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편한 초대] 카이스트 의과학대학원 김하일 학과장 “카이스트 과기의전원은 후배 의사들과 나라 위한 도전”
불편한 초대
메디게이트뉴스는 의료계와 타 직역·기관·단체가 대립하는 이슈들에 대해 의료계 반대 측에 서있는 이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려 합니다. 의료계로선 ‘불편’하고 동의할 수 없는 주장일 수 있고, 인터뷰에 나서는 이들도 '불편'한 자리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안에서도 양측이 간극을 좁힐 여지는 없는지 모색해볼 기회가 되길 바랍니다.
[메디게이트뉴스 박민식 기자] “의료계의 견고한 벽에 구멍 하나 내주고 싶다.”
카이스트 김하일 교수(카이스트 의과학대학원 학과장)는 최근 서울대병원 의학연구혁신센터에서 메디게이트뉴스와 만나 카이스트가 설립하려는 과학기술의학전문대학원(과기의전원)이 후배 의사들에게 ‘담 너머’ 다른 세계에 눈을 뜨게 되는 계기를 만들어 줄 것이라고 했다.
기존 의사들이 개원가라는 한정된 시장에서 경쟁해야 했던 것과 달리, 과기의전원에서 교육 받은 미래의 의사과학자들은 스스로 새 먹거리를 창출해내는 혁신가가 된다는 것이다.
그는 이처럼 의사과학자들이 만들어 갈 혁신이 반도체를 이을 대한민국의 신성장 동력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카이스트가 지난 50년간 지금의 반도체 신화를 이뤄낸 인재들을 양성해 냈듯, 향후 50년은 또 다른 신화를 써내려갈 의사과학자를 길러내겠다는 것이다.
2026년 과기의전원 설립을 목표로 하고 있는 카이스트는 기존 의대와는 차별화된 교육 프로그램을 준비 중이다. 공학 관련 교육을 대폭 강화하고, 학생들에게 하버드의대 메사추세츠 종합병원(MGH), 뉴욕대(NYU) 랭건병원 등 세계 최첨단 병원들에서 실습할 기회를 준다는 계획이다.
지난 2월 윤석열 대통령이 관련 부처에 과기의전원 설립 긍정 검토를 지시하는 등 정부도 카이스트의 구상에 힘을 실어주고 있지만, 의료계는 과기의전원 설립에 반대하고 있다. 의사과학자에게 매력적인 일자리가 마땅치 않은 상황에서 과기의전원 학생들이 졸업 후 임상으로 복귀할 가능성이 높고, 의전원 체제는 과거에도 실패로 돌아간 사례가 있다는 것이다. 의전원 신설 대신 기존 의대가 의사과학자를 양성할 수 있게 지원하는 게 비용효율적이라고도 지적한다.
의대를 졸업한 의사 출신인 김 교수는 “의료계의 우려에 대부분 공감한다”면서도 과기의전원 설립은 동료·후배들의 더 나은 미래를 위한 것이라며 카이스트의 ‘도전’에 의료계도 함께 해달라고 했다.
과학자 양성하는 의대 “공학에 방점 찍은 한국형 HST 될 것”
- 카이스트가 과학기술의학전문대학원 설립을 추진하는 이유는 뭔가.
풀타임으로 과학을 하는 의사들이 지금보다는 더 많아져야 한다는 게 가장 근본적 이유다.
지금까지 카이스트 의과학대학원 학생들을 보면서 느낀 게 몇 가지 있다. 전공의 수련을 받고 의과학대학원에 온 친구들이 연구를 잘 배우고 병원에 돌아가도 그 사람들이 일할 수 있는 공간이 별로 없더라. 연구를 하고 싶어도 진료 등 여러 이유로 연구를 하기가 힘들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건 카이스트가 해결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다.
그 앞단으로 가서 자질도 뛰어나고 과학을 계속해도 괜찮아 보이는 친구들이 왜 병원으로 돌아갈지 생각해봤다. 나이가 너무 많다는 문제가 있더라. 그래서 그런 결정을 할 시기를 좀 더 앞당겨 주면 과학을 할 사람들이 더 늘어날 것 같다고 생각했다.
