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디게이트뉴스 김봉석 칼럼니스트]암은 한국인의 사망 원인 1위이고, 지금은 국민 3명 중 1명은 암에 걸릴 수 있는 시대다. 이 때문에 암은 한국에서 사회경제적 부담이 가장 큰 질병이다. 이로 인해 암의 예방과 진단, 치료 분야에서 상당한 진전이 이뤄졌고, 이는 암 환자의 수명연장과 삶의 질 개선으로 이어졌다. 막대한 자원의 투자와 신기술의 개발로 향후 암 치료 분야에서 지속적인 발전이 예상된다. 특히 항암 신약은 암 환자의 기대여명 증가에 있어 주요 원인으로 꼽힌다.
그렇다면 항암 신약은 환자에게 투여되기까지 어떤 과정을 거칠까? 이번 편부터는 약물이 개발되는 과정과 그 과정에서 필수적인 임상시험에 대해 연재하고자 한다.
임상시험이란 의약품을 개발하고 시판하기에 앞서 그 물질의 안전성과 치료 효용성을 증명할 목적으로 사람을 대상으로 실시하는 시험 또는 연구를 말한다. 즉, 해당 약물의 체내 분포, 대사와 배설, 약리효과와 임상적 효과를 확인하고 부작용 등을 알아보기 위한 것이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것은 연구의 대상이 사람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임상시험이 약물의 효과를 증명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연구대상자, 즉 연구에 참여한 사람의 안녕과 권리를 보호하는 것이다. 2000년대 이후 신약 연구개발비는 약 9000억원에 이른다고 한다.
연구개발비 급증의 원인 중 하나는 국가나 사회적으로 연구개발 과정에서 연구대상인 사람과 동물에 대한 권익과 복지의 보장을 요구하는 수준이 매우 높아졌기 때문이다. 또한, 과학의 발전 덕분에 인간 수명이 연장되면서 질환도 함께 증가하고 있다. 신약을 필요로 하는 이들의 급속한 증가 역시 연구개발비 증가의 한 원인이다.
신약개발 과정을 요약하면 대략 여섯 단계로 나눌 수 있다. 그 첫째는 신약 후보물질을 도출하기 위한 탐색(Discovery) 단계다. 이 단계에서는 의약학적 개발 목표(효능, 작용기전)를 설정해 개발 대상 물질을 선정한다. 둘째, 전임상시험(Pre-clinical Study) 단계다. 사람을 대상으로 후보물질의 안정성과 효과를 확인하기 전에 동물모델을 대상으로 생화학적 실험을 수행한다. 셋째, 임상시험 허가신청(IND, Investigational New Drug Application) 단계다. 후보물질의 안전성(독성)과 유효성이 검증되면 사람을 대상으로 한 연구를 위해 식약처에 임상시험 허가신청을 한다.
한국은 3년 간의 준비기간을 거쳐 2002년 12월에 IND를 처음 시행했다. 이를 '임상시험계획승인제도'라 한다. 임상시험계획승인제도의 시행은 의약품 임상시험 진입을 용이하게 함으로써 신약개발기반을 구축했다. 이 덕분에 다국가 공동임상시험도 적극 유치해 국내 임상시험 수준을 향상시키고 해외의 신약 개발기술을 습득할 수 있었다. 그리고 한국 의약품임상시험과 신약허가제도를 국제적 기준과 조화시키고 다국적 제약기업의 투자를 활성화해 세계적인 수준의 제약산업을 육성하는 기반이 됐다.
넷째, 임상시험(Clinicl Trial) 단계다. 전임상시험을 거친 물질의 효과와 부작용을 '사람을 대상으로 시험'하는 단계로 시판 허가 전의 3단계와 시판 후 임상시험까지 포함해 총 4단계로 구분한다. 다섯째, 신약허가신청(NDA, New Drug Application) 단계다. 사람을 대상으로 임상시험을 성공적으로 마치면 시험결과를 식약처에 제출해 신약으로 시판허가를 신청한다. 의약품 등의 안전성과 유효성 심사에 관한 규정으로, 적응증에 대한 임상적 유의성을 평가한 임상시험성적 관련 자료를 제출한다. 해당 자료는 국내외의 약물력학, 약물동력학, 용량반응, 안전성, 효능 정보를 포함한다.
