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입력시간 26.09.11 06:54최종 업데이트 26.09.11 06: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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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년 외로운 법정 싸움 끝에 바로잡힌 죽음…故고원중 교수, '직무상 재해' 인정

법원 “주 80시간 과로·지원 부재·직장 내 갈등, 사망과 상당인과관계 인정”

유족 “환자와 의학계가 너무 큰 미래 잃어…다시는 같은 비극 없어야”

故 고원중 교수. 사진=MBC 실화탐사대 갈무리

[메디게이트뉴스 조운 기자] 주 80시간이 넘는 과로와 반복된 인력 지원 요청에도 줄어들지 않은 업무, 동료들과의 갈등과 단절. 

법원은 결핵과 비결핵항산균(NTM) 폐질환 분야의 세계적 권위자였던 고(故) 고원중 삼성서울병원 호흡기내과 교수가 이 같은 직장 내 요인으로 극심한 정신적 고통을 겪었다며 그의 사망을 직무상 재해로 인정했다. 이번 결과는 고 교수가 사망한 지 7년 만에 나온 선고다.

법원은 결핵과 비결핵항산균(NTM) 폐질환 분야의 세계적 권위자였던 고(故) 고원중 삼성서울병원 호흡기내과 교수가 이 같은 직장 내 요인들로 극심한 정신적 고통에 처했다며 그의 사망 후 7년만에 직무상 재해로 인정했다. 

서울중앙지방법원 제47민사부는 10일 고 교수의 배우자와 부모 등 유족 3명이 사립학교교직원연금공단을 상대로 제기한 유족보상금 등 청구소송에서 원고 일부 승소 판결을 내렸다.

재판부는 공단이 유족에게 각 1억9465만5999원과 지연손해금을 지급하고, 올해 8월부터 매월 각 175만5100원의 유족연금을 지급하라고 명령했다.

이번 판결은 고 교수의 사망과 직무 사이에 상당인과관계가 없다고 본 공단의 유족보상금 지급 거부 결정을 뒤집은 것이다. 다만 공단이 항소할 수 있어 판결이 확정된 것은 아니다.

유족 측 대리인 유현정 변호사는 선고 직후 “고 교수의 사망이 직무상 원인에 따른 것이라는 점이 법원의 판결로 인정됐다”고 밝혔다.

“주 7일 80시간, 최근에는 100시간”…법원 “개인 연구 욕심 아니다”

판결문에 따르면 고 교수는 삼성서울병원에서 결핵·NTM 분야를 담당하는 사실상 유일한 교수로 일하며 주 80시간 이상 진료와 연구 업무를 수행했다. 외래진료 준비와 환자 검사 결과 정리를 위해 사비로 직원을 고용하기도 했다.

고 교수는 2018년 병원장에게 보낸 이메일에서 “주 7일 80시간 이상 일하면서 지금처럼 연구를 계속할 수는 없다”며 “이러다가 과로사할지도 모르겠다”고 호소했다.

2019년 1월 사직서를 제출한 뒤에는 “최근에는 100시간 가까이 일하고 있다. 지난 수년간 휴가나 여행 한 번 가지 않고 1년 365일을 이렇게 살았다”며 “몸도 마음도 너무 많이 망가졌다”고 밝혔다.

하지만 병원에 지속해서 인력 지원을 요구했음에도 실질적인 업무 경감은 이뤄지지 않았다. 판결문에는 일부 동료 교수가 고 교수를 제외한 별도의 카카오톡 대화방을 만들었고, 고 교수가 이로 인해 크게 상심했다는 내용도 담겼다.

고 교수는 사직 후 아주대학교병원으로의 이직을 준비했지만 2019년 8월 21일 호흡기내과 환송회에 참석한 뒤 세상을 떠났다.

사학연금공단은 고 교수가 개인적인 연구 의욕에 따라 자발적으로 과도한 업무를 수행했고, 병원과의 갈등도 통상적인 직장 내 스트레스 수준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법원은 고 교수가 2015년경부터 과도한 업무로 번아웃과 정신적·신체적 고통을 겪었고, 사망 당시에는 정상적인 인식과 판단 능력이 현저히 저하된 상태였다고 판단했다.

심리부검에서도 과도한 업무와 동료와의 갈등·단절, 연구 기반을 잃을 수 있다는 상실감이 고 교수의 정신적 불안정을 악화시킨 것으로 분석됐다. 특히 사망 당일 환송회가 무가치감과 모욕감을 불러온 결정적 촉발사건으로 작용한 것으로 평가됐다.

재판부는 “우울증 치료를 받은 구체적인 병력이 없거나 자발적인 업무 수행이 사고 발생에 일부 기여했다고 해도 달리 볼 수 없다”며 고 교수의 업무와 사망 사이 상당인과관계를 인정했다.

유족 “막을 수 있었던 비극…다시는 이러한 일 일어나지 않길”

고 교수의 부인 이윤진씨는 판결 직후 “이러한 일이 다시는 정말 일어나지 않았으면 좋겠다”며 “당시 교수 한 명만 더 충원됐어도 남편이 병원을 떠나겠다는 결심을 하지 않았을 것이고, 이런 비극도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남편은 의사의 본분은 환자를 진료하는 것이고, 연구 역시 다음 환자를 더 잘 치료하기 위해 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던 사람”이라며 “자신의 성과보다 환자와 후배, 제자를 먼저 생각했다”고 회고했다.

고 교수는 삼성서울병원에서 18년간 근무하며 국내에 연구 기반이 거의 없었던 NTM 폐질환 분야의 환자 코호트를 구축했다. 환자 4000명 이상의 검체를 수집해 연구 기반을 마련했고 재직 기간 총 441편의 논문을 발표했다. 고 교수가 남긴 코호트와 연구자료는 현재도 국내외 연구자들의 후속 연구에 활용되고 있다.

환자들도 고 교수를 여전히 기억하고 있다. 유족에 따르면 한 NTM 환자는 온라인 커뮤니티에 고 교수가 “걱정은 의사인 내가 할 테니 환자는 푹 쉬기만 하라”고 위로했던 순간을 평생 잊을 수 없다는 글을 남겼다.

이 씨는 “지금도 환자들이 남편의 이름을 검색하고 ‘이런 의사는 다시 만나기 어려울 것’이라고 이야기한다”며 “환자들에게도 큰 별을 잃은 일이었다”고 했다.

이어 “남편이 살아 있었다면 더 많은 환자를 치료하고 제자를 길러내며 새로운 연구를 했을 것”이라며 “한국뿐 아니라 세계 의학계가 너무 큰 미래를 잃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번 판결로 남편을 되돌릴 수는 없지만 환자 진료와 연구에 헌신하는 의료진이 과로와 고립 속에 방치되는 일은 더 이상 없어야 한다”며 “병원도 의료진의 희생을 당연하게 여기지 말고 필요한 인력과 환경을 갖춰 다시는 같은 비극이 반복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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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운 기자 (wjo@medigate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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