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대 증원, 단순한 숫자 늘리기 아니다...의료의 질 떨어뜨려 통제하기 쉬운 '의사들의 하향 평준화' 노린 정치적 포석
[칼럼] 박인숙 울산의대 명예교수·전 국회의원
그림=구글 제미나이
[메디게이트뉴스] 의대 증원을 가지고 정부와 의사들간의 논쟁이 길어지면서 배가 산으로 올라가는 형국이다. 이를 보면서 정부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은 의사들의 하향평준화로 의대증원은 이를 이루기 위한 한가지 방편일 뿐이라는 생각이 든다.
다시 말하자면 정부는 의대 정원을 대폭 늘려서 실력은 상관없고 정부 말 잘 듣고 고분고분한 의사들, ‘낙수의사’들을 붕어빵 찍어내듯이 많이 배출해 지금보다도 더 적은 비용으로 환자들이 의사를 더 쉽게, 더 자주 만날 수 있도록 만드는, 즉 의사라는 전문직을 하향평준화시키겠다는 의도가 분명해 보인다.
이러한 시도는 2009년에 정부가 법학전문대학원을 만들어서 법조인들의 숫자를 늘려서 법조인의 질을 떨어뜨리고, 국민이 변호사를 낮은 비용으로 쉽게 접할 수 있도록 하는 데 성공했던 과거 정부의 경험을 되풀이하려는 것 같다.
보수성향이든 진보성향이든 과거 모든 정권에서 여야간 의견일치를 본 유일한 분야가 바로 의대 신설과 의대 증원이다. 과거나 지금이나 거의 모든 지역구 정치인들이 선거철마다 내세운 공약이 의대와 병원 신설이었고, 당선 후 이를 주요 정책으로 추진하면서 의사들과의 갈등과 불신만 커지는 악순환이 되풀이되고 있다.
결국 이런 오래된 논쟁이 국민과 의사들과의 관계를 이간질 하면서 상호 불신만 키웠다. 그런데 정부는 뒷짐만 지고 이런 반목을 즐기는 듯한 태도를 보였고, 이를 악용해 의사들의 의견은 철저히 무시하고 국민은 정부 편을 들며 정치권의 일방적인 주장이 결국 관철되곤 했다.
2023년 가을 윤석열 정부가 의대 증원을 추진하기 시작한 지 벌써 거의 2년 반이 지났고 이재명 정부가 들어선 이후 해결에 일말의 기대를 가졌다. 그러나 해결은커녕 오히려 더욱 나빠지는 분위기다. 의사인력수급추계위원회(추계위), 보건의료정책심의위원회(보정심) 등 정부가 내세운 각종 위원회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보면 이런 위원회는 모두 명분 쌓기용 정치적 요식행위일 뿐, 증원이라는 답은 이미 정해졌고 증원의 폭 결정만이 남은 것 같다.
의사, 학생, 전공의 등 모든 의사단체들이 격렬히 저항하면서 동시에 국민을 이해시키려는 노력을 하고 있지만 결과는 크게 기대할 것이 못 된다.
아직 위원회 활동이 종료된 것은 아니지만 이제껏 일어난 일들을 종합해 보면 정부가 이미 정한 답에 이를 뒷받침하기 위한 숫자를 거꾸로 짜맞추다 보니 근거중심 논의는 진작에 기대할 것이 없고 위원들도 거수기에 불과해 보인다. 이선희 교수가 추계위원직을 조기 사퇴하면서 ‘추계위는 과학이 아닌 정치 숙제였다’ 라는 말이 이를 증명한다.
지역의사제 법안, 공공의대신설 법안, ’의평원무력화법안‘ 등 국회에서 발의된 많은 관련 법안들을 보면 의사하향평준화가 정치권의 의도라는 의구심이 더욱 분명해진다. 알려진 바에 의하면 수도권 소재 의대 또는 지역에 위치한 의대라도 수련병원이 수도권이 있어서 수련 여건이 그나마 좀 좋은 의대는 증원이 적거나 없을 것이라고 한다. 즉 교육 여건이 열악한 의대일수록 더 많은 증원을 해준다고 한다. 너무나 이상한, 상식과 반대되는 정책 아닌가?
