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입력시간 20.05.15 10:17최종 업데이트 20.05.15 1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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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의 전면적 틀을 바꾸는 원격의료, 편의성과 산업계 논리로만 접근 안돼

[칼럼] 박상준 의협 경상남도대의원·신경외과 전문의

사진=게티이미지뱅크 

[메디게이트뉴스] 불빛 없는 밤길을 걷거나 앞이 보이지 않는 짙은 해무에 갇힌 채 길 잃은 배를 탄 경험이 있다면, 고요함과 인간의 감각으로 예측 불가능한 주변 환경이 주는 공포감이 얼마나 두렵고 사람을 고통스럽게 하는지 이해할 것이다.

지금까지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통제 가능한 수준으로 조절되고 있으나 종식에 이르기까지 아직 얼마나 더 큰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지 정확한 예측이 불가능하다. 이런 상황에도 불구하고 여기저기서 코로나19 이후 의료 환경 변화를 촉구하는 목소리가 들리고 있다.

의료 환경이 변해야 하는 이유와 의료 환경 변화가 가져다주는 장점이 사회를 더 나은 방향으로 이끈다면, 마땅히 의료를 담당하는 주체인 의료계가 환경 변화에 동참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이런 변화에 동참하기 위해서 의료 환경이 변해야 하는 이유를 확인하고, 이로 인한 피해를 최소화하려는 조치가 이뤄지고 난 이후에 진행돼야 한다.

그런데도 오직 경제적인 관점과 국민의 의료 이용 편의성에 치우친 판단으로 그동안 유지돼온 사회적 규칙과 법률의 변경 없이 여론몰이를 통한 급격한 의료 환경 변화를 주장하는 것은 옳지 않다.

의료는 의사가 환자의 질병을 해결하기 노력하는 총체적 행위로 고도의 지식 전문성, 합리적인 판단과 객관적인 근거에 기초해야 한다. 따라서 의료 행위는 의사가 환자를 만나면서부터 시작한다. 환자가 호소하는 증상과 환자의 신체가 나타내는 여러 징후를 모아 정보를 모아 체계화하고, 보조적으로 필요한 진단 검사 행위를 통해 환자가 느끼는 고통의 원인을 판단해야 생길 수 있는 오진 확률을 최소화할 수 있다. 이런 차원에서 의료법은 의료행위에 있어 대면진료의 원칙을 표방하고 있고 원격의료를 금지하고 있다.

단순히 감염 차단과 환자의 편의성에만 치우쳐 원격의료를 허용해야 한다는 주장이 가져다줄 국민 건강 위해에 대해 걱정과 심각한 우려를 하지 않을 수 없다.

더욱이 이런 원격의료 허용 주장에 원격의료와 관련된 산업계의 요구가 포함된 사실이 알려지면서 의료계의 반발은 크게 증폭하고 있다. 발달한 과학기술과 접목한 통신기술을 활용해 의료 혜택의 사각지대에 있는 국민을 위한 원격진료 행위에 대해 의료계도 적극적으로 노력하고 있다. 차분하게 정부와 논의를 통해 개선할 부분을 찾고 새로운 산업으로 발전시키려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사실에 공감하나, 원격진료 행위를 일반화한 원격의료가 가져올 혼란과 위험성을 인지하지 못하면 국민 건강에 큰 화가 미칠 것이다.

대한개원내과의사회는 원격의료 시행에 대해 강한 반대 의지를 표명했다. 대한의사협회의 최고의결기구인 대의원회가 내린 결정 또한 원격의료 저지에 있다.

최근 시행한 경상남도의사회의 설문조사에서도 코로나19 사태 이후 정부가 추진할 가장 중요한 의료 정책 변화로 원격의료 시행을 예상했다. 코로나19 사태로 일시적으로 시행한 전화 상담 및 처방 조치에 대한 질문에 현실적인 어려움을 해결하려는 방편으로 도입한 것으로 추가로 원격의료가 시행돼선 안된다는 응답이 전체의 절반(49%)에 달했다. 또한 대면진료의 원칙이 훼손되고 안전장치가 마련되지 않아 더 나가서는 안 된다는 응답이 전체의 3분의 1(35.3%)로, 원격의료에 대해 부정적인 의견이 많았다.

정부도 이런 점을 의식하고 원격의료 전면 시행에 대해 일부 부정적인 견해를 밝히고 있으나 지속적인 산업계의 요구와 국민 편의라는 여론에 얼마나 버틸 수 있을지 의문이다. 의료의 전면적인 틀을 바꾸는 원격의료는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 코로나19 사태 수습에 여념 없을 정부가 단순한 판단으로 원격의료에 대해 접근하면 큰 혼란이 발생하고 이를 수습하는 일에 너무도 큰 희생이 생길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정부, 산업계, 의료인과 국민이 모두 만족하는 최대 공약수를 찾는 데 최선의 노력을 다해야 한다. 아직 원격의료 시행의 때가 이르다. 


※칼럼은 칼럼니스트의 개인적인 의견이며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메디게이트뉴스 (news@medigate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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