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7월 8일
충북대병원 소화기내과 한정호 교수는 자신의 블로그에 다음과 같은 글을 올렸다.
지금 일요일 새벽 2시 30분입니다.
피를 토하며 죽어가는 환자를 2시간 간신히 내시경으로 치료하고, 지금 막 집에 들어왔습니다.
환자는 살아서 기쁩니다.
그렇지만, 열악한 의료현실을 생각하니 허탈하고 화도 나서 이렇게 글을 씁니다.
같은 정맥류라고 해도 식도정맥류는 비교적 치료가 쉽고, 예후가 좋습니다.
하지만, 위정맥류는 죽을 때까지 피가 계속 납니다.
내시경치료라도 하다가 죽는다는 심정으로 시술에 들어가 보는 방법 밖에는 없습니다.
피와 접촉하면 순간접착제처럼 굳는 ‘히스토아크릴’이라는 액체를 출혈하는 혈관에 내시경과 장착된 주입기로 정맥류를 굳게 하는 것이 유일한 응급치료법입니다.
이렇게 응급 내시경을 한 총 시술료가 8만원입니다.
1억 5천만원의 내시경장비로, 간호사 2인의 보조와 내과 레지던트 3년차의 보조, 소화기내시경전문의 1인이 2시간 동안 사투를 벌인 모든 수고료의 합이 8만원이라는 거죠.
그런데, 제가 더 화가 나는 것은 한 병에 0.5cc가 담긴 아크릴지혈액은 5만원이고, 일회용 주입기는 4만원이라는 것입니다.
한정호 교수가 자신의 블로그에 올린 글 일부
당시 한정호 교수는 터무니없이 낮은 내시경수가와 함께 환자에게도, 건강보험공단에도 비용을 청구할 수 없는 아크릴지혈액과 일회용 주입기의 문제를 개탄했다.
한정호 교수
그로부터 9년이 지난 2016년 3월
의료 환경은 어떻게 바뀌었을까?
아크닐지혈액은 100% 본인부담으로 바뀌었다.
하지만 일회용 주입기 비용은 여전히 환자에게도, 건보공단에도 청구할 수 없다.
병원이 그나마 손해를 줄이는 방법은 일회용일지라도 세척해서 쓰고, 또 쓰는 수밖에 없다.
환자에게 이 비용을 청구했다가는 불법 임의비급여로, 걸리면 최대 5배의 과징금을 물어야 한다.
1개당 1만 5천원 짜리 내시경 클립도 일회용 주입기와 마찬가지 상황이다.
내시경 클립은 재사용 할 수도 없다.
한 교수는 "환자를 살려야 하지만 병원은 손해를 보면서 시술을 해야 하는 게 현실"이라면서 "내시경 수가의 절반이 비용 보상을 받을 수 없는 치료재료 구입비용인데 당연히 별도로 비용을 보존해줘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런데 더 심각한 문제가 앞으로 벌어질 수 있다.
일회용 치료재료를 재사용하다가 걸리면 의사면허가 취소된다는 것이다.
복지부는 최근 다나의원 등에서 일회용 주사기를 재사용해 집단감염 문제가 불거지자 의료법을 개정해 일회용품을 재사용한 의사의 면허를 취소할 방침이다.
한 교수는 "일회용품이지만 세척, 소독하면 감염 위험성은 없어지지만 이런 상황 자체가 비정상적인 것"이라면서 "비용 보상도 안해 주면서 사용하면 처벌하겠다는 게 말이 되느냐"고 꼬집었다.
2014년 4월
MBC는 의료기관들이 감염 우려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내시경 포셉을 재사용하고 있다고 고발했다.
당시 생검 시술 보험수가는 8620원.
반면 1회용 내시경 포셉 가격은 2만 3000원이었다.
의료기관들은 일회용 포셉 비용을 환자에게도, 건보공단에도 청구할 수 없자 세척해서 재사용했지만 언론의 뭇매를 맞았다.
정부는 그 뒤에서야 해당 비용에 대해 보험급여를 인정했다.
한정호 교수는 "9년 전이나 지금이나 내시경 지혈에 사용되는 일회용 기구를 보상해주지 않기는 마찬가지"라면서 "주사침을 재사용하라는 것인지 정부 정책에 의문을 품지 않을 수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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