마지막 여섯째는 시판후사용성적조사(PMS, Post-market Surveillance) 단계다. 시판 전에 수행한 제한적인 임상시험에서 파악할 수 없었던 희귀하거나 장기적인 이상반응을 추적하는 조사다. 국내 식약처에서는 의무적으로 시행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 단계에서 발견한 이상반응으로 인해 의약품 판매를 철회하기도 한다.
임상시험은 환자, 나아가 인류 건강과 복지에 기여하는 신약개발을 위한 필수불가결한 과정이다. 임상시험을 수행해야만 지금의 환자가 신약의 혜택을 받고 미래의 환자도 잠재적 혜택을 받을 수 있다. 인체실험이라고 오해받기도 했던 임상시험은 이와 같이 환자들의 건강과 삶의 질 향상을 위해 반드시 경유해야 하는 필수과정인 것이다.
한국에서 임상시험을 하는 모든 임상시험 수행 기관은 반드시 임상시험심사위원회(IRB, Institutional Review Board)의 승인을 받도록 의무화하고 있다. 이를 통해 임상시험에 참여한 대상자는 안녕과 권리 보호받을 수 있도록 규정화하고 있다. 신약의 개발도 중요하지만 모든 임상시험은 연구대상자의 권리와 이익을 최우선으로 한다.
임상시험심사위원회란 임상시험에 참여하는 피험자의 권리·안전·복지를 보호하기 위해 시험기관 내에 독립적으로 설치한 상설위원회를 말한다. 여기서는 계획서 또는 변경계획서, 피험자로부터 서면동의를 얻기 위해 사용하는 방법이나 제공되는 정보를 검토하고 지속적으로 이를 확인한다. 여기서 독립적이라고 하는 것은 연구계획서를 심의하고 승인을 결정하는 과정이 기관(장)의 이해상충에 구속되지 않음을 의미한다. 예를 들면, 기관장은 임상시험심사위원회가 승인한 연구계획서를 기관 정책 상의 이유 등으로 승인취소를 할 수는 있지만, 승인하지 않은 연구계획서를 임의로 승인할 수 없다.
임상시험은 보통 수년 동안 진행하는데, 암 또는 희귀질환과 같은 난치병 환자의 경우 임상시험 과정을 거쳐 약물이 시판될 때까지 기다릴 시간이 없을 수 있다. 이 때 기존의 표준치료를 마치고 더 이상의 치료법이 없는 환자가 임상시험에 참여한다면 새로운 치료 가능성에 대한 기회를 빠르게 접할 수 있다. 나아가 새로운 삶의 가능성을 기대해 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모든 임상시험이 성공적이지는 않다. 오히려 더 많은 부분이 실패로 끝난다. 따라서 기대할 수 있는 과학적 배경이 타당하더라도 효과를 100% 보장할 수 없다. 말기암 환자와 같이 지푸라기라도 잡으려는 심정으로 임상시험에 참여하는 것은 적절하지 못하다. 어떤 상황에서든 임상시험 참여는 해당 전문의와의 매우 진지하고 세밀한 정보 교환과 논의를 필요로 한다. 또 그 과정에 있어 가능한 모든 내용을 이해하고 자발적으로 참여에 동의하는 절차가 필수적이다.
임상시험은 2016년 기준으로 미국에서 가장 많은 10만 640건이 등록됐다. 이어서 유럽 6만 7858건, 동아시아 2만 4447건, 캐나다 1만 6671건 순이었다. 특히 동아시아에서는 한국이 누적 7912건으로, 중국의 9375건에 이어 많은 임상시험을 등록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은 전세계 임상시험의 약 3.4%를 수행했고, 이는 국가별 순위 8위에 해당한다.
임상시험은 많은 환자에게 새로운 삶의 희망을 제공하는 핵심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많은 이들의 공헌과 고비용의 투자로 장기간에 걸쳐 개발한 신약은 인류의 복지와 건강에 큰 기여를 한다. 우리나라에서 더 많은 신약에 대한 임상시험을 진행해 질병으로 고통받는 환자에게 조금이라도 더 도움이 될 수 있기를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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