또 요즘 창업에 과감하게 도전하는 젊은 의사들이 많아졌다. 하지만 내가 보기엔 기술 수준이 그리 깊지 않다. 바로 시장에 나가는 것보다 제도권 안에서 조금 더 의학과 과학이 성숙한 뒤에 창업에 뛰어들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카이스트 과기의전원은 이런 사람들을 제도권 안에서 키우고, 풀타임으로 연구를 하는 의사과학자를 더 많이 만들 방법을 고민하던 끝에 나온 결론이다.
우리가 지금까지 해왔던 시도는 의대에서 양성하는 의사 중 일부를 과학자로 길러내려는 것이었다. 이는 대부분 여의치 않았고, 임상으로 가버린 의사과학자가 많다. 풀타임으로 과학을 하는 과학자는 잘 만들어지지 않는다. 그럼 반대로 처음부터 과학자를 양성하는 의대를 만들면 어떨까 생각했다.
아울러 공학이나 인공지능(AI), 데이터 분야에 큰 시장이 있는데 의사들이 여기에 뛰어들기가 현재 교육 체계론 어렵다. 그래서 완전히 공학 위주의 의전원을 만들어 보자고 했다. 교육 프로그램을 잘 운영하면 굉장히 혁신적인 시도가 될 수 있고, 성공하면 지금껏 보지 못했던 혁신가가 나올 수 있다.
- 카이스트 과기의전원은 공학에 방점이 더 찍힌 의대라는 의미인가.
우리가 계획하고 있는 과기의전원 교육 과정을 보면 대부분이 공학이다. 실제로 공학 분야에 새로운 시장이 열린다는 것도 카이스트가 과기의전원 설립을 추진하는 이유 중 하나다. 의사과학자 관련 시장이라고 하면 대부분 신약을 떠올리는데, 그보다 훨씬 더 가까운 곳에 쉬운 시장이 공학이다.
예를 들어 애플이나 구글은 반도체를 직접 설계하고 사용한다. 수요자와 사용자가 같은 셈이다. 앞으로 병원에도 반도체가 들어갈 것이다. 병원에 들어가는 반도체를 설계하려면 병원에 필요한 게 뭔지 아는 사람이 필요하다. 그런 사람을 양성해야 한다.
의사들이 이런 일들을 기술을 조금 배워서 직접 할 수 있을까? 그렇지 않다. 의과학대학원 학생을 공대에 박사과정으로 보내봤지만 그다지 성공적이지 못했다. 공학의 본류에 들어가지 못하고 관람객이 되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AI하는 의사를 키우고 싶다고 전산과에 보내려 했더니 거기서 도움이 안 된다고 받기 싫다고 할 정도였다. 의사들 여러 명이 모여서 한 1년 정도 개발한 걸 전산과 4학년 학생은 일주일 정도면 끝낸다. 수준 차이가 엄청나다. 이 수준을 끌어올리려면 단순히 그 학문을 맛보는 수준이 아니라 의학적 지식을 바탕으로 그 분야의 본류로 들어가서 일하는 사람이 돼야 한다.
지금 의대를 졸업한 정도의 수준으로는 공학쪽 일을 하는 데 한계가 있다. 보다 공학이 강화된 프로그램이 필요한 이유다.
- 해외에 유사 사례가 있나.
이스라엘의 테크니온공대에서 1969년 의대를 만들어 이런 시도를 해 성공했고, 하버드의대는 MIT(메사추세츠 공대)와 함께 HST(Health Science & Technology) 프로그램이라는 공학기반의 의사를 양성하기 위한 교육과정을 시작했다. 하버드의대의 교육과정에 패스웨이(Pathways) 프로그램과 HST 프로그램이라는 2개의 의대 교육과정이 있다. 패스웨이가 바이오 관련이라면 HST는 굉장히 공학적인 부분을 다룬다. 카이스트 과기의전원은 하버드-MIT의 HST프로그램을 한국형으로 만들고자 한다.
- 카이스트 과기의전원이 아니더라도 하버드의대가 운영하는 프로그램들을 국내 의대들이 참고해 운영할 수 있지 않나.