이는 의대 증원이 의대 교육의 질이나 배출되는 의사의 질에는 전혀 관심없는 것 뿐만 아니라 나아가 의사들의 하향평준화를 초래할 정책이라는 의구심을 뒷받침 해주는 단서라고 볼 수 있다.
인생의 가장 찬란한 시기인 20대 초반에서 30대까지를 부실교육이 뻔한 신설 지역공공의대를 졸업한 후 10년간 그 지역에 ‘묶여있으면서’ 정부에 ‘부역’하고 싶은 젊은이들이 얼마나 많을까? 그들이 받을 의학교육의 수준은 어떠할지, 지역에서 졸업 후 수련을 어찌 받을지, 과연 몇 명이나 10년을 다 채울지, 강제근무기간을 억지로 채운 후 실력과 향후 진로는 어찌 될지, 이런 의사들만 지역에 남으면 과연 ‘지역완결형의료’가 가능할지, 환자는 아무런 제약 없이 ‘명의’, ‘유명대형병원‘을 찾아 전국으로 흩어져 빠져나가는데 의사만 한 지역에 묶어놓는 것이 이치에 맞는다고 정부와 정치인들은 생각하는지, 정치인 자신들부터 지역 의사의 진료만 받을 것인지, 나아가서 그 지역 의료와 대한민국 의료의 미래는 어찌 될지, 이런 수많은 심각한 문제들에 대해 지금처럼 의사들만 고민하고 정부에 항의해야 아무 소용이 없다.
정작 진지하게 이런 문제들을 예상하고 고민해야 할 사람은 지역 정치인과 국민, 그리고 정부다. 그런데 지금 상황은 정반대이다. 의사들만 진실을 알고 미래를 걱정할 뿐이다. 정부는 이런 우려를 모른체 하면서 의대증원을 일방적으로, 그것도 마감일이 있는 것도 아닌데 대단히 급하게 추진하고 있다. 국민은 속는 줄도 모르고 자신들이 미래에 어떤 어려움에 처하게 될지도 모르면서 무조건 증원을 지지하고 있다는 사실이 기막힐 뿐이다.
지금 ‘표에만 눈이 먼 나쁜 지역 정치인’들은 자신의 탐욕 때문에 내린 결정이 대한민국 미래에 끼칠 나쁜 영향에 대해 깊이 고민해야하고 그 결과에 대해 끝까지 책임져야 한다. 신설 의대나 병원이 후에 어려움에 처했을 때 도덕적으로라도 책임질 수 있도록 이런 학교와 병원 이름에 지역 정치인들의 실명을 넣을 것을 제안한다. 혹시 후에 의대나 병원이 잘 되면 이를 추진했던 자신의 업적으로 길이 남을 것이므로 실명제를 반대할 이유는 없어 보인다.
정부는 의대 증원을 결국 관철시킬 태세다. 증원 규모 결정만 남은 것 같다. 이에 나라의 미래를 걱정하는 의사들은 끝까지 증원을 반대하면서 의대정원 관련 일본의 사례를 심도있게 연구하고 숙의할 것을 정부에 일관되게 주장해야 한다. 그래서 의료붕괴가 더 악화되는 것을 조금이라도 막아야한다. 그리고 후에 제기될 책임소재를 분명히 해두기 위해서 의대 증원과 지역공공의대 신설에 관한 정부의 잘못을 조목조목 지적하는 기록을 공식 문서로 남겨야 한다.
의사들에게는 진퇴양난의 시기가 점점 임박해오고 있다. 앞에 의료체계의 붕괴라는 재앙이 기다리는지도 알지 못하는 국민만 고생하게 생겼다. 정부가, 정치인들이 정치적 이익만을 위해 당장 황금알을 낳는 거위의 배를 가르는 어리석은 행위를 지금이라도 멈추는 기적을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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