을 선택했을 것이다.
하지만 정부가 느끼는 책임감은 달라야 한다. 2012년 4월, 이처럼 허술한 약가조항이 만들어질 때 일부에서는 협력사, 계열사를 통한 꼼수 등재를 우려했지만, 정부는 개의치 않았다.
'아스트릭스' 문제가 터졌을 때에도 복지부는 식약처 탓하기에 바빴다. "식약처가 의약품 허가 시 계열사, 자회사 여부 등을 제대로 확인해야 했었다"면서 약가제도의 구멍 때문임을 인정하지 않았다.
이젠 식약처를 탓하던 복지부 담당 과장도 다른 곳으로 파견가고 없다. 문제에 대해 문제의식을 가져야 할 주체는 그 누구보다 복지부 실무자들이라고 생각한다.
약가를 후려쳐야 할 대상으로만 볼 게 아니라, 보상할 부분에 제대로 보상해 주되, 꼼수를 통한 재등재는 지금이라도 개선해야 한다.
제2의 아스트릭스 논란이 발생할 때에도 식약처를 탓할 것인가? 실무자가 가진 책임감과 문제의식이 결국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기자는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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