기존 의대 안에 패스웨이와 HST를 모두 두는 건 우리나라 문화에선 어려울 것이다. 그러니 카이스트에서 이런 실험을 한번 해보자는 거다. 개인적으로 기존 의대들은 하버드의대의 패스웨이 프로그램, 카이스트는 HST 프로그램을 성공하면 좋겠다. 실제로 지금 국내 의대들은 패스웨이를 하겠다는 것으로 느껴진다.
아인슈타인같은 ‘괴짜’들 개원의 아닌 과학자 돼야
- 학생 선발도 중요할 것으로 보인다. 학생 선발은 어떻게 할 계획인가.
학생 선발 단계부터 과학에 동기부여가 된 학생들을 뽑을 것이다. 내가 대학을 갈 때 의대 입학 성적보다 공대의 입학성적이 더 높았다. 지금처럼 성적이 최상위권이 아니더라도 의사로 일하는 데는 아무 문제가 없다. 그런데 물리학과나 전자공학과를 가야 할 아인슈타인같은 천재가 과학고등학교를 조기 졸업하고 의대를 간다면 어떻게 될까. 새로운 과학분야의 개척에 빠져야할 괴짜들이 의사가 돼 동네에서 개원을 하는 것보다는 과학자가 되는 게 사회적으로 바람직하다.
그런 괴짜들을 카이스트에 모으면 어떻게 되겠나. 과학자가 될 가능성이 높아진다. 사람은 어떤 집단에 속해 있느냐에 따라서 크게 영향을 받는다. 하버드 등 미국 대학들은 학생들의 다양성을 받아들일 수 있는 구조가 돼 있다. 반면 우리나라는 불행하게도 문화적으로 그게 잘 되지 않는다. 그래도 카이스트라면 이런 시도를 해볼 만하다. 과학자는 과학에 대한 애정이 있어야 한다. 의사 중에 일부 이런 괴짜들이 있고, 이들을 키우려고 한다.
지금은 의학 분야의 산업이라고 하면 병원 밖에 없다. 의사들이 의대 정원 반대하는 가장 큰 이유가 의사들에게 유일한 시장이 개원가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새로운 시장이 있다는 걸 발견하면 달라질 수 있다. 지금은 견고한 벽이 있어 새로운 시장을 보지 못하고 있다. 그 담에 구멍 하나 내주고 싶다. 가성비가 낮고 위험한 일은 맞다. 의대를 아예 새로 만들어서 이런 일을 하려면 돈도 많이 들고 위험하다. 그나마 카이스트는 이미 의과학대학원이 상당히 인프라를 갖추고 있고, 그걸 더 키우는 게 카이스트가 해야 되는 일이기 때문에 시도해볼만하다.
- 카이스트가 의대가 아닌 의전원 체제를 구상하는 이유는 뭔가.
우리는 과기의전원에 들어온 이들이 의사가 아닌 과학자가 되기를 원한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의대에 입학 한 학생들은 아직 스스로 판단을 하기에는 경험이 부족하다. 의사과학자가 되려면 본인 스스로 결심이 서야 한다. 그래서 고등학생은 어렵고, 최소한 대학은 졸업해야 한다고 봤다. 그리고 우리 교육 프로그램이 기본적으로 상당한 지식을 갖추고 와야 해서 고등학교를 갓 졸업한 학생들에게 적절하지 않다. 이공계 대학을 졸업하고 상당 수준의 선수과목을 이수한 후에 의과학이나 의공학 연구에 대한 동기부여가 된 학생을 받는 게 좋다고 생각한다.
학생을 선발할 때 고등학교 졸업생을 뽑는 의대라면 성적순으로 뽑을 수밖에 없다는 점도 있다. 정원이 100명인데 30명만 뽑거나 난리가 날 것이다. 우리는 의전원 입학생을 뽑을 때 이 사람이 정말 의사과학자가 되고자 하는지, 그런 자질을 갖추고 있는지를 집중적으로 보고 선발하려 한다. 결과적으로 합격시킬만한 학생이 없다면 굳이 정원을 다 채우지도 않을 거다. 의사과학자가 아니라 의사가 되고싶은 학생이 입학하면 우리도 학생도 모두 힘들고 괴로울 거다.
