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입력시간 23.10.21 08:02최종 업데이트 23.10.21 08: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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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가 부족하다’는 밈

올바른 진단 없이 무작정 의사 부족이 발병 원인이고, 의사 증원만이 유일한 처방인가

[칼럼] 송우철 전 대한의사협회 총무이사

사진=게티이미지뱅크

[메디게이트뉴스] 우리가 인터넷 용어로 알고 있는 밈(meme)은 리처드 도킨스가 쓴 ‘이기적 유전자’에서 제시됐던 용어로 유전자(gene)처럼 자기복제적 전파성을 갖는 사상, 이념 등을 칭하며, 모방의 뜻을 가진 고대 그리스어 Mimeme 를 어원으로 Gene과 라임을 맞추기 위해 Mi- 를 떼내 만든 단어다.

이기적 유전자가 발행된 건 1976년이지만, 밈이 인터넷 용어로 사용 되기 시작한 건 2000년 이후이고 국내에서 널리 사용된 건 2020년 이후이다. 그전에 한국은 유행어, 드립, 짤, 떡밥 등의 용어를 썼다. 일본에서는 네타(ネタ)가 밈과 비슷한 의미로 사용된다. 

지금 세간을 가장 뜨겁게 달구고 있는 아젠다 중 하나는 바로 ‘의사 증원’이다. 18일자 조선일보는 “의사 부족으로 환자 큰 고통, 국민 의사 윈윈 방안 찾아야”라는 사설을 게재했다. 의사 증원의 필요성 당위성은 의사가 부족하기 때문이라는 것이 그 틀이다. 조선일보 뿐 아니라 정부, 대통령실, 국회 등 정치권이 의사 증원의 필요성으로 내세운 것도 의사가 부족하다거나 부족해질 것이라는 것이며 여러 언론도 같은 기조를 유지한다. 매일 주요 일간지에 의사 증원 관련 기사가 실리며, 의사 증원과 의사 부족은 한국 사회의 밈이 됐다.

그런데, 진짜 의사가 부족할까? 아니면 앞으로 부족해질까? ‘고충을 넘어 고통에 이른 국민 불편’은 진짜 의사가 부족해 생긴 것일까? 의사만 충원되면 낙수효과로 필수의료가 강화될까?

의사 부족에 따른 국민 불편으로 동네 소아과 오픈런, 응급실을 찾아 헤매다 목숨을 잃은 응급실 뺑뺑이 사례, 암 환자 대기 현상, 서울 대형 병원에 형성되는 환자촌, 빅 5병원에 상경치료 받은 한해 71만명, 지난 5년간 103만명의 암 환자 등 제때 적절한 치료를 받지 못하고 고통받는 현실 등이 예시로 제시됐다.

소위 빅5 병원을 언급하며 전국에서 이들 병원에 환자가 몰려 환자촌을 만들고, 암 치료 대기가 늘어나는 것을 의사 부족 때문으로 간주한 건 어처구니 없는 주장이다. 이 주장은 지방 대학병원이나 대형병원을 대놓고 도외시하는 것이며 이 나라에서 치료받을 만한 병원은 빅 5병원밖에 없다고 스스로 인정하는 것과 같다.

그러나 이런 현상은 의사 부족이 아니라 의료이용체계의 부재라는 제도적 결함과 무조건 일류만 추구하려는 국민성, 몸집을 불려 진공청소기처럼 전국 환자를 빨아들이는 일부 병원의 이기심이 낳은 결과일 뿐이다. 이대로라면 한 해 의사수 1000명이 아니라 백만명을 늘린 들 의사 부족 현상은 사라지지 않는다.

왜냐면 환자들이 빅5에 몰려 환자촌을 형성하고 대기 번호표를 들고 수 개월씩 치료를 기다리는 이유가 가장 좋은 병원에서 가장 훌륭한 의사에게 치료받기 원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남산에서 가장 키 큰 소나무는 하나이듯 의사가 수백만명 있어도 가장 수술 잘하는 의사는 단 한 명이므로, 또 환자들은 그 앞에 줄 서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미국 병원에 환자 쏠림 현상이 우리보다 월등히 적은 건 미국은 국토가 워낙 넓기 때문이다. 원하는 병원에 가는 건 마치 국경을 넘어 다른 나라를 가는 것과 같아 지리적 의료접근성이 현저히 떨어지기 때문이다. 반대로 우리나라는 의료접근성이 좋아 기차나 비행기로 두어 시간만 가면 전국 어디서나 가장 큰 소나무 앞에 줄 설 수 있고, 이를 제재할 마땅한 제도적 장치가 없다.

이 때문에 환자 쏠림 사례로는 의사부족 현상을 설명할 수도 없고, 설명해서도 안된다. 오히려 제도 미비와 이를 방관한 정부와 정치인을 탓하고 무조건 일류만을 외치는 국민성을 개탄해야 한다.

소아과 부족으로 인한 오픈런 현상이나 응급실 뺑뺑이 현상도 의사 부족이 그 원인이 아니다. 소아과 의원의 개체 수가 감소한 건 맞지만 출생아 대비 소아과 의원의 비율은 결코 더 떨어졌다고 보기 어렵다. 한해 100만명의 출생아가 있었던 시절보다 한해 25만명 미만이 출생하는 현재 소아과 전문의나 소아과의원은 월등히 더 많지만, 1970년대에 소아과 오픈 런이 있었고 그래서 국민들의 불편이 고충을 넘어 고통에 이르렀다는 얘기는 들어보지 못했다.

그렇다면 소아과 오픈런 현상을 소아과 의사나 소아과 의원의 부족으로 설명할 수 없다. 응급실도 마찬가지다. 과거에는 교통 사고나 산업 재해 등 중상 환자가 지금보다 월등히 더 많았지만 응급실 개체 수는 월등히 적었고 지금처럼 응급의학과도 응급의료체계도 없었고 심지어 119 구급대도 제대로 만들어지지 않았다. 그런데도 응급실 찾지 못해 환자가 뺑뺑이 돌다 사망했다는 것이 사회적 이슈가 되거나, 그래서 의사를 늘려야 한다는 주장이 사회적 밈이 된 적이 없다.

그렇다면 어디서 무슨 차이가 생긴 건지 그 원인부터 찾아야 하는 것이 당연하다. 올바른 진단 없이는 올바른 처치를 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진단은 도외시한 체 의사 부족을 유행어처럼 밈으로 만들고 무작정 의사 부족이 발병 원인이고, 의사 증원만이 유일한 처방인 듯 외치고 있다.

이런 식의 진단과 치료는 악의적으로 환자를 해치려고 하는 의사가 아니라면 불가능하다. 생각해 보라. 당장의 문제를 적어도 15년은 지나야 해결될 수 있는 방법으로 풀겠다고 하면 어느 누가 납득할 수 있나?


따라서 정부가 주장하는 의사 증원에는 다른 배경이 있을 것이라고 추정할 수 밖에 없다. 그 배경은 어쩌면 수도권에 늘어난 대학병원 분원을 위한 전공의 수급 대책이거나 총선용 선심책일지도 모른다. 문제는 그 배경이 무엇이든, 의사 증원만이 해결책이라며 흔들어 대는 동안 실체적 해결 방안은 도외시되고 문제를 해결할 시간은 계속 미뤄지고 결국 환자들의 고충과 건강은 더 나빠질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게다가 의사 증원은 국민총의료비 급증을 유발할 잠재적 시한 폭탄이 된다는 또 다른 문제점이 있다. 그 폭탄이 터지면 건강보험 파탄은 물론 국민 전체가 의료비에 허덕이는 사태가 초래할 것은 뻔한 일이다. 의사들이 개탄하는 이유는 명색이 국민 건강을 위해 종사하기에 양심상 이 위험한 장난을 두 눈 뜨고 먼산 보듯 볼 수 없기 때문이다.

※칼럼은 칼럼니스트의 개인적인 의견이며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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