그런 상황이 일어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의사과학자가 되어 새로운 영역에 도전하는 학생을 선발하는 것이 우리의 목표다.
카이스트가 이런 시도를 할 수 있는 건 목표가 의사를 만드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기존의 의대는 100명이 입학해서 100명이 졸업하지 않으면 의료 인력의 수급에 문제가 생긴다. 대학병원은 전공의가 있어야 하므로 의료인력의 적절한 수급은 중요한 문제이다. 그래서 카이스트는 따로 병원을 만들지 않으려 하고, 입학한 학생들이 그대로 다 졸업하지 않아도 된다. 과기의전원의 학생은 처음부터 의료인력으로 고려하지 않는 게 바람직하다. 이들은 다가올 질병을 예측하고 해결법을 연구하는 연구인력이라고 생각해주면 좋겠다.
- 카이스트가 최근 국회 토론회서 공개한 의전원 커리큘럼을 보면 의전원 4년 기간 중 첫 3년은 의학 교육, 마지막 1년은 MD-AI, MD-Bio, MD-Physics 교육을 받게 된다. 학생들이 의사국시를 준비하기 쉽지 않아 보인다.
그건 과기의전원 구상의 개요를 설명하기 쉽게 그려놓은 것이고 정확히 그런 것은 아니고 4년의 기간 중 대략 70%가 의학교육이고 30%가 공학 및 연구와 관련된 교육이다. 과기의전원은 의학교육와 그에 융합하는 공학을 같이 연구하는 곳으로 학생들은 이런 커리큘럼을 이해하고 카이스트가 제시하는 의학교육을 통해 스스로 국시를 준비하는 풍토가 형성되고 아울러 공학을 통해 연구하는 학생들을 배출할 것으로 생각한다. 카이스트는 의사과학자의 목표를 제시하고 미래를 위한 연구를 이끌게 되면 학생들도 큰 꿈을 가지고 해나갈 것이다.
이런 교육과정은 이미 여러 의대에서 시도하고 있다. 다만 학생들이 4학년때 의사국가고시에 매달리기 때문에 현실적인 어려움이 있다. 카이스트는 의사 면허를 받을 수 있는 자격을 갖춘 학생을 졸업시키는 게 목표지만, 의사국시를 준비하는 기관은 아니다. 따라서 계획된 교육과정에 충실한 교육을 다 할 것이다.
의사국시를 준비하기 위해서 마지막 1년의 교육을 파행적으로 운영하거나 연구를 포기할 만한 이유도 없고 생각도 없다. 계획하고 있는 교육을 잘 하고, 학생들이 스스로 의사국시를 준비하도록 학교의 역할만 해주면 충분히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임상 진출 완전 차단은 불가능…국내 병원 외 세계 최첨단 병원서도 실습
- 카이스트 이광형 총장은 과기의전원 졸업생들 대다수가 임상 의사가 될 것이라는 우려에 대해 법적 장치를 통해서라도 과기의전원 학생들의 임상 진출을 막겠다고 했다.
과기의전원의 설립 목적이 임상을 위한 의사 양성이 아니라 미래를 바꾸는 의사과학자 양성이기 때문에 우리는 임상 의사 배출을 생각하지 않는다. 의료생태계를 바꾸고자 하는 것이 카이스트가 추진하는 과기의전원이다. 연구에 더 많은 시간을 할애했던 의사과학자가 임상으로 돌아가는 것은 쉽지 않을 것으로 개인적으로 생각한다. 따라서 카이스트는 과기의전원을 통해 새로운 의료시장을 개척하고 의료생태계시장을 바꿔 나갈 것이다.
(임상진출을 완전히 막는 건) 불가능하다고 생각하고 막을 이유도 없다고 생각한다. 학생 선발부터 교육까지 철저하게 과학자의 길을 가도록 유도하겠지만 일정 부분 실패를 용인할 수밖에 없다. 그렇지 않으면 이 길을 택할 때 학생들이 감수해야 할 위험이 너무 크다. 최선을 다했지만 실패하는 학생들을 위해 최소한의 탈출구는 만들어줘야 하지 않나. 그래야 이 프로그램의 유입도 더 좋아지고 시장도 건전해질 수 있다.
그런데 이 프로그램에서 실패한 학생들은 다시 전공의 수련을 받으면 현재 의과학대학원이나 다른 의대에서 양성하는 진료와 연구를 같이 하는 의사과학자가 되는 것이니 그다지 실패도 아니다. 임상진출을 완전히 막을 이유는 없다고 생각한다.
다만 의사협회가 우려하는 것처럼 개원가로 진출하는 경우는 거의 없을 것으로 생각한다. 지금까지 우리의 경험으로도 거의 개원을 하지 않는다. 개원의가 될 만한 이들은 선발하지 않도록 많은 노력을 하고 여러가지 안전장치를 마련할 것이다. 의전원 졸업 후 일정기간을 의무로 연구개발에 종사하도록 법적장치를 만들어두는 정도로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 의료계에선 임상 현장을 잘 알아야 훌륭한 의사과학자가 될 수 있다는 지적도 있다.
맞는 말이다. 그런데 그건 지금 눈앞에 보이는 미충족 수요를 해결하는 게 목적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플라스틱을 왜 만들었는지 아나. 당구공을 만드는 데 사용되던 상아가 부족해서 대신 개발한 게 플라스틱이다. 지금과 같은 용도로 개발한 게 아니다. 그렇게 개발된 플라스틱은 지금 매우 다양한 용도로 사용된다. 기술 자체가 시장을 만들고 새로운 가치를 만든 것인데, 이런 연구를 해야 한다.
코로나 팬데믹 과정에서 큰 역할을 한 mRNA 백신도 마찬가지다. mRNA 기술은 코로나로 미충족 수요가 생겨서 만들어진 게 아니다. 기술 자체를 개발하던 와중에 코로나 팬데믹이 터졌고, 코로나 극복을 위해 가장 빠른 방법을 보니 mRNA 기술이 있었다. 비유를 하자면 미충족 수요를 채우기 위한 기술 개발은 정해진 과녁에 총을 쏘는 것과 같다. 반면에 가치를 만드는 건 남는 총알로 벽에 총을 마구 쏜 뒤에 새로 생긴 여러 구멍 중에 필요한 구멍에 표적을 갖다 붙이는 일이다.
현재 임상현장을 알고 문제를 개선하는 의사과학자는 현재의 시스템에서 잘 기를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문제를 해결하고 개선하는 것이 아니라 미래의 새로운 가능성을 만들 의사과학자도 필요하다. 혁신적인 기술을 의료의 현장으로 가져와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가는 의사과학자를 기르는 일은 더 먼 미래를 위한 준비이기도 하다.
결국 제한된 자원을 놓고 어떻게 쓰는지의 문제다. 현재 필요한 걸 해결하는 데 자원을 써야한다는 데 동의한다. 하지만 자원 중 일부분은 미래를 준비하는 교육에 투자해야 한다. 현재의 문제를 해결하는 건 지금 세대들이 잘 하고 있다. 그런데 의사과학자를 길러내는 건 미래를 준비하는 일이다. 미래를 살아갈 사람들이 원하는 게 뭘지, 그 사람들에게 필요한 게 뭘지를 봐야 한다.
- 학생들이 교육받을 병원은 어떻게 되는 건가.
의학교육평가인증을 위해서는 일정 기준을 갖춘 교육병원이 필요하다. 먼저 교육체계를 만들고 과기부 소속의 원자력의학원을 활용한다면 기본적인 의학교육에 문제가 없다. 학생들이 특정 병원 한 곳에서만 교육받게 하는 게 아니라 다양한 곳에서 실습을 할 수 있도록 할 것이다. 국내외 여러 의대, 교육병원들과 교류도 하고 도움을 받고자 한다.
실제로 미국 하버드의대 메사추세츠 종합병원(MGH), 뉴욕대(NYU) 랭건병원, 이스라엘의 쉬바 메디컬센터 등 세계에서 가장 혁신적인 병원들에 학생들이 실습할 수 있도록 해당 병원들과 접촉을 하고 있다. 이런 시스템을 추진하는 건 과기의전원 학생들이 기본적인 의학 실습에 더해 최첨단 과학이 실현되는 병원들도 경험해야 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 있는 좋은 병원들은 환자는 잘 보지만 혁신기술이 만들어지는 병원은 아니다. 우리는 학생들이 세계 최첨단의 혁신기술이 만들어지는 병원에서 실습할 수 있는 기회를 주고자 한다.
- 카이스트가 직접 병원을 짓고 운영할 일은 없는 건가.
지금은 병원을 만들 수도 없고 만들 이유도 없다. 먼저 우리가 꿈꾸는 병원을 만들 사람을 키워야 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꿈꾸는 미래의 병원은 기존의 국내 병원을 조금 뜯어고친 형태가 아니다. 우리가 설계한 반도체, AI, 플랫폼으로 미래의 병원을 만드는 실험을 할 것이다. 카이스트는 의전원을 만드는 것도, 병원을 만드는 것도 다 실험인 셈이다. 국내 다른 의대나 병원들도 이런 교육 과정과 병원을 만드는 데 동참해서 경험을 같이 나눌 수 있으면 한다.
카이스트의 성공이 한 기관의 성공이 아니라 국내 의학계의 성공의 발판이 되면 좋겠다. 그리고 다른 기관의 도움이 있을 때 카이스트가 성공할 가능성도 커진다고 생각한다.
50년 뒤 먹거리 바이오헬스…과기의전원은 동료·후배 의사들 미래 위한 도전
- 과기의전원을 통해 궁극적으로 이루려는 목표는 뭔가.
우리나라의 미래 먹거리를 만드는 거다. 카이스트는 그런 목적으로 세워진 학교다. 카이스트가 1971년에 설립됐고, 지난 50년간 길러온 인력들이 있었기에 우리나라 반도체 산업이 여기까지 왔다. 모두가 앞으로 50년 뒤의 먹거리는 바이오헬스 산업이라고 한다. 카이스트는 지금 우리가 아픈 걸 치료하는 의사가 아니라 50년 뒤의 미래를 만들어낼 사람을 키우자고 말하는 것이다.
그게 곧 의학의 미래이기도 하다. 기존의 견고한 체제에 작은 구멍을 뚫어 젊은 의사들에게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주고 싶다. 이 프로젝트가 크게 성공해서 새로운 시장을 만들면 어떻게 될까. 농담처럼 들릴지 모르지만 미래에는 후배들이 의사과학자를 하겠다고 달려들어서 개원가에 의사가 없다고 난리가 날지도 모른다.
- 카이스트 과기의전원 설립에 반대하는 의료계에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해달라.
의료계의 우려를 대부분 이해하고 공감한다. 나도 내 동료 의사들과 후배들이 망하는 걸 원하지 않는다. 그런데 의료계의 우려 때문에 새로운 시도를 포기하는 건 적절치 않다. 나는 이 일을 내 동료 의사들과 후배들에게 더 나은 미래를 열어주고 싶어서 할 따름이다. 우리나라 의료는 그동안 당장 눈앞에 닥친 의료현안을 해결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고, 눈부신 성장을 했다. 이제 새로운 성장을 위한 가능성을 찾아야한다. 과기의전원은 그 새로운 가능성을 찾기 위한 시도다.
의사들 중에도 연구를 하고 싶어 하는 이들이 많다. 그런데 현재의 저수가 구조에서 병원에 있는 대학 교수들은 환자 보는 일 때문에 연구를 하고 싶어도 하기가 힘들다. 나 정도 나이가 되면 연구만 해도 힘든데, 병원 교수들은 우선 진료 실적을 채우고 난 뒤에 연구를 해야하니 죽을 맛이다. 이 외에도 여러 이유로 연구를 하고 싶어도 못 하는 의사들이 있다. 나는 개인적으로 이 문제의 해결을 위해 의료 수가를 현실화해 의사들의 과중한 진료업무를 줄여주기를 바란다.
카이스트는 연구를 수익모델로 하는 대학이다. 연구비와 기술개발로 학교를 운영한다. 병원의 진료수익이 아닌 연구개발로 운영되는 연구중심의대, 연구중심병원을 만드는 것에 카이스트가 작은 물길을 하나 만들어주려고 한다. 그 길로 물이 계속 흐르다보면 큰 강이 될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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